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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15화 (215/258)

# 215화 대방주 (1)

독왕을 가둔 작은 우리, 상처 입은 마물을 회복시키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문을 열었을 땐 입구부터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져 나왔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가 자결할까 몸을 속박하고 마법 우리에 가두어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했다. 인큐베이터 우리는 먹고 마시지 않아도 몇 주를 살 수 있도록 회복 마법이 설계되어 있다.

절대 그가 지금처럼 썩은 시체가 될 리가 없다. 난 썩어 문드러진 독왕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시체의 부패가 심했다. 놈이 이곳에 갇힌 지 몇 주도 지나지 않았으며 완전한 밀실이니 저렇게 심하게 썩을 리가 없다.

“널 탓할 게 아니다.”

독왕의 시체를 보던 스승님이 말했다. 그는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의 죽음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곽운 스승님의 말에 따르면 독왕의 죽음은 대방주의 짓이라고 하였다. 대방주의 주술은 막을 수 없으며, 주술이 발현되기 전까진 그 위대한 용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했다. 즉, 대방주들은 차원이나 결계 따위에 상관 받지 않고 지구와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공간에 갇힌 자마저 죽일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스승님은 손으로 썩은 시체의 살점을 헤집었다. 그 불결한 행동 뒤에 얻어 낸 건 기묘한 문자가 새겨진 뼈 한 개.

곽운 스승님은 뼈를 유심히 지켜보며 말했다.

“다정. 카르마, 업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

난 알고 있는 것들을 대답했다. 무림 사교들의 리더 대방주이자 온갖 사악하고 교사스러운 주술을 부리는 주술사들의 왕, 주왕들이 다스리는 사교 집단. 무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며 무림뿐만 아니라 지구에서도 카르마라는 범죄 조직을 부리는데 목적은 단 하나, 강력한 존재력을 가진 주왕들이 지구로 넘어올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스승님은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뼈를 손으로 으스러트렸다. 그리곤 뼛가루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굳은 눈빛으로 날 마주했다.

“그들이 온다.”

스승님이 말한다.

“결국 수많은 희생을 치러, 그들은 강제로 세계를 여는 방법을 찾아냈다. 너 또한 본 적이 있겠지. 용맥을 통한 강제 전이를.”

기억 저편의, 오래된 기억.

그러나 금방 생각이 났다.

휴양지 섬에서 ‘전이’를 예측했던 카르마 길드, 스승님이 말하는 건 그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본래 세계와 세계를 오고갈 수 있는 건 워커라 불리는 선택받은 존재들이나 드래곤처럼 상식을 초월한 자들밖에 없었다. 신조차도 그 섭리를 거스를 순 없었는데, 대방주들은 섭리를 거스를 방법을 찾았다는 얘기였다.

“이미 놈들이 넘어오고 있다. 전이를 막을 순 없어. 대신 힘을 완전히 되찾아 완전한 세력을 이루기 전에 먼저 소멸시켜야 한다. 다정아, 네 도움이 필요하다.”

난 곽운 스승님의 말을 들으며 강렬한 사명감을 느꼈다. 카르마, 얼마나 나와 많이 엮였던가. 그들과 싸웠던 모든 하나하나의 조각들이 모두 이를 위한 것이었던가? 운명이란 기찬 것을 믿지도 않고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았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막아야만 하는 책임이라고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일찍이 한 세계에 공포의 존재로 군림하던 존재들을 내가 막는다는 건 가능성을 떠나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을 무턱대고 덤비는 것보다 착실한 ‘감독관’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원장님이 아직 출장에서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원장님이 오시면 말씀드려서…….”

그러나 곽운 스승님은 단정 지으며 말했다.

“우린 용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설득할 여지도 없이 확고한 스승님의 모습에 난 그의 의견을 돌릴 수 없음을 아는 데도 불구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대답은 강태풍, 그가 했다.

“사제, 강대한 힘만을 쫓다가는 스스로 나약해져. 용의 힘을 빌려 대방주들을 막아도, 그 이상은 할 수 없지.”

강태풍의 말을 모두 이해하진 못했으나 어렴풋이 무엇을 말하는진 알 것 같았다. 자기들은 ‘보모’가 필요 없는 성인들이라 그거다. 기천수호문은 무림을 수호하니 대방주 외에도 앞으로 많은 위기가 있을 테고, 그때마다 용의 힘을 빌릴 수는 없다는 건가.

스승님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빨리 진행할수록 좋다. 대방주들이 지구의 기에 적응한다면 뿌리 뽑기 힘들어질 터이니.”

스승님은 무림의 고수들과 기천수호문의 수호자들이 대방주를 죽이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를 알려 줬다. 대방주들은 ‘흡성주술’ 이라는 기이한 주술로 육체와 육체 사이를 제 마음대로 오고갈 수 있다. 대방주라 생각하여 마두를 죽였는데 또다시 나타났던 사례들을 예로 들며 전이로 대방주들의 기가 불안정해져 흡성주술을 사용하지 못할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하였다.

“…알겠습니다. 계획은 어떻게 되죠?”

그는 원장님이 오기 전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대답과 함께 곧바로 일을 진행한다고 했다.

이래나 저래나, 어쨌든 결국 난 그들을 도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계획을 물어봤을 때, 조금은 후회하고 말았다.

“으하하, 놈들의 본진을 찾았으니 내일 아침 쳐들어갈 것이다.”

강태풍의 정신 나간 소리에 난 슬며시 스승님을 바라봤다. 그라면 진짜 대답을 해 주겠지. 그러나 입을 다물고 어떤 말도 해 주지 않았다. 설마 정말 저 무모한 작전이 다란 말인가?

“당연히 아시겠지만 그곳엔 대방주들만이 있을 게 아닙니다. 힘 꽤나 쓰는 무림인들이 잔뜩 있을 거라고요. 다른 협력 세력은 없나요? 카르마는 범죄 조직이니 그를 소탕하길 원하는 정부나 라이벌 세력들이 많을 텐데. 아니면 제가 아는…….”

“필요 없다.”

난 이제야 조금은 깨달았다.

곽운 스승님은 지략가라기보다 어쩌면 점잖을 뿐이지, 강태풍, 저자와 다를 바 없는 외곬수일지도.

“놈들의 세뇌술은 강력하다. 믿을만한 자라도 어느 순간 믿지 못하게 되지. 확실하게 세뇌에 통하지 않는 자는 나와 풍이 그리고 너다.”

난 어이가 없었다.

두 외곬수들의 확고한 생각. 미친 계획은 오로지 자신의 힘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단 두 명, 나까지 해서 세 명이면 카르마 길드의 본진을 모두 소탕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제 힘에 대한 믿음이다.

“사제, 걱정하지 마.”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있을 때 강태풍이 대뜸 외쳤다.

“정 무서우면 뒤에서 구경이나 해. 나 혼자서 다 상대할 수 있어. 난 인간 최강이니까.”

곽운 스승님은 망설이지 않고 그의 뒤통수를 내리갈겼다. 참 정겨운 사제지간이다.

“겸손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흥, 맞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난 ‘그래, 맞는 말이긴 하네.’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스승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업의 수하들이 모두 덤벼도 ‘너의 힘’이라면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무서운 건 오로지 대방주, 그들이 품은 매서운 독뿐. 대방주들이 왜 지구로 넘어오려는지 아느냐?”

스승님은 대방주에 대하여 더 자세히 설명해 줬다. 사실 그들은 ‘검황’과 ‘천마’라는 자가 두려워 무림에서 지구로 도망치려는 겁쟁이에 불과하다고 했다. 처음 듣는 말에 검황과 천마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무림엔 두 개의 태양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 두 개의 태양은 너무나 강렬해 자신과 주왕마저 감히 쳐다볼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능히 신의 힘을 넘었으며 둘 중 한 명의 힘만으로도 붕괴되는 무림을 구원하며 일찍이 주왕 같은 존재들이 난립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단다. 그러나 둘은 서로 ‘최강’을 두고 다투기만 하고 다른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했다. 아마 무림이 멸망해도 다른 세계에서 끝까지 자웅을 겨룰 자들이라나. 말로만 들어선 그들의 힘을 유추할 수 없었으나 ‘용’마저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고 하자 확 와 닿았다.

“대방주가 품은 ‘독’이 아니라면 그들은 하찮은 존재다. 지금 당장 네 힘으로도 쉽게 짓누를 수 있는 존재들이지. 그러나 그들의 독은…….”

대방주.

그들이 두려운 이유.

강한 무림인들마저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유가 밝혀졌다.

주술을 사용하나 그마저도 하찮지만, 단 한 가지 이해를 벗어난 ‘저주’가 있다고 한다.

그 저주는 대상을 반드시 죽인다.

힘의 격하에 관계없이 반드시 죽인다. 난 재차 물어봤으나 곽운 스승님은 그 어떠한 설명도 없이 단지 죽인다고만 했다.

“대방주들의 저주에 당한 자는 반드시 죽는다. 모두가 죽지. 아무리 천하를 군림하던 강자들도, 이치를 초월한 무적자들도. 신이 아닌 이상 반드시.”

난 ‘죽는다’를 거듭 언급하는 스승님의 말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얼마 전, 내게 깃들었던 봉황의 기.

“죽지 않는다면요?”

대방주의 저주가 반드시 죽이는 즉사의 저주라면, 봉황의 기가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난 봉황의 기를 펼쳐 스승님을 바라봤다. 그는 놀라워하며 굳은 얼굴에 미소가 돌기 시작했다.

“그 힘, 좋다. 시험해 보자.”

* * *

두들겨 맞았다.

스승님은 너덜거리는 내 몸에 한숨을 내쉬며 금창약이라는 무림 회복약을 꺼냈다. 난 고통을 참으며 눈물을 훌쩍였고, 스승님은 조심스럽게 상처에 약을 발랐다.

“봉황의 기는 대단한 힘이다. 하지만 막지 못할 것도 없어.”

봉황의 기로도 상처는 재생되지 않았다. 스승님은 자기의 힘조차 봉황의 기가 막아 주지 못하니 대방주들의 즉사 저주는 막아 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난 뒤를 쳐다봤다.

갈라진 산이 보인다.

저 거대한 산이, 모래성처럼 쉽게 와르르 무너졌다. 저런 공격을 어떻게 버텨. 봉황의 기가 약한 게 아니다. 산이 갈라지는 일격을 맞고 이 정도로 버틴 게 용한 거다.

“역시 스승님은 못 당하겠네요.”

“풍이는 거만해서 문제지만 넌 겸손한 ‘척’해서 탈이로군.”

금창약을 바르는 스승님의 손길이 거칠어졌다. 난 고개를 숙이고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약을 다 바른 후 관리실로 돌아온 난 그에게 차를 타 줬다.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말할까, 말까.

대방주들의 즉사 주술, 그럼 스승님은 대방주들을 어떻게 상대할 생각인거지?

“괜찮다.”

내가 먼저 질문하지 않아도 그는 안다는 듯 대답을 해 줬다.

“기천수호문장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해야 할 일.

스승님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으나 그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난 봉황의 기를 보일 때 그가 보였던 미소가 생각났다. 즉사 주술이라. 즉사 주술,

“하지만…….”

난 그의 의도를 눈치챘다.

그러나 이미 스승님은 각오를 끝마친 후였다.

“이미 너무 늦었다. 결심이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 더 이상 지체한다면 무너진 무림의 영혼과 조상님들이 날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는 희생할 생각이다.

다음 날, 놈들의 본진이 있는 라싸로 향했다. 티베트까지 가는 비행기에서 스승님이 강태풍과 내게 말했다. 대방주들의 즉사 주술이 자신에게 집중될 때, 그 찰나를 노려 대방주들을 죽이라고. 그의 제자들인 우린 담담히 그의 각오를 들었다.

* * *

쳐들어갔다.

침범, 침입. 침략.

라싸에 세워진 기묘하게 생긴 구조물에 터를 잡은 카르마 길드의 본진엔 수많은 무림인들이 대방주들을 지키고 있었으나 마치 그들이 야수에 잡아먹히는 먹잇감인 듯 무자비하게 당한기만 했다.

곽운 스승님은 익히 봤으니 그가 검을 단 한 번 휘둘러 수많은 카르마 길드원들을 일도양단하는 건 크게 놀랍지 않았다.

놀란 건 강태풍, 그의 힘이다.

스스로 인간 최강이라 자만하던 자였는데 왜 스승님이 그를 무신의 재능이라 불렀는지 깨달았다. 주먹 한 방에 무너지는 거대한 건물을 보며 적어도 내가 만나 본 지구인 중에선 가장 강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잡졸에게 힘을 빼지 말고, 온전하게 힘을 보존해. 곧 대방주들의 둥지가 나올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 미쳤다고만 생각했던 그들의 계획은 사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꿀벌집을 습격하는 말벌처럼, 개미떼를 학살하는 개미핥기처럼 압도적인 힘엔 지략이 필요 없던 것이다.

“염화의 고리.”

난 샐러맨더의 기운을 품고, 홍아를 휘둘러 불의 고리를 만들었다. 불꽃에 휩쓸린 카르마들은 순식간에 재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이곳에 상대는 없었다.

얼마 전 싸웠던 독왕 당백호가 카르마 내의 무력 집단 초두라단의 단장이었으니, 그보다 약한 자들이 우릴 막을 리가 없었다.

“냄새가 독해.”

스승님을 따라 그가 ‘둥지’라 표현한 기묘한 건축물에 들어가자 무저갱같이 깊게 파 놓은 지하가 나왔다. 어두운 지하엔 악취와 사이한 기운이 지독시리 풍겼다. 저 지하 깊숙한 곳에 대방주들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누구도 망설이지 않았다.

나와 강태풍, 스승님은 거침없이 지하를 향해 몸을 던졌다. 지하의 어둠이 몸을 삼킬 때였다.

난 익숙한 감각을 느꼈다.

마물원에서 일하며 수도 없이 느껴본 감각. 박탈감과 울렁거림, 메스꺼움.

“모두 손을……!”

분명 이 감각은 공간이동의 여파.

저항할 수 없이 휩쓸린 난 주변이 무너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내 무너진 어둠이 다시 재정립되더니,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바닥은 진흙처럼 달라붙고 하늘엔 거대한 눈동자가 태양처럼 떠 날 바라보고 있다. 그 외에 보이는 모든 곳이 어둡기만 한 기이한 세계.

“새로운 먹이.”

그리고 그곳에 머리가 여섯 개 달린 남자가 있었다. 각기 다른 얼굴을 한 머리는 모두 같은 걸 씹어 먹고 있었다.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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