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수의사(3)
마침내 녀석의 목에 걸린 것을 향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도달했다. 녀석의 목에 박혀 있는 뾰족뾰족한 나뭇가지들. 곧바로 뽑아내면 상처가 벌어질 거야.
고민하던 나는 장갑을 벗고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조금씩 뽑아냈다.
나는 거미줄을 이용해 상처를 봉합할 생각이었다. 백수 생활을 하며 쌓아 온 잡지식이 이럴 때 도움이 되다니, 거미줄은 생체 적합성이 우수해 인공 생체 섬유로 개발되기까지 했다는 점을 떠올린 것이다.
“뽑는다. 참아.”
괴력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녀석의 목에 박힌 나무 더미를 뽑아냈다. 피가 솟구쳤으나 곧바로 거미줄을 덮어 봉합했다.
“젠장!”
마취를 하긴 했으나 녀석에게 큰 충격이 갔다. 놈은 곧장 구토를 하며 토사물과 함께 날 뱉어 냈다. 졸지에 구토액으로 목욕을 하게 된 나는 침을 뱉고 얼굴에 묻은 토사물을 닦아 냈다.
“뭐요?”
나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실 방금 내가 한 행동이 정신 나간 짓인 건 맞다. 나를 미친놈처럼 보는 시선들이 이해가 간다. 무슨 사자 목에 걸린 가시를 빼 주는 동화 이야기도 아니고, 마물의 목에 걸린 이물질을 빼기 위해 아가리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건 충분히 정신 나간 짓이다.
하지만 나는 교감의 힘으로, 그렇게라도 해야 할 만큼 녀석이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수건 하나 건네주지 않는 의사들에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주고 황제기린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목을 매만져 주며 말했다.
“한입에 많이 삼키니까 그렇지.”
대강 녀석의 식습관을 알겠다.
거대하고 큰 입을 이용해 나뭇잎들을 씹지 않고 삼켜 버린 거겠지.
녀석의 고통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벅벅 닦으며 일어나 말했다.
“농장주 불러와요.”
마물을 의뢰한 자는 근처에서 팜라씨를 재배하는 농장주였다. 특이 사항은 지구인이 아니라 외눈박이 거인족이라는 것이다.
내 말에 의료 접수를 받은 직원들이 걱정하며 대답했다.
“몹시 흥분하고 계세요. 닥터, 그는 아주 위험해요. 조금 진정이 되면…….”
“괜찮습니다.”
나는 두 번 말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다시 외쳤다.
“거인족이니 뭐니, 당장 불러와요.”
*
쿵!
일부러 그런다.
저 망할 새끼.
쿵쿵!
복도에서 토사물을 닦고 있자 멀리서부터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하는 거인족 한 명이 걸어왔다. 놈은 자신이 얼마만큼 화가 났는지 알려 주려고 하듯, 발을 세게 굴리며 다가왔다.
뭐가 그리 화가 나.
화난 것은 난데.
“날 보자고 하셨소?”
3m, 아니 4m쯤 될까.
외눈박이 거인이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정하게 말해 줬다.
“황제기린에게 아무 먹이나 주시면 안 됩니다. 습성상 먹이를 한입에 삼키는데, 억세고 뾰족한 나뭇가지가 섞여 있다면 지금처럼 목에 걸릴 수 있어요.”
“지금 내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요?”
거대하고 노란 눈으로 나를 째려본다. 뭐! 뭐? 어쩔 건데?
드래곤하고도 눈싸움했던 나다.
나는 두 눈에 힘을 팍 주며 놈을 바라봤다. 녀석의 눈이 크긴 하지만 나는 두 개다. 꿀릴 것 없다.
과연 거인족, 만만치 않았다. 결국 나는 살짝 마나를 끌어올렸다. 나를 무섭게 했던 마물들을 최대한 흉내 내며.
그러자 거인족이 천천히, 눈치도 못 챌 만큼 자연스럽게 눈을 내리깔았다. 콱 마, 한 대 쥐어박아 주려다가 참았어.
“싸다고 지구에서 자라는 나무 주지 말고, 당신 고향에서 나는 무른 풀잎들을 줘. 당장 목에 이물질이 걸리는 것 외에도 지구 식물들을 주면 양분과 마나가 부족해질 테니까.”
거인은 어깨를 내린 채 시무룩했다. 지구인한테 기 싸움을 진 게 분했나 보다.
“대답 안 합니까?”
끝까지 거인족을 토라진 채로 놔둘 순 없다. 나는 고함을 질렀다.
“아셨냐고!”
“네…….”
외눈박이 거인은 돌아갈 때는 마치 고양이처럼 발소리를 내지 않았다.
*
교감의 힘이 가진 능력을 또 다시 확인했다. 이렇게 이용할 수도 있구나. 의학적 지식과 견해는 의사들에게 맡기면 돼. 나는 아주 기가 막히게 진단을 잘 보는 의사면 충분했다.
황제기린 사건 이후로 나는 신뢰를 얻기 위해 나서서 일을 했다. 나에 대한 불신만 있으면 상황을 빡빡하게 조여도 단서를 얻지 못한다.
적어도 일적으로 믿을 만한 상사가 되어야 했다. 사적으로 엮이지 않고, 공적으로 존경받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다.
모르는 게 있다면 단 6시간의 휴식 시간을 쪼개어 몰래 사타리언 부인에게 부탁해서 교육을 받았다.
자는 시간이 없었다. 우습게도 내가 이렇게 잠을 자지 않아도 문제없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그렇게 마물들을 생각지도 못할 의외의 방법으로, 교감의 힘을 이용해 진단하며 병원에서 지낸 지 며칠이 지났다. 점점 내 말에 토를 다는 의사들이 없어지던 무렵이었다.
또 다시 집단 폐사가 보고되었다.
프랑스 타른 협곡 지대에 ‘타래딱새’라는 마물의 번식장이 있다. 온화한 성질에 아름다운 깃털을 지닌 타래딱새를 관광 상품으로 선보인 공원임과 동시에 타래딱새의 깃털을 채집하는 번식장이기도 했다.
타래딱새는 신비한 힘이 깃든 깃털을 지니고 있는 이계의 새이다. 타래처럼 사리어 뭉쳐 놓은 듯 생긴 깃털은 변형을 가해도 서로 뭉쳐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타래딱새의 깃털은 섬유 산업 외에도 다양한 공학에 사용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타래딱새 번식장은 마물의 힘을 적용한 산업 모델로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문제점은 간간히 보고되었는데 이번에 일이 터져 버린 것 같았다.
보고서를 읽던 나는 싸한 기분과 동시에 때가 왔음을 느꼈다. 이계에서 들여온 타래딱새의 70%가 이틀 만에 모조리 사망했다. 과연 환경적인 요인 때문일까? 고의적인 인적 재해가 가미된 냄새가 솔솔 풍기는 군.
나는 여덟 명의 전문의를 불러 타른 협곡으로 파견을 나갔다. 이번 기회에 단서를 잡고자 했다.
“지금까지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어. 바깥에서 부대끼다보면 알 수 있겠지. 거짓말쟁이가 누구인지.”
*
다음 날 새벽부터 헬리콥터를 타고 타른 협곡으로 날아갔다. 번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여덟 명의 전문의와 드넓은 공원을 돌아다녔다.
타래딱새의 둥지는 가파른 협곡, 절벽의 사이에 꾸며져 있었다. 다른 의사들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도르래 기구를 이용했지만 나는 두 발로 절벽 사이를 뛰어다녔다.
“우리 헤드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자, 마르코. 내기했던 100유로”
“말했지? 그는 초인 의사야. 평범한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허, 그렇다고 절벽을 뛰어다닐지 누가 알았나?”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못 들을 줄 알았나, 인간의 청력을 벗어난 내 귀에 의사들의 대화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얼마 전부터 내 별명이 생겼다. 초인 의사란다.
듣기에 좋았다.
그 외에도 인간 내시경, 마물 성애자 등 많은 별명이 있었지만 적어도 못난 부분을 헐뜯는 별명은 아니었다.
새벽부터 시작해서 저녁까지 드넓은 타래딱새 번식장을 꼼꼼히 둘러봤다. 환경 요인에 대한 문제점을 몇 개 발견했으나 집단 폐사로 이어질 만큼 심각한 것은 없었다.
그 후 밤에 나는 직접 살아남은 타래딱새들을 모아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누가 볼까 봐 일부러 협곡의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나는 뭉실뭉실한 실몽당이 같은 깃털로 둥실둥실 날아다니는 새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자, 노조 여러분들. 진정하시고 불만을 얘기해 주세요. 왜 당신 친구들이 급사했을까요?”
내 능력의 가장 큰 장점,
마물에게 발생한 일의 원인을 모르겠으면 마물에게 물어보면 된다.
[노조? 그게 뭐야? 당신 누구야?]
[누구야!]
[왜 우릴 불러 모았지?]
[어떻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어! 인간이 아니구나!]
타래딱새는 마나가 강한 마물들은 아니었다. 예전에 휴양지에서 겪은 것처럼 내 마나가 늘어날수록, 마물들에게 호감 그 이상의 감정을 얻어 낼 수 있었다.
곧 타래딱새들은 나를 친구라 생각하며 모든 걸 말해 주었다.
[여기 좋아. 쾌적해. 인간들만 없으면!]
[먹고 살 만해. 먹이도 인간들이 줘. 하지만 나쁜 인간들, 내 깃털 좀 봐! 풍성하던 깃털이 비어 버렸잖아!]
다행히 녀석들은 사는 환경에 만족했다. 하지만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있었다. 타래딱새들은 깃털이 빨리 자랐다. 그래서 이곳 직원들은 마치 양털을 깎듯 자라나자마자 곧바로 깎아 버린 듯했다.
‘이 녀석들은 열아홉 살 먹은 남자 고등학생 같아. 머리 스타일 하나에 목숨을 걸지.’
문제는 이 녀석들이 타고난 멋쟁이라는 것은 몰라 줬던 것이다. 멋 좀 부리려고 하면 깃털을 뽑아 가니 잔뜩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다.
‘우선 수확량을 조절. 하지만 이것도 급사의 원인을 설명하기엔 부족해.’
스트레스에 취약한 개체라도 70% 이상이 이틀 만에 모두 급사한 건 이상했다. 무언가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결국 할 수밖에 없는가.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네.”
코쿠라차 여우원숭이의 식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 녀석들이 되었다. 그 외에도 세이렌, 마츄 때처럼 마물을 이해하기 위해 녀석들이 되는 것은 내게 흔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녀석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타래딱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밤새도록 놀아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교감의 힘을 극도로 높여야 했다. 나는 타래딱새들이 춤을 좋아하는 걸 알아차렸다.
물론 인간의 춤과는 많이 달랐다. 음악도 없이 부리로 딱딱 거리는 소리에 리듬을 맞춰야 했다.
하지만 타래딱새들과 함께 엉덩이를 좌우로 실룩거리길 한나절, 해가 떠오를 때 내 몸은 털북숭이가 되어 있었다.
*
삼 일 후, 베이스캠프로 돌아오자 의사들이 내게 걱정했다며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왔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아직 귓속에 남은 털들을 닦아 내며 대답했다.
“많은 걸 알아왔지요. 지금부터 하루 뒤, 이 시간에 회의를 열겁니다. 당신들의 힘을 빌려야겠어요.”
타래딱새와 교감하며 몸으로 알아낸 문제점들. 다행이면 다행일까, 고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의 간섭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삼 일 동안 타래딱새로 번식장에서 살아 봤다.
덕분에 녀석들도 모르던 문제점을 몇 가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계에서 생활하다가 지구로 넘어온 지 얼마 안 된 녀석들. 문제점은 몇 가지 수준이 아니었다.
타래딱새의 몸에 맞지 않는 먹이와 석회수가 가득한 프랑스 지방의 지하수. 마물이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대기 중의 마나 농도.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인 문제점을 파생시킨다.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타래딱새를 원래 살던 세계로 돌려보내는 게 원장님의 방식, 아니 타래딱새를 위한 ‘완벽한 환경을 창조’하는 게 원장님의 방식이라면 인간인 우리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조치.
약이 필요해.
녀석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약.
*
여덟 명의 의사는 각각 전문성이 달랐다. 빚이 많은 프랑스인은 건실한 의학도. 인간을 치료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조언해 줄 것이다.
다른 프랑스인 의사들은 각각 뛰어난 성취를 이룬 마나 약제사였다. 중국인 의사는 침술이라는 방법으로 마물의 마나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마물 병리학에서 높은 성과를 가진 자였다.
또한 미국인 의사들에게 높은 수준의 외과적 기술을 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는 기술마저 숙달된 외과의였다. 예를 들어 몬스터의 피부를 벗길 만큼 괴력을 가진 능력자들이다.
그리고 사타리언 부인에게 연락해 자문 위원을 파견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아는 한 마물 생리학에 있어서 제일 권위자이자, 마물의 마나를 ‘맛볼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진 능력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