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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94화 (194/258)

# 194화 아, 여왕이시여 (7)

모든 우딸리깔딸리들이 엎드려 빌었다. 여왕을 배신한 배움교의 신도들마저도.

[우리들의 어머니시여, 베풂의 뿌리의 어머니시여. 작은 아이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간청은 노래가 되어 사막에 울려 퍼졌다. 구슬프고 애타는 목소리는 노여워하는 여왕을 위한 사죄의 노래였다. 그러나 검은 하늘은 가시지 않았다. 여왕과 연결된 수만 개의 넝쿨은 우딸리깔딸리들의 생명을 빨아들였다.

[배신했다. 배신했다. 배신했다.]

난 말라 비틀어 죽어 가는 우딸리깔딸리들의 애처로운 비명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분노를 토해 내는 여왕의 끔찍한 목소리에 머리가 터질 듯 아파 왔다. 아비규환 속에 온전한 정신을 가진 자는 나밖에 없었다.

난 그들의 머리 위에 자라난 수만 개의 넝쿨이 여왕을 중심으로 마치 몸속의 혈관처럼 맥동하며 꿈틀거리는 걸 바라봤다. 여왕은 심장이었다.

넝쿨은 혈관이다. 다른 건 피 대신 생명력을 빨아들인다.

우딸리깔딸리들만 심장에 연결된 건 아니었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 능력자, 강함의 순위에 상관없이 날 제외하고 모든 존재들은 머리 위에 돋아난 넝쿨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들은 양분에 지나지 않았다.

“원장님!”

나만 왜 멀쩡한 진 알 수 없었다. 오리하르콘 브로치, 원장님의 마법, 마물의 마력의 예상치 못한 방어 기재. 짐작되는 건 있으나 그건 중요치 않았다. 이대로 두어선 여왕은 모든 생명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킬 것이다.

난 여왕과 가까이 있던, 그래서 여파를 심하게 받은 카우토소의 우딸리깔딸리들에게 뛰어갔다. 그들은 이미 생자와 망자의 경계에 들어섰다. 희미해지는 마나의 기운은 죽음을 앞둔 환자의 기운과 같았다. 난 원장님에게 도움을 구했다. 원장님은 일단 생명을 빨아들이는 줄기를 모두 잘라야 한다고 했다.

난 즉시 포근이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홍아, 붉은 송곳니에 타오르는 화염이 솟구친다. 줄기라면 태워 버리면 되겠지.

“홍식!”

뻗어 나가는 강력한 화염이 수백 개의 줄기 다발을 휩쓸었다. 하지만 바위마저 녹이는 불꽃에도 줄기는 잘리지 않았다. 그슬린 흔적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젠장.”

더욱 강력한 불꽃을 이끌어 냈으나 포근이의 마력만으론 줄기를 잘라 낼 수 없었다. 평범한 식물의 줄기가 아님은 알고 있었으나 상정 외의 질김이었다.

결국 단지 줄기를 자를 뿐인데 난 내게 깃든 마력의 많은 부분을 사용해야 했다. 간신히 수백 개의 넝쿨을 잘랐다. 카우토소의 우딸리깔딸리들은 줄기가 잘려지자 곧바로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잘려진 줄기는 순식간에 메말라 먼지로 흩어졌다. 그들을 구해 낸 난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하아.”

방금 내가 한 일이 덧없게 느껴졌다. 수만 개의 넝쿨은 여전히 무자비하게 생명을 빨아들이고 있다. 젠장, 티도 나지 않잖아.

넝쿨이 모여 숲을 이뤘다. 숲은 분노한 여왕을 위해서 움직인다. 헤아릴 수 없는 분노는 사막에 모든 생명을 종식시키고 나서야 풀리겠지. 신의 힘 앞에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우딸리깔딸리도, 인간도, 원탁의 기사들처럼 강한 능력자도 마찬가지다.

“원장님.”

죽음이 만연한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난 작게 속삭였다.

“구해 주세요.”

이 빌어먹을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있었다.

[태초의 맹약으로 용은 신의 일에 개입할 수 없어요.]

몇 년의 세월은 용을 재단하기엔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 내 생각이 우둔하고 미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그녀를 믿었다. 그동안 내게 보여 줬던 그녀의 선택들을 믿었다.

“원장님!”

[큰소리를 낸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요. 다정 씨는 도망이나 쳐요. 이 현상은 일시적인 분노의 표출이니까 끝나면 여왕은 사념으로…….]

“끝나면 다 죽잖아요.”

느껴진다.

생명이 끊어지는 소리가.

많은 우딸리깔딸리들이 죽었다.

약한 인간들은 이미 먼지로 사했다. 힘을 가진 자들이 버티고 있으나 시간문제였다. 난 모르는 이들의 생명을 위해 발 벗고 나설 만큼 착한 위인이 아니다. 그나마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겼으니 도와줄 뿐이다. 하지만 이건 달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어 가는 건 너무 비참하잖아.

원장님을 믿었다.

“구해 주세요.”

어쩌면, 아니 확실히 이기적인 부탁이다. 원장님이 들어주기 싫어서 거절하는 건 아니다. 이대로 원장님이 내 요청을 거부하더라도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장님이 그림의 전체를 본다면 난 앞에 있는 그림의 색만을 볼 뿐이니까.

“제발.”

생떼는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송신기 너머로 아무런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화가 난 걸까? 이해해. 원장님은 수만 명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판단했다.

“마지막 발악으로.”

난 홍아를 쥔 채 여왕을 바라봤다.

혈관을 자를 수 없다면 심장을 터트리면 되겠지.

[칫.]

힘을 끌어올리던 그때였다.

송신기 너머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갑자기 주변의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분노하던 여왕이 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난 공간이 분리되고 재정립되는 주위를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물원에서 일하는 내겐 이쯤이야 익숙했다. 천지가 뒤바뀌는 광경에도 난 태연히 선 채 웃기만 했다.

“역시 쩔어.”

무너진 공간이 새로 만들어졌을 땐 사막에 아무도 없이 여왕과 나만 남게 되었다. 수만 개의 줄기에 연결된 채 생명을 빨리던 우딸리깔딸리들과 인간들이 사라졌다.

[공간 분리 결계를 쳤어요. 몇 분후면 다시 돌아올 테니 그 전에 일을 끝내요.]

난 원장에몽, 아니 원장크스가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진 송신기 너머 원장님의 목소리에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목소리에 높낮이가 없어. 화가 난 게 분명해.

[이제 내 잘난 가디언이 해결할 차례예요.]

“제가 어떻게…….”

[다정 씨가 원하는 대로 해 줬으니까 책임은 져야죠. 여왕을 저대로 두어선 로드에게 들키고 말 테니 분리 결계가 사라지기 전에 없애야 해요.]

“신을 제가 어떻게…….”

[계속 같은 말 되풀이하지 말아 줄래요?]

원장님이 화났다.

[여왕은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상태예요. 여왕은 우딸리깔딸리들의 기도와 의지로 힘을 받는데, 지금은 배신당했으니 본래의 힘을 내지 못하고 있어요.]

“저게 본 힘이 아니라고요?”

원장님이 말하길, 저건 신도 뭣도 아니란다. 애초에 의지를 대변하는 심판의 신이 되었다면 지금처럼 미적거릴 이유 없이 몇 초 만에 사막 위의 인간들은 먼지가 되었을 거란다.

원장님은 나보고 다정 씨라면 가능하다면서 겨우 ‘몇 분’의 시간 안에 여왕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난 이게 원장님의 최선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제발 제발 거리며 부탁한다고 해서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으흐흑, 으흐흑.

난 구슬피 우는 여왕을 바라봤다.

가시넝쿨에 찢겨진 육체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온다. 젠장, 기이한 느낌이다.

우딸리깔딸리의 여왕은 마물이 아니라 속마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왕이 느끼는 감정이, 끝없는 절망과 분노. 그리고 그 두 가지 감정을 압도하는 슬픔이 절실히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여왕의 비참함도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겠지.

자식에게 배신당한 어머니가 느끼는 상실감을 어찌 이해할까.

*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힘을 잃었어도 상대는 신.

난 전력을 쏟아 냈다.

필요한 건 하나였다. 질긴 넝쿨에 감싸진 여왕을 죽이기 위해, 내가 가진 어떤 힘보다도 날카로운 검이 필요했다.

뚜렷한 목적 덕에 낭비되는 힘은 없었다. 전력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음을 알기에 숨기지도 않았다.

이 힘을 처음 발현시킨 건 요계에서 월하궁전, 구미호에게 힘을 인정받을 때였다. 내 안의 마력이 늘어나고 마물의 힘을 보다 깊게 받아들이게 될수록 난 한 가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그건 내가 처음부터 사용했기에 잘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개화되면서 알아차린 이질감이었다. 야옹이, 이 녀석의 힘, 정말 이게 끝인가?

야옹이의 힘은 어쩌면 신수의 힘보다 더 알 수 없었던 힘이다. 내가 형의검으로 녀석의 힘을 표방했을 땐 단지 기척을 숨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진정한 힘은 다른 것에 있었다.

무림에서 처음 녀석이 내게 힘을 빌려줬을 때, 바스테 병원에서 주술사와 싸웠을 때. 그때 느꼈던 불가사의한 힘. 그러니 그 정도에 불과하지 않는다는 건 당연한 것이다.

난 한 가지 생각을 했다.

녀석이 힘을 빌려주기 싫다면,

강제로 뺏어 오면 되지 않을까.

이 검은 형의검 중에서도 가장 특이했다. 단지 마물의 힘을 빌리기 위해 다른 마물의 힘을 끌어올려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럴 가치는 있었다.

미숙하던 실력으로 펼친 힘이 구미호의 월하궁전을 박살 냈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많은 힘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심지어 이마저도 녀석의 모든 힘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새까만 검신의 흑도.

단지 검을 쥐었을 뿐인데 주변이 뒤틀리고 있다. 이 검은 잡아먹는 검이다. 물질적인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마저도. 녀석은 자그마한 검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어떤 마물보다 포악한 짐승이다.

그래서 이 검을 단순하게 불렀다.

“포식捕食.”

냐앙!

어느새 내 그림자에 나타난 야옹이가 불만 섞인 울음소리를 길게 낸다.

“후우.”

난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고, 그리하여 검은 하늘마저 내 검에 삼켜졌다.

*

여왕을 내려다봤다.

내 검은 여왕의 심장에 박혀 있다.

상처는 마치 짐승의 이빨에 포악하게 뜯겨진 듯 헤진 채 붉은 피로 물들어 있다. 여왕의 분노와 상실감은 죽음으로 잊혀졌다. 강대한 존재이던 여왕은 바람 앞 촛불처럼 꺼지기 직전이었다.

[어째서 우는 것이냐.]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던 여왕은 문득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며 말했다. 난 입술을 깨물었다.

“불쌍하잖아.”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렀다.

이상했다. 난 우딸리깔딸리도 아닌데, 여왕을 죽인 건 나인데 왜.

검을 차마 뽑지 못했다.

앞이 눈물 때문인지 일렁거렸다.

“으흐흑, 젠장.”

난 난쟁이 울보가 아니다. 폴리모프는 진작 풀렸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감정에 솔직하던 녀석들처럼 달아오른 슬픔을 쉽사리 진정시킬 수 없었다. 눈을 닦아도 일렁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모르겠군.]

여왕은 내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전에, 여왕은 손을 뻗어 내 눈물을 닦아 줬다. 그마저도 지랄 맞게 슬퍼서 난 한참이나 울었다.

*

뒤처리는 원장님이 하기로 했다. 직접 집까지 데려다준 원장님은 뿌듯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무슨 잘했어 뽀삐도 아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나?

뭐, 나쁘진 않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으나 그래도 잘 막아 낸 편이네요. 이제 몇백 년 동안은 괜찮을 거예요.”

원장님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라 물어봤다.

“여왕이 또 나타날 수 있어요?”

“네.”

원장님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여왕은 사념체니까요. 죽음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죠.”

“아흐흑.”

“다정 씨?”

베개가 다 젖을 만큼 울었다.

이번엔 슬픔이 이유가 아니었다.

아흐흑, 괜한 청승이었구나. 아흐흐흑.

*

온갖 마법과 비밀스런 결계로 보호되는 그곳에,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자가 나타났다. 그녀의 손엔 말라비틀어진 넝쿨 한 줄기가 들려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보물창고에 볼품없는 넝쿨을 소중히 보관한 뒤 우주의 비밀들이 기록되어 있는 서고로 향했다.

“아무리 힘을 잃은 신이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찾은 건 태초 이래 탄생한 신들의 명부였다. 신의 탄생과 죽음은 무한하여 모든 게 기록되어 있진 않으나 가장 많은 이름이 기록된 책이다.

“신을 온전히 죽일 수 있는 자는 신밖에 없어.”

파르바티, 그녀는 제 가디언에게 거짓말을 했다. 여왕은 죽었다. 사념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영원히 소멸했다. 그건 그녀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파르바티는 명부를 뒤적거리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덮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니지.”

혹시 신의 씨앗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그와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던 파르바티는 간단히 헛된 추론이라고 결정지었다.

“이로서 확실해졌군. 그는…….”

신이 아니라면 오직 그것뿐.

몇몇 신들이 부르길 그것들을 이렇게 칭했다.

‘가롯’.

그 외에 불리는 이름들은 많으나 모두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신을 죽일 수 있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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