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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11화 (211/258)

# 211화 앵무새 (2)

난 녀석을 데리고 마물원으로 돌아와 더 자세히 관찰해 보기로 했다. 앵무새 형태의 마물은 나도 몇 마리 알지만 이 녀석은 정말 특이했다.

“난 병신이야! 난 병신이야!”

녀석은 말을 잘했다.

대화가 가능할 정도, 그리고 마물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건 녀석의 힘이 일반적인 마물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이다.

“그래, 병신아. 네 이름이 병신이니?”

하지만 다른 마물과 달리 속마음을 그대로 부리를 통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신기하게 다가왔다. 속마음을 듣는 것과 귀로 듣는 건 다른 영역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녀석은 내 말에 총총 새 걸음으로 뛰어와 어깨에 올라타 부리를 내 뺨에 문질렀다. 비비적거리는 녀석, 애교를 피우며 장난스럽게 부리로 내 옷깃을 살짝살짝 깨문다.

녀석은 날 좋아했다.

평소에도 마물들이 내게 호감을 갖는 편이긴 하지만 날 좋다고 달려드는 마물에게 더 관심이 가는 건 당연했다.

“응, 병신아.”

약간 헷갈리긴 했다.

행동과 마음은 날 좋아하고 있으나 주둥이, 아니 부리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 서럽게 왜 욕을 하고 그래.

“내가 병신이라고?”

“응 너도 병신, 나도 병신.”

“허허. 거참.”

난 병신 소리를 들으면서 녀석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져 갔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화가 통하는 마물은 흔치 않았다. 비단 내 교감의 힘이 아니라 녀석은 평범한 사람하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앵무새처럼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걸 넘어 진짜 대화다운 대화를 할지도 모르지.

어떤 마물인지 짐작이 가지 않기도 하고 합사할 마물 우리도 마땅치 않아 난 녀석과 더 지내보기로 했다. 집에 데려와 병신 소리를 듣던 중에 녀석이 배고파하기에 밥도 먹이고(마물답게 소고기를 좋아했다.) 새치곤 기이한 습성이 있어 따듯한 물로 목욕을 하길 원하기에 씻겨 주기도 했다.

새들 중엔 분수대에서 목욕을 하며 물 목욕을 즐기는 녀석들도 많지만, 녀석처럼 따뜻한 물에 몸 전체를 담그는 건 처음 봤다. 닭백숙도 아니고 말이야.

“따듯한 게 좋아?”

“응, 병신아.”

“병신 소리 그만하고.”

목욕 후엔 전기장판에 슬슬 기어와 자리를 잡기에 녀석이 유독 따뜻한 걸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난 포근이의 기운을 살짝 끌어 올려 녀석을 쓰다듬었는데, 녀석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당히 기분 좋아 보였지만, 그와 비례하여 욕은 더 심해졌다.

“병신! 병신! 병신!”

그 모습을 보던 난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앵무새는 주변 사람의 말을 배운다지. 녀석이 갇혀 있던 곳이 어떤 곳임을 떠올리자 이해가 간다. 아마 녀석의 주변에 있던 자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살던 못된 놈들이라서 이 녀석도 덩달아 배웠을지도 몰라.

“넌 네가 병신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틀려.”

“병신, 병신.”

“그게 무슨 뜻인 줄 아니?”

녀석은 병신이라 대답했지만, 난 그 속뜻을 알 수 있었다. 어딘가 친근한 느낌, 욕이 아니라 마치 친구를 부르려고 할 때 쓰는, 그런 정겨운 감정이 든다. 예상컨대 녀석은 입이 거친 자들이 서로를 병신이라 부르는 꼴을 보며 단어의 뜻을 잘못 습득했지 않았을까?

난 포근이의 기운을 손끝에 담아 녀석의 머리와 부리를 쓰다듬었다.

“병신은 나쁜 뜻이야. 따라 해 봐. 친구.”

“친구.”

똑똑한 녀석이다. 병신이 나쁜 말이며 친구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자, 내 손가락을 살짝 깨물며 애교를 피우면서 ‘친구, 친구’라고 소리쳤다. 좋아. 이제라도 병신이란 말을 쓰지 않도록 좋은 말만 가르치면 되겠지.

*

카르마는 ‘어찌할 수 없는 적’을 피하기 위해 세력을 분리시켜 보다 비밀스럽게 천명天命을 이어 갔다. 점조직으로 꼬리가 밟힌다면 언제라도 끊어 버릴 수 있도록.

중앙아시아 서남지대의 이름 모를 산, 무너진 폐허에 그들이 나타났다. 업業자를 새긴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다. 스스로 카르마임을 드러낸 건 그들이 분리되고 갈라진 카르마 내에서도 막중한 사명을 지닌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 중 유난히 덩치가 큰 사내가 있었다. 몸 전체를 검은 천으로 감싼 자였다.

그자는 일행과 떨어져 있었는데 주변의 풀들은 메말라 있으며, 지나가던 산새와 날벌레들이 그자를 지나치지 못하고 죽어 떨어졌다.

그자는 홀로 폐허로 들어갔다. 무너진 잔해들은 그에게 방해물이 되지 않았다. 사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부식되고 풍화되어 가루로 사라졌다. 이내 폐허의 지하에 들어갔다 나온 사내는 일행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가래가 들끓고 쇠를 긁는 탁한 소리였고 사용하는 언어는 지구엔 없는 것이었다.

“사령이 없어졌다.”

그 뜻은 곧 사형선고와 같았다.

남자와 같이 있던 자들은 대천명 중 하나의 갈래를 지키던 문지기들, 24명의 그들은 곧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썩어 문드러져 죽었다.

그 후 사내는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천을 벗었다. 천의 안감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남자가 무어라 말하며 천을 휘두르자 녹색 안개가 피어올랐다.

안개는 이내 폐허와 시체들을 자욱하게 뒤덮었으나 몇 분도 되지 않아 흩어졌다. 그러나 안개가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시체도, 잔해도, 나무와 숲도.

검은 남자도.

*

난 우선 녀석의 이름을 지어 줬다.

정다정, 거꾸로 해도 정다정.

내 간결한 이름만큼 난 이름 짓는데 깊게 생각하진 않는다. 대충 첫 인상을 보고 떠오르는 단어를 붙이는데 포근이는 포근해서 포근이었고 야옹이는 야옹이라서 야옹이었다. 그나마 덕후 녀석이 뜻이 담겨있으니 꽤 오랫동안 생각해 본 이름이다.

“네 이름은 이제 정월스미스야.”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붙였다. 왠지 월스미스가 떠올랐다. 앵무새 이름치곤 연기를 잘할 것 같은 이름이지만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휴지를 부리로 마구마구 헤집으며 불만을 표출했다.

“싫어, 병신아.”

“에헤이. 내가 가르쳐 줬잖아. 병신이 아니라 친구라고.”

“알아, 병신아.”

역시 놈은 지나치게 똑똑해.

그래도 녀석의 이름이니 마음에 드는 걸 지어 주리라 생각했다. 월스미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른 스미스가 좋을 것 같다. 샘스미스, 스미스스미스, 블랙스미스…….

난 불현듯 떠오른 좋은 이름에 씩 웃으며 말했다.

“그냥 스미스 어때? 심플한 게 멋진 거야.”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휴지 곽마저 다 뜯어 버리기 시작했다.

“스미스 싫어! 스미스 싫어!”

녀석이 이토록 외국 이름을 싫어할 줄은 몰랐다. 앵무새는 외국 새이기에 외국 이름을 지어 주려고 했는데 싫단 말이지. 토속적인 이름 중에 뭐 좋은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어제 듣고 잔 노래의 제목이 생각났다. 녀석은 수컷이니 ‘숙이’보단 ‘남이’가 좋겠지.

“정봉남. 봉남아. 어때?”

이것도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레드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내 말에 머리를 기웃기웃 거렸다.

“봉남? 봉, 봉…….”

봉봉봉 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날개를 파닥이며 제 이름을 외쳤다.

“봉남! 좋아! 친구!”

이번엔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앵무새치곤 구수한 이름이지만 나쁘진 않네. 봉남이. 어감도 좋고 부르기도 편하다. 녀석도 썩 마음에 드는지 제 이름을 외치며 방을 돌아다녔다.

*

봉남이는 ‘병신’ 외에도 상황에 맞게 쓰는 욕설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난 녀석과 지내면서 말을 가르쳤다. 욕설보다 별빛, 은하수, 솜이불, 푹신푹신같이 예쁜 말만 가르쳤다.

“대단해. 벌써 다 외운 거야?”

“응.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말을 가르칠수록 느낀 건데 녀석은 보통 천재가 아니었다. 암기력도 뛰어나고, 대화를 이어 갈 만큼 지능도 높았다.

마물원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끔찍한 실험실에서도 가장 보안이 철저하던 곳에 갇혀 있던 녀석이니 무언가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이럴 때 원장님이 있었으면 호기심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녀석에게 ‘사랑’이란 단어를 가르칠 때였다. 요 며칠 동안 지내며 정이 들었긴 했으나 실제로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왠지 찡했다.

“사랑해.”

속마음이 들리는 것과 실제로 듣는 건 달랐다. 봉남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듣다니. 잠깐, 생각해 보면 처음 아닌가?

“봉남아.”

고아에 연애 경험 없고, 친구도 없던 나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젠장, 지금까지 살면서 사랑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니. 말이 돼?

오글거리지만 어차피 내 집엔 녀석과 단둘이 있었다. 단비도 세계의 끝에서 돌아온 이후로 잠만 자고 야옹이는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다. 흠, 녀석들이 알면 질투했을지도 모르겠네.

난 봉남이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그러자 봉남이는 마치 웃는 것처럼 부리를 활짝 벌린 채 내 머리에 올라타 방방 뛰었다.

*

마물 번식소 청소 이후로 몇 주가 지났다. 아직 할 일이 태산이므로 더 이상 미뤄 둘 수가 없었다.

“일하러 갔다 올게.”

녀석을 위한 먹이를 잔뜩 냉장고에 채워 놓고 내 짐들을 챙겼다. 이제 할 일은 다른 차원까지 연결된 위험하고 난해한 일들, 마음 같아선 녀석을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위험하니 그럴 순 없었다.

“싫어! 싫어!”

하지만 봉남이는 지랄 발광하며 나랑 같이 있길 원했다. 녀석은 똑똑하니 말로 잘 타일러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젠장, 냉정하게 새장에 가둬 버리면 되겠지만 녀석과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새장에 갇혀 있던 녀석이 풀려나자 얼마나 깊은 행복을 느꼈는지, 내 교감의 힘으로 확실히 전해졌다. 그런데 가둔다고?

“일단 일은 해야 하니.”

힘든 일부터 처치하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네. 난 목록을 둘러보며 가장 안전한 일들을 골라냈다. 하나 있었다. ‘오크라덴’과 관련된 일이지만 그곳은 내게 호의적인 존재들만이 있으니 녀석을 데리고 가도 괜찮을 거야.

그렇게 난 녀석을 데리고 오크라덴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중앙대륙의 오크 대군과 마주치게 되었으며, 쉬운 일인 줄 알았던 이 일이 가장 힘든 일이 되어 버렸으나.

그 덕에 봉남이의 진정한 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일주일 동안 오크라덴에서 생고생을 하고 돌아왔다. 상사가 없어서 좋은 건 내 마음대로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젠장, 한 며칠 동안은 쉬지 않고선 못 버티겠어.

난 집에서 빈둥거리며 봉남이와 놀았다. 녀석은 예상대로 평범한 마물이 아니었다. 세상에, 지금 생각해도 놀랍네.

“옛날 옛적 아랫마을에 흥씨부자가…….”

지금 봉남이는 말을 깨우치다 못해 내게 동화책을 읽어 줄 경지까지 도달했다. 난 침대에 누워 녀석이 읽어 주는 동화책을 읽었다. 어딘가 역할이 바뀐 것 같지만 뭔 상관이랴.

“넷째는 산신령에게 잡혀가서…….”

“위험해!”

“위험해?”

멍하니 동화를 듣던 난 침대가 약간 흔들리는 걸 느꼈다. 약한 지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느껴지는 강렬한 ‘경고’에 재빨리 일어나 봉남이를 안았다.

콰르르릉!

고막이 터질 듯한 폭발음을 시작으로 아파트가 바람에 흔들리는 종이마냥 진동하기 시작했다.

난 입술을 깨물며 마물의 힘을 끌어올렸다. 지진 따위가 아니다.

복도로 나가자 무너진 천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창 바깥을 내다보자 원인을 알 수 있었다.

폭발이 일어났다. 50층 부근에 검은 연기와 불꽃이 치솟는다.

아파트에 설치된 화재진압 프로토콜이 발동되었지만 역부족으로 보였다. 이건 가스 배관이 터진 게 아니다.

누가 고의적으로 폭탄을 터트렸어.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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