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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91화 (191/258)

# 191화   아, 여왕이시여 (4)

사실 전이로 인한 변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던 분야는 연예계였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느 날부터 갑자기 TV 프로그램에서 뉴스에서나 나오던 이종족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사소한 것이라도 대중들에게 크게 작용하는 미디어 매체들의 효과는 굉장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종족에 대하여 크게 엮일 일이 없었고, 대부분 지금에 이르려 굳어진 이종족들에 대한 이미지는 매체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엘프는 선남선녀 모두가 아름답다. 오크는 모두 근육질의 싸움밖에 모르는 바보다.

물론 두 종족과 지내 본 입장에서 얼추 맞는 말이긴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선 단순한 이미지 메이킹을 넘어 이종족들도 연예인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한국의 K팝스타 김아리 씨도 수인이었고,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드워프인 박철구 씨는 벌써 10년 넘게 장수프로그램의 MC를 도맡아 하고 있다.

내 생각이지만 미디어 매체는 정말 양날의 검이다.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 익숙해질 계기를 주지만 반대로 너무 쉽게 편견을 심어 줄 수도 있으니까. 그처럼 우딸리깔딸리의 요정 같은 이미지도 편견, 만들어진 거겠지.

“3인조의 우딸리깔딸리 아이돌이라. 이런 그룹을 어떻게 짤 생각을 했지?”

나리타공항에 내린 난 무거운 발걸음으로 TOT 엔터테인먼트 사옥으로 향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 목장에서 일할 때처럼 단지 친하게 지내는 것만으론 부족하겠지. 대체 뭘 해야 하지?

가는 길에 스마트 폰으로 그룹의 대표곡을 들었다. ‘문라이브 러브’라는 곡으로 일본풍의 아이돌 노래였다. 멜로디가 꽤 흥겨워 제법 신나는 곡이다.

“이 노래 들어본 적이 있는데.”

난 현재 테러 사태로 뒤숭숭한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이자 프로듀서로서 이들에게 접근하게 된다. 목적은 한 가지, 그들의 영향력을 이용할 것. 원장님은 인터넷상에서 제법 영향력을 미치는 그들을 설득시켜 미디어 매체의 효과를 원하는 듯했다.

“제법 인기가 있다 그거지.”

일본 아이돌 노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내가 멜로디라도 들어봤으니 꽤 유명한 그룹인 것 같다. 인터넷으로 조사했을 때도 팬클럽 규모가 만 명이 넘었다. 이 그룹의 팬인 듯한 블로거의 말이 인상 깊었지. 대체할 수 없는 ‘덕력’을 유발시키는 그룹이라나?

“의도가 너무 뻔해서 오히려 꺼림칙한데.”

그래도 난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노래는 좋은데, 왠지 노래 때문에 좋아하는 건 아닐 것 같단 말이지.

“에이 씨.”

우딸리깔딸리의 작은 몸은 정말 불편했다. 차를 타기도 불편해서 택시를 잡았으나 짐을 올려놓고 문을 닫는데 온몸을 움직여야 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건 또 어떤가. 양손으로 쥐고 사용해야 했는데, 이미지 검색이라도 해 보려고 하니 폰을 내려놓고 검색해야 했다.

정말 귀찮아. 난 짜증 내며 포털 사이트에 그룹을 검색했다. ‘트루러브(Truelove)’. 유치하기 짝이 없네.

“리더는 코코미.”

우딸리깔딸리들은 보통 이름의 끝에 ?로스라고 붙이니, 코코미라는 이름은 가명이겠지. 트루러브의 리더는 코코미란 이름을 가진 우딸리깔딸리. 외형은 정말 요정이란 이미지에 딱 맞는 녀석이다. 무대 영상에서 녀석은 금발에 초록 옷을 주로 입고 있었는데, 아마 팅커벨을 연상시키려는 목적인 것 같았다.

진짜 팅커벨이 있다면 저렇게 생겼을 것 같기도 하고.

“뭐야? 춤 담당도 있어? 다른 한 명은 랩 담당이네.”

3인조 아이돌 그룹답게 저마다 역할도 있었다. 춤 담당은 ‘레미미’ 빨간 머리의 우딸리깔달리. 눈매가 올라가 차가운 인상의 녀석이다. 랩 담당은 ‘키니미’ 보라색 머리. 콘셉트는 확실한 그룹이다. 요정 이미지를 잘 살렸구나.

새 앨범 프로듀싱을 명목으로 미리 약속을 잡았다. 난 TOT 사옥내의 연습실에 도착해서 그들을 기다렸다.

우딸리깔딸리이자 아무런 경력이 없는 내가 프로듀서로 취임할 수 있었던 건 원장님의 영향력 덕이었다. TOT 엔터테인먼트는 거대 기획사의 자회사였는데, 소속 연예인들은 모두 이종족들이다.

트루러브가 회사 간판 그룹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저것 알아보니 사실상 이 회사, 망했다. 이미 모회사로부터 전문 용어로 손절당한 상태이며, 언제 폐업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도 원장님의 입김이 일본 연예계까지 닿는다는 건 꽤 놀라운 일이다.

얼마나 문어발인 거야?

“뭘 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는데.”

녹음실이 갖추어진 연습실에 혼자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오지만, 머릿속은 멍하기만 했다. 마침내 우딸리깔딸리 아이돌 3인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와! 정말 우딸리깔딸리 프로듀서네? 반가워요! 코코미예요!”

리더인 코코미, 첫인사에 성격이 다 드러난다. 발랄하고 해맑은 녀석이구나. 정말 아이돌스러운 녀석이네.

“잘 부탁드립니다. 키니미입니다.”

랩 담당의 차분한 인상, 보라색 머리의 키니미가 인사를 하고 레미미라는 녀석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컨셉인지 아닌진 모르겠으나 확실히 개성은 있다고 생각했다.

대충 내 소개를 끝내고 난 바로 무대를 보기로 했다. 트루러브 3인조는 반짝거리는 무대 의상을 입고 왔다.

난 한 가지 궁금한 점을 자연스레 질문하기 위해 프로듀싱을 명목으로 무대를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녀석들이 준비하는 동안 난 마이크를 세팅하고 AR를 틀었다.

오기 전에 대충 배운 것으로 당연히 음악 제작을 하진 못한다.

“아, 괜찮아요. 프로듀서님.”

준비하고 있자 키니미가 괜찮다며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문라이트 러브’를 틀었다. 노래에 맞추어 율동 수준의 춤이 시작되자 난 인상을 찌푸리며 멈추게 했다.

“잠깐, 라이브를 보고 싶은데요.”

뭔 상관이겠냐마는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요청에 리더 코코미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들 라이브는 못해요!”

“네?”

“이 노래, 우리들 목소리가 아니걸랑요. 으헤헷!”

우딸리깔딸리 특유의 웃음소리를 귀엽게 순화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코코미는 당당하게 말했다. 뭐지? 흔히 말하는 얼굴 가수인가? 이건 아이돌이 아니잖아. 아이돌을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그들은 대단한 인재들이다.

공작새처럼 사람을 매료시키는 재능은 엄청난 것이다. 또한 그러기 위해 들이는 수많은 노력과 피땀 어린 시간들은 어떠한가! 저들은 아이돌이 아니다. 단지 전시장 마네킹처럼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깐, 나 방금 뭔가 엄청 프로듀서다운 생각을 한 것 같은데.

무대는 예상대로 콘셉트에 충실했다. 요정 이미지. 난 녀석들이 편견에 의한 강제적인 이미지로 어쩔 수 없이 이런 무대를 서지 않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젠장, 역시 이번 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혀.

*

며칠 뒤 트루러브는 오랜만에 무대에 서게 되었다. 난 녀석들의 스케줄을 뒤따라갔다.

근래 테러 사태로 트루러브는 연예계에서 배척당했지만 이 축제 공연은 오래전에 기획된 거라 간신히 성사시킨 무대였다. 난 야옹이의 힘을 빌려 기척을 숨긴 채 관중석을 돌아다녔다.

역시 예상대로다. 적대적이야. 트루러브의 차례가 다가오자 야유의 소리가 커져 갔다.

그들이 무대에 올랐을 땐 야유를 넘어 심한 욕설까지 울러 퍼졌다. 사실 난 이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가 단지 화풀이 대상이라는 걸 알았다.

일본은 테러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나라다. 그러니 이토록 ‘화나는 척’을 하는 건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트루러브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감정의 배출구가 되어야 했다.

쯧, 불쌍한 녀석들.

결국 공연은 중단되고 3인조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힘없이 축 처진 녀석들의 작은 어깨에 동정이 간다.

역시 이번 일은 안 되겠어. 만연한 혐오로 얼룩진 사회가 진정되기 전까진 트루러브는 무대에 서지 못할 것이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장담하지 못하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난 찜찜한 기분이 되어 공연장에서 벗어나려다가 어떤 무리의 외침을 들었다.

“코코미! 힘내!”

“우린 너희들을 믿어! 키니미 짱!”

있긴 있었다. 이 난장판 속에서도 트루러브를 응원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후우.”

난 형광봉을 흔들며 응원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미묘해, 정말 미묘하단 말이야.

*

아이돌 그룹이 그러하듯 이 녀석들도 레슨이란 걸 받았다. 율동 수준의 춤에 목소리도 빌린 거지만 다음 앨범부턴 그래도 제대로 된 가수로 활동할 모양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런데 레슨이 될 리가 없다.

내가 봐도 이들은 망했다. 사태가 해결되기까지 무대에 오르지 못할 테고, 잘 풀린다는 보장도 없다.

무대에서 야유를 받았던 그날 이후 트루러브 3인조는 울적한 나날만을 보내고 있었다.

“이건 설득하기 힘들겠네.”

폴리모프를 유지하는 동안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촉박한 시간에 답도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다음 우딸리깔딸리 세력을 만나는 게 낫겠지. 난 포기하는 심정으로 녀석들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인간은 원래 못돼먹었어. 너무 우울해하지 마세요.”

인간에 우호적인 우딸리깔딸리들을 포섭하려고 왔다가 갈등만 조장한 꼴이지만 내가 녀석들이었대도 이 상황이 몹시 싫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 일은 막막했기에 내일부터 다른 곳에 가려고 했다. 난 위로를 한답시고 인간들이 얼마나 쉽게 배신하는지 언급하면서 욕을 해 댔다.

“아녜요. 사람들은 잘못이 없어요.”

하지만 도리어 녀석들은 사람을 옹호했다. 의외였다. 난 당연히 사람을 미워할 줄 알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 주려고 했는데 아니었던 건가?

“코코미가 슬픈 건 무대에 서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우릴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투보다도 충격적인 건 녀석들의 생각이었다. 사실 난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 또한 빌어먹을 편견인가? 왜 녀석들의 팬이라는 놈들이 좋게 보이지 않는 걸까.

“이건 프로듀서가 아니라 우딸리깔딸리로서 물어보는 겁니다. 사람들이 정말 당신들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요? 단지 요정 같은 이미지만을 좋아하는 겁니다.”

확실히 주제넘은 말이다. 싫으면 그냥 포기하면 된다. 내가 이 말을 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순진한 착각을 하고 있는 녀석들이 왠지 짜증이 났다. 깨달았으면 했다. 이 이용당하는 바보들아.

“당연하죠.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이 왜 우릴 좋아하겠어요?”

“뭐?”

코코미가 내 신경질적인 말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왜? 그게 나쁘지 않냐는 질문에 코코미가 대답했다.

“왜 나빠요? 그들은 우리가 우딸리깔딸리인 걸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해 줘요. 오히려 겉모습만 봐줘서 고마운데요.”

그거 참 대단한 관점인데.

나로선 이해하지 못했지만 녀석들도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게 옳은지 아닌지는 판단할 게 아니다. 그저 저런 생각을 가진 녀석도 있다는 게 약간 충격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않아.”

당당히 말하던 코코미도 키니미의 말에 울적해했다. 사실 코코미의 생각이 특이한 것이다. 편견마저 사랑해 준다고 기뻐하는 건 연예인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프로듀서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왕님… 에 대해서요.”

코코미는 다른 우딸리깔딸리들에 비해서도 솔직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카우토소의 우딸리깔딸리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게 동족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했지만 코코미는 다르게 생각했다.

“못된 생각이지만, 난 싫어요. 많은 친구들이 고통 받고 슬퍼하는 건 알아요. 하지만 난 그러기 싫은데. 사람들을 미워하기 싫은데.”

코코미는 자신의 욕심에 솔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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