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대방주 (3)
대방주들은 내겐 전혀 통하지 않는 즉사 주술 외에도 다양한 공격 수단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내가 놈들과 가까워져도 대방주들은 오로지 한 가지 주술만을 사용했다.
아마 그런 것이다.
독사는 독이 통하지 않는 몽구스를 상대로 제 독니를 들이밀 수밖에 없다.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공격, 그게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쥐를 죽이듯 몸을 휘감거나 꼬리로 내려치는 것 따윈 통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깨닫는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놈들은 제가 가진 최대의 힘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 우습게도 내가 놈들의 천적처럼 이리 쉽게 포식자의 위치에 서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만하지, 이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즉사 주술이 아무리 통하지 않더라도 불쾌하고 악의 넘치는 기가 내 몸을 관통하는 건 상당히 역겨운 경험이었다.
“좆 같은 놈들!”
대방주들은 계속하여 제 독니를 드러냈고, 이젠 두려움보다 짜증만 앞섰다. 놈의 즉사 주술이 다시 몸을 휘감을 때, 난 그에 맞서 힘껏 기지개를 펴듯 독기를 떨쳐 냈다.
크아아악-!
그 순간, 갑자기 대방주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난 어이가 없어 인상을 찌푸리며 종이 인형처럼 널브러진 놈들을 관찰했다. 기괴한 가면 같은 얼굴엔 두려움만 깃들어 있을 뿐이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워낙 지랄 맞을 녀석들이라 처음부터 생물의 범주에 넣기엔 애매한 자들이었으나 지금은 확실히.
“죽었네.”
시시했다.
한껏 달아오르려던 찰나에.
“뭐야, 니들 술법에 니들이 당한 거야?”
마물 공장에서부터 경매장, 휴양지, 스위프트덕 경주, 무림, 그 외에 수많은 범죄 사건마다 엮였던 카르마. 내 왼팔을 자르며 처음으로 내게 죽음의 공포를 선사했고, 만나는 적마다 항상 날 압도했던 놈들이다. 그러나 그 징글맞을 카르마를 조종하던 흑막. 장막 뒤에 숨어 사사건건 날 죽이려 했던 최종 보스들은 이토록 허무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
정말 끝인가.
난 혹시 몰라 홍아를 들어 대방주들을 마무리 지었다. 고목의 껍질처럼 마르고 질긴 가죽과 가면 같은 얼굴, 비정상적인 팔다리 길이를 가진 대방주들의 육체가 화르륵 타올라 이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뭔 짓거리였대.”
카르마같이 거대한 범죄 조직은 대가리를 잃었대도 쉽게 와해되진 않겠지만 목적을 잃었으니 이젠 그냥 흔해 빠진 집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대방주의 주술이 두려워 충성을 맹세하던 무림인들은 이제 자유가 되었으니 그들의 고약한 성질머리를 보자면 꽤나 세상이 시끄러워지겠지만, 적어도 주술사 놈들이 활개 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상황일 것이다. 무언가 대업을 이룬 것 같지만 결말이 시원찮아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쿠르르릉!
대방주가 죽자, 아마 주술로 유지되고 있었을 신묘한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난 잠자코 마치 누가 잡아 뜯듯이 무너지는 주변 풍경을 바라봤다. 하늘에서부터 천천히 퍼즐 조각이 떨어지듯 공간이 무너지자 본래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동굴의 천장이었다.
가짜 세상이 벗겨질수록 동굴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물원에서 일하며 ‘공간 마법’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한 난 지금의 괴상한 현상이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짐작건대 어둠이 가득했던 세계와 황금 궁전이 세워진 구름의 위는 대방주들이 본래의 세계에 주술로 공간을 덧칠해 놓은 것이다.
어느덧 세상의 반이 무너졌을 때였다. 대방주들의 시체가 가루가 되어도 난 방심하지 않았다. 주술사의 기이한 주술은 상정할 수 없는 것이다.
쉬이이-!
그러나 그건 내 경계와 저항에 상관없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고막에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렸던 그 순간 난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코끼리 코 수백 바퀴를 돈 것처럼 머리가 핑하고 어지럽다. 몸 안에 바람이 부는 것 같다. 콧구멍이 간지럽더니 이내 뇌가 태풍을 만난 조각배처럼 격하게 뒤흔들린다.
“으으으으!”
역겨운 메스꺼움을 이겨 내기 위해 비명을 내질렀으나 나아지는 건 없었다.
이 느낌, 난 이 감각을 안다.
미라 마물, 그때와 같아.
내 몸을 차지하려는 사악한 의도.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났다. 대방주들은 제 몸을 버리고 다른 육체로 정신을 옮기는 악랄한 주술을 펼치는데, 그 때문에 대방주라 생각했던 자들을 죽여도 계속해서 나타났다고 했었다.
‘흡성 주술!’
곽운은 주왕들이 전이로 힘이 불안정해져 흡성 주술을 펼치지 못하니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지만, 개소리. 잘만 쓰잖아. 빌어먹을 스승놈, 지금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어.
“개새끼들! 내 몸을 차지하려고?”
난 이를 아드득 깨물며 흔들리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감히 어딜!
아드득-!
아드득-!
내 입안엔 아무것도 없으나.
난 이빨이 부서져라 씹었다.
잘근잘근, 되씹고 되씹었다.
그러자 점점 부유하던 정신이 돌아오며 보다 의식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놈들은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어쩌면 도성 곽운이 그들에겐 오히려 더 나은 상대였을지도 모른다.
“이미 겪은 거야, 병신들아.”
내 몸을 빼앗는 어떤 힘에 저항하는 건 이미 한번 격렬하게 겪은 적이 있었다. 미라 마물은 결국 내 몸을 빼앗지 못하고 내 안에서 사라졌다.
까드득!
결국 내 정신을 뒤흔들던 놈들의 힘도 완전히 사라졌다. 회심의 일격이었겠지만 내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난 명백히, 놈들의 천적이었다.
꺼억!
나도 모르게 나온 트림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배가 든든한 게 이거 참, 역겨운 현상이지만 그들은 내 안에서 좋은 단백질원, 아니 좋은 거름이 되었다.
*
망궁의 결계가 사라지고 망자의 덫에서 벗어난 그들은 홀로 서 있는 다정을 발견했다. 강태풍은 어안이 벙벙하여 인상을 찌푸린 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으나 곽운은 그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정이가 대방주들을 죽였다.’
곽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찌 몰랐을까.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드래곤의 수호자,
그가 인간이라고 말하여, 인간의 기운이 느껴졌다고 하여, 어찌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던 건가.
“뭐야, 이제 와요?”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전과 다를 바 없이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건넨다. 그러나 곽운은 전처럼 그를 대할 수 없었다. 명백해진 상황에 능청을 피운다고 하여 장단을 맞추어 줄 생각은 없었다.
곽운은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위대하신 용이시여.”
그는 아마 유희 중인 드래곤.
무림의 존망이 걸린 일조차 저처럼 가벼이 여길 존재.
“어허헝.”
곽운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드래곤은 장난스러운 웃음소리를 내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릴 대로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뭐야, 내가 혼자 해치웠다고 무안해서 장난치는 거예요? 내가 왜 위대하신 용님이야.”
드래곤은 정체를 숨길망정 부정은 하지 않는다. 그건 위대한 존재에 대한 자긍심이다. 유희 중임을 들킨다면 스스로 정체를 밝히고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드래곤이 아니라고 했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 곽운은 이내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어느 세계의 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은혜는 필히…….”
“어헝헝.”
또 들려오는 어이없는 웃음소리.
곽운이 고개를 들어 그의 표정을 본 순간,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절대 신이거나 드래곤이라면 보이지 않을 표정을 그는 하고 있었다. 넙치같이 입을 내민 채 눈은 장난스럽게 일그러졌고 자신을 멍청이처럼 바라보는 눈빛.
“무안해서 그러네. 거참, 살다 보면 제자한테 도움도 받고 그러는 거지. 희생한다고 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부끄러운 건 맞긴 하네. 으허어헝.”
무엇보다 신이라면 절대 저리 천박할 만큼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약 올리진 않겠지.
그러면 대체 어떻게?
곽운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
주왕이 죽고, 스승님을 따라 카르마 놈들이 남긴 악업의 뒤처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덧 원장님이 다른 세계에서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난 즉시 하던 일을 모두 스승님에게 맡기고 마물원으로 돌아왔다.
오늘 오후, 드디어 원장님이 지구로 돌아온다. 거의 일 년 만인가?
난 복귀 기념 케이크를 사 놓고 원장님이 오길 기다렸다.
오매불망 원장님을 기다린 것도 아닌데 괜히 가슴이 설레었다.
할 말이 정말 많이 쌓였다.
“다정 씨.”
그러나 관리실의 문이 열리고, 빨간 입술과 하얀 피부, 정열적인 붉은 머리카락, 꽃으로 비유하자면 장미였고, 보석으로 비유하자면 루비였으며, 케이크로 비유하면 레드벨벳 같은.
원장님이 들어오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 달려가 두 팔 벌려 안아 주면 너무 청승맞나. 그 이전에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라.
난 움찔거리며, 격렬하게 몰려오는 반가움을 절대 포옹으로 표현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꾹 참아 냈다.
“오셨어요?”
결국 담담히 말했는데.
원장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마물원 일은 잘 처리해 놨어요?”
“네. 모두. 그리고 덤으로 카르마 놈들과 대방주도 소탕했어요.”
“잘했어요. 역시 내 가디언, 이 짧은 방랑에도 다정 씨 힘이 필요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내 힘이 필요했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로드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절대 공간 마법을…….”
원장님의 뒷말은 내게 들려오지 않았다. ‘보고 싶었다’라니. 으레 인사치례였을 것이다. 의미도 약간 다르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울컥해서.
“원장님!”
두 팔 벌려 달려가고 말았다.
당연히 공간 이동 마법이라든지 어떤 수단으로 날 날려 버릴 거라 생각했지만 원장님은 내 포옹을 가만히 받아 줬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건 나라서 기겁하며 원장님을 밀쳐 버렸고, 과정은 틀렸지만 결국 난 마물 우리에 떨어져 며칠 동안 감금당하고 말았다.
*
대방주들의 즉사 주술.
신이 아니라면 힘의 고하에 상관없이 무조건 죽는다지.
사실 의심할 만했어.
그동안 내게 벌어졌건 일들 중 설렁설렁 넘어갔으나 이해하기 버거운 것들이 많았다.
그래, 이상해.
고아인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세상에 친척 하나 없을 수 있지?
어쩌면 진짜 난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원장님. 난 뭘까요?”
원장님에게 내가 느낀 바를 고스란히 말했다. 대방주들과 있었던 일들을 거론하면서 내가 사실 인간이 아닌 것 같다고.
그러자 원장님은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제 알아볼 때가 된 것 같다고 대답했다.
“알아봐요?”
“네. 다정 씨가 뭔지. 나도 참 궁금했었거든요.”
원장님은 내 정체를 밝혀 주겠다며 ‘나부’를 만나야겠다고 했다. 나부, 오타쿠 용. 자기의 심장 절반을 자신이 만든 인형에 집어넣으려고 했던 반쯤 정신 나간 로맨티스트 용이다. 알고 보니 카르마에게 쫓기던 신비한 힘을 가진 소녀 혜연이가 나부의 딸이었고, 지금쯤 어딘가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둘이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나부는 용들의 기록자, 그가 가진 신비한 강물 ‘레테’라면 다정 씨의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귀중한 물이지만 그는 내게 빚이 있으니 기꺼이 내주겠죠.”
‘레테’에 대해서 물으니 원장님은 태초 이후의 기억이 깃든 강물이라고 하였다. 그 강물을 마시면, 단지 현생의 기억들을 넘어 어떤 이유에서든 잊고 말았던 기억들마저 모두 되살려 기억해 내게 해 줄 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