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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00화 (100/258)

# 100화

뜬금없이 고아원 시절이 생각났다.

전이의 혼란으로 인해 방치되다시피 했던, 그러나 좁은 고아원에 갇혀 지내기에는 활발했던 아이들은 어느 날 뒷산에서 풍뎅이 몇 마리를 채집해 와 싸움을 시켰었다.

영역 곤충인 풍뎅이는 아이들이 만든 모래 경기장에서 열심히 싸웠었지. 하지만 나는 첫날에 잠깐 구경하고, 그곳에 얼씬도 하지 못했었다.

아이들 딴에야 자기 손바닥보다 작은 풍뎅이들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풍뎅이들은 필사적이었고, 곤충의 마음은 읽을 수 없더라도 그 처절함은 확실히 내게 전해 왔었다.

“하하… 조금 큰 풍뎅이인거지.”

그렇다.

어쩌면 원장님의 눈에는 마물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사투가 풍뎅이 싸움 수준이 아닐까? 인간이 손가락으로 풍뎅이 옆구리를 짚고 들어 올리면, 허무하게 끝나 버리는 그런 싸움.

내 연락에 곧바로 섬에 도착한 원장님은 손짓 두 번에 사태를 정리했다. 아이들의 풍뎅이 싸움을 말리는 것보다 쉬워 보였다. 마물은 순식간에 마물원으로 이동되었고, 인간들은 내가 모르는 그녀만이 아는 곳으로 이동되었다.

나름 필사적이던 그들의 싸움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하… 내 힐링이.”

힐링을 위해 섬에 왔으나 한 것이라고는 늘어지게 잔 후(그마저 악몽을 꿨다.), 일어나자마자 카르마 길드와 난폭하게 엮인 게 다였다.

나는 사태를 정리하고 곧바로 같이 마물원으로 돌아가자는 원장님의 말에, 용기를 내어 휴가를 하루 더 달라고 부탁했다.

“안 돼요. 이미 쉴 만큼 쉬었잖아요? 일이 많이 밀렸어요.”

“하지만 전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고요. 휴가다운 휴가를 보낸 적이 하루도 없…….”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분 나쁜 메스꺼움이 몸을 강타했다. 원장님이 순식간에 공간 이동 마법을 발동시킨 것이다. 눈을 끔뻑하고 뜨니 마물원의 관리실이었다.

“다정 씨가 트러블 메이커인 걸 어쩌겠어요. 호호.”

다소 휴가를 넉넉하게 주던 원장님도 이번만큼은 봐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의 부탁으로 전이와 싸움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마물들을 진정시키는 일을 곧바로 해야 했다.

밤새 일을 한 후, 반차를 받았으나 자고 일어나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다음 휴가만큼은 몇 억짜리 초호화 휴가를 떠나기로 마음먹으며, 아침 출근길에 나섰다.

*

출근을 한 나는 원장님에게 아침 보고를 시작했다. 카르마 길드에 대해서였다. 나는 보고 들은 것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전이를… 미리 알아차렸다고요?”

별 대수롭지 않게 듣던 원장님도 카르마 길드가 전이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대목에서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흔치 않게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정말… 정말인가요? 한낱 인간 따위가?”

“글쎄요. 잘은 모르니까 확답은 드리지 못해도… 전이가 일어나기 전에 그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니까요. 원장님만큼 정확도가 뛰어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놈들이 전이를 예측했다고 봐야겠죠?”

전이를 미리 대비하고, 마물이 싫어하는 기계를 설치했다. 고독이란 질 나쁜 사냥법도 준비했었지.

원장님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한 단어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카르마… 카르마.”

나는 그 모습이 무서웠다.

‘용’이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뭘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카르마 길드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서 싹쓸이라도 하려나? 그러면 다행이지. 어쩌면 카르마를 숨겨 주던 나라 전체가…….

“흥, 날 너무 성가시게 하는군요. 좋아요. 다정 씨, 앞으로 잘 부탁해요.”

“으응, 네에?”

그녀가 보여 줄 파격적인 행보를 기대하며 갖가지 상상을 하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갑자기 그녀가 내게 부탁한다고 말했다.

상황으로 보면 그녀가 내게 부탁할 것은 자명했다.

“그걸 왜 제게… 제가 어떻게요? 아니, 진짜 제가 생각하는 게 맞긴 하죠?”

원장님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이 내게는 더 무섭게 다가왔다.

“난 용이잖아요. 용, 이런 허접한 일엔 직접 나서지 않아요. 인간의 일에 용이 나서면 위엄이 서지 않으니까요. 대신 다정 씨, 내 가디언 맞죠?”

‘맞긴 뭐가 맞아.’

나는 개뿔이 맞는다고 말대답하려다가 꾹 참았다.

“걱정 마세요. 다정 씨라면 문제없으니까.”

그녀는 본론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속뜻은 눈치채기 쉬웠다. 지금 카르마 길드와의 싸움에서 나더러 전면으로 나서길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거절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대답을 듣지 않았다.

원장님은 곧바로 나를 위해 무언가 ‘계획’을 준비한다며 원장실로 향했다. 나는 원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손가락을 떨었다.

‘저 걸음걸이, 미묘하게 경쾌한 발걸음.’

보통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일 년 넘게 곁에서 지켜본 나는 알 수 있었다. 평소보다 발바닥이 미묘하게 조금 더 올라간 채 걷는 발걸음, 조금 더 실룩거리는 엉덩이. 원장님은 약간 신나 하고 있었다.

‘뭐가 신나는 거지?’

그리고 나는 신난 원장님에 오싹함을 느꼈다. 드래곤이 신날 정도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그날 오후, 원장실에서 나온 그녀에게 말했다.

아무렴 어떠랴, 당장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원장님, 저 이상한 것 같아요.”

그녀는 커피를 내리며 대답했다.

“맞아요. 다정 씨는 이상한 사람이에요.”

나는 입술을 오물이고 뺨을 긁적이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

“평소에 마물이 절 비교적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번엔 조금 달랐어요. 처음 만난 마물들이 내 명령에 복종하듯이… 아니, 것보다 마치…….”

머릿속으로 떠오른 비유가 적절한 것 같지 않아 고민하다가, 막연히 떠오르는 게 없어 말을 꺼냈다.

“원장님은 이런 비유가 와닿지 않으시겠지만 그땐 마치 내가 잘나가는 골목대장이 된 것 같았어요.”

태어날 때부터 ‘골목대장’인 용들은 모르겠지. 하지만 전이를 당해 잔뜩 성난, 흉포한 마물들이 내 명령에 따라 줬을 때, 나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어릴 때 고아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또래 무리에 잘 섞여 들어가지 못했다. 쉬운 얘기로 전이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평범한 또래 녀석들이 부럽기도 했다.

특히 잘나가는 녀석들.

단지 싸움만 잘하는 머저리 같은 놈들이 아니다. 또래들이,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따르는’ 진짜 특출한 아이.

지금까지 마물들이 나를 친구로 여겼다면 이번엔 미묘하게 달랐다. 녀석들이 조금 더 날 존중해 주는 것 같은 느낌, 오버하자면 마물들이 내게 마치 복종하는 것 같았다.

무려 어떤 친밀한 관계도 없이 첫 만남에 말이다.

“어머, 몰랐어요?”

나는 진지하게 물었으나 원장님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녀는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 똥그란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힘의 서열을 얘기하는 거라면 맞아요. 다정 씨, 알고 있어요?”

알리가 있나.

내가 멀뚱멀뚱 쳐다만 보자 원장님이 말을 이어 나갔다.

“다정 씨의 능력, ‘교감’이라고 하는 것. 단지 마물들의 속마음을 읽는 게 아니에요. 샐러맨더, 이묘, 세이렌 등 다정 씨는 원래 마물들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받고 있었어요.”

그녀는 내가 이제 ‘멸망 등급’ 마수들을 제외하고 마물원의 모든 관리 시설을 자유롭게 출입, 관리할 수 있다고 얘기하며 내 힘에 대해 말을 해줬다.

“다정 씨의 힘이 깊어질수록 단지 마나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건 아녜요. 지금까지 다정 씨를 ‘연구’한 결과로선 그래요. 이번 전이의 마물들이 비교적 복종심이 강한 마물들이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앞으로 다정 씨의 힘이 더 강해지면 정말 마물들을 완벽히 복종시킬 수도 있겠죠. 그 어떤 관계를 쌓지 않음에도.”

마물들을,

복종시킨다고?

“워메, 그게 뭐랍니까.”

황당함이 반, 놀라움이 반이었다.

원장님의 말은 결과적으로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몰라도 정말 그렇다는 얘기다.

‘점점 내 힘이 규격 외라는 건 깨닫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놀랍다.

마물은 지금 세상에도 많고,

전이가 진행될수록 더 늘어날 텐데, 그 마물들을 복종시킨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조금만’ 더 나빴어도 마물들을 데리고 무슨 짓이라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했어요? 다정 씨는 다정 씨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능력을 지녔어요.”

원장님은 황당한 표정으로 망상에 잠겨 있는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기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입술이 귀에 너무 가까워서 따뜻한 바람이 느껴졌다.

“괜히 내가 가디언으로 삼은 게 아니야.”

아마 이때부터다.

나를 잘 알기에 소인배처럼 굴던 내가, 나 자신에게 자존감을 가지게 된 건.

어쩌겠는가, 용이 인정해 버렸다.

나는 제법 대단한 사람이란걸.

*

포근이의 거대한 앞발이 내 가슴을 짓누른다. 보기보다 훨씬 묵직하여 소 한 마리가 올라탄 것 같다. 녀석에게는 애교겠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갈비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나무랄 수 없었다. 포근이와 이러는 것도 이제 끝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벌써 2년, 갓난 새끼 때부터 나와 함께한 주먹만 하던 녀석이 어느덧 하마보다 더 커져 버렸다. 성체가 되어 가며 칭얼거림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포근이는 여전히 내게는 귀여운 아이였고, 보기에 흉포하기 그지없는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이제는 헤어질 때였다. 녀석은 이제 출가를 해야 한다. 예쁜 색시를 얻어 귀여운 아이를 낳아야 한다. 샐러맨더로서 샐러맨더들과 지내야 하는 것이다.

끄앙-!

뀨뀨 거리던 울음소리도 코끼리처럼 우렁차진 녀석, 활활 타오르는 털을 내게 비비적거렸다. 나는 포근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이젠 진짜 가야지?”

내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제 머리로 내 가슴팍을 민다. 나는 골치가 아파 한숨을 쉬었다.

“성격도 날 닮으면 어떻게 해?”

생각해 보면 녀석은 나에게 정말 소중했다.

마물에 대한 편견도 녀석 때문에 많이 달라졌다. 처음으로 부성애를 느끼며, 심지어 내 젖(비유적인)을 먹이기도 했으니까.

내 힘에 대해서 깨달은 것도 사실 포근이의 덕이 컸다.

마물원에서 일을 하며 위급할 때에 녀석과 교감한 덕에 생겨난 ‘불꽃의 힘’이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서 녀석과 헤어지기 싫다. 녀석은 세상에서 혼자인 내게, 처음으로 생긴 가족이었다.

하지만 나와 지내며 배울 대상이라고는 나밖에 없던 터라, 녀석은 다른 샐러맨더들과 다르게 자라났다.

샐러맨더보다 덩치는 훨씬 큰 주제에 야생의 샐러맨더와는 달리 소심하고 겁이 많다. 마물원 샐러맨더들과 합사를 시도해도 어울리지 못하고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다.

어리광을 피우던 녀석을 꾸짖기도, 달래기도 한 지 벌써 수십 차례.

“임마! 부딪쳐 보라니까. 너 정도면 꿀리지 않는다니까.”

이번에도 합사를 실패했다.

내 말에도 녀석은 내 곁에만 있으려고 했다.

나는 내 품에 안긴 포근이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래서는 안 돼.

사실 내가 놓아 주기 싫은 걸지도 몰라.

포근이를 재우고 원장실로 향했다.

결심한 나는 확실히 말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원장님에게 포근이의 합사를 내게 맡겨 달라고 했지만, 그건 헤어지기 싫은 내 핑계에 불과했다.

그녀라면 확실히 해결해 주겠지.

나는 원장실의 문을 열고 그녀에게 말했다.

“도와주세요,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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