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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15화 (115/258)

# 115화 수의사(2)

바스테 병원은 프랑스 남서부 오트가론 지방, 주도 툴루즈에서 꽤 멀리 떨어진 생고당 평원에 세워져 있다. 사타리언 부인으로부터 듣기로 이곳은 다각적 농업 지대로, 최초로 포도를 재배하기 위해 마물의 성질을 이용한 농경을 실행한 곳이라고 한다. 또한 가축화된 마물이 체계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곳이었다.

마물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바스테 병원이 설립되기에 딱 알맞은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바스테 병원의 규모는 상당했다. 한국의 대학 병원보다 얼추 열 배는 더 크지 않을까. 연구 시설을 겸하는 바스테 병원은 세 곳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가장 큰 건물은 마물을 치료, 진단 하는 본채였고, 그보다 작은 두 건물은 마물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마물을 치료하는 병원의 특성상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치고 병든 마물이 몰려왔다. 때문에 전용 활주로도 존재하여, 우리에 갇힌 마물이 비행기로 운송되는 진귀한 장면을 이곳에서는 수시로 볼 수 있었다.

나는 사타리언 부인으로부터 몇 가지 물품을 받고, 당부 사항을 들은 뒤, 홀로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입구에는 나를 환영하는 바스테 병원의 의사들이 있었다. 새로운 상사인 나를 위해 환영식이라도 열어 주려는 모양이지만, 나는 표정을 굳히며 걸어갔다.

옷깃의 단추를 눌러 통역 마법을 작동시키고, 최대한 싸가지 없는 말투와 표정으로 말했다.

“반갑소. 내 이름은 다 아실 거라 생각하오. 자질구레한 행사는 집어치우고, 우선 본관 시설부터 안내해 주시오.”

어쩌면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잘나가는 의사가 싸가지 없게 군다는 건. 하지만 나는 이편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엮이면 엮일수록 섣부른 경계심을 키우는 꼴이다. 그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상황을 지켜보는 게 편하다.

똑똑한 사람들은 과연 달랐다.

바스테 병원의 의사들은 첫인상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곧바로 파악한 것 같았다. 쓸모없는 대화는 하지 않았고, 곧바로 바스테 병원의 본관으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기 전 마물 의학 용어 외에도, 병원에 근무하는 주요 인사들의 이력서를 달달 외웠다. 사타리언 부인이 특히 의심하던 의사 여덟 명. 모두 바스테 병원에서 한 분야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담당의이자, 주요 인물이었다.

프랑스인 세 명과 미국인 네 명, 그리고 중국인 한 명이었다. 이력서 상으로 별 문제는 없었으나, 내부 감사에서 이들 모두는 바스테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의심받을 수상한 짓을 자행한 경력이 있었다.

바스테 병원의 시설을 안내 받으며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신기한 시설들에 입으로 새어나오는 말들을 참다가, 결국 입술을 깨물기까지 했다. 내게 주둥이가 가볍냐, 무겁냐를 물어보면, 물 위에 둥둥 떠다닐 만큼 가볍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할이 역할이니만큼 과묵할수록 좋을 것 같았다.

‘이자는 빚이 많다지.’

나를 안내한 자는 프랑스인 여자였다. 다른 일곱 명과 다르게 신비한 능력에 기초하는 게 아닌 차근차근 의학도를 밟아 온 의료인이었다.

특별한 능력은 없었으나 쌓아 온 경험과 지식은 단연 수준급이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전, 아주 큰돈을 마피아로부터 빌렸다. 병원의 봉급으로 갚기에 터무니없는 금액. 사타리언 부인은 그녀가 지식을 마피아에게 유출시킬 것을 걱정했다.

병원을 소개하는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그냥 평범한 외국인 아줌마라는 것이다. 다만 하얀 의사 가운의 소매로 감춘 팔목에, 근사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팔찌가 언뜻 보였다. 허영심이 많은 자인 것 같았다.

시설을 소개 받은 후 내가 근무하게 될 전용 사무실로 향했다. 1인실에 넓은 사무실을 보며 새삼 사타리언 부인이 내게 부여한 직급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푹신한 사무실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찌뿌듯한 몸은 기지개로도 개운해지지 않았다. 처음 맡아 본 역할에 부담감이 몸을 살짝 짓누르고 있었나 보다.“살다 살다 의사도 돼 보고.”

그것도 마물 의사.

그것도 부정을 저지르는 의사를 찾아내기 위한 위장 취업이다. 몇 년 전의 내가 이렇게 스펙트럼 넓은 삶을 살아갈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마물원 이력서를 낼 때만해도 마물 똥이나 치울 줄 알았지.

“자, 그럼 바스테 병원의 의료 팀장이 할 일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가 할 일을 모르겠다.

왜냐면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나한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령을 내릴 상사가 없다. 항상 원장님에게 명령을 듣던 나로서 참 갸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책무는 있다.

성과를 보고해야 한다.

달마다 의학적 성취와 발전을 보고해야 하며, 이건 위장 취업한 나라도 피할 수 없는 책무였다.

물론 진짜 나보고 하라는 것은 아니다. 난 바스테 병원의 팀장이 아니라 사타리언 부인의 수행인이니까.

다만 사타리언 부인은 의무가 없고 책무가 있는 직책의 이점을 이용하고자 했다. 나는 성과 보고를 명목으로 바스테 병원에서 자유롭게 활개를 칠 수 있었다. 아직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신생 기관에다가, 사타리언 부인이 윙바레사에 행하는 막강한 권력 때문에 가능했다.

“자, 어디 보자.”

그렇다면 어떻게 바스테 병원의 흉흉한 소문들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

사타리언 부인은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결국 내 재량에 달려 있었다.

우선 첫 번째 할 일은 단서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원장님의 방식을 이용하기로 했다. 고용주에 불만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첫 번째로 근무 시간을…….”

서투른 서류 작업으로 만들어 낸 바스테 병원의 새로운 근무 원칙.

*

그날 오후, 나는 내가 작성한 계획안을 담당의들에게 배부했다. 그러자 곧바로, 아주 빠르게 그들의 반발로 이어졌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근로 계약서의 표준을 두 배나 초과하는 업무 시간이라니요!”

“지금도 일에 치여 삽니다. 일일 평가 제도를 실시하면 차 마실 시간조차 없어질 거라고요!”

“게다가 팀별 업무 평가를 일주일마다 또 실시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계획안은 이러했다.

‘AM 6:00~PM 12:00’로 근무 시간을 조정했다.

의료계치고 언뜻 합리적이나 이틀마다 야간 진료가 있으니 실제로 자는 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일일 평가, 그들의 하루 성과를 내게 보고하게 한다. 물론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읽어도 모르고.

팀별 업무 평가.

가장 많은 반발을 가져왔다. 역시 외국도 조별 과제는 하기 싫은 모양이다.

살인적인 근로 기준안을 작성하고 대신 성과금과 주급을 폭발적으로 인상시켜 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돈으로 달래기에 꽤 벅찼나 보다.

여덟 명의 담당의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따지러 왔다.

유일하게 성실히 받아들인 것은 중국인 의사. 흠, 꿍꿍이가 있는 건지 그냥 동서양의 근무 인식에 대한 차이 때문인 건지. 어쨌든 나는 그들에게 모두 똑같은 대답을 해줬다.

“아니꼬우면, 그냥 나가세요.”

내가 첫 번째 수로 둔 것은 바로 아래 직원들을 쥐어짜 내는 것이다. 바스테 병원은 세계 제일의 마물 병원이다. 그들에게 뜻이 있다면 남을 것이다.

내가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우며 난해한 일들을 겪지만 마물원 직원으로 계속 남아 있는 이유와 일맥상통했다. 정말 이것밖에 없다고 느껴진다면 계속 근무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만약 외부 세력과 결탁한 자가 있으면 감히 허튼 짓을 하지 못하게 막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다. 이렇게 빡빡한 스케줄에 시달리다 보면 그동안 들키지 않았더라도 작은 실수를 저지를 것이다.

그때, 놈을 죽이면…….

아니, 놈을 찾아내 사타리언 부인에게 보고하면 된다.

*

한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치료가 시급한 마물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분주해지는 병원, 일단 의료팀의 헤드인 내게도 의료 진료서가 도착했다.

어리바리하게 굴 여유는 없었다. 사타리언 부인이 수행원이 없어서 나를 대신 보낸 게 아닐 것이다. 나는 내 능력을 이용해야 했다.

긴급 이송된 마물은 황제기린이라는 녀석이었다. 기린처럼 생긴 거대한 마물이나, 기린보다 목이 훨씬 두껍고 컸다. 평균 몸길이도 12m, 몸무게 30t. 혹등고래와 비슷한 덩치를 자랑하는, 지구상 가장 큰 육상 동물인 코끼리의 두 배나 되는 어마 무시한 녀석이다.

새삼 바스테 병원의 크고 넓은 시설이 이해가 갔다. 거대한 마물들을 치료하려면 시설이 클 수밖에 없겠지.

‘가축 마물이라…….’

황제기린은 주로 이계의 식물인 ‘팜라씨’라는 구황 작물을 재배하는 외눈박이 거인족이 기르는 가축이었다. 팜라씨는 기아를 해결할 뛰어난 영양소를 가진 뿌리식물이었지. 황제기린의 똥이 성장을 촉진하는 비료가 된다나?

오기 전 공부한 바로는, 이제 이로운 마물들은 가축으로 지정하여 기르고 키우는 것을 국제기구에서 허용해 준다고 한다. 물론 마물을 기르는 건 매우 힘들고 난해하며 그마저도 대부분 원래 마물을 가축으로 삼던 몇몇 이계인들만이 기를 수 있다고 들었다.

‘혈변, 구토. 흐음…….’

간이 차트를 읽어 보던 나는 녀석의 상태를 대강 짐작했다. 마물원 생활 2년이다. 아마 황제기린은 소화 기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가운을 챙겨 입고 급하게 응급실로 내려갔다. 응급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황제기린. 놈은 거대한 덩치를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피를 토해 내고 있었다.

마물에다가 덩치가 덩치니만큼 마취부터 시키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물었다.

“마정도 수치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콕 집어서 프랑스인 의사에게 질문했다.

“혈관의 피테르 수치는 26을 초과하고 있습니다.”

“조치는?”

“원인을 찾기 위해 MRI 촬영을…….”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나는 녀석을 보자마자 눈치챘다.

[목이 아파. 목이 아파. 아파.]

녀석이 고통스러워하는 이유와 그 해결 방법을 말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몰랐다. 마물 진단의 문제점이겠지. 인간과 동물과 구조가 완전히 다른 마물들은 각각 진료 방식도 달라야 했다. 크기 12m의 마물이 아픈 곳을 어떻게 진료하는가? MRI 촬영을 준비하며 소모되는 시간 동안 죽어 나갈 것이다.

“촬영은 그만두고 후속 조치를 취할 준비를 해.”

그들에게 나는 상사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이기도 했다. 아무리 말로 저명한 의사라고 소개했어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 모르는 것이다.

몇몇 의사들이 반발했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토 달지 마세요.”

단호한 대답.

결국 권력의 우위는 나였다. 의사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모든 행동을 멈춰야 했다.

“후우.”

수술용 장갑을 끼고 가운의 단추를 꽉 잠갔다. 그 뒤, 마음을 굳게 먹고 녀석의 아가리를 벌렸다.

그리고 손을 집어넣고, 머리를 집어넣고, 이내 상체를 모두 집어넣고, 두 다리를 들어, 녀석의 입안으로 엉금엉금 기어 들어갔다.

거대한 마물의 입을 향해 제 발로 기어 들어가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와아앗?”

“아아!”

“쉐엣-!”

내 등 뒤로 비명 소리와 놀라워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았으나 나는 발로 차 버렸다. 묵직한 타격감이 얼굴을 걷어차 버린 것 같다.

바깥에서 난리가 난 모양이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녀석이 날 깨물어 죽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괜찮아. 녀석아. 조금만 참아.”

계속 안심시키고 있으니까.

녀석의 식도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큼 크고 넓었다. 하지만 나는 스위프트덕의 힘을 빌려 몸을 가볍게 만드는 풍종도보의 경공을 사용하며 조심스레 기어 들어갔다. 녀석이 최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포근이의 따뜻한 기운을 계속 불어넣어 주며, 이물질을 밀어내려는 녀석의 몸을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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