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앵무새 (3)
느껴진다.
190명의 사람들.
70층엔 사람이 없다.
원장님이 전에 날 집으로 데려다주며 이웃에게 모습을 보인 적이 있는데 괜한 오해를 만들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70층 전체를 사 버린 덕이다.
사람이 적다.
평일 낮이라 다행이다.
폭탄이 터져 무너진 곳, 대피할 수 없는 층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 그러나 이 아파트는 신축이니 기본적으로 이계의 기술력이 접목되어 있다. 구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해.
마물의 힘을 끌어올렸다.
콘크리트 잔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로막는 방해물을 치우며 아래층으로 향했다.
확장된 기감은 평범한 인간의 기 정돈 빠짐없이 느끼게 만들었다. 도망치는 사람들이 우선이었다.
난 그들을 다소 거칠게 다뤘다. 밑층의 연쇄적인 폭발로 구조대가 오지 않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은 사고 현장에서 도망치지 못한다.
그들에게 뛰어가 저항하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라크네의 거미줄로 묶었다. 그들에겐 끔찍한 경험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난 창문 바깥으로 망설이지 않고 거미줄로 꽁꽁 싸맨 그들을 던졌다. 비명과 함께 늘어난 거미줄은 그들을 무사히 땅으로 안착시켰다.
마물의 거미줄은 사람의 몸무게론 끊어질 리가 없으며 늘어나지도 않지만 마츄의 힘을 섞어서 인장 강도를 조율했다. 결과는 성공이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나 어쩐지 확신이 들었다.
차례대로 아파트 주민들을 구했으나, 예상치 못한 사고는 나라고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층을 내려갈수록 폭발의 영향을 많이 받아 건물의 손상이 심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은 지나쳐도 중상을 입은 자들은 모두 구하고자 했다.
전에 ‘무량성계’에서 깨우쳤던 힘, 상처 회복을 도와주는 거미줄 붕대를 만들어 화상과 타박상을 입은 자들을 묶었다.
그들을 창문 바깥으로 던질 수는 없어 등에 짊어졌다. 건물에 잔재된 사람들의 기가 서서히 옅어졌다. 다행히 구조대가 도착한 모양이다. 폭발이 일어난 층 아래에는 불이 번지기 전에 무사히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스무 명의 사람들만 더 구하면.
그때, 지금까지 잡히지 않던 다른 기운들이 느껴졌다. 지금에서야 느껴진다는 건 너무 약해서 기를 읽을 수 없는 벌레거나,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기를 읽을 수 없는 능력자들뿐이다.
난 조심스럽지 않았다.
환자들을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기를 쫓았다. 무너진 복도 사이에 그들이 있었다. 잠수복같이 두꺼운 옷을 입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화재를 대비한 듯 방화복을 입었으나 구조대는 아니다. 내 존재에도 당황하지 않고 멀뚱히 서서 마주할 뿐이었다. 개새끼들, 놈들이 범인이다.
놈들은 천천히 행동에 나섰다.
기이하게 생긴, 하지만 ‘총’이라고 분류할 만한 무기를 든다. 그러곤 날 겨누나 발포하진 못했다.
“홍식.”
검은 연기를 막는 방화복은 비단 불이 아니라 총알도 막을 만큼 단단했고, 그 목적성에도 여유를 두지 않아 폭발이 일어난 현장에 있었더라고 하더라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샐러맨더의 불꽃, 나로 하여 더욱 강렬해진 홍염을 막아 내진 못했다. 놈들은 발버둥을 치다 이내 쓰러져 기절했다. 난 녹은 방화복 사이로 보이는 놈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숨은 붙어 있다.
하지만 내가 놈들을 살려 둔 건 단지 테러를 일으킨 이유를 알고 싶어서다. 이 아파트가 한국 내에서 꽤 중요한 위치의 인물들이 많이 산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한류스타와 부지사를 죽이기 위해 폭탄 테러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야.
거미줄로 그들을 묶어 창 바깥으로 던지고 부상자들의 상처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서둘러 움직였다.
폭발이 발생한 층은 사람이 지나갈 곳이 되지 못했으나, 용암에서도 잘 수 있는 나다. 부상자들에게 포근이의 기운을 불어넣으며 지났고, 그 아래층부턴 구조대를 만나 부상자들을 맡길 수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처음엔 날 이상하게 여겼지만 능력 자격증을 보여 주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파트 바깥으로 나온 난 우선 테러 주동자들을 찾았다. 하지만 거미줄에 묶여 있는 생존자들만 보일 뿐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냄새가 나.”
멀리 도망치지 못했을 거야.
겨우 십 분 차이의 거리. 비행기를 타고 갔든 제트기를 타고 갔든 내 코를 속이진 못한다. 오리하르콘을 냄새로 찾던 돼지 녀석의 힘을 끌어올리자, 몇백만 가지의 냄새가 맡아졌다. 기이한 감각이나 견디지 못할 것도 없었다. 난 그중에 내가 원하는 냄새를 찾았고, 놈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풍종도보의 경공으로 놈들을 쫓았다. 얼마 가지 않아 다친 놈들을 업고 도망치는 자들이 보였다.
“능력자 혹은…….”
경공으로 따라잡아서 망정이지 놈들의 속력은 이미 자동차와 같았다. 난 놈들의 발재간을 유심히 지켜보며 놈들의 정체를 유추했다.
“무림인.”
또한 ‘테러’에 대해서 생각하자 저절로 떠오르는 세력들이 있었다. 나와 엮일 만큼 엮인, 겉으론 그저 거대한 범죄 조직이나 실상은 붕괴되는 무림에서 파생된 세력.
카르마.
그들은 내가 지척까지 다가가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서울 도심에서 얼마 가지 않아 폐허로 쓰이지 않는 건물로 들어간 놈들은 화상을 입은 제 동료들을 내팽개친 후 품에서 녹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화상을 입은 자들 중에서 거동할 수 있는 자들은 스스로 유리병을 받아 들고 액체를 마셨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입을 벌려 마시게 했다.
액체는 극독이었다.
이내 그들의 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녹아내리며 거품처럼 사라졌다. 흔적이라곤 그들이 있던 자리에 축축이 젖은 자국뿐이다.
구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임무에 실패해서 혹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죽이고, 자결한 것이다. 그 과정이 무자비하다 못해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니들, 카르마지?”
녀석들을 쫓아 대가리를 잡으려고 했으나 빈 건물에 잠자코 기다리기만 하자 내가 먼저 나섰다. 난 원장님이 아니라 일을 뚝딱 해치우진 못하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알았다.
*
마물원 관리실 내의 ‘포육실’.
이 방은 새끼 마물들을 키우는 곳으로, 외부의 모든 기운들을 차단하고 불안정한 새끼 마물의 마나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일정 수치를 넘기면 마나가 소거된다.
즉, 포육실 내의 마나 농도 수치를 조절하면 능력자들도 평범한 인간 수준으로 바꿀 수 있다. 강력한 존재라면 영향을 받지 않지만 당연히 놈들한테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테러를 일으키다니.”
난 포육실 바깥에서 창문 너머로 거미줄에 묶인 열두 명의 사람들을 지켜봤다. 발버둥을 치는 놈들을 보니 자해를 할 것 같아 입을 벌리지 못하게 막아 둔 게 잘한 것 같다.
전과 달리 놈들의 몸을 아무리 뒤져도 ‘카르마’를 알 수 있는 표식이나 증거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난 이미 놈들이 카르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의아한 건 테러를 일으킨 이유, 항상 돈만 쫓으며 한국에서도 온갖 더러운 범죄에 엮여 있던 카르마지만 지금처럼 대놓고 테러를 주동하진 않았다. 이번 일이 국가 차원의 압박마저 감수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건가?
독극물을 삼키던 놈들이다.
물어봐도 곱게 말해 주진 않을 테니 난 굳이 놈들에게 정체를 묻지 않았다. 대신 원장님의 ‘인맥’을 동원해 그들의 경로를 추적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이만한 인원이 밀입국했으니 단서는 남겼을 것이다.
*
예상이 맞았다. 카르마는 범국가적 범죄 단체인 만큼 적도 많았다. 영국의 원탁의 기사들도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 보안청이 보내 준 자료들엔 놈들의 이동 경로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예상은 했으나 역시 목적은 나였다. 저번에 놈들과 만났을 때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더니 이젠 사는 집까지 알아냈나. 원장님이 항상 뒤처리를 해 주기에 들킬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마 원장님이 자리를 비운 동안 혼자 일하던 내가 흔적을 남긴 모양이다.
혹시나 싶어 원장님에게 연락을 했으나 받지 않았다. 결국 내가 처리해야 했다. 난 포육실로 들어가 담담하게 놈들을 바라봤다. 전에 걱정하던 내게 원장님은 카르마는 ‘우리에겐’ 별거 아니라고 했었다. 그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딜 가나 존재하는 악독한 범죄 조직인데 별거 아니라니.
하지만 이젠 뭐랄까.
“정말 별거 아니네.”
그들에게서 지식을 빼내는 방법은 많다. 그중 가장 쉬운 방법이 있으나 그 방법은 내게 많은 부담을 안긴다. 혹시라도 기혈이 뒤틀리면 원장님도 없는데 골치 아파진다. 무엇보다 저딴 놈들에게 그 힘을 사용하고 필요는 없었다.
카르마.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내가 놈들을 제압할 때 저항조차 못하고 압도적으로 당한 주제에 날 바라보는 시선엔 적개심만 가득할 분이다. 주술사들이 세뇌라도 한 걸까?
하지만 상관없어.
내가 할 짓은 세뇌 따위보다 더 깊은 공포다.
“난 고문은 정말 싫어하고 하지도 못해. 그렇다고 인도적 평화주의자는 아니야. 뭐, 그냥 생리적으로 싫거든.”
원장님은 내가 정신력이 강하다고 했다.
글쎄.
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게임 한 판 때문에 키보드를 내려치는 성질머리인데.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가끔씩 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고도 느껴졌다.
“하지만 내 안의 다른 애들은 아닌 듯해.”
들끓는 괴물들의 욕망을 잠재우고 다니는 것, 내가 나임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지독한 고통에도 이성을 유지하는 것. 성질머리와는 별개로 그 의지가 정신력이라면 난 확실히 강한 게 분명하다.
난 내 안에 깃든 가장 사납고 역겨운 놈들의 기운을 마음대로 풀었다. 서서히 솔로몬의 탑의 악마들의 살의가 넘실거리며 주위를 잠식하자 카르마 놈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간다. 단지 욕구를 마음대로 놔두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난 내가 아니게 되었다.
“시작하자.”
직접 겪어 봐서 난 고통이 사람의 정신을 얼마만큼 무너트리는지 잘 알았다. 난 악마들이 내게 주었던 고통들을 그들이 겪게 만들었다.
*
한국의 헌터들과 치안 병력들이 아파트 폭탄 테러의 범인들을 쫓고 있다. 대충 아파트 근처 건물에 놈들을 던져 놓는다면 알아서 해결되겠지. 그들이 다시 말을 하기까진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헌터들이 원하는 정보들은 모두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흔적을 지우며 마물원으로 돌아온 난 봉남이를 찾았다.
“봉남아, 너 못된 아저씨들에게 쫓기고 있었구나.”
“응응. 병신들이야. 병신들이야.”
그들에게 얻은 정보는 대부분 쓸모없었으나 가장 중요한 건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쫓은 건 내가 아니었다. 중앙아시아 서남지대의 불법 연구소는 사실 카르마의 점조직이었고, 그곳에 갇혀 있던 봉남이는 어떤 이유에서 카르마가 원하는 마물이었다. 또한 이들을 이끄는 어떤 자가 한국에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놈을 잡지 않으면 아파트 테러처럼 놈들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놈들은 봉남이를 원했다.
대낮에 테러 행각을 벌일 정도로.
무엇 때문에 원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괜찮다.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니까. 카르마 길드는 점조직으로 잘게 분리되어 한 조직을 궤멸시켜도 다른 조직을 찾아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로를 잇는 작은 끈은 존재했다. 다만 세뇌당한 카르마 일원들이 절대 발설하지 않기에 추적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문제는 내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봉남이를 데리고 찾은 곳은 ‘위의 끈’이 있는 한강 근처의 주차 타워. 이곳은 한국에 숨어든 카르마 지부 중 한 곳.
지금 같은 방법으로 몇 번 올라가다보면 반드시 나오겠지.
*
며칠 전 중국 카르마 본기지에서부터 하나의 지령이 내려왔다. 왕王이 찾으니 충복을 다하라고. 난 카르마가 왕이라 칭하는 자를 중점으로 조사했고, 혼자 정보를 모두 파악하긴 힘들어 알 만한 자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얼마 후,
곽운 스승님에게 그 정체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자는 독왕.
그렇게 부른단다.
카르마 길드의 무력 단체 초두라단의 단장이며, ‘급수’로 지정되지 않는 초인이다. 곽운 스승님은 그가 무림에서 활동했을 때 왕王의 별호를 가졌다고 했는데, 스승님의 별호가 도성인 것도 그렇고 무림인들은 강한 자들에게 왕, 제, 성, 황 같은 대단한 지위를 의미하는 별호를 붙이니 그의 저력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스승님에게 내가 그자를 이길 수 있겠냐고 물어보자, 곽운 스승님은 웃음소리만 내더니 그건 내 마음에 달렸다고 대답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어찌 제자의 도약을 스승이 방해하겠냐며 알아서 잘해 보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독왕이라, 별호 한번 거창하네.”
몇 곳의 지부를 박살 내며 그자가 한국에 머물고 있을 거라 생각되는 곳들을 찾았다.
“지금쯤 알아차렸을 테지.”
한바탕 난리쳤으니 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카르마를 들쑤시고 다니는 놈이 있다는 걸. 만발의 준비를 갖추고 있겠지.
위치는 안다.
그러나 적의 저력은 자세히 모른다.
이럴 때 원장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원장님이라면,
내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했을까.
*
그는 왕으로서의 품격을 스스로 존중했다. 자신은 왕과 다를 바 없으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자세를 잊지 않았으며 격하를 혐오하여 항상 대접받길 원했다. 그리하여 대천명의 갈래 중 하나를 되찾기 위해서 이국의 땅에 도착했음에도 왕과 같이 여유로웠다.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은 서울 도심의 호텔, 가장 높은 층의 로열 룸.
괴인이 들쑤시고 다니나 사령이 있는 곳은 알았으니 그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왕처럼 위엄 있게, 가장 결정적일 때 나서면 된다고 생각했다.
쿵!
호텔의 문이 부서지고.
“이곳 대장 나와.”
초두라 부단장들을 짓밟으며 나타난 괴한의 등장 전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