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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10화 (210/258)

# 210화 앵무새 (1)

유일한 상사가 자리를 비운다는 게 날 기쁘게 했지만 이내 마물원의 관리 열쇠를 준 이유를 생각해 보곤 시무룩해졌다. 휴가가 아니라 업무를 맡기고 가니 어쩌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거잖아.

“왜요?”

내가 되묻자 원장님이 세계의 끝에서 있었던 일들을 거론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줬다. 원장님은 공간 마법의 틈으로 차원 벌레가 기어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확실치는 않으나 아마 ‘로드’의 개입이 있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또한 로드의 개입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세계의 끝에 나타나 공간을 정립시키는 바람에 로드가 확실히 눈치챘을 거라며, 흔적을 지우기 위해 오랫동안 모습을 감춰야 하니 지구에 있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알았어요.”

“자, 이건 다정 씨 할 일 목록.”

그렇다고 하니 뭐 그런 거지. 알았다고 대답하자 원장님은 자기가 없는 동안 일을 대신해서 처리하라며 자료가 담긴 USB를 건넸다. 결국 할 일은 늘어나고, 상사도 없으니 내게도 나쁜 일이었다.

원장님은 이번엔 완전히 연락 두절되어 일을 하지 못하니 중요한 일들을 전적으로 내게 맡긴다며 격려 아닌 격려를 해 줬다. 난 서서히 몸을 무겁게 만드는 책임감과 하기 싫은 숙제를 앞둔 학생처럼 막강한 귀찮음으로 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젠장, 주도적인 일처리는 질색인데.

“그리고 다정 씨.”

멀뚱멀뚱 짐을 챙기는(주로 커피 원두) 원장님을 쳐다보며 앞으로의 일을 걱정할 때였다. 문득 원장님이 내게 말했다.

“그 힘, 쓰지 않는 게 좋아요. 아니, 확실히 규명되기 전까진 쓰지 마세요.”

세계의 끝에서 돌아온 뒤 원장님에게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보고했었을 때였다. 난 검은 야수가 되었을 때 느꼈던 기분들을 원장님에게 말하며 조언을 구했는데, 그때 원장님은 심각한 얼굴로 ‘야옹이’가 어떤 마물인지 알아보고 오겠다고 했었다.

“야옹이가 어떤 마물인지 알아내셨어요?”

원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유리잔 두 개를 제외한 짐들을 모두 아공간에 넣은 원장님은 벽장 서랍에서 위스키를 꺼내어 잔에 따랐다. 그러곤 한 잔은 내게 건네며 말했다.

“그래서 더 문제예요. 규명되지 않는 힘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니까. 지구에서 떠나 있는 동안 알아볼 테니 그동안 그 힘을 이끌어 내는 건 금지예요. 어쩌면 다정 씨는… 정말 인간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어떤 존재일지도 모르니까.”

난 원장님을 따라 밝은 황색의 위스키를 마셨다. 위스키, 켈트어로 생명의 물. 내겐 쓰기만 하다.

“수고하세요, 다정 씨.”

“마물원 일들은 걱정하지 마세요.”

작별잔을 나눌 정도이니 확실히 지금까지 중 원장님의 가장 긴 출장이 될 것 같다.

*

세계의 끝엔 쓰레기장이 있다.

그리고 쓰레기장엔 코볼트들이 산다. 황금을 신으로 섬기는 코볼트들은 우주에서 가장 탐욕적인 생물이다.

그들의 사상은 황금으로 시작했으며, 신념과 이상 또한 황금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은 아홉 세계의 찌꺼기에서 값진 것들을 골라내는 재주가 있다.

그리하여 무스펠헤임의 짐승의 털들로 평소엔 제 모습을 숨기고 다닌다.

-우리가 하는 일을 들켜선 안 돼.

붉은 날개가 사라졌을 때, 짐승의 털에 숨어 있던 그들이 고개를 들었다.

-공간을 뚫어, ‘탑’의 ‘없어진 공간’까지.

그들이 움직인다. 미드가르드의 마법 전승이 깃든 돌조각을 던지자, 주변의 공간이 무너진다. 곧바로 헬하임의 향초를 피우자 공허로부터 벌레들이 꼬인다.

사각사각사각-!

무너진 공간을 파먹는 벌레들이 나타나자 코볼트들은 신을 삼켰던 짐승조차 묶을 수 있는 스바르트알파헤임의 ‘사슬 조각’을 들고 왔다. 사슬의 끝에는 바나헤임의 밧줄로 만든 망태기가 걸려 있었다.

-우리는.

코볼트들이 망태기를 휘두르자 공간을 갉아먹던 벌레들이 휩쓸려 들어간다. 작은 망태기엔 무수히 많은 벌레들이 담겼다.

-부자가 될 거야.

차원벌레가 담긴 망태기를 들고 코볼트들은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세계의 끝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

아스가르드의 무지개 조각이 아니라면 갈 수 없는 곳.

그곳은 탑의 입구.

운명마저 조율하는 곳.

코볼트들은 황금을 위해 기꺼이 문을 두들겼다.

*

원장님이 없다고 해서 내 일이 편해지는 건 아니었다. 원장님이 하던 일들을 내가 대신해서 해야 하니 도리어 일의 강도는 무자비하게 높아졌다. 난 원장님이 맡기고 간 작업 목록들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몇 년 동안 명령만 듣다가 직접 무언가를 하고자 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어디 보자, 급한 일이… 젠장.”

별 3개가 그려진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부터 확인하던 난 머리에 현기증이 핑 돌았다. 차라리 무지했으면 얼마만큼 힘들지 몰라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한번 겪어 본 적이 있었기에 상당히 성가신 일임을 알았다. 젠장, 우선 첫 번째 일은 산신령 목욕이다.

*

한 달이 지났다.

지구의 시간으로만 따진다면.

하, 젠장.

산신령 목욕부터 시작하여 정신없이 전 차원을 오가며 드래곤 스케일의 일들을 하다 보니 시공간이 비틀리기도 하여 내가 직접 체감한 세월은 6개월도 더 될 것이다.

그동안 오타방의 사제들과 전이된 솔로몬의 탑을 없애기도 하고, 강림한 반신들을 타일러 제 세계로 돌려보내고, 곽운 스승님을 만나서 무림에 새로 창궐한 사파 무리들을 조지기도 했다. 맛있는 건 먼저 먹어 버리는 내 성격상 힘든 일부터 우선 처리하려고 하여 몇 개월간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정신적으로 매우 고난스러운 일들도 있어 자주 마시지 않던 술과 커피를 이젠 하루 세 잔씩은 필수로 마셔야 버틸 만했다.

“젠장, 지쳐.”

‘아프수의 우주해적 소탕’을 마친 후 녹초가 되어 마물원으로 돌아온 난 관리실 소파에 누워 다음 할 일들을 확인했다. 아직 잔뜩 남았네.

흑.

너무 힘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이제 앞으로 원장님을 욕하지 못하겠다. 지금까지 내게 시켰던 일들은 그나마 날 배려해서 잘 조율해 준 것이었다.

“흑, 크흥.”

사람이 너무 힘들다 보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난 코를 풀고 마음은 진정시키며 다음 할 일을 확인했다.

“그래도 이번 일은 꽤 쉽네.”

다음 할 일은 다행히 비교적 쉬웠다. 비록 암흑세계에서 활동하는 거물 헌터 연합이 운영하는 마물번식소를 습격하여 이동형 골렘으로 그곳에서 불법 사육하는 마물들을 상처 하나 없이 마물원으로 이송하며, 그 과정에서 방해하는 헌터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일들 중에선 가장 쉬운 일이었다.

“하루만 쉬고…….”

마음과 몸이 너무 지쳤다.

일단 내일은 반드시 쉬어야겠다.

젠장, 그러고 보니 입사 초기에 원장님이 다른 직원도 구한다고 했는데 몇 년 동안 소식이 없잖아. 정말 내가 너무 유능해도 탈이구나.

*

이튿날.

중앙아시아 서남지대에 도착했다.

야옹이의 힘을 빌려 기척을 숨기고 오리하르콘 브로치를 착용한 난 산속에 숨겨진 비밀 번식소의 삼엄한 경계가 문제 되지 않았다. 경계 마법은 오리하르콘으로 차단하고 날카로운 기감을 지닌 헌터 보초병이라고 할지라도 내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난 유유히 번식소를 돌아다니며 놈들의 끔찍한 범죄 현장들을 목격했다.

“사람 새끼들이 아니야.”

이곳은 불법으로 운영되는 곳, 비교적 마물 사육에 자유로운 중국에서도 금지된 마물들을 키우는 곳이었다.

“젠장, 씹어 먹을 새끼들.”

난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비명과 끔찍한 냄새를 따라간 마물 번식소의 지하엔 내 예상을 뛰어넘는 악행들이 존재했다.

마물은 생물과 다르다.

인간의 지식으론 규정짓기 버거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놈들은 인간을 포기한 듯 끔찍한 방법을 동원하여 마물들을 ‘연구’했다. 바로 옆에 있어도 그들은 날 알아차리지 못했다.

난 놈들을 관찰하며 눈앞이 새하얘질 만큼 막대한 분노를 느꼈다. 바깥에 있는 마물들을 이송하기 전까지 힘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곤충 표본처럼 유리탱크에 담긴 자들. ‘바스테 병원’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연구보다 더 악독하다. 이종간의 강제 교배, 약물, 고문의 흔적.

그리고 그들의 연구 대상은 마물뿐만 아니다. 이종족 그리고 인간. 이곳은 마물 번식소가 아닌 인체 실험실이었다.

“토할 것 같군.”

난 기척을 숨기지 않았다.

바로 옆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연구복을 입은 놈들이 일제히 날 쳐다본다. 곧 사태를 파악하고 황급히 통신기를 키지만 난 가만히 놔두기만 했다.

중요 시설이니 만큼, 나름 보안이 철저했다. 순식간에 바깥의 병력들이 이곳에 집결했고, 암흑세계의 범죄 헌터들도 도착했다.

나도 잡지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몇억 대의 현상금이 걸린 흉악한 헌터들도 보인다. 등급 수치가 ‘3’ 이상이라 국가 차원의 치안 병력도 잡지 못하는 놈들. 스무 살의 나였다면 마주치자마자 오줌을 터트리며 벌벌 떨어야 마땅한 두려운 인간 말종.

놈들은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인 날 경계하며 정체를 파악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난 놈들에 대해 알 필요가 없었다.

“하아.”

한숨을 쉬어도 열기는 배출되지 않았다. 이곳엔 그들의 연구물이 되었으나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이 있었다.

만약 내가 범죄 헌터들과 평범하게 싸운다면 그들은 곧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을 테고, 주변 흔적을 지우려고 할 것이다. 위층의 마물 번식소에도 아직 기척이 느껴진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놈들과 상대하며 마물과 실험 대상이 된 가련한 사람들을 모두 지켜 낼 수는 없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말이다.

방법은 있다.

다만 이 힘은 반드시 죽는다. 조율할 수 없는 힘이다. 그래서 내가 망설여야 할까?

“정체를 말하지 않으면 네놈을 죽이겠다.”

아까부터 계속 무어라 말하며 내 신경을 건들던 헌터들이 날 죽이겠다고 말한다. 협박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냥 당연한 일, 곧 있으면 파리를 죽이듯 날 죽이려고 들겠지. 난 놈들을 무시하고 ‘마그마 크랩’의 집게발을 이식당한 피해자를 바라봤다. 유리 탱크에 갇힌 피실험자들은 모두 마물의 몸을 이식받아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 있었다.

“내가 고민한 건 두 가지야.”

“뭐?”

내 말에, 놈들 중 한 놈이 반문했다. 머리에 찬 열기가 뒤통수를 지끈거리게 한다. 지금 당장 머리 뚜껑을 열어 식히고 싶을 지경이다.

“고통스럽게 혹은 편안하게. 아무래도 전자가 낫겠지.”

빌어먹게도 난 내 힘 중에서 무엇이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지 알고 있었다. 놈의 힘을 받아들이자 내 손끝에서부터 검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먼지는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퍼져 나갔고, 두꺼운 콘크리트 벽도 막아 주지 못했다.

크으으…….

으윽…….

감염은 신음만을 남겼다.

그렇게 놈들은 질병에 감염되었고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죽어 갔다. 악독한 짓을 저지른 악인들의 최후치곤 그들의 표정은 너무 처절했다. 하지만 어떠한 동정의 마음도 들지 않아 난 담담히 몸부림치는 그들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

피실험자들과 마물들을 이동 골렘에 태웠다. 마물들은 마물원에서 재활을 하게 될 테고, 끔찍한 실험을 당한 피실험자들은 윙바레의 사타리언 부인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사타리언과 윙바레는 현대의학의 거두이니 치료 방법을 찾아낼 수 있겠지. 이곳을 모두 정리한 난 마지막으로 할 일을 했다.

“자, 그럼.”

지하, 역겨운 실험소.

그곳보다 더 깊은 곳에 숨겨진 장소가 있었다. 결계 마법과 더불어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다양한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어 마물보다 더 뛰어난 기감을 가진 내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했을 곳이다.

“뭐가 있는 거지?”

바깥의 실험실보다도 더욱 경계가 삼엄하게 지켜지던 곳이다. 은행 금고처럼 두꺼운 철근 콘크리트로 보호되고 있는 곳. 따로 문이란 게 없지만 숨겨진 벽 너머 기묘한 기운이 가득 찬 빈 공간이 있음을 확신했다.

난 아즈모타카의 괴력과 대륙 거북의 거대화를 이끌어 냈다. 거대해진 몽둥이로 벽을 수차례 내려치자 장치들은 무너지고 마법조차 갈라졌다. 이내 콘크리트가 무너지고 숨겨진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엥?”

기묘한 기운이 느껴진다더니.

“뭐야.”

허전할 만큼 텅 빈 방 안엔 한 개의 작은 새장과 새장에 갇힌 붉은 깃털의 앵무새만이 있었다. 마법으로 가려져 미처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건가.

“안녕! 안녕!”

앵무새는 날 보며 날개를 퍼덕이며 반갑다고 인사했다. 그냥 앵무새라기엔 미묘한 느낌이라 마물임은 확실한데.

[안녕! 안녕!]

아무리 ‘앵무새’ 마물이라고 하더라도 속마음을 그대로 입 바깥으로 낼 수 있는 거야? 녀석은 약간 기묘한 느낌만이 날 뿐, 이처럼 비밀스럽게 숨길 만큼 별다른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넌 누구니?”

내가 새장에 다가가자 녀석은 기뻐하며 날개를 퍼덕거리며 부리를 뻐끔거렸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난 병신! 난 병신!”

[난 병신! 난 병신!]

저런 말을 하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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