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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29화 (129/258)

# 129화 엘프(8)

나는 순식간에 위수들에게 둘러싸였다. 구탄이 그랬던가, 영웅은 위수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그럼 지금 내 모습은 뭐라고 설명하지?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엘프들의 영웅이 되었으니.

‘앞으로도 고기 먹게 해 줄게.’

녀석들은 나를 좋아했지만 턱시도 안의 소시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 나는 위수들을 진정시키며 일렬로 줄을 세웠다.

“어떻게… 위수들이…….”

그 모습조차 충격적이었는지 구탄은 멍청하게 굴었다. 더듬거리며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놈을 보며 나는 크게 미소를 지었다. 아직 멀었다, 이놈아.

나는 턱시도에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마물원에서 쓰는 사료 통으로 원장님이 특별 제작한 마도구이다. 이 주머니엔 많은 사료를 담을 수 있어, 덩치 큰 마물들에게 먹이를 주기에 용이했다.

“자!”

주머니에서 소시지를 하나 꺼내고, 가장 앞줄에 선 도마뱀 위수에게 던져 줬다. 소시지를 받아먹는 녀석은 엄청 행복해했다. 처음으로 고기를 맛보는구나. 불쌍한 녀석.

“무슨 짓… 이지? 그건 육고기가 아니더냐! 이놈! 감히 신령한 위수들에게 고기를 먹여?”

재잘거리는 구탄에게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닥치고 있으래.”

“뭐?”

“위수들이 너보고 닥치라고 한다고.”

“그… 그게 무슨!”

말을 참 많이도 더듬는 놈이다.

나는 구탄을 무시하고 위수들에게 소시지를 나눠 주면서, 대화를 나눴다.

위수들은 불만이 많았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대상인 내게 한탄까지 하며 말해 줬다.

“음음, 그랬구나. 그래.”

많은 불만거리가 있었지만, 특히 불만인 것은 역시 식생활이었다. 엘프들의 편견으로 녀석들은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우리를 찍고 있는 마도구를 올려다봤다. 저 마도구로, 바깥의 다크 엘프들이 지금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여보게들.”

다크 엘프들이 나를 믿는지, 안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곁에 수많은 위수가 증인이자 증거니까.

“이 녀석들, 자네들에게 상당히 불만이 많아. 진짜 말이 통하는 내게 많은 불만을 토론하더군.”

엘프들이 위수를 아끼고 친구로 여기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서툴고, 태도가 강압적이다.

“자네들은 받기만 했지 위수들을 전혀 생각해 주진 않았어. 일단 많은 불만은 나중에 말해 주고 우선 가장 큰 불만부터 말해 줄게. 위수들은 자네들 때문에 고통스러운 식생활을 해야 했어. 때문에 가장 기뻐야 할 식사 시간이 고통스러워졌지.”

소시지를 와작와작 잘도 씹어 먹는 위수들. 하나론 부족한지 내 몸에 올라타 코를 킁킁거리며, 소시지를 하나 더 달라고 말하는 위수들이다.

“먹이로 나뭇잎과 곡물을 준다고? 이 녀석들 그거 싫어해.”

나는 소시지 천 개를 마구 뿌렸다.

위수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고기를 먹었다. 그중엔 처음 맛보는 고기가 너무 맛있는지, 눈물을 흘리는 위수도 있었다.

“봐봐. 고기를 엄청 좋아해.”

“거짓말!”

갑자기 닥치고 있던 구탄이 소리를 질렀다. 크게 당황하는 구탄을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네 잘못인 것을 스스로 잘 아는구나. 아마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구탄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게 틀렸다고 하니 제 입지를 지키기 위해 저렇게 아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거겠지.

“본래의 세계에 있을 때부터 위수들은 생명의 살점을 탐하지 않았다. 자연에서 태어난 그들이 어찌 육고기를 먹는단 말인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거야 몰래 먹었겠지.”

“뭐?”

“너희 세계에선 지금처럼 가두고 보호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시간 날 때, 몰래 고기를 주워 먹고 그랬겠지.”

“무슨 막말을 하느냐. 네가 어찌 알고!”

답답하다.

“아니, 난 안다니까? 얘네들이 말해 줬어요. 이 멍청한 엘프야.”

왜 위수들이 고기를 안 먹는 척했는지 정녕 모르는가? 친구라서 그래. 위수들은 정말 엘프를 친구로 여겨서 그렇다고.

“니들이 먹지 말래서 못 먹는 척, 안 먹은 척 연기한 거야.”

소시지를 허겁지겁 먹던 위수들은 배가 부르자, 갑자기 저마다 모래에 몸을 파묻고 냇가로 들어가는 등 모습을 숨겼다.

위수들은 부끄러워했다. 그러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니야,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

“지금까지 친구가 싫어할까 봐, 억지로 참고 못 먹은 거야. 네 녀석들을 위해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다크 엘프들에게 조금이라도 와닿을까? 아마 아니겠지. 하지만 수령투에 이겨 구탄을 굴복시킨다면 바꿀 수 있을 거야. 위수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겠지.

“어쨌든 이번 대결은 내가 이겼다.”

전날엔 그토록 성대하게 치러졌던 승자을 위한 축하 파티는 열리지 않았다. 두 번째 대결에서 승리한 나는 혼자 연설대에 올랐다.

광장의 엘프들은 침묵했지만,

오히려 전날보다 더 많은 엘프가 모인 것 같았다.

전날 구탄이 연설대에 올라 자신을 소개하며 승리를 자축하던 모습은 꽤 멋있었다. 나도 엘프처럼 나를 소개하고 싶었다.

“위대한 드래곤의 가디언이자, 전이를 대비하고 조화를 수호하는 마물원의 관리자.”

여기까진 좋았다.

더 이상 나를 소개할 멘트가 없었다. 엘프들은 잘만 재잘거리던데.

“붕괴된 무림을 구해 낸 자, 산신령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들은 자, 나이트 메어로부터 지구를 구한 자, 매년 제약 로열티로 수십 억을 타 먹는 자, 샐러맨더를 새끼 때부터 성체까지 키워 낸 자. 정다정이다!

말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역시 오글거리는 멘트는 엘프처럼 잘생긴 놈들이나 해야 해.

*

마지막 날,

마지막 수령투.

별다를 것 없다.

가장 간단하고 야만적이며 확실한 승부였다.

1대1 싸움.

상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거나, ‘죽이면’ 승리.

대결은 지하 도시에서 올라와, 마물들의 숲에서 결행되었다. 관중석도 마련된 간이 경기장,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결이 시작되었다.

나는 여유롭게 관중들을 둘러봤다. 다크 엘프들의 표정은 첫날과 다르게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구탄의 승리를 확실히 믿지 못하는 것이다.

“놈!”

나와 달리 구탄은 성질이 급했다. 놈은 전날의 승부가 퍽이나 굴욕적이었는지, 대결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힘을 펼치기 시작했다.

붉은 기운이 놈의 주변으로 넘실거린다.

‘드루이드, 한 대 가지고 싶네.’

구탄은 드루이드의 힘을 사용했다. 붉은 기운이 퍼져 나가더니, 내 주변의 흙에 녹아들며 새빨간 용암으로 변했다. 소형 환경 조절 장치의 위력은 굉장했다. 순식간에 나를 용암 늪에 빠트렸으니까.

“크하하, 용암에 뒤덮여 괴로워하라! 죽진 않더라도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할 것이다!”

놈은 승리를 확신했다.

내 몸은 점점 용암 속으로 가라앉았다. 관중석은 조용했다. 적이라고 할지라도 차마 환호성을 내지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몸이 용암에 뒤덮여 녹아내리는 장면은 보기엔 끔찍하겠지.

“좋네.”

물론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연민의 당사자가 지금 몹시 만족하고 있다는 걸.

“아주 좋아.”

나는 용암 늪에 깊이 잠수했다가 고개를 추켜올렸다. 모두 처참한 광경에 고개를 돌리고 있었으나 카르네만은 달랐다.

하핫핫!

카르네의 웃음소리가 퍼져 나가자, 다크 엘프들도 눈치챘다.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던 구탄도 내 모습을 발견하곤 지금까지 중 가장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어응?”

괴상한 신음을 내는 구탄에게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밥도 주고, 이제 따뜻한 목욕물까지 받아 주네.

나는 용암을 헤엄치며 자유형, 배영, 평영에 접영까지 선보였다. 포근이의 힘으로 양해의 바다에서도 멀쩡했던 나였다. 온천처럼 노곤한 느낌에 용암 위로 드러눕기까지 했다.

“어디, 더해 봐.”

용암 지대를 만드는 것이 놈의 특기인 듯했다. 더욱더 넓고 깊은 용암을 만들어 냈으나, 통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놀 곳만 많아졌네.

“더해 보라고.”

놈을 조롱하면서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악에 받친 구탄이 소리를 내지른다.

“감히 짐을 우롱해? 놈! 이 힘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놈은 다른 재주가 있었다.

구탄의 몸이 푸른 기운을 띄더니, 이내 내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눈보라를 일으켰다. 거센 눈보라가 내 몸을 강타했다. 순식간에 눈에 파묻혀 고개만 내밀어야 했으나 나는 여유롭게 웃었다.

“뭘 좀 아네. 온탕 다음엔 냉탕이지.”

나는 하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녀석들, 추우니까 괜히 보고 싶어지네.

놈도 이제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내가 놈을 향해 걷자, 놈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아가리 꽉 깨물어.”

한 방이면 충분했다.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아도,

놈의 뒤통수를 브라질리언 킥으로 힘껏 내려치는 것만으로 대결은 종료되었다.

놈이 정말 입을 꽉 깨물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턱을 때리겠다고 말한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을지는 몰랐을 것이다.

기절한 구탄을 내려다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구탄의 몸에서 빠져나온 붉은 거북이가 사납게 나를 노려본다. 에휴, 저 새끼가 뭐가 그리 좋다고.

놈에게 창피를 주려던 나는 위수 때문에 참기로 했다.

구탄이 깨어나기까지 기다렸다.

이 녀석이 일어나면 무슨 말부터 할까. 설마 ‘이 대결은 인정하지 못한다!’라며 배 째라고 덤비는 것은 아니겠지.

잠시 후, 기절한 구탄이 정신을 차렸다.

“난 인정하지 못한다!”

어쩜 그래.

진짜?

구탄이 절규하듯 꽥꽥 소리 질렀다.

“위대하신 용이 내게 보장된 승리를 약속하셨다. 이래선 안 돼! 내가 지면 안 된다고!”

나는 구탄의 말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았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쉽게 수령투를 수락한다고 했더니, 보장된 승리라니… 원장님께서 놈에게 거짓말을 했구나.

“무효다. 용이 거짓으로 날 속였다! 이 승부는 무효…….”

나는 꽥꽥거리는 녀석의 뒤통수를 찰싹 때렸다.

“지금 당신이 뭔 소리를 하고 있는 줄 아세요? 다크 엘프들이 다 보는 앞에서?”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진짜 모르는 듯했다. 내가 다크 엘프라도 놈에게 경멸을 느꼈을 거야.

“정말 용이 승리를 보장해 줬더라면 이 대결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거잖아. 수령투는 명예와 격을, 자신의 전부를 모두 건 신성한 승부라며? 그런데 어찌 네놈은 그렇게 당당하게 승부 조작을 약속받고 수령투를 수락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닥쳐라! 이건 무효다!”

이미 놈의 명예는 땅바닥으로 추락했지만 나는 확실한 쐐기를 박아 넣고 싶었다.

“그럼 싸워 봐.”

“너… 너와는 싸우지 않는다. 이 거짓말쟁이, 비겁자야.”

“아니, 나 말고.”

나는 관중석의 카르네를 향해 소리쳤다.

“카르네! 싸울 준비 됐지?”

카르네는 예전부터 시도해 왔다.

수령투.

다크 엘프의 수장을 몰아내기 위해 수령투를 계속하여 시도해왔다. 하지만 구탄은 그녀를 이용하기만 했으며 결코 수령투를 받아준 적이 없었다.

왜 일까?

카르네를 반려자로 맞아 그녀의 지위를 이용하고 싶었다면 수령투라는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잠시 머뭇거리던 카르네는 당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세계수의 일곱 번째 가지, 첫 번째 바위에게 수령투를 신청한다!”

나는 구탄을 비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네놈이 카르네를 무시했던 이유는 그저 무서웠던 거야, 카르네가.”

멍청한 구탄이라도 알겠지,

지금 이 승부는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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