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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32화 (132/258)

# 132화 기사단(1)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재능이 있어야 꾸준히 할 수 있다고.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금방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어쩌면 내가 마물원에서 계속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이쪽 일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으음, 무슨 재능인가 생각해 본다면 한마디로 딱 꼬집어 말하진 못하겠다.

마물과 교감하는 능력이 재능이라면 가장 큰 요소겠지. 아니면 지독한 수치심을 견디는 내성이라던가?

“젠장!”

그런 점에서 드루이드는 짜증 나고, 싫증 나고, 어려운 일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화만 솟구친다. 하지만 이전의 나였다면 금방 포기했을, 재능이 없는 일을 나는 꾸준히 수련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드루이드’ 능력이 멋지고 탐나는 힘이라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크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사명감이라고들 하던가. 이 힘만 있다면 나는 기상천외한 마물원 일들을 보다 다양하고 확실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안 돼!”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안 되는 일을 끝까지 부여잡고 늘어지는 것. 사실 나란 인간은 원래 그랬다. 공부도 환경을 탓하며 일찍이 접었고, ‘교감’이란 능력도 마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동물과 대화하는 시시한 능력이라고 판단하고 썩혀 뒀으니까.

“한 번 더. 단비야, 힘을 내!”

[지는 잘하는데 형씨가 못하는 거유!]

“이젠 충청도 사투리도 쓰냐?”

나는 다시 단비의 힘을 빌려 드루이드를 가동시켰다. 하지만 방금과 마찬가지로 기껏해야 변화시킬 수 있는 환경의 범위는 내 주변 3m에 지나지 않았다. 두 달 동안 겨우 2m를 넘겼다. 구탄이 수십 미터를 변화시킨 것에 비하면 조촐하기 짝이 없다.

[밥 먹고 해유!]

“씁, 벌써 저녁 시간이냐.”

하루가 금방 지났다.

젠장!

빈 우리에서 벌써 두 달 동안이나 익숙해지기 위해 수련했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단지 운용 감각을 익히기 위해 드루이드를 조작했다.

무공을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서 이토록 꾸준하게 노력한 적은 없었다. 참 마물원에 취업하고 난 뒤 물질적인 것을 제외하고도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단 말이야.

“몇 번만 더 하자.”

[고기를 달란 말이유! 고기!]

“집에 갈비 100인분 재워 놨어. 기다려.”

[후딱 하고 집에 가유.]

위수, 단비의 힘이 드루이드에 깃들어 온다. 이제 가동 방법과 수백 가지의 조합식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문제는 ‘마나의 흐름’을 조절하여 환경으로 치환하는 것.

무공을 배울 때도 곽운 스승님이 그랬었지. 나는 마나를 조절하는 데 천부적인 둔재라고. 재능을 수치로 따지면 한없이 0에 수렴한다나.

젠장, 사실이다.

아직까지 마나를 어떻게 의지대로 움직이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수백, 수천, 수만 번 되풀이하여 감각을 느낄 수밖에 없다.

“조금 더 넓게!”

드루이드를 가동시키려고 할 때였다.

“잘되고 있어요?”

원장님이 구경 왔다. 난 드루이드를 멈추고 멀뚱히 서서 원장님을 쳐다봤다. 왠지 원장님에겐 한심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원장님.”

드래곤은 무언가를 알지 않을까?

“마나 조종하는 법, 가르쳐 주세요.”

원장님은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추켜올려 도도하게 대답했다.

“드래곤은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깨우쳐요. 마나 조종법을 드래곤에게 가르쳐 달라는 건 숨 쉬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과 다름없지요.”

잘났다, 그래.

“그나저나 두 달이 지났는데 달라진 게 없네요. 역시 다정 씨에겐 마법은 못 가르치겠어. 어쩜 이렇게 재능이 없담?”

삐죽 나온 입술을 다물려고 해도 다물 수가 없다. 잘나신 드래곤님과 재능을 타고난 천재들은 쉽겠지. 너네들이 이상한 거야. 전이 전에 인류는 마나가 있는 줄도 몰랐어.

이제 원장님이 구경하든 말든 나는 다시 드루이드를 가동시켰다.

[고기이!]

단비가 과분할 만큼 막대한 힘을 내게 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 힘을 다루지 못했다. 결국 이번에도 드루이드로 변화시킨 환경은 작은 연못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그만 퇴근할래요.”

오늘도 그랬는데 내일이라고 다를까. 젠장, 심신이 지친다. 축 늘어진 몸으로 흐느적대며 연습장에서 나가려고 했다.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지 마세요.”

원장님이 날 불러 세웠다.

“다정 씨의 특기를 살려요.”

“특기요?”

“다정 씨는 빈 그릇. 스스로 마나를 채우진 못하지만 어떤 힘이든 담을 수 있어요. 그러한 재능은 드래곤조차 없는 거예요.”

“그럼 뭐 해요. 마나가 늘어나도 다룰 수가 없는데.”

“대신 그릇이 넓어지잖아요. 이만하면 됐어요. 난 처음부터 다정 씨가 드루이드를 엘프처럼 다루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걸 원하지도 않았어요.”

원장님이 말했다.

“굳이 공격용으로 사용하려고 하지 말아요. 다정 씨의 힘을 생각해. 마나는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다정 씨는 자신의 그릇을 마물의 힘으로 채우니, 드루이드를 사용하여 주변을 마물이 서식하는 환경으로만 바꿀 수 있다면 교감의 힘은 더 강해질 거예요.”

원장님의 말은 이러했다.

마물의 힘은 서식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샐러맨더가 용암에서 더욱 강렬한 불꽃을 발하고 아라크네는 축축한 동굴에서 거미줄의 강도가 더 끈끈해진다. 원장님은 드루이드를 마물의 힘을 이끌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라고 했다.

지금까지 나는 마물의 힘을 빌릴 뿐이었고, 그 마물의 힘을 이끌어 낼 수단은 내가 가진 마나의 양밖에 없었다.

“드루이드를 사용해서…….”

나는 용암 지대를 만들었다.

폭이 무척 좁아 적을 공격하기엔 알맞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주변의 마나는 영향을 받았다. 순식간에 만연해지는 화기. 나는 그 상태에서 포근이의 힘을 끌어냈다.

화르륵!

출력이 달랐다. AAA 건전지를 쓰다가 터보 엔진으로 바꾼 느낌이다. 샐러맨더의 기운이 가장 극대화되는 환경이라서 그렇다.

“이제 알겠어요? 다정 씨가 연습할 건 드루이드의 범위가 아니라 가짓수예요. 마물마다 환경을 맞추어 드루이드를 사용할 수 있다면 교감의 힘은 더욱 빛을 발할 거예요.”

원장님은 조언 몇 마디를 던지고 가 버렸다. 하지만 답답하던 마음이 개운해졌다. 그래, 못하는 걸 애써 할 필요는 없지. 내가 잘하는 것을 하자.

[고기이!]

나는 밥을 보채는 단비를 꾹 안아 줬다. 이 녀석의 특별한 힘이 없었더라면 ‘가짓수’를 늘리는 것도 못했을 거야.

고기 타령을 하던 단비는 꾹 안아 주자 얼굴을 비비적대며 안겨 왔다.

“한 번만 더.”

이제 연습할 것은 넓고 강력한 환경 변화가 아니다. 태풍이 아니라 살랑거리는 바람이라도 좋아. 눈보라가 아니라 첫눈처럼 작은 눈이라도 좋다.

“용암은 만들 수 있어. 다음은 뼛속까지 얼 만한 추위. 녀석들이 살던 세계처럼.”

또다시 두 달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드루이드를 제법 괜찮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드루이드 연습이나 하며 한가롭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원장님이 다른 차원으로 출장 갔을 때, 때마침 한 남자가 마물원에 찾아왔다.

“그게… 성함이…….”

“테렌스 제임스 베델이요. 이쪽에선 블랙 교수라고도 부르지. 오랜만이오, 다정.”

“그럼 어… 베델 교수님은”

“블랙 교수라고 불러 주시오.”

“블랙 교수님은 드래곤을 만나러 오셨다고요?”

세계 유일한 마물 보호 운동가이자 꽤 유명한 마물학 박사인 그는 쥐라기 공원에서 만났던 지질학자 예고르의 지인으로, 예전에 마물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첫 만남에 원장님에게 제자로 받아 달라고 조르다가 거절당했지.

“그렇소. 드래곤의 힘이 꼭 필요하오.”

첫 만남에도 느꼈지만 그는 엉성한 사람이었다. 온통 하얗게 센 수염과 머리카락, 하얀 정장에도 불구하고 ‘블랙’ 교수라고 불러 달라는 것과 어딘가 바빠 보이는 움직임으로도 느긋하게 커피 대신 차를 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잠시만요.”

“오래 못 기다리오. 지금도 놈들이 날 쫓고 있을지도 모르오!”

하지만 원장님은 그가 쓸모가 많은 거라고 했다. 나는 보채는 노신사를 뒤로하고 원장님에게 연락했다.

저번에 찾아왔던 마물 보호 운동가가 원장님을 찾는데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바쁘다며 나더러 그의 부탁을 들어주라고 했다.

‘골치 아픈 일의 조짐이 보인다.’

블랙 교수가 엉성한 사람이지만 괜히 저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바깥을 불안한 시선으로 둘러보는 교수, 분명 사정이 있는 거겠지.

나는 돌아와 그에게 물었다.

“어떤 일 때문에 원장님을 찾으시죠?”

“몹시 중하고 급한 일이요. 드래곤의 힘이 필요하니 꼭 만나게 해 주시오!”

“지금 원장님은 바빠서 못 만나요. 제게 용건을 말해 주세요.”

그는 나를 재단하듯 이리저리 쳐다봤다. 못마땅해하는 시선에 살짝 화가 나 포근이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으흠! 과연, 좋소. 다정, 날 도와주시오! 한시가 급하오. 몰래 도망쳤으나 놈들은 금방 눈치채고 아시아의 변방까지 쫓아오겠지. 내가 믿을 자는 나와 뜻이 같은 이곳밖에 없었다오.”

블랙 교수는 고개를 숙이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원장님도 도와주라고 했으나 일단 이야기나 들어 볼까.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블랙 교수는 하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마물 보호 운동가로서 활동 중이던 그는 아주 우연히 특별한 마물을 입수했다고 한다. 처음엔 그토록 대단한 마물인 줄 몰랐으나 점점 상황이 극악으로 치닫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마물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놈들에게 잡혀갔다고 말했다.

블랙 교수는 놈들은 유령과도 같이 움직이며, 영향력이 대단하여 세계의 어느 정부나 단체에서도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 단체가 어떤 놈들인지는 자세히 모른다고 했다. 그저 영국에 본거지를 둔 비밀 단체인 것만 알아냈다고 한다.

“22:10, 내가 탈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감쪽같이 사라졌소. 또한 내가 더미로 예약한 호텔들 모두 이유 모를 사정으로 문을 닫았더군! 오우거나 이용하는 밀입국 배를 타고 한국까지 왔으나 금방 눈치챌 것이오. 빨리 돌아가야 해!”

나는 대체 어떤 마물이기에 저러는지 궁금하여 물어봤다. 잠시 머뭇거리던 블랙 교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용히 말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소.”

“황금알을… 낳는다고요?”

이 양반, 이상하다 했더니 정신 나간 사람이었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 유명한 동화 이야기잖아.

“그 눈빛, 날 믿지 않는군. 하지만 직접 본 난 확신할 수 있소. 그 마물은 분명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지. 내 앞에서 찬란한 황금으로 만들어진 알을 수 개나 낳았단 말이요!”

거참, 버럭버럭 엄청 소리 질러 대네.

‘내 일이 다 그렇지, 뭐.’

생각해 보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실제로 있는 것은 내게 그다지 놀라워할 이야기는 아니다. 딱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의 수준이니까.

“그래서 그 황금 알 낳는 거위는 어디 있는데요?”

“데리고 다니면 놈들의 추격을 피할 수 없어, 나만 아는 곳에 숨겼다오.”

블랙 교수가 말했다.

“제아무리 놈들이라고 하더라도 마물을 국제기구에 알려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오. 내가 거위를 찾고 국제기구에 놈들의 만행을 알리는 동안 날 안전하게 경호해 주시오.”

여전히 나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 나간다.

“미리 말해 두어야 하겠지. 놈들은 대단히 무서운 놈들이오. 경호를 맡긴 그 어떤 헌터도 당해 내지 못했다오. 드래곤만이 지켜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노인이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과는 별개로.

“좋아요, 경호해 드릴게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어떤……?”

“거위를 찾으면 마물원으로 데려옵니다. 우리가 보호할 거예요.”

그가 어떻게 나올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그가 욕심에 얼룩져 보였다. 거위를 노리는 이유가 탐욕이라면 애써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이런 머저리 같으니, 내가 그 생각을 못 했군. 아무래도 그게 더 좋겠어. 좋소, 이곳이라면, 드래곤이라면 가능하겠지! 거위를 찾아서 보호해 주시오!”

으음.

블랙 교수의 흔쾌한 수락에 도리어 내가 민망해졌다. 정말 거위의 보호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니. 그는 엉성했지만,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

그날 오후, 한시가 급하다며 보채는 블랙 교수 때문에 나는 곧바로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다행히 인맥(사타리언 부인)을 이용해서 개인 비행기로 영국까지 갈 수 있었다.

‘정말이었다니.’

블랙 교수가 자신의 명의를 사용하여 더미로 구입한 비행기 티켓, 기가 막히게도 곧바로 결항이 되었다.

‘보디가드라…….’

이번 일은 내가 해 온 일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이 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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