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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를 길들이는 방법-239화 (239/258)

# 239화. 천계 (8)

수염이 홀라당 타 버린 그는 붉으락푸르락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눈꼬리는 하늘로 높이 올랐고 입술은 일그러졌고 시선은 섬뜩한 귀신같다. 참 재밌는 녀석이다. 저렇게 자기가 화났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자기 주장하는 표정은 처음 봤다. 몹시 분노하던 이랑진군은 제 창을 쥔 채 내게 달려왔다. 창날이 이상하게 생긴 무기였는데 풍기는 기운은 매우 강력하고 신묘했다.

“삼첨양도신봉(三尖兩刀神鋒)의 강기를 받아라!”

콰르릉!

놈이 창을 번쩍 들어 내리꽂자 하늘에서 벼락이 내려쳤다. 날 향한 공격이 아니다. 번개는 놈에게 내렸다. 난 이랑진군의 황금 갑옷에서 사납게 날뛰는 백색 뇌전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아프겠네.

으하하!

놈이 뇌전을 두른 채 창을 휘두르자 강력한 번개가 뿜어져 나와 주변을 헤집었다. 신선들이 기거하던 궁의 굵고 단단한 기둥이 모두 무너진다. 난 메타소드를 들어 기운을 막았지만, 번개는 몸을 타고 흘러들어와 날 갈기갈기 찢어놓으려고 했다. 막강한 기운, 그릇이 약했다면 난 터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난 황급히 풍종도보의 경공을 펼쳐 뒤로 물러났지만, 놈은 끈질기게 공격했다. 무술 실력 또한 날 압도할 정도라 날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놈, 예상은 했지만, 과연 마왕을 이길 만하다. 이랑진군은 강하다.

“번개를 가르는 기술에 대해서 아나?”

이랑진군은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 죽이기 위해 창을 휘둘렀다. 그의 수염은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만큼이나 소중한 것 같았다. 사방팔방 뿌려 대는 뇌전을 막아 내며 손바닥이 새까맣게 타 버렸지만 난 여유를 부리며 그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이 기술은 번개마저 잘라 내지.”

놈의 창은 휘두를수록 더 강력해졌다. 그러나 압박하던 놈이 갑자기 창을 거두더니 뒤로 훌쩍 물러나 이상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난 오히려 공격할 때보다 더한 위압감을 느꼈다. 역시, 이내 놈의 창에서 청색 늑대의 형상이 솟구쳤다. 강력한 번개의 다발이 뭉쳐 형상으로 승화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타 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기가 느껴졌다. 단지 지금까지 몸풀기였다면 저건 놈의 기술, 난 여유를 그만두고 황급히 그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흥, 어디 한번 갈라 보거라! 청랑의 방도가 시작되니, 귀천국엔 재만 남는다!”

놈은 기합인지 헛소리인지 모를 말을 외치며 창을 힘껏 뻗었다.

그러자 청랑의 모습을 한 번개가 우렁찬 천둥소리와 동시에 내게 쇄도했다.

거대한 늑대가 걷는 자리엔 재만 휘날려 신선들의 시체와 더불어 궁전마저 모두 불타 증발했다. 젠장, 부족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끌어올려야 돼.

끼이이이이-!

늑대가 날 덮치기 직전, 난 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에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솔직히 간담이 서늘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뼈까지 재가 될 뻔했다. 난 지금까지 내 힘에 반응하여 변화되었던 메타소드의 형태 중에 가장 무겁고 거대해진 무기를 추켜올렸다. 내 몸보다 더 큰 대력부, 거대한 도끼였다. 난 이 무기를 금강월부(金剛鉞斧)라 불렀다. 번개를 흩뿌리는 청랑이 내게 이를 드러냈지만 금강월부를 휘두르자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소멸하였다.

“뇌절이라고 한다.”

난 위험했던 주제에 능청스럽게 말했다. 당황한 이랑진군의 표정이 대단했다. 얼굴을 힘껏 찡그린 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날 쳐다본다. 사실 정말 번개를 자른 건 아니다. 그저 온갖 것들을 잡아 뜯는 원시 신의 힘을 ‘확장’시킨 것이다.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던 아즈모타카의 힘이라 다른 마물의 힘과 같이 펼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금강탁을 부수며 비로소 내가 아즈모타카의 힘을 모두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음양이기병의 조화를 흡수한 덕에 능히 다른 마물의 힘과 같이 펼칠 수 있었다.

“크윽! 하계의 괴물 놈이!”

확장되고 거대해지는 대륙 거북의 힘은 그 자체로도 대단했지만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많은 것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아즈모타카의 힘이 더 강력히 깃드니 놈이 휘두르는 번개의 창조차 금강월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난 일격에 번개를 날리고, 이격에 놈을 무릎 꿇렸다.

“싱거웠다.”

그리고 삼격에 금강월부를 내려찍으니 놈은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

난 내가 가진 많은 힘 중에서 가장 설명하기 버겁지만, 가장 믿을 만한 힘이 이젠 ‘감’이란 걸 알았다. 직감, 죽음에 대한 경고, 일어날 위기에 대한 경고다. 이랑진군과 상대하며 내 감은 전혀 그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해 줬다. 번개에 몸이 불타고 재가 될 뻔했지만, 그마저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2라운드, 그럴 줄 알았어. 시벌.”

그러나 지금, 단지 갈라진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봤을 뿐인데 내 ‘감’은 무시무시한 경고를 했다. 들리진 않지만 마치 머릿속에서 삐용삐용 사이렌 소리가 세차게 울리는 것 같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방광이 저리다. 이리 쉬이 끝나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빌어먹게도 불길한 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난 반으로 갈라져 죽음에 이르는 상처에 입었음에도 죽지 않는 이랑진군을 지켜봤다.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시각각 놈의 모습이 변했기 때문이다. 난 이내 강렬한 빛 무리에 휘감긴 놈을 보며 어디선가 느껴 본 적이 있는 기운을 느꼈다.

어디선가.

어디선가 난 이 기운을 마주한 적이 있다.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빛, 그러나 시커먼 밤바다보다 더 기분 나쁜 불길함이 느껴지는 빛. 분명히 안다. 그래, 오크 라덴. 오크 라덴의 미친 선동자가 내뿜던 빛이다. 오크 수만 명을 세뇌시킨 힘이었다. 하지만 같은 빛이라 할지라도 놈이 뿜는 빛은 그때와 달랐다. 더 찬란하고, 더 불길하며, 더 사악했다. 마침내 빛이 폭발하자 세상이 정전되어 빛을 가진 자는 오로지 그만 남게 되었다.

*

이랑진군이 그에게 받은 힘은 신에 가까운 존재력이었다.

신선과 신, 마왕이 모두 사라지니 거대했던 세계엔 ‘공백’이 생겨났다.

그러자 이랑진군의 빛이 공백을 메우니 천계는 그의 힘으로 물들었다.

삼청의 신이 사라진 천계는 새로운 신을 받아들였다.

하나의 세계가 그를 떠받드니, 그는 갈망하던 신이 되어갔다.

‘나의 주인이시여.’

그리고 그건 그의 계략이었다. ‘드래곤’의 왕은 대전이를 대비하기 위하여 우주를 자신의 힘으로 물들이고자 했다. 이랑진군은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충성을 맹세하여 불결한 힘을 받아들였다. 그에게 천계는 중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거짓된 하늘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원하는 건 오로지 힘, 곁에서 수천 년 동안 지켜보며 갈망하고 소원했던 신의 지위였다. 천계는 미숙한 신의 탄생으로 암전되었다. 빛을 잃은 세상에서 빛나는 건 이랑진군, 그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순리에 유일하게 저항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신이 아니다. 그러나 신을 죽일 수 있는 자다.

“누구한테 그 힘을 받았지?”

금강월부가 휘둘러진다. 전력으로 휘두르자 곤륜산이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렸다. 그러나 빛은 전혀 꺼지지 않는다. 그는 빛을 마주한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다정은 오크 라덴에서 추종을 강요하던 어떤 자를 만났었다. 비록 그는 형편없이 약했지만, 그가 따르던 무언가의 힘은 아니었다.

“비열한 새끼, 치사한 새끼.”

다정은 본능적으로 이랑진군이 내뿜는 빛, 그 힘의 근원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저 거대한 이랑진군의 힘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다정은 이번에야말로 원장님을 불러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으나 이내 생각을 지웠다. 강해진 힘만큼이나 굳건해진 의지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리라고 각오했기 때문이다. 그의 몸이 불타며 막강한 화염의 폭풍을 불러왔다. 천재지변에 가까운 불길이 곤륜산을 휩쓸어 불태웠다. 그러나 이랑진군의 손짓 한 번에 절대 꺼지지 않을 것 같던 불길이 사그라졌다.

[어찌할 수 없음을 이해하라.]

이랑진군은 더는 생물체가 아니었다. 그는 천계의 유일한 태양이다.

[아득한 절망과 마주했을 때, 결국 기댈 건 빛뿐이었음을.]

생사를 초월한 그는 차분히 자신과 대적하는 존재를 소멸시키고자 했다. 그의 의지에 따라 천계가 움직였다. 천지가 거꾸로 뒤집어지더니, 그가 서 있는 대지가 하늘이 되었고 땅에 발을 딛고 있던 대적자는 하염없이 ‘하늘’을 향해 추락했다. 이내 하늘에서 수천 번의 번개가 내려치니 오로지 전격의 목적은 그 하나뿐이었다.

콰르르르릉-!

찰나의 시간 동안 수천 번 휘몰아친 번개가 끝났을 때였다.

그곳에 다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넌… 넌 무엇이지?]

온몸이 검은 짐승이 고개를 들었다.

*

이랑진군은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힘을 느끼고 있었으나 저 기이한 존재에 대해선 이유 모를 적대감이 들었다. 신과 가까워진 순간부터 더는 그는 적이 아니게 되었는데, 저 검은 짐승은 마치 천계의 신이 된 자신마저 삼킬 수 있을 만큼 기이하고 ‘불길한’ 힘을 내뿜었기 때문이다. 검은 짐승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이내 검은 이를 드러내자 이랑진군은 분노하며 외쳤다.

[짐승, 주제를 알아라!]

감히 자신에게 이를 드러내는 짐승을 향해 이랑진군은 다시 한번 벼락을 몰아쳤다.

벼락의 폭풍은 검은 짐승마저 당해 낼 수 없었다. 생물의 죽음이라기엔 너무 기이했으나 검은 짐승은 몸이 갈라져 사방팔방 흩어지기 시작했다.

‘왜지?’

이랑진군은 분명 자신이 압도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불길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마침내 번개의 폭풍이 끝났을 때, 그는 이내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저건 죽음이 아니었다.

흩어졌던 조각들은 다시 뭉쳐, 검은 짐승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가 된 짐승은 다시 이를 드러내며, 자신을 잡아먹고자 했다.

[놈!]

수천 번의 번개가 그의 의지에 따라 멈추지 않고 내려쳤다.

이랑진군은 감히 자신에게 접근조차 못 하는 짐승을 보며 안도했다.

꺼림칙하나 이대로 수천, 수만, 수십만 번을 죽이다 보면 언젠가 소멸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랑진군은 초조해졌다.

검은 짐승, 놈의 모습이 점점 바뀌고 있었다.

번개에 몸이 찢기고 다시 합쳐질 때마다 모습은 더 뚜렷해졌다.

이랑진군은 저 짐승의 모습이 마치 황소와 같다고 생각했다.

콰르르릉!

번개가 내려쳤을 때였다.

이변이 발생했다. 검은 짐승은 상처 입지 않았다. 대지를 부수고 불태우는 벼락에도 짐승은 멀쩡히 네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이럴 순 없어. 난 신이 되었다. 천계의 신이.’

이랑진군의 몸이 더욱 강렬히 빛났다. 곧이어 하늘에 번쩍 번개가 쳤는데 벼락은 짐승을 향해 내려친 게 아니었다.

콰콰콰쾅!

수천 번의 번개는 한곳을 향해 내려쳤고, 뇌기가 한데 뭉쳐 형상을 이루니 마치 용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번개의 용이 몸부림칠 때마다 사방팔방 벼락을 뿌리며 천계의 산들을 불태웠다.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이랑진군은 생각했다.

저 번쩍이는 번개의 청룡은 분명 자신이 갈망하던 신의 힘과 비견될 만큼 아득하다.

능히 신의 힘이니, 아무리 불길한 검은 짐승이라고 할지라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루가 되어 버릴 것이다.

콰아아!

청룡이 검은 짐승을 삼켰을 때, 그 여파로 일순간 천계는 정지되었다.

힘의 충돌로 대전이의 균열이 벌어지며 생긴 현상이었다. 믿을 수 없는 힘에 환희에 찬 이랑진군만이 정지된 세계에서 크게 웃음소리를 남겼다.

크하하하-!

그러나 멈춰진 세계가 다시 움직이자 그의 웃음소리는 멈추었다.

청룡이 남긴 거대한 구덩이엔 그것이 있었다.

황소의 형상을 한 검은 짐승.

그 모습은 마치 원시의 신이었던 아즈모타카와 비슷했으나 그 또한 ‘그것’의 파편이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검은 짐승은 사냥하지 않았다. 싸움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잡아먹는 것, 포식의 형태를 취했을 뿐이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먹잇감을 뜯어먹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명백한 의도를 지녔지 않았던 것이다. 이랑진군은 짐승의 억센 허리는 드넓은 대지처럼 굳건하다고 느껴졌다. 뱃가죽에서 뻗치는 힘은 별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갈비뼈는 무쇠 빗장같이 단단했으며, 힘줄이 엉켜 터질 듯한 다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강물에 휩쓸려도 쓸려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떠한 힘으로도 결코 쓰러트릴 수 없는 짐승처럼 느껴졌다.

그뿐이 아니다.

또다시 짐승은 변하기 시작했다.

황소의 등에 날개가 생겨났다.

단단한 뿔은 사라지고 부리가 생겨 난다.

이내 검은 짐승은 날아올라, 이랑진군에게 쇄도했다.

그러자 천계의 신이 된 이랑진군조차 뱀 앞의 쥐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새들의 왕은 봉황이 아니다.

붕새를 굴복시킨 건 태초 이전의 존재다.

구원받은 자들이 그것을 부르길, ‘???’라고 하였다.

순식간에 검은 짐승에 잡아먹힌 이랑진군은 그에게 받은 모든 힘을 내뿜었으나 짐승의 검은 부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삼켰다. 이랑진군이 사라지자 뒤집어진 천지가 바로 잡히고 암전된 천계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더불어 신을 잡아먹는 짐승도 천천히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

과거 이랑진군은 제천대성을 토벌하기 위해 상제의 명을 받고 화과산에 내려가 그를 굴복시켰다. 그러나 실상은 제천대성의 수만 분신 중의 하나를 쓰러트렸을 뿐이며, 그마저도 전력을 다하여 간신히 이겼을 뿐이다. 하지만 이랑진군은 제 위업을 포장하여 거짓으로 고하였으니, 이랑진군은 상제를 보좌하는 수호장군에 봉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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