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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27화 (227/258)

# 227화 악마 (3)

지구의 역사 속에서 보통 사후 세계에 대한 기록을 보자면 착한 사람들이 가는 천당과 나쁜 사람들이 떨어지는 지옥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보통 지옥이라 말하면 대부분 지하를 떠올린다. 말 그대로 땅 아래, 지하다. 끔찍하고 더럽고 역겨운 곳. 그러니 하늘은 지옥이 될 수 없다.

맑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은 인간들에 있어 떠받들 대상이며, 하늘 위에 고통과 근심 없는 행복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반면 지하는 마왕이 지배하며 상상할 수 없는 지독한 고통을 주는 두려운 악마들이 산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의 가장 창대한 종교들을 예로 들자면 천사들이 나팔을 부는 천국과 악마들이 지배하는 지옥 혹은 극락왕생이라 더없이 안락하게 지내는 극락정토, 죗값를 치러 업을 없애야 하는 수십 개의 지옥이 있다.

난 굉장히 신기하다고 느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지구의 인간들은 하늘을 숭배하고 지하를 두려워한다. 지하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던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하늘 위엔 우주가 있고, 지하엔 지구의 지각과 내핵, 그 사이를 채우는 맨틀만 있을 뿐이다.

“이곳이 지옥으로 가는 입구인가요?”

원장님을 따라간 곳은 지하였다.

드릴이 달린 골렘을 타고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갔다.

굉장히 깊어 맨틀쯤은 뚫어 버렸겠지 싶었을 때, 원장님은 골렘 동작을 멈추고 문 바깥으로 나갔다.

가방끈이 짧은 나라도 지구의 깊은 땅속이 굉장한 압력과 고열로 위험한 곳이라는 건 안다. 그러나 망설임은 없었다. 문 바깥으로 펼쳐진 풍경 때문이었다.

“지옥은 없어요, 다정 씨.”

난 원장님을 따라 나갔다. 지구의 깊은 지하엔 놀랍게도 넓은 공동과 거대한 문이 존재했다. 당연히 ‘인류’의 것이 아니다. 현존하는 어떤 과학기술력으로도 이리 깊은 곳에 저처럼 화려한 조각이 양각된 문을 만들 수 없다. 그것도 족히 10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철문을.

“대신 비슷한 건 존재하죠.”

원장님과 난 문 앞에 서서 조각을 바라봤다.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기에 골똘히 고민하던 난 이 문이 로댕의 ‘지옥의 문’과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인간의 번뇌와 고통이 조각되어 있는 지옥의 문과 다르게 이 문은 너무나 끔찍했다. 뜯어먹히는 자, 뜯어먹는 자. 뿔이 달린 인간, 쏟아 내는 내장. 마치 살아움직이듯 생동감이 넘쳤으며 문에 칠해진 피들은 아직까지 마르지 않았다.

원장님은 이 문이 악마 둥지의 입구라고 했다.

그동안 솔로몬의 탑의 악마들과 괴물들을 상대해 왔지만 구체적으로 ‘악마’라고 부를 만한 존재들은 없었다. 하지만 이 너머 존재하는 악마들은 솔로몬의 탑 이전, 분명 지옥이라 부를 수 있을 세계의 주민들이었다.

원장님이 말하길 놈들은 정말 인류가 생각하는 악마들처럼 고통과 두려움, 질투, 욕망, 그와 비견되는 온갖 나쁜 감정들을 잡아먹으며,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절망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놈들은 다른 생명을 잡아먹음로써 힘을 키우는 끔찍한 생물들이다. 물론 그건 어떻게 보면 인간과 짐승, 마물이든 뭐든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모두 통용되는 개념이겠지만, 악마들이 다른 점이 있다면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힘을 키우기 위해서 믿을 수 없는 단위의 대학살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그것참…….”

다행이라면 악마들은 대부분 솔로몬의 탑에 봉인되었으며, 이 문은 그저 작은 둥지의 문에 지나지 않는단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대부분의 악마들은 ‘동족상잔’으로 약해진 상태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악마들은 다른 생물의 생명을 탐해야 하는데, 동족을 죽이면 도리어 힘이 약해진단다. 그러나 몇천 년 동안 솔로몬에 의해 탑에 봉인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걸 반복하여 결국 돌연변이 수준으로 약해졌다나.

“신기하네요.”

그래도 악마다. 정말 지하 세계에 악마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쩌면 인간들이 두려워했던 건 실존하는 증거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지하를 두려워하게 된 걸지도 모르지.

“가죠.”

감상에 젖어 있던 난 원장님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명백한 지옥의 문을 열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건 꺼림칙했다. 그러나 원장님은 방문을 열 듯 대수롭지 않게 지옥의 문을 열었다.

까아아아아악-!

그 순간, 고막이 터질 것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문에 양각된 고통받은 조각상들은 피를 내뿜으며 터져 버렸고 검붉은 피는 사방에 튀었다. 다행히 원장님의 마법으로 피를 뒤집어쓰진 않았다.

불쾌한 깜짝 쇼가 끝나자 문이 완전히 열렸다. 그러나 문 너머가 보이질 않는다. 검은색이다. 밤바다처럼 출렁거리는 검은색, 기분 나쁜 어둠이다.

샐러맨더의 기운을 끌어 올려 불꽃을 던져 봤으나 빛이 밝혀지지가 않는다. 알지 못하는 것에 망설일 때 역시 원장님은 산책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둠을 향해 걸어갔다.

“같이 가요.”

난 정말 오랜만에 원장님 등 뒤에 숨어 그녀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어둠에 발을 딛자 몸을 덮치는 박탈감이 느껴진다. 공간 이동의 여파다.

그러나 차원을 이동할 때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어둠은 물러가고 문 너머에 도사리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옥이네, 지옥이야.”

방금 전에 생각했던 상상이 이젠 확실히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인간들은 지옥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누군가가 이 문 너머의 악마들을 만난 적이 있었겠지. 그러니 다양한 문화에서 기록될 수 있었던 거야.

문 너머의 풍경은 내가 생각하던 지옥과 똑같았다. 그리고 내가 상상한 지옥은 문화의 영향이니, 인류는 지옥을 대면한 적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옥, 검붉은 하늘과 불타는 대지, 잿빛 가루가 흩날리며 고통스러운 비명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지는 곳.

“이곳이 단지 지옥의 일부분일 뿐이라고요?”

원장님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맡길게요.”

그러다 갑자기 한 마디만 던져 놓고 사라져 버렸다.

“엥? 원장님?”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기감을 넓혀 본다.

적어도 이 지옥의 둥지엔 원장님이 없다.

난 당황하지 않고 곰곰이 계획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그래, 원장님은 ‘검은 용’을 잡으러 간다고 했었지. 놈과 싸우면 지구가 버티지 못하니 별들의 무덤으로 머리채 잡고 끌고 간다고 말하기도 했어.

이곳은 다른 차원이 아닌 요계와 비슷하지만 훨씬 작은 공간, 지구와 연결된 작은방 같은 곳이니 여기서 싸울 순 없었을 테고, 원장님은 말했던 것처럼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떠나 버린 걸 거야. 그리고 원장님이 내게 내린 명령은 단 하나. 그동안 검은 용과 같이 행동하는 악마들을 상대하라는 것이었지.

치익!

가만히 서 있기만 했을 뿐인데 불타는 대지 너머로 인간들이 몰려온다.

물론 겉모습만 인간일 뿐 느껴지는 기운은 악마다. 불쾌하고 꺼림칙한 기운을 품은 놈들. 머리에 뿔도 달렸네.

“마물은 아니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젠장, 솔로몬의 탑에 봉인된 악마 중에는 이러한 존재들도 있구나.

원장님 말을 들어 보면 놈들은 어떠한 세계의 어떠한 ‘종족’인 것 같으니, 교감이 통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다만 놈들은 엘프, 우딸리깔딸리, 드워프 등 그 어떤 이종족과도 이질적이었다. 어쩜 저리 사악한 기운을 풍기는지.

“악마라.”

어떤 놈은 기어서, 어떤 놈은 뛰거나 날아서 왔다.

목적은 명백했다. 악의가 넘치는 놈들이 날 찢어 죽이려고 한다.

난 가만히 서서 덤벼 오는 놈들을 바라만 봤다.

지척까지 도달해 검은 손톱을 휘두르기 직전까지.

휘이!

악마의 손은 거대한 곰의 앞발처럼 묵직했고, 손톱 또한 바위 정도는 쉽게 자를 정도로 날카로운 예기가 있었다. 하지만 난 살짝 뒷걸음질 치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날 공격하던 놈이 도리어 쓰러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놈을 시작으로 몰려오던 수십 마리의 악마 또한 일제히 쓰러져 죽었다. 난 담담히 악마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코를 훌쩍였다.

“킁. 누가 악마인지.”

이 중에 그나마 ‘질병’을 버티는 강한 악마가 있었다. 악마 무리 가장 뒤편에 있던 붉은 뿔을 가진 악마였다.

빨간 페인트를 바른 듯 온몸이 붉은 놈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놈은 몸부림만으로 바위를 박살 낼 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힘 앞에선 약하디약한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악마라는 것도.”

놈은 영리하게 약한 악마들을 시켜 내 전력을 확인해 볼 요량이었겠지만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쓰러졌다. 놈에게 다가가자 발악하며 덤벼들지만 헛수고다. 조금이나마 버틴 게 다일 뿐, 놈은 천천히 죽어 갔다. 난 쓰러진 놈의 곁에 털썩 주저앉아 말했다.

“병에 걸리나 봐?”

이 힘은 미라 마물, 놈의 힘이며 질병, 감염, 죽음의 힘이다.

악마들조차 이 힘을 버텨 내지 못했다. 적어도 놈들의 수준에선 그랬다. 수십 마리의 악마를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몰살시켰지만, 입맛이 쓰기만 했다. 정말 누가 악마인지 모르겠네.

난 죽어 가는 악마를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보통 자비를 베풀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목숨을 끊어 준다지만 굳이 그러고 싶진 않았다. 싱겁게 끝났지만 사실 놈들은 만만히 볼 놈들이 아니다. 악마들은 날 잡아먹고자 덤볐다. 몇 년 전의 나였다면 어떤 끔찍한 짓을 당했을지.

“넌… 누구지?”

붉은 뿔의 악마 곁에 앉아 있을 때였다.

놈이 내게 물었다.

자신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난 악독한 악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내 이름만큼은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다정.”

붉은 뿔의 악마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충분한 대답이 되지 않았겠지만 뭐, 더 이상 설명해 줄 것도 없었다.

점점 이 악마의 기운이 사그라진다.

곧, 놈은 죽는다.

“당신은 누구…. 지?”

“말했잖아. 정다정, 거꾸로 해도 정다정.”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놈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귀찮지만 나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줄까 고민하던 그때였다.

“무엇에서 태어난… 악마더냐?”

놈이 말을 덧붙였고, 난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멀뚱히 쳐다만 봤다.

날 보고 악마라고?

“무슨…….”

그러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결국 놈은 죽고 말았다.

악마, 내 안에 깃든 마물의 힘을 보고 악마라고 착각했던가?

이상한 일도 아니지. 정말 악마와 다름없는 힘이니까.

난 어깨를 으쓱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 제법 먼 곳에 어떤 악마들보다도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 악마들 중에서도 ‘보스’가 있을 테니 놈을 찾아 죽이는 것으로 내 역할은 끝나겠지.

놈을 향해 스위프트덕의 기운을 끌어 올려 풍종도보의 경공을 펼치려던 그때였다.

“어라?”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난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원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뿔, 악마들의 뿔.

그것에서부터 ‘힘’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힘은 천천히 내게 깃들어 왔다.

미약한 힘이지만 방금 전 미라 마물의 힘을 끌어 올린 탓에 소모되었던 마력이 충당되고 있다.

왜? 무엇 때문에? 그 순간, 전에 들었던 원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악마들은 생명을 잡아먹고 힘을 키운다.

“이상한데.”

만에 하나의 가정으로 내가 악마처럼 생명을 죽임으로써 힘을 얻는다고 쳐도 이상한 점은 많았다.

우선 악마들은 악마를 죽임으로써 힘을 얻지 못한다. 즉 내가 악마를 죽여서 이 기묘한 힘이 솟아났다고 한다면 악마들과 확실히 다른 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어떠한 힘 중에 악마를 죽임으로써 강해지는 무언가가 있었던가?

의문은 날 붙들고 놓아 주지 않았다. 그사이, 강렬한 기운 하나가 내게 곧장 달려오고 있었으나 난 상관하지 않고 의문에 집중했다. 악마를 죽임으로써 힘을 얻는 마물, 미라 마물이나 그림 리퍼는 확실히 아니고, 무언가 느껴 본 적 있는 감각이었는데.

“아!”

악마를 죽이는 천사, 천사는 날개, 날개 달린 마물 혹은 신수.

스무고개 하듯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 끝에 난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녀석 때문인가?

그러고 보면 녀석이 영웅의 길이니 뭐니 지껄이긴 했었지.

세상에, 녀석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다니.

그 발정 난 변태 유니콘의 힘 때문에.

“뭐 어때.”

아직 이해하지 못한 의문이 있었으나 뭐, 어느덧 내 안을 풍만하게 채운 마력에 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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