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1권] 19회- 스스로에게 준 이름
식사를 다 마치고 그들은 말없이 있었다. 단테는 분위기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아자리 양한테 갈게요. 정신이 들었을 때 모르는 곳에 혼자 있으면 무섭잖아요.”
“다 괜찮아질 거라고 안부 전해줘.”
그가 나가자 천막에는 둘만 남았다. 레스는 이제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몰라서 곤란했는데 샤카자이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싸우나?”
너무 간단한 질문이라서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는 표정을 풀고 대답했다.
“살면서 많이 싸워봤고 아직도 팔다리 멀쩡해. 그래. 잘 싸우는 거 같아.”
“사람도 죽여봤어?”
레스는 표정이 굳었다. 이번에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그가 말했다.
“난 생존을 위해서만 싸워.”
샤카자이아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를 의심하거나 추궁을 하려는 의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주 순수하고 평범한 시선이었다. 그러니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레스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또 곤란해졌다.
“이름이. 레스알하자르? 맞지?”
“레스. 알. 하자르. 띄어서 발음해줘 중요하니까.”
“발음하기 너무 어려워.”
“그럼 레스라고 부르면 돼.”
그녀는 조금 뜸을 들이고 목을 가다듬은 다음 말했다.
“나는 샤카자이아.”
레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어. 만나서 반가워.”
“너희 일행은 한시가 급한 거 맞지?”
“그래. 새삼스레 왜 물어?”
“난 오늘 밤에 나갈 거다. 같이 할거지?”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다문 채 턱을 떨궜다. 레스는 샤카자이아의 무뚝뚝한 표정을 보고 나서야 상대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그가 떨떠름한 투로 말했다.
“아까 추장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잖아?”
“하지만 날 밧줄로 꽁꽁 묶어놓은 건 아니지. 해야만 할 일이 있다. 우리 둘 다. 그리고 우리 서로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 같다.”
거침없이 말하는 상대의 기세에 밀려 레스는 당황하여 한 번 얼굴을 돌리고 얕게 탄식했다.
“첫 만남도 별로인 데다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외부인하고 위험한 곳으로 싸움을 각오하고 함께 가겠다고? 추장님의 명령까지 어기면서? 이게 보통으로 들려?”
“지금이 보통 상황인가?”
그녀는 묻는 의도를 진심으로 이해 못 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레스는 답답하기도 하고 조금 화도 나면서도 그 당돌한 모습에 감탄이 나와 말문이 막혔다. 목을 가다듬고 그는 살짝 낮아진 목소리로 손짓하며 말했다.
“반박할 수가 없네. 이제 어쩔 생각이야?”
샤카자이아는 손으로 바닥을 밀면서 민첩하게 일어나 근처에 걸어둔 활을 챙겼다. 그녀는 자기가 쓰는 활을 몸에 걸고 다른 활도 들어서 레스에게 던졌다. 활을 받자마자 시위를 손으로 쓸고 있는 상대에게 그녀는 물었다.
“쓸 줄 아나?”
“그럭저럭.”
레스는 시위를 손끝으로 소리 나게 튕겼다. 샤카자이아는 의심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정말? 바깥세상도 아직 활을 쓰나?”
“사격을 익히기 전에 활쏘기부터 배웠어. 기초를 다지는 데에 도움이 되거든.”
레스는 활을 몸에 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카자이아는 화살집과 함께 크기가 작은 활도 따로 더 챙기고 앞장섰다.
둘은 연습장으로 쓰이는 공터에 왔다. 표적지로 쓰는 고목은 원주민들의 만행으로 드릴이라도 들어갔다 나온 듯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더니’ 레스는 게슴츠레 눈을 뜨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훈련장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한 번 솜씨를 볼까.”
샤카자이아가 그에게 화살 하나를 건네면서 말했다. 그는 화살을 끼운 시위가 입술에 닿을 때까지 당겼다. 활의 장력이 예상한 것보다 강해서 그의 팔이 힘에 부쳐 파들거렸다. 손을 놓자 시위를 떠난 화살은 표적을 완벽하게 빗나가 땅에 떨어졌다. 겨우 한 번 쐈을 뿐인데 레스의 손끝이 퉁퉁 부었다.
“오랜만이라서 그래!”
체면이 구겨진 레스는 투덜거리면서 다른 화살을 달라고 손을 뻗었다. 샤카자이아는 화살 대신에 그가 든 것보다 작은 활을 대신 건넸다. 받아서 시위를 당겨보니 아까 쓰던 활보다 장력이 약해서 훨씬 다루기 편했다. 그녀가 말했다.
“바깥에서 온 사람한테 무기를 빌려준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의 활이 체급에 맞는지 시험해봐야 했다. 방금 네가 쓰던 활도 우리 기준으로는 약한 편이었다만 적절하지 않았군.”
화살을 받는 대로 레스는 바로 쐈다. 방금의 실책은 뭐였냐는 듯 화살은 정확히 표적 가운데에 꽂혔다. 샤카자이아가 칭찬의 의미로 양 손목을 붙이고 손바닥만 움직여서 앙증맞게 손뼉을 쳐줬다.
“뱉은 말은 지켰군.”
“좋은 활이야. 이걸로 할게.”
레스가 다음 화살을 받고 시위를 당기려는 순간 갑자기 샤카자이아가 바람처럼 움직였다. 레스의 귓가로 옆에서부터 장궁이 퉁기는 굵은 소리가 쑤셔박혔다. 동체 시력이 좋은 레스는 자기가 쏜 화살이 날아가는 도중에 다른 화살에 부딪혀서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확실히 보았다.
“엉?!”
그녀는 레스의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샤카자이아가 쓴 활은 방금 레스가 낑낑거리며 겨우 당겼던 거였다. 그걸로 방금 옆 사람이 날린 화살을 맞춰서 떨어트린 것이다. 약간 나중에 당겨서 맞췄다는 건 조준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물론이고 레스가 날린 화살이 날아갈 거리까지 얼추 직감으로 예측했었다는 의미다. 그는 진심으로 경악해서 머릿속에 쥐가 나려고 했다.
“우와오. 너희 종족이 활쏘기를 잘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네.”
그녀는 조금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요즘은 우리도 총 쓰는 법을 익히고 있어서 나처럼 활만 쓰는 사람은 줄고 있다. 아무튼, 여기서도 내가 좀 하는 편이지.”
그 거만해진 표정은 갑자기 무표정으로 변했다. 뭔가 중요한 사실을 다시 떠올린 듯 침묵하다가 그녀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왜?”
“화살 부서졌겠다. 아껴놨던 건데.”
모르는 사람은 그게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먼 곳까지 곧게 잘 날아가는 화살은 만들기가 까다로워서 제법 귀하다. 방금 솜씨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까먹은 듯하였다.
하고 싶은 말은 다양했지만 직접 입 밖에 꺼내면 명만 재촉할 뿐이니 레스는 묵묵히 화살이나 주웠다. 샤카자이아는 뭉뚝해져 버린 화살촉을 보고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쏴놓고 내버려 둔 다른 화살들까지 모두 챙겨서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그녀가 물었다.
“넌 총잡이인데 활쏘기는 뭐하러 배웠나?”
레스는 화살에 묻은 흙을 털다가 먼 산 바라보는 시선으로 허공을 보았다.
“스승이 시켰어. 처음 수업을 받았을 당시에는 나만의 총도 없었고. 무언가를 쏴서 맞춘다는 개념은 같으니까 익히면 도움이 되잖아. 그리고 화살은 쏴서 다시 주울 수도 있지.”
“호오. 스승이 있었구나.”
그때 레스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고개를 살짝 떨면서 눈을 껌뻑였다. 그는 촉이 뭉개진 화살을 골라 시위에 끼우고 조준했다. 샤카자이아가 말했다.
“어디를 겨누는 거냐?”
레스가 노리는 방향은 표적지의 오른쪽이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활도 반쯤 눕혀서 비스듬히 기울어졌고 화살도 시위 정중앙이 아니라 왼쪽으로 치우쳐서 걸려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샤카자이아는 이해가 안 됐지만 일단 보았다.
그가 손을 놓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날아가다가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져 고목의 옆에 박혔다. 마치 화살이 자기 의지로 방향을 바꾼 것 같다. 도중에 강풍은커녕 산들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레스는 ‘흠’하고 고개를 갸웃 흔들었다.
“역시 제대로 맞추는 건 무리인가.”
“방금 뭐였냐! 뭘 한 거야?!”
레스는 정말 의외라는 반응으로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곡사할 줄 몰라? 활이 주력인데도?”
“무기는 제대로 겨누고 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어떻게 한 거냐고?!”
아까까지 자기 실력을 자랑하던 상대가 이렇게 나서니 레스는 살짝 갚아주고 싶은 변덕이 들었다. 그가 화살 하나를 들어 보이면서 설명해줬다.
“화살에 깃이 3개 달렸지? 이 깃 덕분에 화살이 날아가면서 회전하고 궤적이 곧아지지. 하지만 비스듬히 걸어서 쏘면 한쪽 깃에만 바람이 닿게 돼. 물론 비스듬히 걸어서 쏴버렸으니 몸통도 공기의 저항을 받게 되고.”
레스는 화살을 들고 천천히 걸으면서 자신의 설명을 눈으로 보이게 표현했다.
“한쪽만 공기의 저항을 받으면 결국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도 한쪽으로 쏠리게 돼. 그럼 화살에 실린 힘이 사라져갈 때 방향도 틀어지게 돼.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아. 어쩌다 어깨너머로 본 거 흉내만 내는 거지.”
공용어에 익숙지 않은 샤카자이아가 자신의 설명을 바로 이해했을지 레스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어떻게든 받아들인 거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는 물었다.
“원리는 그렇다 치고. 실용적인가?”
“휘어서 나는 화살은 평범하게 쏘는 것보다 위력이 약해. 위력이 약하니 사거리도 짧지. 심지어 요즘은 총이라는 것도 있다더라.”
하지만 호기심을 이길 수가 없었던 샤카자이아는 당장 화살을 하나 찾아서 아까 레스가 한 자세를 흉내 냈다. 시위에 건 화살은 아까 그녀가 망가트려서 촉이 뭉개진 거였다.
“굳이 촉이 뭉툭한 화살을 쓴 까닭은 날아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지?”
“제대로 알아들었구나. 촉이 무거울수록 잘 휘어져.”
샤카자이아의 똑똑한 모습에 레스는 조금 당황했다.
“이렇게 잡으면 되나? 시위를 덜 당겨볼까?”
“어…. 활을 눕히는 각도가 수평에 가까워져도 더 잘 휘어져. 지나치게 휘어지면 화살이 아예 돌아오니까 쏘고 나서 조심하고.”
그녀는 감각만으로 알아서 해볼 작정인지 계속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다가 집중하고 시위를 당기고 놓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휘파람을 불며 날아가던 화살은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도중에 방향을 바꾸고 표적 근처에 박혔다. 점수를 매기면 최하점도 안 되는 장소지만 그래도 화살은 틀림없이 원하는 곳에 날아갔다.
두 사람은 턱이 빠진 사람처럼 입을 쩍 벌렸다. 샤카자이아는 잔뜩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레스의 뒤에 나타난 사람을 보고 물벼락 맞은 표정을 지었다. 레스가 뒤를 돌아보니 추장의 수행원 중 하나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상대는 샤카자이아에게 눈길 한번 안 주고 레스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순식간에 주눅이 들었다. 수행원이 그에게 말했다.
“이쪽이다 이방인. 추장님의 명이다.”
상대의 공용어 실력은 샤카자이아보다 못했으나 간신히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아직 자리를 떠나기 싫었으나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레스가 샤카자이아에게 손짓을 보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행원은 다른 말 없이 먼저 앞장섰고 그는 따라갔다.
그들은 마을의 외곽으로 갔다. 나무 울타리가 나타났다. 살아있는 나무를 접목해서 만든 거였다. 수행원이 덩굴을 들추자 감춰진 통로가 드러났다. 가는 길이 어두워지는 만큼이나 레스의 기분도 어두워졌다. 인제 와서 해코지당할 이유는 없었어도 그냥 예감이 안 좋았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수행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레스는 자꾸 잃어버린 권총이 생각나서 오른손이 습관적으로 허리를 더듬고 있었다.
움막이 보였다. 여기가 목적지인 모양이었다. 주변 지형과 사물로 씌워진 위장이 감쪽같아서 근처에 추장이 없었다면 레스는 모르고 지나갔을 정도로 잘 감춰져 있었다. 추장은 만나자마자 일단 인사부터 하려는 레스에게 손을 보이며 그의 입을 막고 움막을 가리켰다.
“여기에는 총들이 보관되어 있네. 우리에게 싸움을 건 적에게서 노획한 것과 물물 교환으로 가끔 얻은 것들이지.”
“총?”
“한 번 둘러보게나.”
그들은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지하실에 들어간 것처럼 서늘했다. 수행원 중 한 명이 횃불을 켜고 어둠을 걷어내자 레스는 이유를 알았다. 움막은 동굴의 입구를 감추기 위해서 세워진 거였다.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가자 마른 풀로 덮인 나무 상자들이 보였다. 추장이 직접 상자를 열어줬다. 레스는 자세히 보고는 탄식을 참지 못했다.
“이런 맙소사.”
안에 들어있는 총들은 백 년 전에나 현역으로 쓰이던 물건들이었다. 지금 시대에는 수집가들에게나 가치가 있었다. 가장 시기가 빠른 게 퍼커션 캡이고 심지어 화승총처럼 보이는 뻘건 쇠막대기도 보였다.
레스가 그들에게 물었다.
“쓸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는 겁니까?”
품질도 문제였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걸 꺼내서 방아쇠를 움직여봤는데 뻑뻑했다. 추장이 말했다.
“놈들은 자기네들 제식 무장은 물론 인간한테서 노획한 총도 갖고 싸운다네. 그래도 숲이라는 가장 든든한 아군 덕에 막을 때는 어렵지 않았네.”
“그럼 전면전은 이번이 처음이군요. 어쩔 생각이시죠?”
“싸울 수 있는 사람 절반은 마을에 남기고 나머지는 내보낼 거야. 일단은 정찰이 먼저지만 싸움을 각오할 생각이네. 오늘 밤을 놈들이 조용히 넘길 리가 없으니.”
“전사 중에 총을 다루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추장은 덤덤히 말했다.
“사용법은 아무나 배울 수 있지. 하지만 실력으로는 다 합쳐도 자네는 못 이기겠지.”
레스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저에 대해 잘 아시는 것도 아니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왜 이걸 제게 보여주시는지요?”
추장이 수행원 중 한 명을 바라보자 그 수행원은 동굴 더 깊은 곳을 향해 자리를 떠났다. 추장이 말을 이었다.
“선택권을 주려면 현실을 제대로 보여줘야 옳으니까. 몰래 나가서 싸울 거라는 거 우리가 예상 못 할 거 같았나?”
레스는 속이 뜨끔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통….”
“자네들은 갈 길이 급해. 하지만 마차는 필요하지. 그래서 우리가 보상하겠네.”
방금 사라졌던 수행원이 작은 상자를 양손에 들고 돌아왔다. 추장이 상자를 받아서 뚜껑을 열고 레스에게 내용물을 보여줬다. 황금 알갱이가 가득했다. 안에 담긴 황금이 반사한 빛으로 동굴의 천장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추장이 상자의 뚜껑을 닫고 나서야 레스는 나갔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얼떨떨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설마 이게 저희 거라고요?”
“자네들이 이 일에 책임질 여지는 전혀 없어 사쿠라비. 오히려 우리가 빚을 졌지. 모자라면 조금 더 얹어줄 수도 있네.”
혼란한 시국일수록 금의 가치가 어떠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만한 양이라면 그들이 잃어버린 물건들을 다 채우고도 이윤으로 몇 배는 남길 수 있었다. 상대가 아직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양이니 마음을 굳힐 수 있도록 추장은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략은 놈들을 포위하고 기다리는 것뿐이야. 정직하게 붙어서는 승산이 없어. 이제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이해해주겠나?”
저쪽 일행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아직도 복잡한 표정으로 가만히만 있는 레스를 향해 추장이 최후통첩을 날렸다.
“안 받을 거면 그냥 쫓아낼 거야.”
결국, 레스도 마냥 침묵을 지킬 수는 없게 됐다.
“애들하고 상의해봐야겠습니다. 금은 서로를 위해서 일단 숨겨주세요.”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기념품도 안 가져가나?”
추장이나 다른 사람들은 정말로 황금에 미련이 없는지 아까워하는 눈치가 안 보였다. 레스는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거기서 손끝으로 알갱이를 몇 개 꺼내고 주머니에 넣었다.
일행은 바깥으로 나왔다. 추장과 레스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우거지고 복잡했는지 아까 왔던 길인데도 집중을 흩트리면 헤맬 정도였다. 울타리를 지나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는 혼잣말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마을 위치가 발각될 일은 없겠어. 하지만 도적들은 분명 마을 근처에다가 불을 질렀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