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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196화 (196/258)

# 196화 자이언트 (2)

무량성계는 거대하다는 것에 있어서 상상력의 극치를 나타내는 세계다. ‘잭과 콩나무’의 하늘까지 연결되는 나무도 이곳에선 비실비실 자라난 잡초에 불과했고, 하늘나라의 거인도 난쟁이에 불과한 세계다.

거수들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가 비행기만 한 모기고, 쥐의 이빨은 댐을 갉아먹을 만큼 크며, ‘짐승’들은 지구의 할리우드 재난 괴물 영화에서나 나올 법하다.

무한과 가깝게 이어진 바다엔 지구의 바다가 욕조처럼 느껴질 만큼 거대한 거북이들이 떼 지어 산다. 그리고 그 너머엔 거인, 거대한 인간들이 살고 있다.

무량성계의 그 어떤 작은 부분도 지구로 전이된다면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원장님은 ‘바벨탑’을 언급하며 인간이 얼마나 거대한 것에 두려움과 경외를 느끼는지 역설하며 제2의 대전이의 시작을 무량성계를 기준으로 두기도 했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인가.”

이런 세계도 어느덧 네 번째 방문이 되었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는커녕 올 때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생명체가 어떤 고통을 받는지 깨닫게 해 주는 곳이었다. 그저 낙엽에도 깔려 죽을 수 있는 곳, 덩치 큰 짐승보다 그 짐승의 벼룩을 더 걱정해야 하는 곳이지.

“언제와도 지랄이야.”

거인들의 대륙은 처음이긴 하지만 위험한 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난 주위를 둘러보다 한숨을 내쉬곤 턱시도를 벗어 마법 가방에 넣었다. 지금 착용한 팬티와 마찬가지로 원장님의 마도구로 내 마력과 동조하여 같이 커지는 가방이다(다른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난 잠시 숨을 고르고 목에 건 목걸이를 매만졌다. 예전에 한번 무량성계에서 수련을 하다가 거대화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고통에 둔감해진 나였어도 살면서 겪었던 가장 극심한 고통 3순위에 들어가는 지독한 격통을 느꼈다. 원장님 말로는 세포 단위로 찢어지고 재결합하니 아플 수밖에 없다나.

그 뒤로 봉인했던 기술이나 난 원장님의 힘을 믿어야 했다.

“후우.”

힘을 끌어올린다.

대륙거북의 힘이 몸 구석구석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그 순간 목걸이의 사파이어가 빛나며 푸른색 광채를 내뿜었다.

고통은 없었다. 다만 기이한 감각에 휩쓸려 눈을 질끈 감고 변화를 받아들였다. 멀미를 느끼며 변화의 여파가 잦아들길 기다렸는데, 보지 않아도 주변 모든 게 다 바뀌었음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내 난 천천히 눈을 떠 주변을 둘러봤다.

“하아.”

방금까지 눈에 담았던 거대한 세계가 이젠 어색하게 느껴진다. 기묘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비현실이 현실이 된 기분이다. 여전히 숲은 거대했지만 내가 커지는 바람에 더 이상 이상할 것 없게 된 것이다. 지구였다면 난 ‘거인’으로서의 기분을 만끽했겠지만 어차피 다 거대한 세계에선 별 감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상태에선 힘을 제한하라고 했지.”

원장님은 무슨 ‘스케일링의 법칙’인지 뭔지 이해하기 힘든 이론을 언급하며 과한 힘을 사용할 시 거대화의 힘이 풀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거인들 사이에서 몸이 작아진다면 짓밟히고 말 테니 유의하라고 했었다. 싸우러 온 건 아니니 힘을 쓸 이유가 없어 괜찮을 것이다.

무량성계에 오기 전에 안 씻고 오긴 했어도 여전히 내 몸은 너무 말끔했다. 전에 마주쳤던 야만적인 거인들은 냄새나고 더럽고 꼬질꼬질했었다.

“일단 주변을 파악해 둘까.”

난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며칠 동안 무량성계에 적응부터 하기로 했다.

*

난 죽은 거수의 가죽을 벗겨내 허리에 둘렀다.

“이 정도면 되겠지.”

며칠 동안 지내며 세수조차 안 했다. 몸에서 썩은 내가 풀풀 올라오지만 이게 거인들의 기본 패시브니 어쩔 수가 있나. 거인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냥의 흔적을 쫓아가니 머지않아 놈들이 보였다.

으하하하하-!

“크으, 고막 터지겠네.”

놈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어디서 천둥소리가 들려오기에 날씨 한번 지랄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거인의 웃음소리였고, 후두두 쏟아지던 액체들은 놈들의 땀방울이었다. 내 덩치가 놈들만큼 커졌더라도 호탕한 웃음소리는 여전히 천둥같이 우렁찼다. 난 인상을 찌푸리며 풀숲에 숨어 놈들을 관찰했다.

“오옹? 여기서 붉은 사슴을 봤었는데에?”

“누가 먼저 잡아갔나 봐. 베헤헤! 어쩔 수 없지. 축제 음식으로 밤이나 주워 가자.”

원장님이 거인들은 지금 축제 기간이라더니 녀석들은 축제에 쓸 음식을 구하고 있었다. 거인들은 핏자국을 둘러보다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껄껄 웃으며 근처에 떨어진 밤을 줍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보는 것과 옆에서 보는 건 다르네.”

난 가만히 숨어 두 얼간이들을 구경했다. 놈들에 비해 개미만 했을 때는 무섭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저 얼간이로 보였다.

밤을 맨손으로 줍다가 가시에 찔려 깜짝 놀라지 않나 짐승의 똥을 뒤적거리며 밤이라고 하지 않나, 재미난 녀석들이다. 녀석들이라면 날 축제에 초대해 주지 않을까? 난 가죽을 벗긴 사슴을 어깨에 둘러메고 일부러 크게 껄껄 웃으며 녀석들에게 모습을 보였다.

“당신들이 쫓던 게 이 사슴이로군!”

거인들에 대해선 원장님의 자료로 대강 어떤 녀석들인지 알았으나 역시 첫 만남이라서 몹시 긴장이 된다. 난 속마음을 숨기고 거인처럼 웃으며 녀석들에게 말했다.

“내가 잡았으니 이거 어쩌나!”

마물원에서 일하면서 덩달아 늘어난 것 중 하나가 연기 실력. 이종족과 하도 엮이다 보니 나름 그들의 문화를 잘 흉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난 능청 부리며 사슴고기를 놈들이 보는 앞에서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얼간이 거인은 씩씩대며 내게 큰소리를 질렀다.

“에이잉! 우리 껀데에!”

“뭐야, 너! 사냥감을 훔쳤으면 썩 꺼지지 염장을 질러! 우이씨!”

우이씨? 우이씨라고?

아무리 그래도 생각보다 더 심한데. 난 곧장 덤벼드려는 거인들을 무시한 채 내장을 손질한 고기에서 다리 한 쪽만 뜯어냈다.

“자, 줄게! 난 이거면 돼!”

그리고 나머지 고기를 두 거인에게 건넸는데 덤벼들던 녀석은 내가 내민 고기에 어리둥절하며 주먹을 내렸다.

“준다? 주는 거야?”

“우오, 고맙다. 너, 착하구나.”

난 그들의 순수함을 존경하기로 했다. 고기를 받아 든 녀석들은 너무 쉽게 날 친구로 받아들였다.

원장님에게 듣기로 거인들은 다른 종족에겐 냉혈한이지만 동족에겐 착하다고 들었다. 특히 ‘다른 세계’의 거인에 비하여 이곳 무량성계의 거인들은 덩치는 제일 크지만 성격은 가장 단순한 편이라고 한다.

먹을 걸 주면 친구, 뺏으면 적. 참 단순한 것이다.

“어라, 너.”

“이제 보니 너.”

고기를 받고 희희낙락거리던 두 얼간이들이 갑자기 정색한 채 날 쳐다봤다. 난 괜히 뜨끔해 시선을 피했다. 같은 거인이더라고 하더라도 처음 보는 외부인이니 경계하는 건 당연하다. 난 거인에게 호감을 받기 위해 ‘춤’을 출 준비를 했다. 믿기진 않지만 거인들은 춤추는 자를 정말 좋아한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지.

으허헝!

“뭐야.”

타래딱새의 기운을 끌어올리던 난 정색하던 두 얼간이 친구들이 갑자기 울기 시작하자 당황스러웠다.

“너 냄새 많이 난다.”

“못 보던 친구니 먼 곳에서 왔구나!”

두 거인은 내게 머리를 들이밀더니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내 몸에서 악취가 나긴 하지만 거인들은 당연한 거 아니었나? 아, 그러고 보니 녀석들에겐 냄새가 안 나네. 난 녀석의 말에 축제를 참여하기 위해 먼 곳에서 왔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녀석들은 내게 고생이 많았다며 몰골이 무척 더러우니 자기네 마을로 와서 깨끗하게 씻고 축제에 참가하라고 했다.

“흐음.”

날 더러운 걸인 취급하는 녀석들을 자세히 바라봤다. 참 얼굴이 중구난방 생겼으나 엄밀히 말하면 나에 비해 깨끗한 편이다. 거인이 더럽다는 건 편견이었나?

“아, 그러네.”

난 문득 거인이 느끼는 악취와 ‘사람’인 내가 느끼는 악취의 차이에 대해서 깨달았다. 차이가 심할 수밖에 없지. 젠장, 만약 내 몸에서 나는 악취를 인간이 맡았다면 기절했었을지도 모르겠네. 나름 깨끗하게 씻은 거인들의 냄새도 악취가 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어쨌든 일은 잘 풀렸다.

난 더럽다는 이유로 동정을 받으며 녀석들의 마을에 초대받았다.

“밤새도록 먹고 즐기세!”

“이번엔 내가 최고의 전사가 될 거라고. 으헤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신나게 뛰어가는 두 녀석, 그들이 유난히 얼간이스러운 걸까? 아니라면 거인들의 마을이 어떨지 상상이 가네.

*

거인의 마을은 제법 마을다운 곳이었다. 거인이 지성을 지녔긴 해도 무량성계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제대로 된 시설은 없었지만 무서운 거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방호 시설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목책과 바위로 만든 단순한 벽이었으나 무척 튼튼해 보인다. 만약 내가 인간이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벽을 보고 있었겠지. 마을 안엔 수십 명의 거인들이 보였다.

집이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인들은 거대한 나무에 홈을 파거나 땅굴을 파서 집으로 삼았다. 하지만 주조 시설도 있었고, 대장간도 보였다. 야만적이지만 나름 문화라는 게 있는 것이다.

이제 곧 축제가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지 마을은 시끌벅적했다. 거인들의 소굴이다. 난 긴장한 채 두 얼간이들의 뒤를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하지만 거인들은 외부인에 덩치만 같지 자신들과 생김새는 전혀 다른 나를 보면서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난 오히려 다른 거인들에게서도 동정을 받았다.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어떤 고생을 했으면 이 지경까지 왔냐며, 좀 씻고 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럴 줄은 몰랐는데. 상당히 수치스럽다. 젠장.

그들은 냄새나는 거인은 자기들의 마을에 들어오지 못한다며 목욕을 하고 오라고 소리쳤다. 거인들의 마을 근처엔 목욕탕도 있었는데,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폭포였다.

마찬가지로 거인의 몸으론 평범한 물줄기나 내가 인간이었다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는 것처럼 경이로웠겠지. 그곳에서 몸을 씻고 마을로 가자 두 얼간이들이 내게 사냥을 제안했다.

“우린 음식을 구했지만 넌 못 구했지. 도와줄게, 친구.”

거인들의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선 음식과 술을 직접 구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요계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지. 그땐 과자와 콜라로 충분했으나 지금은 사냥할 수밖에 없겠네. 무기가 없는 내게 두 얼간이들(마을에 와서 알았는데 녀석들은 유난히 다른 거인들에 비해서도 착한 녀석들이었다.)이 자기 무기를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난 필요가 없었다.

“오우, 몽둥이.”

메타소드.

메타몽처럼 홱홱 변하는 무기.

전설과 신화의 무기를 만들어 낸 신수가 직접 빚어낸 최고의 무기다. 가장 큰 특징은 내 마력에 반응하여 가장 최적의 무기의 형태를 갖춘다. 지금처럼 대륙거북의 힘을 극한까지 이끌어 냈다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거인의 새끼손톱보다 작은 검에서 거인이 봐도 거대한 몽둥이로 순식간에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사냥에서도 난 거인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움직였다. 먹을 걸 좋아하는 놈들이니 맛있는 걸 먹이면 순조롭게 대화들을 나눌 수 있겠지.

“미안하다.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무량성계의 괴수들은 그 수가 많고 다양해 먹성 좋은 거인들도 먹어 보지 못한 사냥감도 있었다.

겉모습이 끔찍해서, 혹은 독 때문에, 단순히 맛없을까 봐.

하지만 내 교감의 힘을 잔인하게 사용하면 그런 위장기재에 상관없이 ‘맛있는’ 녀석들을 찾아낼 수 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에 호들갑을 떨며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단계는 지났지만 역시 이건 좀 그러네.

난 주변에서 괴수들의 마음을 들어, 녀석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을 찾아냈다.

“으엑, 그걸 정말 먹는 거야?”

“맛없게 생겼다.”

두 거인이 내가 잡은 사냥감에 기겁하며 당장 버리라고 했지만 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준다며 소리쳤다. 근처 괴수 100인에게 물어봤습니다. 가장 맛있었던 먹이는?

고름이 잔뜩 담긴 여드름이 수없이 돋아난 길쭉하고 정체 모를 뱀이었습니다.

난 역겨움을 참아 내며 손질하고 구워서 두 거인에게 먹여 봤다. 난 먹지 않았다. 미쳤다고 내가 먹겠어. 맛없으면 다시 구하면 돼.

“이거면 되겠군.”

처음엔 격하게 싫어하던 거인들은 냄새를 맡더니 군침을 삼키며 이내 주워 먹었다. 어찌 된 녀석들인지 맛있으면 맛있다고 하면 될 걸 엉엉 울며 내게 넙죽 절까지 하며 고마워한다. 이 정도 맛이면 메슥거리는 손질도 감수할 만하겠지. 다른 거인들도 좋아할 거야.

“그렇게 맛있나.”

난 남은 고름뱀 구이를 내려다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내 거다!”

“이놈! 내 건데!”

얼간이 거인이 날름 집어먹었기에 먹진 못했다. 하지만 역시 이종족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음식을 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무 수액에 지렁이도 찍어 먹던 난데 이 정도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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