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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28화 (128/258)

# 128화 엘프(7)

하루에 하나씩 승부가 이루어진다.

젠장, 첫날의 승부는 당연히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광장에 수많은 다크 엘프가 모였다. 수령투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나와 구탄은 명예를 걸고 맹세했다.

그 후 나는 사태를 파악할 겨를도 없이 끌려 다녔다. 첫 대결은 드루이드를 이용한 환경 설계였다. 갑자기 나더러 시뻘건 용암이 흐르는 곳을, 졸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냇가로 만들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할 줄 몰랐고,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시작하였기에 구탄을 방해할 수도 없었다.

승부가 끝난 후, 구탄은 친절하게도 숙소까지 본인이 나서서 안내했다. 물론 나를 모욕하기 위해서다. 방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그로부터 엘프의 우월성과 인간이 미개한 이유를 들어야 했다. 진심으로 턱에 브라질리언 킥을 꽂을까 하다가 간신히 참았다.

“내일 승부는 더욱더 치욕적일 것이야. 하하하.”

“내 앞에서 이 보이지 마쇼. 한 번만 더 누런 이 드러내면, 내가 뭘 어떻게 할진 나도 잘 모르니까.”

내 말에 구탄은 몸을 움찔거리다가 결국 입을 닫고 조용히 떠났다. 사실 놈은 내게 겁먹을 만큼 별 볼일 없는 녀석이다. 문제는 그의 안에 깃든 저 붉은 거북이 위수. 처음 봤을 때부터 끈질기게 내 편으로 회유했지만, 저놈이 뭐가 좋다고 콧대 높게 거절하던 녀석이다.

즉, 내 힘이 통하지 않는 꽤 강한 존재이다.

방에 들어온 나는 침대에 머리를 파묻고 누워 생각에 잠겼다. 안 돼. 이대로 가다간 힘도 못 쓰고 질 수도 있겠어. 대책을 세워야 해. 어떻게?

혼자 생각해선 답이 안 나와.

원장님은 아직까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 다크 엘프들에게 물어봤자 말해 줄 것 같지 않고. 카르네밖에 없나.

나는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카르네의 방을 찾았다. 구탄은 카르네의 방을 알려 주지 않았지만(속이 보이는 이유다.) 그녀와 함께 있는, 하얀 원숭이 위수의 기운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카르네.”

방문을 노크하며 카르네를 불렀다. 안에서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카르네?”

“잠시만요!”

카르네의 목소리에 당황이 서려 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기다렸다. 뭐, 사람이든 엘프든 남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는 취미 생활이 있을 테니까.

잠시 후 카르네가 문을 열어 줬다.

“배고팠나 봐요?”

“네?”

나는 방 안에 가득한 육향에 별 뜻 없이 질문했지만 카르네는 크게 당황했다. 잠시 어버버하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뺨을 붉혔다.

“제가 많이 먹는 편이라… 소시지 몇 개 먹었어요.”

어라? 왜 거짓말을 하지?

내가 배고팠냐고 물어본 대상은 카르네가 아니었다. 그녀의 하얀 원숭이 위수다.

“자기가 다 먹었다는데요?”

“네?”

“녀석 이름이… 링링이었나?”

나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말했으나, 카르네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멀뚱히 구경하고 있자 카르네는 심지어 자기 머리를 쥐어박기까지 했다.

“절대 다른 이들에겐 말하지 말아 주세요.”

“뭘요?”

“위수에게 고기를 먹인 거요.”

카르네가 말했다.

위수란 본래 자연의 기운에서 태어난 신비로운 생명체로 음식을 먹음으로써 양분을 얻지만, 나뭇잎과 열매만 먹는 채식주의자란다. 하지만 카르네는 홀로 지구에서 타향살이를 하며 유일한 친구인 링링을 아꼈는데, 어느 날 사고를 저질렀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 술에 처음으로 손을 댔는데, 인사불성이 되어 그만 링링에게 안주 몇 점을 먹였다나.

카르네는 자기가 섭리를 어겼다며 자책했다. 하지만 나는 카르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하얀 원숭이 링링은 지금 만족스럽게 자기 배를 두들기고 있다. 녀석은 고기를 좋아한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고기를 좋아했을 거야.

“카르네, 엘프들은 다 그렇게 생각해요? 위수들이 육고기를 싫어한다고?”

“네. 나무가 햇빛과 물로 살아가듯, 자연에서 태어난 위수들은 결코 살점을 먹지 않아요. 으으, 제가 링링을 망쳐 버린 거예요.”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가 침대 밑에 숨겨 놓은 소시지를 꺼냈다. 그리곤 링링을 불렀다.

하얀 원숭이가 곧바로 카르네의 몸에서 뛰쳐나와 내게 달려들었다.“악!”

나는 링링에게 소시지를 먹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행복해하는데 뭐가 망쳤다는 거야.

“걱정 마요. 카르네.”

나는 카르네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은 고기를 더 좋아하니까. 아마 카르네가 고기를 주기 전부터.”

위수와 평생을 살아가는 엘프들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카르네에게 몇 번이나 더 링링의 마음을 확인시켜 줬다. 결국 승부의 내용에 대해선 카르네도 몰랐지만, 기쁜 표정으로 링링에게 소시지를 먹이는 카르네를 보니 괜스레 뿌듯했다.

*

둘째 날이 밝았다.

또다시 구탄과 나는 광장에 섰다.

광장에 마련된 연설대에 오른다. 수많은 다크 엘프가 있었지만, 정적만이 감돌았다. 내 편은 없었다.

그에 비해 구탄이 연설대에 오르자, 스포츠 선수라도 온 듯 격한 환성이 터져 나왔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이란… 괜히 위축되는 느낌이다.

“수령투, 두 번째 승부는…….”

구탄이 두 번째 대결을 알려 온다.

“위수들과의 교감. 각고의 노력 끝에 새로 태어난 위수들과 교감하여 그들의 선택을 받는 것!”

그는 말을 끝마치고 나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그 미소의 뜻을 나는 알아차렸다.

‘어떠냐. 인간인 네가 이길 수 있겠느냐?’

생각해 보면 정말 야비하고 비열한 새끼이다. 첫 대결은 엘프만이 사용할 수 있는 드루이드를 이용해야 했고, 두 번째 날은 엘프의 소울메이트인 위수와 교감하라고 한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다행인 것은,

내게 반칙 같은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녀석에게 맞서 입꼬리의 한쪽을 최대한 올리며 있는 힘을 다해 비웃었다.

‘위수 교감이라니, 거 참.’

킥킥.

절로 웃음이 나왔다. 구탄은 자기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여 벌써 승자가 된 것처럼 떵떵거렸다. 이번 승부, 기대된다.

구탄이 자세한 경기 내용을 알렸다.

“예부터 영웅들은 위수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처음 보는 위수들하고도 깊게 교감하며, 또한 많은 위수들이 영웅을 따랐다고 하지. 이번 대결의 승리자는 위수들의 사랑을 받는 자이다!”

구탄은 이번 경기에 상징성을 부과하려고 하는 듯 보였다. 위수들의 사랑을 받으면 영웅. 즉 이번 대결에서 승리하여 자신이 엘프들의 영웅이라며, 자기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자기 딴엔 똑똑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반대로 생각하면 위수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구탄의 입지는 흔들리게 된다.

“킥킥.”

재밌다.

이 상황, 몹시 흥미롭고 재밌다.

통쾌하고 묵직한 한 방이 필요했는데, 알아서 판을 깔아 주다니.

놈은 내게 두 시간 후 위수들이 사는 곳인 ‘위호 정령정’에 오라고 했다. 다크 엘프의 도시에서 가장 경계가 삼엄하고 신비한 곳으로, 전이에 휩쓸린 어린 위수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다.

나는 우선 카르네에게 소시지를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몇 개나 필요한지 물어보기에 천 개는 구해 달라고 하니, 카르네가 내 의도를 눈치채고 질문했다.

“정말 그걸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만 믿어요.”

엘프들은 경기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예상은 확실하다. 뭐가 위수들의 친구 엘프란 말인가? 친구가 좋아하는 것도 모르는 것들이.

*

시간이 지나고 위호 정령정의 앞에 구탄과 그를 추종하는 많은 엘프가 모였다. 그는 힘껏 치장한 복장을 입고, 왕관을 쓴 채로 나타났다.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그의 승리이니 곧바로 자축 파티라도 할 모양이었다.

‘냄새는 좀 나지만.’

나는 턱시도에 숨겨 놓은 소시지 천 개의 냄새에 절여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충분히 감내할 만했다.

킥킥, 빨리 놈들의 표정을 보고 싶네.

승부는 간단했다.

위호 정령정 안에 들어가, 구탄과 내가 동시에 위수들을 부른다. 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위수와 교감하여 그들이 자신을 따르게 만들면 승리이다.

내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첫 번째 대결보다 훨씬 불합리한 경기였다. 마물과 위수에게 사랑받는 종족인 엘프를 인간이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뭐, 나를 제외한 이야기지만.

구탄은 당당한 발걸음으로 거대한 구 형태의 건물인 위호 정령정으로 향했다. 그에 맞서 나는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고개를 앞뒤로 까닥이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부산스럽고 경박하게 걸었다.

다크 엘프들이 경멸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영화의 어떤 주인공이 생각나 그를 따라 해 본 것이다.

동물에게 사랑받는 주인공, ‘에이스 벤츄라’처럼.

“내 능력을 보여 줄 시간이군.”

그래. 나는 사랑받는다,

동물이든 마물이든 위수든 간에.

게다가 녀석들이 좋아하는 것도 잔뜩 챙겼으니 어찌 기대가 되지 않을쏘냐? 구탄이 뭐라고 씨불거릴지 기대가 되는구나.

*

위호 정령정은 밀도 높은 마력이 가득한 곳이었다. 구 형태의 건물 안에는 다양한 환경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다. 화산과 용암이 흐르는 곳에서 눈을 돌리니 숲과 냇가가 나왔다. 심지어 사막도 있고, 빙하 지대도 있었다. 드루이드를 사용해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모든 환경의 축소판 같았다.

“잠시만 멈춰 줘, 더 즐기고 싶거든.”

위호 정령정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내게 달려드는 위수들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아직 아니야. 나는 구탄에게 굴욕을 준 후에 승리를 챙길 생각이다.

그 사실도 모른 채, 구탄은 위수들을 향해 당차게 외쳤다.

“오너라. 고개를 들고 너희들의 왕을 맞이하라! 자랑스러운 첫 번째 바위가 너희들을 품을지어다.”

구탄이 자신만만해하는 이유가 있긴 있었다. 녀석, 꽤 사랑받고 있다. 붉은 거북이 위수도 그렇고 위수들은 놈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오히려 위수들과 교감에 있어선 카르네가 더 뛰어나.

“위수들아!”

구탄이 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용암 속의 위수도, 모래 속의 위수도, 숲속의 위수도 응답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소시지 줄게’

내 말을 잘 따라 주는 위수들 때문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몇몇 위수들이 구탄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이상, 지금 위호 정령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내 손아귀에 있었다.

‘장난 좀 쳐 볼까?’

나는 숲의 원숭이 위수에게 부탁했다. 녀석도 유난히 장난기가 많아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줬다.

“위수들아! 자연의 선물, 우리들의 벗. 위수들아!”

아무리 외쳐도 반응이 없자 당황한 구탄은 직접 발 벗고 나서기까지 했다. 슬슬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겠지. 구탄이 숲에 다가갈 때였다.

갈색 털의 원숭이 위수 한 마리가 구탄 앞으로 튀어나왔다. 구탄은 화색하며 반가워했다. 아마 한 마리만이라도 교감한다면 자기가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원숭이 위수가 구탄에게 뛰어간다.

구탄이 활짝 웃으며 팔을 벌릴 때, 원숭이 위수는 손바닥으로 녀석의 뺨을 찰싹 때렸다.

위호 정령정 안엔 나와 구탄밖에 없지만, 모든 상황은 마도구로 바깥에 중계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수장이 위수들에게 뺨을 맞는 장면을 보면서, 과연 다크 엘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쯤 할까.”

나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모든 위수들에게 소리쳤다.

“이제 와도 돼!”

그러자 위호 정령정 안에서 대격변이 일어났다. 용암에서 수많은 붉은 기운을 가진 위수들이 뛰어나온다. 숲과 동굴과 냇가에서 푸른 기운을 흩뿌리며 위수들이 달려온다. 빙하 지대에서, 사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위호 정령정의 모든 위수, 족히 수십 마리나 되는 위수들이 내게 달려와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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