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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08화 (208/258)

# 208화 세계의 끝 (2)

헬하임의 어둠속에서 꿈틀거리는 불쾌한 존재, 큰 기운은 아니었으나 불길하고 악독한 느낌이라 단비가 걱정되어 난 황급히 놈의 기운을 쫓아갔다.

[으악! 짜증나!]

하지만 이미 단비는 놈과 치고 박고 싸우고 있었다. 놈은 생물이었으나 죽음의 기운을 더 많이 풍기는 존재였다.

농구공만 한 눈알에 바퀴벌레의 다리가 수십 개 달린 놈은 단비와 엉겨 붙어 몸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녀석 근처엔 제 몸통만 한 검은 구슬이 굴러다녔다. 아마 단비와 구슬을 두고 쟁탈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내가 나서야 하나.”

생각보다 위험한 것 같지는 않아 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보아하니 단비가 억지로 놈의 소중한 걸 빼앗는 것 같은데, 아무리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놈이라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얌전히 살고 있는 생물인데 그럼 도둑놈과 다를 바가 없잖아.

단비는 놈의 다리를 깨물고 비틀고 눈알을 찌르며 구슬에 대한 탐욕을 부렸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놈을 괴롭히는 깡패로 보였다.

[내 거야! 저리 꺼져!]

마치 장난감을 두고 다투는 어린애들을 보는 것 같아 입장이 참 애매했다. 그래도 저 녀석 먹이고자 이곳에 온 거니 내키진 않아도 나쁜 짓을 저질러야 하나.

한숨을 쉬며 마물의 힘을 끌어올릴 때였다.

[다정 씨는 가만히 있어요.]

원장님이 말했다.

[세계수가 직접 양분을 얻도록 놔둬요. 지금은 사소하더라도 풍파를 딛고 성장해야 언젠가 제 힘으로 과실을 맺을 테니까요.]

“성취감을 주라는 겁니까? 완전 얘 키우기네.”

원장님은 세계수가 직접 ‘양분’을 사냥하도록 놔두라고 했다. 난 녀석이 고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나무 키우기라기보다 육식 동물을 새끼 때부터 키우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정말 괜찮을까요?”

단비에 맞서는 놈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헬하임의 생물은 뾰족한 다리로 단비를 내려찍었는데, 평소라면 물체를 통과하는 위수라 통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단비가 난폭하게 공격을 하는 터라 모습이 실체가 된 상태였다. 단비는 놈의 가시에 찔려 가죽이 찢어지기도 했다.

[괜찮아요. 그는 ‘최초’의 세계수, 애초에 아홉 세계의 ‘아래 존재’들은 그를 해치지 못하니까요.]

원장님은 걱정하지 마라 했지만 아슬아슬한 장면도 생겨나기 시작해서 마음 졸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윽. 그렇게 붙지 말고 아웃복서 스타일로 공격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난 단비를 응원하며 지켜봤다. 눈깔 녀석의 다리에 단비가 상처 입을 때마다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으아!

단비는 결국 놈의 저항에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난 안타까움에 조언을 했지만 알아들을 리가 없다. 젠장, 이번 한 번만 도와줘?

[…단비 거어!]

그때였다.

가시에 찔려 잠시 멈칫거리던 단비, 우렁찬 고함을 내지른다.

[단비 거라고! 단비 거!]

그러곤 갑자기 지랄 발광을 하더니, 냅다 달려가 상처 입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깔 괴물의 갑각 다리를 마구잡이로 깨물고 쥐어뜯었다. 마침내 다리 한 개가 뽑혀 나가자 놈은 구슬픈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고, 검은 구슬을 독차지하게 된 단비는 챔피언 벨트를 든 록키처럼 당당한 얼굴로 구슬을 들어 올렸다.

[내 거!]

짝짝!

난 단비에게 박수를 쳐 줬다.

첫 만남부터 식탐이 지랄 같더니, 깡다구가 대단한 녀석이다. 비록 빼앗았다고 하더라도 녀석은 챔피언 벨트를 들 자격이 있어.

“잘했어.”

단비는 기쁘게 구슬을 삼키려다가 날 보더니 갑자기 얼굴을 구기며 제 뒤로 구슬을 숨겼다.

[으릉! 또 뺏어 먹으려고.]

솔직히 군침이 돌긴 하지만 녀석이 힘들게 얻은 걸 날름 훔쳐 먹을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다. 난 어깨를 으쓱하며 녀석의 행복한 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켜 줄까 하다가 날 노려보는 녀석이 귀여워서 장난을 쳤다.

“그럴까?”

그러자 단비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더니 정색하며 평소와 달리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을 꺼냈다.

[다정 님, 저도 작은 조각이야 당신과 나눠도 상관이 없지만, 이 전리품은 제 투쟁의 결과물. 부디 간청하옵건대 다른 조각을 구해다 드릴 터이니 이번 한 번은 넘어가 주시지요. 그러나 내 전리품을 당신이 뺏어 먹는다면 서로 간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하여 주십시오.]

단비가 궁서체로 타이르듯 말하니 장난을 친 내가 도로 민망해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러고 보니 저 말투, 내가 요즘 빠져 있는 드라마가 사극이었지.

[충만해!]

조각을 섭취한 단비는 이제 헬하임의 양분에 만족했는지 다른 세계의 조각을 원했다. 세계의 끝은 아홉 세계의 찌꺼기들이 모인 곳이랬으니 이제 남은 건 네 개인가?

*

검은 구멍에서 나온 난 단비를 데리고 남은 세계의 조각을 찾아 돌아다녔다. 남은 세계는 다른 세계와 달리 무척이나 희귀하여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간신히 조각 한 개를 건질 수 있었다.

“이게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의 조각.”

[잉잉! 단비한테 줘!]

난 우연히 얻어 낸 아스가르드의 조각을 들고 유심히 바라봤다. 보채는 단비를 진정시키며 조각의 기운을 느끼려고 했으나 다른 세계의 조각들과는 달리 어떠한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조각을 얻은 것도 우연 중에 우연, 길을 걷다가 단비와 내 앞에 ‘낙석’한 걸 주운 것이다. 원장님은 아홉 세계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줬는데, 아스가르드는 아홉 세계 중 가장 위대한 세계 또는 신들의 세계라 불리는 곳이었다.

“내가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건 부족해서일까.”

원장님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이게 아스가르드의 조각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무지하다는 것. 나부의 온전한 심장을 마주했을 때도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감히 내가 느낄 수 없는 창대한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스가르드의 조각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건, 그 세계에 사는 존재들이 감히 내가 쳐다볼 수도 없을, 그야말로 ‘신’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옜다.”

괜히 짜증이 나 단비에게 조각을 던져 주고 잠시 잠이나 자기로 했다. 사람이 잠을 잘 만한 환경은 아니나 난 괜찮다. 용암이 따뜻한 이불인걸.

*

아스가르드의 조각은 한 조각만으로도 단비의 배를 만족시켰다. 그리고 그 조각이 무슨 작용을 했는지는 몰라도 단비는 다른 세계의 힘을 찾는 ‘내비게이션’ 기능을 탑재하게 되었다. 원장님은 단비가 온전한 세계수로 성장하는 증거라며 기뻐했지만 알게 뭐야.

세계의 조각이 있는 곳마다 그 세계에 사는 생물이 힘을 빨아먹고 있었으나 단비는 눈깔 괴물과 싸울 때와 마찬가지로 녀석들을 두들겨 패고 조각을 쟁취했다.

세계의 끝은 ‘찌꺼기’가 모이는 곳이라 강대한 힘을 가진 생물은 없어 난 박수를 치며 구경만 할 수 있었다.

[후아, 이제 됐어. 배 안 고파.]

이곳에 온 지 나흘 만에 단비의 조각 먹방은 끝이 났다. 만족해하는 단비를 보니 내가 다 배부르다.

“괜찮겠어? 나중에 또 올까?”

단비는 제 배를 손바닥으로 퉁퉁 두들기더니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뿌리는 튼튼해졌으니 이제 자라기만 하면 돼!]

그렇다니 다행이네.

난 곧바로 원장님에게 공간 이동 포탈을 부탁했다. 세계의 끝, 이곳은 너무 정신 사나운 곳이라 오래 있을 곳이 되지 못해 한시라도 빨리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휘이이!

바람이 몰려든다.

곧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더니.

구겨지는 종이처럼 눈에 띄게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포탈이 세워지는 전조 현상이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드래곤이란 생물은 참 대단하다. 차원을 넘나드는 통로를 이처럼 쉽게 만들어 내다니.

난 멀뚱히 서서 포탈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렸다. 보통 원장님이 계시면 몇 분 만에 뚝딱 만들지만, 차원 너머에서 작업하는 경우엔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두두두둑!

“언제 봐도 신기해.”

난 천천히 ‘뭉치고 찌그러지는’ 공간들을 쳐다봤다. 공간에 균열이 가는 현상이었는데 소리가 마치 세찬 빗줄기가 기와지붕을 두들기는 소리 같았다. 비 오는 걸 지켜보는 것처럼 멍하니 관상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풍경이다.

“오랜만에 녀석들 얼굴이나 봐야지.”

극한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녀석들이 생각났다. 지구로 돌아가면 오랜만에 포근이를 만나러 갈까. 그래, 차라리 덕후 녀석도 보고 정씨 집안 가족들 모임이나 열어 보자.

사각사각사각-

그러고 보니 야옹이 녀석, 요즘따라 안 보이네. 뭐, 어차피 내 뒤에 항상 있겠지. 안 그래, 야옹아?

냐아앙-!

난 솔직히 엄청 놀라 심장이 아플 정도로 두근거렸으나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그림자에 앉아 있는 검은 고양이. 녀석은 처음부터 나와 있었던 것처럼 능청스럽게 앉아 긴 울음소리를 냈다. 고양이는 요물이라지만 녀석은 뭐랄까, 마치 집요한 스토커처럼…….

사각사각사각-

잠깐.

아까부터 웬 벌레 갉아 먹는 소리야. 난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리 둘러봐도 생명체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빗소리에서 벌레나 쥐가 나무를 갉아 먹는 소리로 바뀌었는데,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냥.

그때였다.

야옹이가 별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맑고 빛나는 눈으로 날 바라보다, 이내 ‘사라졌고’.

[안 돼, 설마!]

통신기 너머로 다급한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래곤’이라 웬만한 일엔 당황하지 않는 원장님이 호들갑이라고 느껴질 만큼 긴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난 그 자체만으로 이곳에 온 이후 가장 불안해졌다.

[혹시 다정 씨 몸에 ‘기생’ 마물이 붙었나요?]

“아뇨. 없어요.”

교감의 힘으로 기생 마물은 바로 눈치챈다.

[세계수에도?]

“네.”

마찬가지다. 내가 모를 리 없다.

[젠장, 이럴 리가 없는데.]

원장님이 쓰지 않던 욕까지 쓴다.

그때, 벌레가 갉아 먹는 소리가 멈췄다. 동시에 무너지던 공간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원장님이 다급히 말했다.

[곧 공간이 단절돼. 우선 그곳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쳐 쓰레기장의 코볼트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용의 보물을 줄 테니 도와 달라고!]

“코볼트?”

[세계의 끝의 쓰레기장을… 코볼트가…….]

“원장님?”

통신기에 잡음이 섞이기 시작한다. 젠장.

[차원벌레를 조심…….]

원장님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통신기가 먹통이 되었다.

[…미안해요.]

연락이 끊긴 순간 내 앞에 이상한 놈들이 나타났다.

마물이 아니야.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저 생김새는 익숙하다.

“벌레?”

내 머리통만 한 크기의 풍뎅이처럼 생긴 벌레, 원장님이 걱정했던 게 겨우 이 벌레 때문이라면 다행일 텐데. 어디선가 나타난 벌레 녀석은 주변을 발발 돌아다니다가 우두커니 멈췄다. 시선을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날 쳐다보는 것 같다.

사각사각사각.

마물의 힘을 끌어올리며 경계할 때였다. 난 놈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번엔 똑똑히 보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놈들이 기어 나온다.

한 마리, 열 마리, 백 마리 혹은 천 마리, 만 마리. 알에서 뛰쳐나오는 새끼 거미들처럼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벌레가 가득해지더니, 이내 내 시야를 가득 메울 만큼 바글바글해졌다.

*

파르바티의 기록.*MDH 305555

우주의 탄생 이후 최초로 신이 아닌 자가 공간에 대해 깨우치자 인간들은 그를 대마법사라 칭했다. 그러나 미드가르드의 대마법사의 끝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역사처럼 그는 필멸자의 운명을 벗어나 아스가르드의 신이 된 게 아니다.

그의 최후는 끔찍해 알리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난 외로운 자를 위한 묘비를 세우며 이 종이에 그것을 기록한다.

차원벌레는 공간을 갉아 먹음을 업으로 삼는 원시적인 존재로서 무너진 공간에 최후를 선사하는 시체의 구더기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것들에게 갉아 먹힌 공간은 더 이상 정립될 수 없는 혼돈으로 돌아가 공간의 무(無)를 발생시킨다. 또한 그것들은 무너진 공간을 주식으로 하나 인간의 순수하고 강력한 기 또한 좋아하여 대마법사의 최후는 공간 마법으로 인해 흘러 들어온 차원벌레에 먹힘으로서 끝이 났다.

대처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놈들은 죽일 수 없으므로 특별한 힘이 깃든 물건들로 가둔다. 혹은 이지를 벗어난 종류의 힘으로 놈들을 현계에서 몰아낸다. 가장 쉬운 방법은 무너진 공간을 온전하게 재정립시키는 것이다.

차원벌레들은 무너진 공간이 발생하지 않으면 현계로 나올 수가 없으나 대마법사의 서투른 마법으로 발생한 사고들을 미루어 볼 때 깊게 유의해야 할 존재들임은 확실하다.

따라서 공간의 ‘근본’으로서 내겐 해당 사항이 없으나 ‘외부적인 개입’으로 인해 변화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항상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할 땐 아래의 수칙들을 적용시킨다.

1. 공간의 힘과 관계된 마물이 주변에 있다면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

2. 강대한 힘을 가진 존재라면…….

3. 이동 용량을 계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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