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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화 〉[2권] 56회 - 연방보안관 (56/188)



〈 56화 〉[2권] 56회 - 연방보안관

양아치들이 물러나는 모습을 별 감흥 없이 보고 있던 아자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최근에 이거랑 비슷한 상황을 본 거 같은데요.”

그녀가 레스에게 속삭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네. 나도 그래.”


폐광촌에서 히콕을 처음 봤을 때하고 느낌이 비슷했다. 한편 모자를 쓴 남자는 샤카자이아하고 마주 보았다. 샤카자이아가 먼저 말했다.

“나 말고 다른 부족 사람이라도 만났던 건가?”

남자는 고개를 조그맣게 절레절레 저었다.

“너희들은 카우보이들 사이에서 유명하거든. 진정한 의미로 마지막 원주민이니까.”


계속 대치했다. 상대가 아직도 가게를 나갈 기미가 보이질 않아서 그녀는 물었다.

“우리들한테 볼일이라도 있나.”

“이름.”

“너희들 따위하고는 이름 나누기 싫다.”


남자는 얼굴을 아자리 쪽으로 돌렸다. 아자리도 샤카자이아하고 같은 마음이었다. 상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말했다.

“다짜고짜 여자에게 이름을 묻는 건 신사의 도리가 아니지요.”

“흠.”

남자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인상이 찌그러지고 눈동자는 파르르 떨렸다. 나름대로 품격 있는 무법자를 연기하려고 노력했지만 본성을 완전히 감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남자는 끝까지 마음 넓은 척 했다. 그가 이번에는 레스를 바라보았다.

“너도 갱단에 가입하려고 이 도시로 왔나?”

레스는 일단 심리전의 일환으로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럴지도. 하지만 아닐지도.”


“가입하겠다면 ‘클랜턴’만 빼고 다른 곳으로 가라. 깊이 새겨들으라고 친구.”

‘클랜턴’은 저 남자가 소속되어 있는 갱단을 의미하는 거리라. 레스는 한쪽 눈썹을 슬쩍 움직이면서 물었다.


“그쪽 갱단은 총잡이들 대우가 형편없나봐?”

“천만에. 더 좋을 수가 없지. 하지만 가입을 하려면 나를 거쳐 갈 수밖에 없거든. 굳이 더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그렇군.”

레스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이정도면 충분히 체면치레했다고 생각했는지 남자는 모자의 챙을 붙잡고 기울이면서 일행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 문이 완전히 닫히자 아자리가 입을 열었다.

“결국 언니한테 겁먹고 도망치는 주제에 끝까지 멋진 척 하네요.”


“남자들이란.”


샤카자이아가 굵고도 짧게 말했다. 레스도  말을 듣고 은근히 속으로 찔렸다.


“결국 샤키 혼자서 다 처리해줬네.”


레스가 그렇게 말하자 샤카자이아는 그를 바라보며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도 않다. 네가 뒤에 있어서 안심했으니.”


말하면서 그녀는 레스의 오른손을 덮고 있는 망토자락을 슬쩍 집어서 치웠다. 레스는 이미 권총을 뽑아서 망토 밑으로 앞쪽을 겨누고 있었다. 아자리가 턱에 손을 괴면서 그쪽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 양반이 정말 당신을 보자마자 권총으로 겨눠지고 있었다는 걸 눈치 챘을까요?”

“눈치 챘어. 나를 갱단에 가입하러  놈으로 착각했잖아. 입만 살아있는 놈은 아닌 거 같아.”

“그렇게 대단해보이지는 않던데요.”


“실력은 정직하게 붙어봐야 아는 거야. 상대가 누구든 얕잡아보는 건 좋지 못해.”

샤카자이아도 아까 그 남자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레스의 말은 공감이 갔다.

“맞는 말이다. 아무튼 다행스럽게 조용히 끝났군.”

“이만하면 충분히 평화적이라고 쳐도 되겠지?”

레스가 들고 있던 총을 위로 들어 올리고 멋을 부려서 돌리는데 때 마침 윈프리와 단테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한 것도 없으면서 생색내는 모습으로 보일까봐 급하게 총집으로 권총을 꽂았다. 단테가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총소리가 나기를 기대했는데.”

윈프리는 바텐더 자리에서 잔을 닦고 있는 아자리를 보면서 깔깔 웃었다.


“어머나. 굉장히  어울리는구나. 미성년자라는 점을 빼면.”


“이래봬도 성년이에요.”


“그래? 우리들보다 오래 사는 종족인가 보구나. 올해로 몇 살이니?”

“스물 둘이요.”


어른이 물으면 답을 해야 하니 아자리는 별 생각 없이 말했다가  늦게 실수를 깨달았다. 샤카자이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고 레스는 눈가를 부여잡고 있다. 사정을 알리가 없는 윈프리는 묵묵히 아자리의 옆자리로 갔다. 단테와 샤카자이아도 일단은 레스의  옆으로 갔다. 윈프리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4개 꺼내고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제일 좋은 방이야. 너희들에게 빚을 졌으니 하루는 무료로 해줄게.”

마음 같아서는 호의에 감사를 표하고 당장 들어가서 쉬고 싶었지만 그들은 며칠 동안 야외에서 생활하느라 많이 지저분했다. 아자리는 물어봐야만 할 게 있었다.

“그런데 근처에 영업하는 목욕탕은 없나요?”

“목욕탕? 아아, 오늘 계속 찾아다녔구나? 시에서 공문을 내려가지고 다들 쉰지 오래됐어.”

“시에서 목욕탕 운영을 막았다고요?”

단테가 말했다. 윈프리는 말을 이었다.

“지하수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문제가 생기고 있거든. 자세히 말하자면 길어져.”

이번에는 레스가 말했다.

“그럼 여기 물은 나옵니까?”

그 말을 듣고 윈프리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에 걸려있는 열쇠를 빙글빙글 돌렸다.





하딘하고 피카니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엘리베이터 걸과 함께.


“다음 내리실 곳은 17층. 연방보안관 사무소이십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듣기 부담될 정도로 친절한 안내를 들으며  남자는 모자를 기울여서 인사해준 다음 바깥으로 나왔다. 건물 안은 고급 살롱하고 구분이 안  정도로 화려했다. 바닥에는 카펫이, 천장에는 소형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그리고 벽들은 모두 윤기가 흐르는 밤색 떡갈나무로만 이루어졌다. 부보안관과 용역들이 이용할  있는 휴게소까지 설치되어 있는데 무료 커피와 담배도 비치되어있었다.

두 남자는 노숙을 해도 호텔 못지않게 편안할 곳을 걷다보니 이 도시의 부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건지 절로 깨달았다.

“자네 집만큼이나 화려하군.”


하딘이 그렇게 생각 없이 말하자 피카니가 시큰둥한 티를 내면서 대답했다.


“전 집이 없습니다.”

“없다고? 돈도 있으면서?”

“용사가 된 이후로 같은 장소에 이틀 이상 머물러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피카니는 의도적으로 수염을 깎지 않고 내버려  채 자세를 조금 구부정하게 잡은 다음 하딘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피카니는 특별한 변장 없이도 사람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연방보안관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비서가 그를 만나려면 일정을 잡아야한다고 제지했지만 항상 그랬듯 제국군이라고 신분을 밝힌 다음 그들은 쳐들어가다시피 사무실로 들어갔다.

연방보안관은 턱수염만 길러서 깔끔하게 다듬은 멀쑥한 사내였다. 코에는 동그란 안경이 걸렸고 머리카락과 눈은 검은색이었다. 얼굴에는 주름  점 없는 모습을 보아하니 피부 관리에 노력을 많이 기울였거나 살아오면서 고생을 해본 일이 별로 없던 것 같다. 가슴팍에는 방패와 검이 그려진 배지가 붙어있다. 그는 책상에 놓여있는 전화기로 한창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있었다.

“잠깐만. 누가 왔군.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전화기 자체는 5년 전에 실용화 되었지만 가격이 비싸서 아직까지도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피카니조차도 전화기를 써본 일이 거의 없어서 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옆에 있던 하딘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다. 연방보안관은 금박 장식이 붙어있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양손을 모았다. 하딘이 먼저 말했다.


“헨리 플러머 보안관이지?”


“몇 시간 전에도 이렇게 불쑥 찾아온 손님들이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의 상관이신지?”


그의 말투에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도도함이 자연스레 느껴졌다. 하딘 대위는 품속에서 아자리의 수배전단지를 꺼내서 펼쳤다.


“이것에 대해서 설명해주시지.”

“부탁한 대로 해드렸을 뿐입니다만.”

“극비리에 찾아내라고 내 부하들이 강조하지 않았나? 특히 이 여자는 우리가 쫓고 있다는 사실조차 드러나면  돼!”


헨리 플러머 보안관은 상대의 호통을 무시하듯 낯빛을 바꾸지 않고 태연히 대꾸했다.


“그렇게 중요하면 기밀이라며 말 돌리지 말고 정확한 이유를 말씀하셨어야죠. 저는 경찰입니다. 당신들은 군인이고. 이런 의견 차이정도는 예상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피카니는 표면적으로 하딘의 조수를 연기하는 중이니 끼어들지 않고 얌전히 궁상맞아 보이는 인상을 굳히며 그대로 있었다. 하딘이 다시 말했다.

“허. 그럼 여자 쪽의 2만 탈레르라는 현상금은 무슨 근거로 메겨놨지?”


“당신들 부하가 여자 쪽이 더욱 중요하다고 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남자 쪽의 현상금을 여섯 배 정도 불려서 적었습니다.”

농담하는  같은 말투로 플러머 보안관이 설명하자 하딘 대위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잃었다. 닫힌 입에 못질을 하겠다는 양 그가 말을 이었다.

“저하고  부관들, 그리고 기마경찰대까지 다 합쳐도 가용가능한 모든 병력은 150명 정도 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10만 명에 가깝고 갱스터도 우글거리죠. 이 빌어먹을 도시의 치안을 겨우 지키고 있는데  놈들을 찾는데 쓸 여유가 있을까요?”

“말 잘했군. 갱단들의 세력이 이렇게 커질 때까지  하고 있었나?”


언쟁이 더욱 가열되자 여태껏 무표정을 지켜오던 플러머도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수적으로 밀리니 저희들이 물리적으로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군인도 전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질 때가 있잖습니까, 놈들도 수법이 날이 갈수록 교활해져서 영장을 발급하기도 어렵고요.”

 이상 질질 끌어봐야 의미 없는 말싸움만 이어질 거 같아서 피카니는 여기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위님. 그 마법가게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러 오지 않았습니까.”

하딘 대위는 귀 기울여서 듣는 시늉을 하고는 연방보안관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플러머 보안관은 살짝 콧방귀를 끼고 건조하게 말했다.

“마법가게는 북쪽에 있습니다. 무슨 용건으로 그 사람을 찾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롱라이더스’라는 갱단을 만나보시죠. 그쪽 구역을 점령한 놈들입니다.”


“그렇군.”

하딘은 한 호흡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하나만 더 물어보자고. 제국군에게 악감정이라도 있나? 도움이 절실한 처지 아니었나?”


“지금 도시 옆에 눌러앉아서 기생하고 있는 제국군 병사들이 무슨 민폐를 끼치는지 정말 듣고 싶습니까?”

“충분히 들은  같군. 중요한 일이 생기면 다시 오지.”


“해피 헌팅(좋은 사냥되시길).”

두 사람은 보안관의 작별인사를 뒤로하고 사무소를 나온 뒤에 말없이 걸었다. 승강기가 자기들 앞으로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피카니가 먼저 운을 뗐다.


“그 보안관 냄새나지 않습니까? 어떤 형태로든 갱단들하고 결탁했을 겁니다.”

하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증은 가지만 아직은 증거가 없어.”

“제 정체를 미리 드러내는 게 더 좋았을까요?”

“아니. 그럼 갱단들 배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정보가 샐지도 모르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자고. 나중에 가서 통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놈의 여행은 날이 갈수록 신물이 나는군요.”

문이 열려서 두 남자는 승강기 안으로 들어갔는데 엘리베이터 걸은 아까 봤던 모습 그대로 똑같이 서있었다. 다른 사람 들어서는  되는 이야기는 피해야하니 피카니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런데 저희들 밥은 어디서 먹죠.”

하딘도 마침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게.”


“건물을 나오셔서 오른쪽으로 향하시면 식당 거리가 나옵니다.”


엘리베이터 걸이 친절하게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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