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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36화 (136/258)

# 136화 메타

원장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오는 길에 영국의 여왕을 만나고 왔어요. 흥미로운 인간이더군요. 덕분에 재밌는 거래를 했어요, 히힛.”

히힛? 히힛 하고 웃어?

얼마나 재미있는 내용이기에 그래?

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서 난 이제 괜찮은 거죠?”

비록 연락처에 배달 업체가 반 이상에다가 SNS, 메신저 계정이 삭제돼도 타격이 전혀 없는 아웃사이더라 하더라도, 사회 보장 번호가 삭제된 것은 곤란했다. 신작 게임이 나와도 계정을 만들지도 못하잖아?

“네, 복구하는 김에 잘못된 걸 바로잡아 놨어요.”

원장님은 내게 검은 카드를 건넸다.

“생각해 보면 드래곤의 가디언이 인간 사회의 일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우습지 않아요?”

전에 한 번 사용한 적이 있는 카드였다. 신용 카드이며 신분을 보장하는 카드이고 증명서며 계약서이기도 했다. 위조하면 범죄인 인도 조약에 상관없이 어느 나라에서나 무기 징역이 선고되는 카드.

정식 명칭이 있지만 대부분 이 카드를 이렇게 부른다.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심플하게 드래곤 카드라고.

이건 지구인이 드래곤에게 바치는 공물이자 최선의 선물이었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부디 깽판 치지 말라고 정성을 다해 제공하는 서비스인 것이다.

“정말… 정말요?”

원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내가 이 카드의 소유자라면 사회적인 의무가 사라지고 혜택만 남게 된다.

“이것도 여왕과의 거래 내용 중에 하나. 다정 씨의 신분은 이제 그 어떤 권력 기구라도 함부로 조회하지 못해요. 앞으로 더 이상 오우거 돛단배를 타는 고생은 안 해도 될 거예요.”

지구 사회에서 드래곤과 동등한 사회적 신분의 보장이 얼마만큼 위력적인 힘인지 원장님 곁에서 일하며 수없이 봐 왔다.

막말로 이 카드만 있으면 람보르기니를 타고 퇴근 시간에 올림픽 대로의 신호를 무시하고 쭉 달려도 나는 잡혀가지 않는다. 불평등의 극치,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세상 최고의 갑질 프리 패스권.

“혹시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다정 씨가 드래곤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일을 한다면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당장 무엇을 해야 신명 나게 재밌을지 고민하던 나는 원장님의 경고에 흥이 빠지고 말았다. 올림픽 대로를 달렸다간, 내 머리에 고속 도로가 뚫리겠지.

“다정 씨가 얻은 그 검, 내일 나랑 같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요.”

원장님은 그렇게 말하고 원장실로 들어갔다.

“잠깐.”

퇴근을 서두르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오우거 돛단배를 탄 사실을 원장님은 어떻게 안 거야? 망할, 일부러 그랬군. 고생하게 놔둔 거야.

내가 무슨 야생 망아지도 아니고 실컷 고생하게 만들고 보상을 하나 던져 준다. 당근과 채찍으로 조련하는 것이다. 역시 드래곤 아니랄까 봐 성격이 괴팍하셔.

드래곤 카드를 품에 고이 넣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

블랙 교수는 위험한 일을 겪었어도 제 신념을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사타리언 부인과의 만남이 기회가 되어, 그는 윙바레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글쎄, 아마 다음번에도 그가 도움을 요청하는 쪽이 아닐까.

*

다음 날, 출근하자 잔뜩 기합이 들어간 원장님이 나를 비밀 실험실 같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원장님과 함께 검에 대해서 조사했다. 신수가 만들어 낸 검. 원장님은 우선 지구의 신화에서 무기의 출처에 대해 알아본다고 하였다.

빛 뭉치 신수의 힘은 신화 속 영웅의 무기를 재현하는 성질이 있다고 했다. 지구의 모든 신화를 읽으면 출처와 쓰임새를 알 수 있을 거라나.

‘태블릿’과 수천 개의 책이 허공을 떠돌아다니며 원장님의 손짓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정말 장관이다.

내가 그중 몇십 개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였다. 가만히 앉아 바람처럼 지나가는 책들을 바라만 보던 원장님이 대뜸 말했다.

“신화를 뿌리로 둔 검이 아니군요.”

원장님 왈, 4만여 개의 신화를 확인했지만 내가 가진 검과 같은 영웅의 무기는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군요.”

나는 그저 그 짧은 시간에 4만 개의 신화를 읽은 원장님을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원장님은 이제 거대한 공터로 나를 안내했다.

“그럼 다정 씨의 바람이 만들어 낸 검이겠군요. 그녀에게 뭐라고 말했어요?”

나는 원장님의 질문에 검지로 콧잔등을 쓰윽 닦으며 대답했다.

“제일 강한 무기로 달라고 했습죠.”

내 대답이 시원찮게 들렸는지 원장님은 인상을 팍 구기며 말했다.

“이상하군요. 그런 추상적인 개념은 이해하지 못할 텐데. 어디 한번 그 검을 사용해 보시겠어요?”

나는 공터에 서서 검을 치켜들었다. 검객들은 애병에 이름을 붙인다. 나는 이 검을 ‘홍아’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야말로 붉은 송곳니다.

손잡이의 끝이 송곳니처럼 날카롭고 가드가 없이 검신과 일자로 이어진 독특한 생김새. 붉은 검신의 옆면에도 날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둥글고 검 끝이 뾰족하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송곳니를 깎아 만든 것 같다.

“홍식.”

샐러맨더의 힘을 일으키자 홍아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나는 공터를 향해 샐러맨더가 포효하듯 거칠게 검을 내질렀다. 붉은 기운은 빠르게 쏘아져 공터를 불태웠다.

“어때요?”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 선에선 충분히 강한 무기라도 원장님은 드래곤, 성에 찰 리가 없으니.

하지만 예상과 달리 원장님은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놀라워했다.

“진귀해, 진귀한 검이야. 다정 씨, 빨리 다른 무공을 써 봐요.”

“어떤 거요?”

“샐러맨더의 힘을 제외하고 아무거나 빨리 써 봐요!”

나는 호들갑을 떠는 원장님에게 어깨를 으쓱하고 형의검의 다른 초식인 ‘야옹이 ver’를 펼쳤다. 샐러맨더의 기운이 사라지고 기묘한 기운이 몸을 감돈다. 절로 차분해지며 나 스스로도 존재감이 희미해짐을 느낀다.

“엉?”

점점 기운이 변할수록 놀라운 상황을 마주했다. 당황하며 ‘달라진’ 홍아를 쳐다봤다. 방금까지 내 손에 쥐고 있던 붉은 송곳니는 더 이상 그렇게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작은 단검이다.

“얼레?”

야옹이의 기운이 완전히 몸에 깃들자, 단검은 갈라지더니 두 개가 되었다. 검신이 기껏해야 30cm인 군용 나이프 수준의 단검이다.

날은 검은 묵색으로 조명을 반사하지 않았다. 검신이 짧아 싸우기엔 불편하나 숨기기엔 좋다. 마치 기습할 때 사용할 만한 검이다. 그래, 야옹이의 힘을 이용할 만한 검이잖아.

“기이한 기운을 풍기더니, 모든 힘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그랬나. 다정 씨, 다른 무공.”

원장님의 요청에 ‘아이스독’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실전에선 사용하지 않았으나 요새 열렬히 연습하고 있는 형의검이다.

하지만 이 기운을 끌어 올려 검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선 아주 큰 난관이 하나 있었다. 평범한 검날은 얼어붙어 검의 내구성이 크게 줄어 쉽게 부러져 버리는 것이다.

“이건 또 뭐야.”

형의검은 ‘검’의 무공이나, 실상 검공만이 아니라 다른 기술도 흉내 낼 수 있다. 굳이 마물의 움직임과 힘을 검으로 귀결시킬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흉내’의 무공이니까.

풍종도보의 경공도 스위프트덕을 흉내 낸 기술이지 검법은 아니다. 물론 나에게 검이 가장 익숙한 무기이긴 하다.

“창?”

전혀 사용해 보지 않은 무기가 나왔다. 붉은 송곳니에서 두 개의 단검, 이젠 고드름처럼 투명하고 긴 얼음의 창.

“다룰 줄 모르는데.”

곽운 스승에게 형의검의 묘리를 전수받으며 기초가 되는 동작과 ‘관찰’하는 법과 ‘응용’하는 법, 그리고 ‘창조’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검을 쓰다가 대뜸 창을 쥐여 주면 어떻게 사용하겠는가?

“떠오르는 게 없어.”

아이스독하고는 일주일을 지낸 게 다다. 물론 녀석들이 어릴 때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모든 움직임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지만 말이다. 젠장, 녀석들은 왜 그렇게 빨리 죽는 건데!

“에라이!”

고민하던 나는 냅다 창을 던져 버렸다. 창은 날아가 아직까지 홍식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던 공터의 중앙에 꽂혔다. 그 순간, 시린 한파가 찾아왔다. 불꽃을 잠재울 만큼 차가운 기운이 퍼져 나갔다.

“이건…….”

나는 손에 쥔 고드름 창을 쳐다봤다. 고드름 창이 녹아서 없어지자마자 내 손에 다시 생긴 것이다.

아이스독은 얼음처럼 녹아 내 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 창은 달랐다. 녹아 없어져도 내 손에 다시 생겨났다. 창이란 건 굳이 휘두르고 찌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투창, 던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힘이 되어 줄 거야.

이제 원장님이 시키지 않아도 다른 마물의 힘을 끌어 올려 형의검을 펼쳤다.

그럴 때마다 무기가 달라졌다. 심지어 어떤 무기의 위력은 드래곤이 만든 마법 공간을 부술 만큼 엄청나기도 했다.

“이제 그만해요, 또 주화입마 올라.”

지쳐 쓰러진 내게 원장님이 다가왔다. 원장님은 내 손에서 검을 가져갔다. 그러자 홍아는 아무런 장식도 없고 힘도 느껴지지 않는 철검이 되었다.

“흐음, 다정 씨의 ‘바람’대로 성질을 바꾸는 검이라.”

원장님이 검을 건넨다. 다시 내 손에 쥐자 홍아는 붉은 송곳니가 되었다.

“한 자루의 명검이 도시에 전란을 일으키니.”

원장님이 말했다.

“백 자루의 명검은 대국을 혼란시킨다. 전에 곽운이 했던 말입니다. 무림에선 이런 검 한 자루를 두고 수천 명이 목숨을 건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정 씨의 검은…….”

원장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백 자루의 명검에도 비교할 수 없어요. 발휘하는 힘에 맞추어 성질을 변화시키는 무기는 아마 우주를 통틀어 유일할 터. 유일, 진귀한… 아주 진귀한…….”

원장님은 티를 내지 않지만, 사실 드래곤답게 무척 욕심이 많은 편이다. 나는 천천히 뻗어 오는 원장님의 손길에 재빨리 검을 등 뒤로 감췄다.

“제 겁니다.”

저항이 통할 리가 만무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절히 바라는 것뿐이다. 부디 넘어가 주라.

“하지만…….”

어딘가 탁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눈으로 다가오던 원장님이 갑자기 제정신을 차렸다.

“그건 다정 씨가 다루기에 유일한 보검이 될 수 있는 거겠죠. 진귀하고, 신기하네요. 어쩜 저렇게 찰떡같은 무기를 얻었담. 마물에게 힘을 빌리는 교감, 교감을 싸우는 힘으로 바꾸는 형의검, 그리고 변화하는 힘을 이끌어 낼 무기라니! 삼위일체가 따로 없네.”

원장님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가디언이 아니었다면 무조건 뺏었을 거라고, 가디언도 자기 소유니 특별히 봐준다고까지 했다. 정말 무서운 존재다.

“다정 씨 소유니까 다정 씨가 이름을 붙여 줘요.”

더 이상 홍아라고 부를 수 없었다. 자유자재로 모습과 성질마저 바꾸는 무기다. 붉은 송곳니나 얼음 창처럼 이름을 붙이면 범용성이 떨어진다. 흐음, 다양하게 변하는 무기에 어울릴 이름이라.

“메타몽, 메타몽소드.”

지구 문화에도 빠삭한 원장님이 인상을 찌푸린다.

“역시 그건 좀 그러니까 메타소드라고 하죠.”

“다정 씨 마음이니까 뭐……. 네이밍 센스가 괴팍한 걸 어찌 탓하겠어요.”

메타소드.

나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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