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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90화 (190/258)

# 190화  아, 여왕이시여 (3)

그날 저녁엔 벽돌 난로가 인상적인 작은 오두막집에서 반장과 몇몇 우딸리깔딸리 직원들과 식사를 같이했다. 허름하고 낡은 오두막집은 인간의 관점에선 좁고 누추한 곳이지만 우딸리깔딸리들에겐 포근한 쉼터였다.

현대 시설도 충분히 구비되어 있었으나 일부러 이런 곳에 모인 것이다. 우딸리깔딸리들은 넓은 것보다 안락하고 포근하며, 다소 허름한 곳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우딸리깔딸리들은 새로운 동지를 위해 선물을 하는 관습이 있었다. 난 카우토소 스테이크와 붉은 와인을 마시며 목각 인형, 이상한 냄새가 나는 향초, 털실 스웨터 따위를 선물 받았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살갑게 대해 준다. 역시 알려진 것처럼 그들은 동족애가 강했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모임에선 알코올이 빠질 수 없었다. 도수가 낮은 와인이더라도 작은 몸에 어떻게 그리 많은 술이 들어가는지 무서울 정도다.

저녁 식사이나 밥을 먹는 것만이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고, 때론 식탁에 올라 춤까지 추며 시간을 즐겼다.

들어보니 이틀에 한 번이나 그들은 밤새도록 이 작고 소소한 파티를 즐긴다고 했다. 의외였다.

공장에서 잠시 일할 때 나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우딸리깔딸리들은 그러지 않았었는데.

새벽이 깊어질 때쯤 반장이 나서서 [맹겔움의 노래]라는 걸 불렀다. 중세 음유시인들의 시처럼 서사적인 노래였다. 영웅과 전사를 찬양하는 노래, 그들에겐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시.

반장은 우딸리깔딸리 중 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자긍심이 높은 자였다. 난 이 작은 카우토소의 투우사들을 향해 대단하다고 박수를 쳐 줬는데 반장은 으하하 웃으며 즐거운 듯 소리쳤다.

“자네도 알고 있다시피 우린 강한 전사들이지! 맹겔움이 고약한 거인의 목을 벤 것처럼 우린 용맹하고, 거인을 따르던 천 마리의 사자를 용서했듯 관용이 넘치지. 으하하.”

외견상 작고 귀여운 난쟁이가 용맹과 관용을 언급하며 껄껄 웃는다. 하지만 왠지 어색하진 않았다. 아마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자신들이 용맹한 전사라는 걸.

“우린 전사들이야. 하지만 인간들은 그걸 모르지. 녀석들이 특이한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 자신의 서투르고 한심한 생각으로 이끌어 낸 편견을 진짜라고 믿는 거지.”

오크는 크고 강하다. 외견만 봐도 어느 누구라도 전사라고 생각한다. 반면 우딸리깔딸리들은 작고 수동적이다. 저항을 하지 못하는 종족, 하지만 반장은 그마저도 관용이라 불렀다. 터전을 빌리는 대가로 우딸리깔딸리들은 인간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 우딸리깔딸리들은 제 긍지를 점점 잊어버리고 있어. 아아, 불쌍한 나의 동족들.”

그들은 정말 감정에 솔직했다. 반장의 말에 흥겹게 노래 부르던 우딸리깔딸리들은 침울해져 이내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우딸리깔딸리들의 슬픈 노래는 해가 뜨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난 묘한 두려움이 생겨났다.

인간은 저처럼 탄압받는 동족을 위해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을까. 일부가 아닌, ‘모두가’ 하나가 되어 공감한다. 원장님이 했던 말이 이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서움은 용맹함이나 요술 따위가 아니라, 저 솔직함이라는 걸.

*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우딸리깔딸리들과 목장에서 같이 작업하며 동족애를 넘어서 친밀감을 느낄 정도로 가까워졌다. 사람들이 우딸리깔딸리들을 만만하게 여긴 건 그들이 가진 순수한 친절함 때문이었다.

한 달은 친구가 되기에 적은 시간일 수도 있으나 그들은 진정 날 무리의 일원으로 생각했고, 나 또한 그들이 좋아졌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친해지는 것과 같았다.

감정에만 솔직하다. 도중에 스페인 산 페르민 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인간들은 우딸리깔딸리들에게도 붉은 손수건을 목에 둘러 주며 상당히 우호적으로 대해 줬다.

축제엔 이종족들도 보였는데, 그들도 인간과 같이 어울려 축제를 지냈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축제였다.

그때 난 내가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불편한 친절은 사실 편견이 아니라 호의였다는 걸 깨달았다.

산 페르민 축제에서 우딸리깔딸리들은 육류 공급과 투우 공연을 했다. 이만큼 이종족들이 지역 사회와 확실히 연결된 모습은 서울에선 보지 못했다. 난 즐겁게 축제를 즐겼고, 다른 우딸리깔딸리들도 즐거워했다.

며칠 뒤, 축제가 끝나고 뒷정리를 하던 중에 반장에게 물어봤다. 원장님 조언대로 솔직하게,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끔찍한 녀석들이야. 난 그들이 피부색에 따라 다르게 불린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정말 놀랐어. 인간만큼 나누는 걸 좋아하는 종족은 없지. 항상 자신은 어느 편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더군. 그리고 제 편이 아닌 것에겐 믿을 수 없이 잔인해져.”

그의 입에서 부정적인 말들만이 쏟아져 나왔다. 우호적인 우딸리깔딸리들이 이렇게 생각하는데 탄압받는 자들은 오죽할까. 동족의 목소리에 반대를 하라고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막막해졌다. 그러나 내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그가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야. 그들 중 일부는 충분히 따듯하기도 해. 카우토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고 있나?”

우딸리깔딸리들이 스페인 목장에 정착하게 된 이유. 반장은 20년 전, 첫 대전이가 일어났을 때 겪었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지구로 전이당한 우딸리깔딸리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혼란만이 있을 뿐이었단다. 아무리 용감한 전사라도 망망대해에 나침반도 없이 떨어졌으니 두려움에 떨기만 했다고 했다.

작은 난쟁이들은 숨어야 했다. 나도 경험했었지. 그 당시의 혼란은 이종족에게나 인간에게나 공포스러웠다.

우딸리깔딸리들은 갈 곳이 없었다. 전이의 충격이 다소 완화되고 나서도 작은 난쟁이들은 어딜 가나 천대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천 명이 넘게 모였으나 그땐 날 포함해서 스무 명에 지나지 않았지. 하비에르 부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확실히 죽고 말았을 거야.”

아무것도 모르던 우딸리깔딸리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어떤 작은 목장의 노부부는 우연히 자기 밭을 서리하던 굶주린 우딸리깔딸리에게 선의를 베풀었고, 그로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다.

우딸리깔딸리들은 노부부로부터 지구의 사회에 대해서 배웠고, 노부부는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갈 곳 잃은 우딸리깔딸리들이 어느 노부부의 작은 목장에 모여들었고, 덩달아 목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도시의 우딸리깔딸리들처럼 그들은 강제로 노역한 게 아니다.

그저 빵 한 조각의 은혜를 갚기 위해 나서서 일을 했다.

노부부가 죽고 나서부턴 우딸리깔딸리들이 카우토소를 운영했다. 그들은 차별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깨우치고 있었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한 것도 자신들의 쉼터인 카우토소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날 가리키며 지금도 갈 곳 잃은 우딸리깔딸리들을 카우토소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20년 동안 사람들이 점차 바뀌어 가는 모습을 봤다고, 반장은 인간들도 결국 우리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선 우린 그들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졌어. 참…….”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했는데 반장이 먼저 언급했다.

“여왕님도 그걸 알아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여왕. 역시 카우토소의 우딸리깔딸리들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을 잘 알았다. 적응하여 인간과의 화합하며 지낸다. 물론 그들의 사례는 운이 따라 줬다. 다양한 요소가 작용하여 인간과 다툼 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이 또한 적응이다.

“동감합니다.”

난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당신들의 대표자가 되어 여왕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반장은 내 발언을 무시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의 목소리가 여왕에게 전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우딸리깔딸리들은 본능적으로 여왕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자격을 갖추지 않은 자라면 여왕께서 상대해 주지 않으리라고 단언하는 반장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자격이라면 갖추고 있습니다.”

난 맹겔움의 시를 읊었다. 영웅의 서사시, 여왕을 호위하는 우딸리깔딸리의 대전사. 시에서 가리키는 대전사는 하나의 자격. 여왕에게 인정받는 기사.

“난 최고의 전사니까요.”

‘인간’들과 달리 그들은 편견을 갖지 않는다. 다만 내 말은 섣불리 믿기 힘든 일이라 반장도 난색을 표했다.

“증명해 보이죠.”

다행히 그들에게 내가 최고의 전사임을 증명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었다. 마침 축제가 끝나 녀석들도 잔뜩 흥분해 있다.

“다른 반장님들도 다 불러와 주세요.”

증명은 나만의 방식대로.

하지만 그들도 인정할 만큼 놀랍게.

*

“맹겔움이 천 마리의 사자를 굴복시켰을 땐 태양이 서른 번이나 뜨고 진 후였다고 하지. 하지만 이건…….”

난 반장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의 표정은 놀라움을 넘은 경의에 찬 표정. 그 외에 날 지켜보는 다른 목장의 반장들과 우딸리깔딸리들도 마찬가지.

“세 시간이나 걸렸네.”

난 쓰러진 이계 품종 소 ‘카우토소’를 둘러보며 말했다. 황소보다 두 배는 크고 사납고 난폭한 놈들. 그러나 지금은 지친 채 쓰러져 평원의 풀밭에 널브러져 있다. 무려 천 마리의 카우토소가.

애초에 단숨에 끝낼 생각이었으나 천 마리를 한꺼번에 푸는 건 위험하다는 반장들의 의견으로 이렇게 오래 걸렸다. 열 마리, 수십 마리, 백 마리를 넘어 인정을 받고 마침내 천 마리까지 도달했다.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처음부터 놈들이 두려워하는 기세를 내뿜으면 몇 초 만에 끝날 일이긴 하나 ‘임펙트’를 주기 위해 어려운 방법을 택했다.

직접 천 마리의 소 떼를 몰며 그들을 지치게 하는 것.

온갖 기상천외한 마물들을 관리하는 내게도 난이도 중급의 일이었으나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보는 이들은 어떨까. 우딸리깔딸리들만 아니라 뛰어난 헌터들이라도 기겁할 것이다. 천 마리의 날뛰는 소를 상대로 모조리 피하고 체력이 닳을 때까지 모는 건 웬만한 육체 능력으론 못하는 일이다.

난 이 정도면 우딸리깔딸리 대전사의 자격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아 잠시 기다려야 했다. 우딸리깔딸리들이 모여 회의를 나눴고, 한참 후에야 마침내 반장이 우딸리깔딸리들을 대표하여 내게 말했다.

“자네의 힘이면 여왕님도 인정하시겠지. 하지만 대다수의 우딸리깔딸리들은 심판을 원해. 우리들도 동족의 고통은 충분히 이해하지. 그런데 반대한다는 건 우리더러 대다수의 친구를 등지라는 것과 다름없었네.”

반장이 말했다. 난 더 이상 그가 작은 난쟁이로 보이지 않았다. 차별 속에서 멋진 둥지를 일궈 낸, 굳은 신념을 가진 전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잘 알고 있어. 여왕님의 심판은 인간들의 편견과 차별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는 걸. 우리가 그랬듯 나의 친구들도 인간들을 믿어 주길 원해.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그럴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말아. 우리 카우토소의 전사들은 옳다고 생각한 신념을 따르기로 했네.”

그들은 여왕이 강림할 때 같이 목소리를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내가 할 일은 갈등하는 그들의 마음을 살짝 기울게 해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하건데 계기가 부족했을 뿐이다. 어차피 그들은 여왕에게 화평의 목소리를 내주지 않았을까?

‘이제 남은 세력은 둘.’

대다수에 비해 절대적인 소수지만 인간에게 우호적인 자들의 목소리가 합쳐지면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된다. 원장님을 믿는다. 내가 하는 일들이 계기로 되었으면.

그 후, 난 솔직하게 말했다.

이제 다른 우딸리깔딸리들을 만나 목소리를 모으겠다고 말이다. 그들은 흔쾌히 내 여정을 축복해 줬다. 또한 목장에서 같이 일할 때 유난히 소고기를 많이 먹는 날 기억하며 고기가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먹게 해 주겠다고 했다.

“좋겠다?”

[응, 행복해!]

소고기는 내가 먹은 게 아니라 다 내 안에 깃든 먹보 녀석이 먹어치운 것이다. 단비는 팔짝 뛰며 기뻐했다. 난 이 일이 끝나면 ‘인간’으로 이 목장에 다시 방문하리라 생각했다. 인간도, 우딸리깔딸리도 소고기가 맛있는 건 똑같은데 말이야.

*

다음에 만날 우딸리깔딸리들은 가장 특이한 세력이었다. 살다 살다 이런 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난 다시 한번 녀석들에 대하여 복습했다.

“이건 진짜 감도 안 잡히네.”

설마하니 아이돌이라니. 아이돌이라니. 돌아버리겠네. 아이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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