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이 사진들은…….”
원장님은 내게 몇 장의 사진을 보여 줬다. 물론 사진이란 건, 달리 저 물건을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원장님이 건넨 사진 속 ‘마물’들은 홀로그램처럼 실감 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두머리 개체의 자료들.”
원장님은 사진에 찍힌 마물들이 모두 한 무리, 나아가 한 ‘종’을 대표하는 우두머리라고 했다.
과연 생김새가 다르다. 아라크네, 세이렌, 훔바바까지 모두 내가 아는 마물들이었으나, 우두머리 개체들은 생김새가 크게 달랐다.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위압감. 반인거미 아라크네의 우두머리 개체는 보통 아라크네보다 훨씬 몸통이 두꺼워, 마치 타란툴라와 실거미 정도의 차이가 났다. 원숭이 마물 훔바바의 우두머리 개체는 백색 털가죽에, 이마에는 검은색 뿔이 돋아나 있었다.
마나도 보통 개체보다 몇 배는 강력하다고 한다.
“포근이는 마물원의 다른 샐러맨더들과는 합사가 불가능해요.”
원장님이 말했다.
“녀석이 우두머리 개체의 ‘자질’을 후천적으로 깨우친 것 같군요.”
원장님이 우두머리 마물들의 사진을 보여 준 이유, 바로 포근이가 우두머리 개체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원장님이 전에 말해 준 적이 있었다. 포근이가 성장이 더딘 것도, 유독 강한 불꽃을 분출하는 것도 내 영향 때문이라고.
“저 때문에… 포근이가 우두머리가 되었다고요?”
원장님은 내가 말을 더듬은 이유를 오해한 모양이다. 그녀가 말했다.
“모두 다정 씨 탓이라곤 할 수 없어요. 그저 포근이가 가졌던 개체의 한계가 유독 높았을 뿐이죠.”
그녀는 내가 자책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니다. 이건 ‘탓’이 아니라 ‘덕’이다.
“포근이가 우두머리. 그러니까 대빵이라는 거잖아요?
나는 지금 몹시 기뻤다.
비록 무리와 잘 섞이지 못한 게 내 탓이라고 하면 내 탓이겠지만.
포근이가, 우리 포근이가 우두머리라고 한다.
묘한 환희가 느껴져,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치 재능이 넘치는 아들을 둔 부모가 된 것 같았다. 왜, 자식이 조금이라도 재능이 있다면 호들갑 떠는 부모들, 지금의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백분 이해할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 보세요. 우리 포근이가 대장이래요!
“그럼 어떡하죠? 포근이가 원래 살던… 그 양해의 바다인가 거기로 가야 하나요? 이야, 어쩐지 샐러맨더들이 우리 포근이를 무서워하더니 우두머리라서 그랬네요. 잠깐, 샐러맨더들은 우두머리가 암컷을 모두 독차지한다고 하지 않던가요? 어머, 얘는 나보다 더…….”
내 호들갑에 원장님이 눈썹을 구긴다. 나는 그 즉시 유난을 멈추고 진정했다. 싸해진 분위기에 코만 훌쩍거리고 있자, 원장님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포근이가 우두머리 자질을 가진 건 맞아요. 하지만 마물의 우두머리는 짐승들과 달라서, 단지 덩치와 힘만 세다고 되는 게 아니랍니다. 무리의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우두머리가 되지요. 그리고 인정을 받기 위해선…….”
갑자기 원장님이 섬뜩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다정 씨, 마음 굳게 먹어요. 어쩌면 포근이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 순간 나는 장성한 아들을 둔 부모에서, 처음 놀이터로 향하는 아들을 보는 부모가 되었다.
우리 포근이, 생긴 것과 달리 곱게 자란 아인데.
어떡하지?
*
다음 날, 결국 양해의 바다로 떠나기로 했다. 포근이는 우두머리 개체의 자질을 지녔기에, 무슨 수를 써도 평범한 무리에 합사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녀석이 앞으로 갈 길은 세 가지밖에 없었다. 우두머리가 되든가, 홀로 살아가든가.
아니면 나하고 평생 살든가.
진심으로 마지막 선택지를 고려해 봤으나 그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녀석은 부디 예쁜 마누라를 얻어 자식을 보길 바랐다. 그게 행복일 테니까.
“포근아, 잘할 수 있지?”
양해의 바다로 향하는 공간 포탈 앞에서 나는 포근이에게 말했다. 녀석은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천진난만한 모습에 왠지 가슴이 쓰리다. 저 녀석이 과연 앞으로 벌어질 일을 견딜 수는 있을까.
원장님이 말해 준 작전은 이러했다.
포근이가 양해의 바다, 샐러맨더 서식지, 그곳의 우두머리가 된다. 마물원과 달리 그곳에는 호전적인 샐러맨더들이 많다. 원장님은 덤비는 놈들을 포근이가 차례차례 제압하다 보면, 결국 인정을 받아 우두머리가 되어 있을 거라고 했다.
“어휴, 놈들이 덤비면 맞고만 있지 말고. 마음 같아선 대신 싸워 주고 싶다.”
하지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마물원의 순한 샐러맨더들도 무서워하던 녀석이 싸움을 할 수 있을까?
녀석에게는 너무 큰 벽일 거야.
“널 믿어야겠지.”
원장님은 포근이가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손쉽게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며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반대로 말하면,
포근이가 끝까지 저런 순진한 모습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다.
누가 키웠는데, 포근이도 할 때는 하는 남자겠지!
물론 한 번에 큰 벽을 넘을 생각은 없었다. 계속 시도를 해 볼 생각이다.
“원장님은 정말 못 오세요?”
나는 포탈을 넘기 전, 원장님에게 재차 물어봤다. 그녀는 내게 다시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마법 아이템만 주고는, 나 혼자서 포근이와 갔다 오라고 하였다.
“미안하지만 다정 씨만 가야 해요. 저번에 양해의 바다에 갔을 때 일을 조금… 그르쳐서 양해의 주인들이 절 싫어하거든요. 내가 있으면 더 위험할 거예요.”
그렇다는데 어쩔 수 있나.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턱시도에 포근이의 힘을 감싸고, 녀석과 같이 포탈을 넘었다.
*
익숙한 멀미와 두통이 지나고 눈을 깜빡하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저번에 한 번 오긴 했으나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곳이다.
양해의 바다.
불과 용암의 바다.
나는 발밑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포근이의 기운 덕에 서 있을 수 있지만, 저 아래는 시뻘건 불의 기운이 바다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예전에는 몰랐으나 마나를 깨우친 후 다시 오자 확실히 느껴졌다.
주변에 가득한 불의 마나와 득실거리는 섬뜩한 기운. 역시 이곳은 위험해.
끄앙-!
잿빛 하늘과 붉은 바다를 바라보던 나는 포근이의 포효에 콧잔등을 긁적였다. 녀석은 이 세상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잔뜩 흥분하여 용암 속을 헤엄친다.
‘젠장, 이러면 더 할 수밖에 없잖아.’
몹시 기뻐하는 포근이의 모습에 나는 점점 마음을 굳혔다. 역시 포근이는 샐러맨더, 인간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해.
포근이가 적응하도록 한참을 뛰어 놀게 놔뒀다. 그동안 나는 다른 샐러맨더의 위치를 파악했다. 원장님이 준 마물 GPS 마도구로 근처 샐러맨더 무리를 탐색했다.
“이 무리는 너무 많아. 여긴 너무 적고. 여긴 강력한 우두머리가 이미 있는 모양이군. 어디 보자… 가까운 곳에서… 그래, 이곳이 좋겠네.”
양해의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물답게 샐러맨더는 무척 많았다. 나는 그중 50~60마리 정도 탐색되는 한 무리를 찾았다. 규모도 적당하고 특출하게 강한 힘을 지닌 개체도 없었다. 신생 무리 같았다. 이 무리라면 포근이도 우두머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포근아.”
나는 녀석을 불러, 녀석의 등가죽을 정성스레 닦아 줬다. 눈가의 눈곱과 발톱에 묻은 이물질도 떼어 줬다.
내가 샐러맨더의 시선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도 첫 만남에 꿀려서는 안 돼.
출가하는 아들의 넥타이를 매어 주듯 정성스레 몸을 닦아 주고, 녀석에게 말했다.
“힘내라, 녀석아.”
그제야 포근이도 분위기를 눈치채고 불안해했다. 혓바닥으로 내 얼굴을 핥아 준다. 나를 걱정해 준다. 아니, 걱정해야 할 건 너야. 이 녀석아.
“왜 눈이 따갑냐. 주책이다, 진짜.”
복잡한 감정, 슬픈 감정은 아닌데… 이상하다. 왠지 마음이 먹먹했다. 지금 당장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이상하다고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나는 어쩌면 마지막일지 몰라,
포근이를 꽉 안아 주었다.
“가자.”
뀨앙!
내 마음을 알아준 걸까.
녀석은 전에 없이 진지한 마음으로 날 뒤따라왔다.
*
‘서열 싸움’은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포근이와 내가 샐러맨더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웬 수컷 한 마리가 덤벼든 것이다.
샐러맨더는 양해의 주인들인 어룡이라고 할지라도 물러섬이 없이 싸울 정도로 영역에 민감한 마물이었다.
특히나 젊은 샐러맨더들로 이루어진 이 신생 무리의 수컷들은 포근이의 존재를 위협적으로 느낀 듯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뒤로 물러났다.
포근이는 내게 ‘의문’을 보내며 나를 애타게 불렀지만, 나는 고개를 돌렸다.
뀨앙-!
포근이보다 덩치는 작지만,
다른 샐러맨더보단 큰 놈.
아마 이 무리의 우두머리겠지.
놈이 독하게 덤벼든다.
포근이는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목덜미를 물린 채 고통스러운 비명만을 내지른다.
포근이가 벌벌 떤다. 무서워한다.
마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나라서 더욱 격렬하게 느껴졌다. 세상 가장 서럽게 우는 녀석의 마음이.
결국 포근이는 수컷 샐러맨더의 거친 공격에 내팽개쳐졌다. 놈은 승리를 확신하고 콧김을 내뱉으며 무리로 돌아갔다. 적을 물리친, 믿음직한 우두머리의 모습이었다.
그에 비하여 패배자인 포근이는 처량했다. 나는 서럽게 우는 포근이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녀석은 자신을 괴롭게 하도록 방치한 내게 반갑다고 다가와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어리광, 그만해.”
나는 강한 힘으로 녀석을 밀쳐 냈다.
포근이가 명백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강하게 말이다.
“안 아프잖아.”
그리고 일어나 망설임 없이 걸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포근이가 나를 뒤따라온다.
“다른 곳으로 가자.”
나는 적합하다고 여긴 샐러맨더 무리를 떠나 다른 곳을 찾아갔다.
보다 더 강한 우두머리가 있는 곳으로. 더 많고 큰 샐러맨더들이 있는 영역으로.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녀석은…….’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독한 마음을 가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포근이가 처음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깨달았다.
포근이는 너무 마음이 여리다.
짜증 날 만큼 착하고 순진하다.
심지어 목덜미가 물리는 게 전혀 아프지도 않으면서, 상처 하나 없으면서, 진짜 힘을 낸다면 저런 수컷 샐러맨더 따윈 순식간에 이길 수 있을 거면서.
일부러 봐주는 것이다.
그리고 ‘마물’이 저렇게 된 건 내 탓이 컸다. 힘이 강해진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감정과 마음을 공유하며 녀석이 인간과 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된 건 필히 고쳐 둬야 했다.
그래도 녀석은 샐러맨더라는 마물이니까. 내 책임이니까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해.
나는 포근이를 믿었다.
*
두 번째 무리, 마찬가지로 목덜미를 물려 패배. 나는 그 즉시 더 크고 강한 우두머리를 찾아갔다.
세 번째 놈,
포근이의 등가죽에 실 같은 상처를 입혔다. 역시 승리는 놈이 했으나, 포근이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네 번째 무리에서 확실히 ‘우두머리’라고 느껴질 만큼 강한 샐러맨더 수컷을 만났다. 덩치만 비교하면 포근이와 비슷하다.
놈의 이빨은 크고 포악하여 포근이의 가죽도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결국 포근이는 꼬리를 내리고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저항을 시도했다. 포근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고, 녀석의 마음속에서 깡이란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덩달아 벅차진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 상대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다섯 번째 상대, 이 근방에서 가장 강세한 영역을 이룬 샐러맨더 무리의 우두머리.
놈을 만났다.
포근이도 나도 놈을 대면한 순간 깨달았다, 이전까지의 상대와는 비교조차 수 없다는 것과 이번 싸움은 목덜미에 상처를 입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단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