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39화 (139/258)

# 139화 원탁의 기사들 (2)

잠깐의 휴식 후에 곧바로 갤러해드와 싸웠다.

세 번째 상대인 갤러해드, 역시 그는 예상대로 영국에선 방심한 것이었다. 제대로 맞붙은 갤러해드는 강했다. 홍아(紅牙)로 휘두른 홍식을 무리 없이 받아 냈으며, 단지 검술 실력과 센스만 따진다면 날 아득히 압도했다.

특히 거리에 상관없이 공격해 오는 그의 검은 상대하기 몹시 까다로웠다.

갤러해드에게 가장 배울 것이 많았으나, 가장 배울 것이 없기도 했다. 고수의 기술은 고수들이 잘 알아보는 법이다. 내 시야가 점점 개안될수록 그의 움직임이 완벽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마물의 움직임과 행동을 따라 하는 것과는 격이 다르게 난해했다. 마물들은 속마음이 들려오며 힘도 빌릴 수 있었지만(또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갤러해드를 비롯한 기사들에겐 형의검의 묘리를 적용시킬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상대 중 갤러해드에게 가장 많이 얻어맞고 심한 상처를 입었다. 역시 놈은 내게 악감정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제 남은 상대는 한 명인가.’

란슬롯, 어린 티가 남아 있는 소년.

하지만 기이한 느낌을 주는 녀석.

드래곤과 마물들과 지내며 육감이란 게 생겼다. 눈치가 빨라졌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강한 상대를 파악하는 힘이 생긴 것이다.

그런 내가 녀석을 가장 무서워하고 있었다. 감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어린 소년이 갤러해드보다 강하다는 건데.

“잘 부탁해요, 형!”

대련장에 선 녀석은 친한 척 말을 걸어왔다. 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유형의 인간은 부담스럽다. 곧 서로 뚝배기를 깨려고 달려들어야 하는데 해맑게 인사하다니, 천진난만한 사이코패스 타입이구나.

*

나는 마지막 상대인 란슬롯과 대련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알약은 필요 없었다. 생채기 하나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히 그와의 싸움은 가장 피곤한 대련이었다.

어리고 해맑은 소년은 싸움 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검을 맞붙어 보니 의외로 약한 것 같았다. 그래서 힘을 줄였더니, 소년의 검은 나를 따라 더 약해졌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내 힘이 강해질수록 란슬롯의 힘도 강해졌다. 마치 속도, 힘, 무게 중심, 반사 신경, 모든 게 다 내게 맞춰진 것 같았다.

결국 승부는 무승부였다.

나도, 녀석도 서로에게 상처를 하나 입히지 못했다.

“감추고 있는 게 많아.”

갤러해드처럼 압도적으로 강하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가장 강한 자는 란슬롯이겠지.

“설마 눈치깐 건 아니겠지?”

기사들은 모두 내 대련을 볼 수 있었다. 란슬롯은 나와 세 명의 기사와의 대련을 모두 지켜봤겠지. 조금은 티 나게 행동하긴 했어도 설마 들킨 건가? 움직임을 훔치려고 하니,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싸웠던 걸지도 몰라.

원장님이 마련한 대련장은 마물 우리처럼 격리된 공간이다. 지금 해가 떴는지, 달이 떴는지도 잘 모르겠다.

휴대폰을 찾아 꺼냈다. 시계를 보니 16시다. 점심시간쯤 들어왔으니 고작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밤새 중노동을 한 듯 피곤했다.

“아직 잘 모르겠다.”

밀려드는 잠을 쫓아내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솔직히 기사들의 움직임을 훔치는 건 무리였다. 쓸데없는 짓이야.

그렇다고 아예 소득이 없던 것도 아니다. 두들겨 맞으며 많은 걸 얻어 냈다. 아니, 단 한 가지를 얻었다.

*

일주일이 지났다.

매일 네 번의 대련을 했으니 스물여덟 번이나 싸운 셈이다. 그동안 난 기사들의 움직임을 따라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득처럼 깨달은 그 힘을 깨우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한 번도 그들을 이기지 못했으나 대련 시간이 기다려졌다. 심지어 더 싸워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다른 움직임들을 굳이 따라 할 필요는 없어. 내겐 이미 있어.”

모든 대련이 끝나고 침대에 누워 혼잣말로 되새겼다. 망상은 그물처럼 퍼져 나갔고 머릿속엔 다양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각자 형태가 다른 힘을 가진 기사 네 명과 맞붙으며 어떤 힘들이 간절히 필요할 때가 있었다.

날벌레처럼 빠른 펠리노어의 움직임을 잡기 위해선 아라크네의 힘이 필요했지만, 독수리처럼 강한 발톱을 지닌 펠리노어의 검을 꺾고 마무리를 짓기 위해선 짐승의 송곳니가 필요했다.

가웨인의 태산 같은 힘엔 맞서기보다 피하는 게 수월했다. 하지만 가벼운 힘으론 그의 바위 같은 몸을 깨부수진 못한다.

갤러해드, 란슬롯…….

더 많은 힘이 필요해. 한 가지 힘으론 상대할 수 없어.

그렇다면 동시에.

동시에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하나의 마물이 아니야.”

샐러맨더의 송곳니를 황소 괴물의 괴력으로 내지른다.

지금까지 자연스레 두 가지 힘을 혼용한 적은 몇 번 있었다.

포근이의 힘을 두르고 아라크네의 거미줄을 사용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두 기운을 품고, 형의검으로 발산한 적은 없다. 또한 오랫동안 유지한 적도 없었고, 두 힘을 ‘동시에 같이’ 사용하려고 한 적도 없었다.

낭비되는 힘들.

아라크네, 코쿠라차 여우원숭이, 훔바바다, 사익조, 불가사리, 세이렌, 카르나, 츄파카브라…….

심지어 마츄까지.

“혼종.”

옛날 게임 중에 그런 게 있었다.

동물을 조합하여 새로운 동물을 만들어 내는 게임.

예를 들어 ‘사자+상어’, ‘하마+악어’.

동물이 가진 강점만을 조합하여 강한 동물을 만드는, 지금 생각하기에 기괴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었다.

내가 그릇이고 마물의 힘이 음식이라면 나는 지금까지 하나의 음식만 담았다. 하지만 두 개를 담는다면, 그 이상을 담을 수 있다면…….

“나는 잡탕찌개가 좋아.”

나는 자는 것도 까먹은 채 ‘잡탕찌개를 만드는 법’에 열중했다. 이 순간이 내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할 만큼 즐거웠다. 맛이 어떨 진 모른다. 괴상한 음식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대의 미식이 될지도 모르지. 해 보지 않고선 몰라.

*

곽운은 그를 개조의 재능이라 평가했다. 무공의 뿌리, 시초가 되는 자들만이 가지는 재능. 무신의 재능은 신공마저 흉내 내지만, 스스로 신공을 만들어 내진 못한다.

새로운 힘을 창조하는 것과 모방하여 따라 하는 건 다른 경지에 있다. 다정은 스스로 마물의 힘과 움직임을 본떠 형의검의 초식을 창조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흉내에 지나지 않았다.

무공은 힘을 극한으로 이끌어 내는 기술이다. 뛰어난 무공과 저급 무공의 차이는 이 점에서 온다. 단지 힘을 발현시키는 것과 곱절로 상승시키는 것의 차이다.

지금 다정은 새로운 경지에 돌입했다. 기초 무공에 지나지 않던 형의검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기로에 서 있었다.

성공한다면 그의 힘은 더 높은 경지에 오를 것이다. 실패해도 교훈으로 남아 후에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

대련을 끝마치고 쉬고 있는 갤러해드에게 란슬롯이 찾아왔다. 그는 갤러해드의 뺨에 난 이빨 자국을 보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최초의 기사께서 야무지게도 물리셨네?”

갤러해드는 뺨에 난 상처를 쓰다듬었다. 얼마나 깊게 물었는지 드래곤의 치료 약을 먹었는데도 아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야만스러운 놈.”

갤러해드는 이를 악 물었다. 설마 기사의 인정을 받는 신성한 대련에서 얼굴을 물어뜯어 버릴 줄이야.

그의 상식으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첫날 이후로 놈의 행동이 점점 더 괴팍해졌다. 심지어 어젠 엉덩이를 추켜들더니 내게 겨누더군. 젠장.”

갤러해드는 그날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대체 무슨 능력을 지녔기에 엉덩이에서 거미줄과 산성액이 동시에 나온단 말인가?

“형님도 당하셨구나!”

하하하-!

란슬롯은 즐겁게 웃었다.

그도 경험했다, 다정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의 괴팍하고 기괴한 행동들을!

“최초의 기사가 방귀에 당하다니요!”

물론 자신은 갤러해드와 달리 당하진 않았다. 그래서 란슬롯은 갤러해드를 놀릴 거리가 생겨 더 즐겁기도 했다. 갤러해드는 란슬롯의 조롱에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참았다.

“보통 방귀가 아니었다. 내 인생 가장 뜨겁고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방귀였지.”

“이야, 본국에 돌아가면 여왕님께 꼭 보고드릴게요. 방귀에 당한 최초의 기사라, 수습 기사들도 보게 벽보라도 붙여 둘까?”

란슬롯의 조롱은 갤러해드가 몸을 일으키고 나서야 멈췄다. 그를 물씬 패 주려던 갤러해드는 한숨을 쉬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날 놀리려고 온 건가? 용건부터 말해.”

웃음을 멈춘 란슬롯이 대답했다.

“이제 슬슬 회의할 때가 되었죠? 난 찬성, 무조건 찬성입니다.”

란슬롯은 어린 나이에 기사가 되었다. 그는 유일하게 귀족 계급이 아님에도 호수 요정에게 선택을 받아 기사가 되었다.

대전이가 일어난 후 본격적으로 원탁의 기사가 활동을 시작하며 갤러해드가 최초의 기사가 되었지만, 만약 란슬롯의 나이가 성인을 넘겼다면 그가 최초로 임명받았을 것이다.

“그는 미숙하지만 뭔가 달라요. 형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그런 천재가 자기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한 남자를 인정했다.

갤러해드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의 움직임은 날마다 달라졌다. 고약한 녀석이다. 마치 우릴 실험 대상으로 이용하고 있는 듯했지. 우릴 나침반 삼아 무언가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게요. 첫날엔 단지 우리들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도둑놈인 줄 알았더니.”

갤러해드가 말했다.

“그게 더 꺼림칙하다는 것이다. 단지 하루 만에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거니까. 너처럼 징그러운 녀석이야.”

란슬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 징그러운 녀석이에요.”

소년은 진저리를 치며 표정을 구겼다.

“그가 궁지에 몰렸을 때 눈빛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셨어요? 그건 기사도, 전사도 아니야. 마치 짐승 같은 눈빛. 으.”

그러면서도 란슬롯은 남자를 인정하며 갤러해드에게 말했다.

“그러니 충분한 자격이 있는 거겠죠. 갤러해드 단장, 빨리 결정해 줘요. 케멀롯의 결계가 한계에 다다랐어요.”

“너 이전에 이미 가웨인과 펠리노어가 찾아왔다. 다정을 다섯 번째 기사로 인정한다더군.”

“근데 왜 망설여요?”

잠시 뜸들이던 갤러해드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주변에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 존재’이기 때문에 혹시 몰랐다.

“그 존재만 허락해 주신다면.”

란슬롯의 눈이 커진다.

“정식 기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정식 기사.

그를 임시가 아닌 온전한 다섯 번째 기사로 맞아들이는 것. 란슬롯은 귀족 계층이 아닌 자신이 기사가 되고자 했을 때 일어났던 반발을 떠올렸다.

그땐 갤러해드의 도움으로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동양계 외부인이 태양 기사단의 정식 기사가 된다고 한다면 최초의 기사라는 영향력으로도 반발을 잠재우긴 힘들 것이다.

“으하하, 진짜 도둑놈은 갤러해드였네! 난 몰라요. 나 때도 그러더니, 몹쓸 스카우트 병이 또 도졌네!”

갤러해드가 참지 못하고 일어났을 때 이미 란슬롯은 멀리 도망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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