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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13화 (213/258)

# 213화 앵무새 (4)

왕이 잡것의 지저귐에 당황하랴.

독왕 당백호는 미동도 없이 금색 의자에 앉아 뱀의 눈으로 괴한을 관찰했다. 그는 동양인의 젊은 남자로 눈빛이 과히 짐승의 것과 닮아 있다.

기묘하게도 그에게선 어떠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용독술의 달인인 당백호는 생물의 기를 읽음으로서 생명을 꺼트릴 극독을 만들어 낸다.

뱀을 잡아먹는 족제비에게 뱀독을 사용해 봤자 소용이 없으니 거미의 독을 사용하는 것과 이치가 같다. 그러나 저자는 기운이 없으니 어떠한 독이 가장 고통스럽게 죽일지 예상되지 않았다.

‘겁도 없이 덤비는 살쾡이로군.’

독왕은 초두라의 부단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니 그는 연륜엔 관계없는 힘을 지녔을 것이며 기운을 읽을 수 없으니 지구의 헌터라 불리는 건방진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독왕의 눈이 괴한을 샅샅이 훑어본다. 그러다 그의 어깨에 앉은 빨간 깃털의 새를 발견하곤 마치 먹잇감을 삼키는 뱀처럼 입꼬리를 귀까지 찢어 올렸다.

“수고를 덜어 주어서 고맙다.”

당백호는 감히 포식자의 둥지를 찾아온 어리석은 자를 우습게 여기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호기롭게 등장했으나 지금까지 뻣뻣하게 굳어 있는 괴한을 두고 당백호는 뱀 앞에 쥐가 꼼짝할 수 없듯이 자신의 위신에 짓눌렸다고 생각했다.

이젠 잡아먹기만 하면 될 뿐.

단지 그뿐.

“누가 움직이래.”

그때였다.

괴한의 말에 독왕은 저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그 행동의 의미를 곧 눈치챈 독왕은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감히!”

내가 쥐라도 된다는 말이냐.

독왕은 분노를 터트리며 제 병기인 독우화전과 만독구를 제쳐두고 스스로의 기운만을 끌어올린 채 괴한에게 달려갔다. 독이 그를 왕으로 만들었으나 없더라도 자신은 화경에 가까운 경지, 지구의 인간 따윈 일격에 사지를 찢어 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어.”

하지만 그가 내지른 정권은 너무나 가벼이 괴한의 손에 막혔다. 당백호는 눈을 부릅뜨며 곧바로 손을 놀려 사천당문의 부괴사독권을 펼쳤다. 그의 손이 독기로 물들어 녹색으로 변했다. 뱀의 움직임처럼 표독스럽고 집요하게 목을 노리는 사독권은 단지 닿는 것만으로도 곰의 가죽을 녹여 버릴 수 있었다.

“재밌네.”

그러나 부괴사독권의 십팔 이수 권법들은 모두 남자의 기이한 팔 동작에 가로막혔다. 당백호는 그가 마치 고양이의 움직임과 같다고 느껴졌다. 몇 번의 수를 주고받으며 당백호는 상대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격하를 혐오하나 교사스러운 당백호는 곧 상황을 파악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대 또한 무림에서 왔군.”

당백호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피식자와 말을 나눴다. 한 가지는 괴한의 정체로 처음 보는 형태이나 분명 그가 사용하는 힘은 무공이었다.

당문의 독왕으로 무림이 붕괴되고 대방주들이 나타나기 전까진 그는 무림의 생리에 해박했다. 그의 나이 대와 실력으로 유추하건데 후기지수 중에 하나일 터이니 자신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림에서 왔으면 뭐, 넙죽 인사라도 드릴까? 뱀눈깔 새끼.”

당백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 종문은 필히 잡것들이 세운 미천한 곳이겠지. 그래서 선배에 대한 예의도 없는가?”

당백호는 무림인이라 하면 생사를 다툴 적이라고 하더라도 지고에 따른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놈. 난 독왕 당백호다. 네놈이 아무리 천둥벌거숭이라고 하더라도 무림인이라면 내 위명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당백호는 제 정체를 말하며 침대 맡에 놓인 목함을 열었다. 자신이 독왕임을 알았으니 용서를 구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놈은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가소로운 놈. 제법 제 기수에선 이름을 떨친 모양이나 감히 날 능멸하다니.’

당백호가 목함에서 꺼낸 건 온갖 병기가 숨겨진 무림의 기물 독우화전과 만독이 깃들어 자신만이 다룰 수 있는 검은 구, 만독구. 당백호를 독귀사신으로 만들어 준 보구들이었다.

“오늘 건방진 후배 놈을 잡아 족쳐야겠구나.”

당백호가 사나운 기세를 내뿜으며 사내에게 다가갈 때였다. 심드렁하게 당백호를 쳐다보던 남자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놈! 용서를 구하려거든 이미 늦었…….”

“아니, 병신아. 질문할 게 있다고.”

어찌 저리 무지하고 멍청할까.

당백호는 그의 당돌함이 겁에 질린 개새끼의 짖음처럼 두려움을 숨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당장 놈을 족치고 싶었으나 궁금하기도 하여 잠시 장단에 어울러 주리라 생각했다.

“무엇이냐.”

“기천수호문의 곽운. 별호가 뭐였더라, 도성 곽운이었나. 아무튼 너도 무림인이니까 알 것 아니야.”

당백호의 대답은 뒤늦게 들려왔다.

“…네놈은 그자를 어떻게 알지?”

“역시 너도 알고 있구나.”

젊은 남자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성 곽운이랑 독왕 당백호랑 싸우면 누가 이기냐?”

당백호는 분명 지금 상황이 대천명의 갈래 중 하나를 되찾았으며 건방진 무림 후배를 잡아 족치는 대수롭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놈의 입에서 기천수호문이 언급되자 어딘가 불길함이 들끓는 듯해 참을 수가 없었다.

“잠자코 죽이려고 했으나 그자를 아는 놈이니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구나. 네놈의 머리만 잘라 주술사들에게 보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알아내야겠다!”

“흥, 대답 회피하는 걸 보니 지는구먼.”

“닥쳐라. 놈!”

독왕은 온갖 암기를 쏟아내어 사내를 공격했다. 만천화우의 수법, 무림에서도 신묘함에 있어선 첫째로 꼽히는 기술이었다.

그의 주변으로 무수한 암기들이 꽂혔고 사내는 피할 수도 없이 암기에 당했다.

독권을 펼칠 때처럼 독기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암기가 꽂힌 물건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생물이 아닌 것조차 독에 녹아내리는, 만독구의 만독이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 낸 절정지기의 독. 아무런 전조도 없이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독 중 왕, 그야말로 무형지독의 위력이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무형지독에 사내는 중독되었고, 독왕 당백호는 호기롭게 웃었다. 결국 사내가 쓰러지자 당백호는 무형지독을 거두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으나, 곧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여전히 느껴지는 짐승의 눈빛,

그 자는 독에 중독되어 죽어 가고 있음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

피부에 꽂힌 수리검 따위를 뽑아내며 말했다.

“젠장! 더럽게 아프네.”

난 몸을 갉아먹는 지독한 기운을 느꼈다. 독왕이라 하니 그저 독충의 독처럼 가벼운 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이 독, 독에서 느껴지는 기운.

난 놈과 합을 다퉜을 때 놈의 기에서 기이한 냄새를 맡았다. 그래서 확인하기 위해 손쉽게 해치울 수 있음에도 놈이 전력을 발휘하도록 가만히 놔두었다.

기어코 직접 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럼으로 난 알게 되었다.

놈의 독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난 내게 다가오는 놈을 증오스럽게 노려봤다. 그자는 대범한 척하나 상당히 겁이 많은 자였다. 지금도 움찔거리며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꼴이라니.

“이 독, 무엇으로 만들지?”

독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죽이지 않는다더니 겁에 질려선 내가 독에 중독되어 죽어 가도록 놔두려는 모양이다. 겁쟁이, 하긴 독을 제 주 무기로 사용하여 왕의 별호까지 받을 정도니 독충처럼 교활하고 겁이 많을 수밖에 없나.

질문은 그저 확인의 의미였다.

놈이 말하지 않아도 난 깨달았다.

“네놈이었구나. 네놈이 원흉이었어.”

바스테 병원에서 겪었던 마물을 ‘다려 내는’ 방법. 휴양지의 섬에서 마주했던 마물을 한데 모아 ‘고독’을 일으키는 방법.

예상컨대.

모두 놈의 짓이다.

이 독 또한 온갖 마물의 기운이 느껴진다. 극독을 가진 마물들의 독을 얻기 위해서 놈은 이 괴상한 주술로 만든 구슬에 마물을 녹인 것이다. 대체, 몇 마리의 마물들을. 얼마나 많은 마물들을 죽였기에 이처럼 사이한 기운을 가진 독이 만들어질까.

“아슬아슬했어.”

샐러맨더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놈은 곧바로 눈치채고 암기를 날리지만, 두 번 당할까.

내가 공격을 피해 내자 독왕은 당황했다. 독에 당하고도 어떻게 움직일까 생각하겠지.

사실 살짝 위험했다.

놈의 경지가 더 높았다면.

이 무지막지한 독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면 내가 죽었을 거야.

“네놈이 약해서 다행이야.”

샐러맨더의 불꽃을 피워 몸의 독을 모두 불태웠다. 지겹다. 더 이상 놈과 놀아나는 건 기만일 뿐이다. 이젠 끝내야겠어.

아이스독, 니플헤임의 극한의 음기와 확장하는 대륙 거북의 마나, 그리고 ‘전염’되는 미라 마물의 힘.

“대홍연화(大紅蓮華).”

극심한 추위로 몸이 얼어붙어 마침내 터져서 큰 붉은 연꽃같이 된다는 지옥, 대홍연화의 지옥처럼 이 힘은 대상을 속으로부터 얼어붙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마치 꽃처럼 생긴 반점이 떠오르는데 피가 모두 얼어붙은 탓에 생기는 죽음의 표식이었다.

끄으윽-!

붉은 꽃은 독기를 누르며 독왕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

“대천명의… 사령을 빼앗길 순 없다.”

극심한 추위에 휩쓸려 제 목숨을 유지하는 게 다인 독왕이었으나 표독스러운 눈빛은 거두지 않았다.

놈은 필사적으로 손을 휘둘러 독을 뿜어냈다. 오히려 제 죽음이 가까워지니 독침을 가진 벌처럼 발악하는 것이다. 놈의 독은 무형지독이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기로 움직이기에 어디로 흘러가는지 파악할 수는 있었다. 놈이 노린 건 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가까운 곳에 앉아 가만히 지켜만 보던 봉남이가 쓰러졌다. 붉은 깃털이 검게 물들어간다. 부리에선 피거품을 뿜고, 눈엔 탁기가 스미기 시작했다.

“갈래는 이미 많으니 이로서 천명에 어긋남은 없으리라. 크흐흐.”

난 죽어 가는 봉남이를 묵묵히 바라봤다. 녀석, 이럴 줄 알았으면서 왜 따라온 거야?

“에휴.”

한숨만 나왔다. 결국 고통은 매한가지인데. 하지만 녀석이 너무 간절하게 원해 어쩔 수가 없었다.

난 실실 웃는 당백호에게 말했다.

“내가 왜 이 녀석을 데리고 왔는지 이상하지 않디?”

왜 굳이 봉남이를 노리는 카르마 길드의 기지에 내가 봉남이를 데리고 쳐들어왔는지 놈은 생각조차 못 해 본 것 같았다. 사실 나도 며칠 전에 오크 라덴에서 봉남이의 죽음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절대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독왕은 봉남이가 평범한 마물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나 어떤 힘을 지녔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 듯했다.

“봉남아.”

봉남이는 깃털만 남긴 채 몸이 녹아내렸다. 명백한 죽음이다. 그러나 난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은 사라지지 않았다.

화르륵!

갑자기 깃털 더미가 불타오른다.

작지만 강렬한 불꽃 속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 썩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의 뼛조각이다. 그러나 점점 뼛조각으로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뼈가 돋아나고 살이 피어났다.

마침내 불꽃은 붉은 깃털이 되었고, 봉남이는 완전하게 부활하였다. 익히 들어본 적은 있었는데, 봉남이는 불멸의 마물이었다.

원장님이 부르길, 불사조라고 하던가.

녀석이 이곳에 오길 원한 건 단 한 가지의 이유였다. 되살아난 봉남이는 얼빠진 독왕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내밀었다.

“똥 먹어. 똥 먹어.”

바로 자길 가둔 자에 대한 복수다.

*

독왕의 명줄은 질겼다.

과연 무림의 왕이라 불리던 자라 몸이 얼어붙는 지독한 한기에도 죽지 않고 버텨 낸 것이다.

하지만 기혈이 뒤틀려 내공을 끌어올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반신도 움직이지 못했다. 주화입마의 상태다. 고치지 못하면 평생 불구로 살겠지.

난 그의 손에 들린 검은 구를 빼앗았다.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저 상태로도 뺏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검은 구에서 지독한 독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난 독기에 가려진 마물의 기에 집중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적어도 몇백 마리. 무수히 많은 마물의 기가 느껴졌다. 바스테 병원의 주술사처럼 이 구슬에 독을 가진 마물을 녹여 낸 것이다.

흡!

검은 구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던 난 어깨를 으쓱하고, 입에 넣고 한 번에 삼켰다. 효과는 굉장했다. 그 즉시 내 몸이 녹아내린다.

크하하하하-!

황당한 표정을 하던 독왕이 박장대소하며 날 멍청이라고 비웃는다. 난 녹아내리는 내 몸을 보며 이건 샐러맨더의 기운으로도 해독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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