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2권] 67회 - 추적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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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지역의 공기에 피 냄새가 풍겼다. 죽은 롱 라이더스 갱단원들이 모두 수레에 실렸다. 시체들이 너부러졌던 자리에는 분필로 윤곽선이 그려졌고 핏자국에는 파리가 꼬였다. 죽은 사람이 수십이나 되어서 순찰 중이던 기마경찰대원들까지 손을 거들어줬다.
“세상이 어찌되려고 자꾸 난리냐.”
기마경찰이 손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벅벅 문지르면서 투덜거렸다. 옷이나 손에 묻은 피가 점성 때문에 순식간에 굳어서 난장판을 정리하는 사람들은 도살장에서 일하고 온 꼬락서니가 됐다. 방금 투덜거린 기마경찰의 파트너가 맞장구쳤다.
“어제는 서쪽에서 금은방이 난리더니. 오늘은 북쪽이 난리로군.”
두 사람은 전날에 레스와 아자리가 난리를 피웠던 가게를 찾아갔던 그 기마경찰들이었다. 지금 있는 곳은 관할구역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싸웠을까? 지금 갱단들끼리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데?”
인도와 도로에는 분필그림과 핏자국들이 난무했고, 갱단들의 사무소는 창문들이 모조리 깨져있다. 안에서 폭탄이라도 터졌는지 1층은 벽이 일부분 허물어져 있었다. 허물어진 벽 너머로도 실내에서 일어난 싸움의 참상이 엿보였다.
그의 파트너가 방금 말에 대답하듯 중얼거렸다.
“시체들이 걸치고 있던 장신구나 금품도 손을 댄 흔적이 없고, 건물 안에 있는 금고들도 멀쩡하다고 하더라. 가져간 것은 모조리 마법에 관한 물건들뿐이야.”
“톤토랑 함께 사라진 물품들이 죄다 여기에 있었나. 대체 누구지?”
“썩어빠진 도시지만 이렇게 영문 모를 일이 연달아 터진 적은 없었어. 어제 것과 합쳐서 이게 정말 우연일까?”
“건 그렇고 사람이 죽었는데 이런 말하기는 뭐하다만 속은 시원하다.”
다른 경찰들은 구경하러 온 시민들을 현장으로부터 쫓아내면서 출입금지를 푯말을 세웠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피비린내를 맡고 느낀 당연한 불쾌감과 갱들에게 앙심이 많았던 이들의 통쾌해하는 얼굴이 출몰하였다.
그의 말에 파트너가 얼굴을 찌푸리고 지적했다.
“어쩔 수 없이 갱에 들어간 사람도 많다는 거 알잖아. 경찰로서 그게 할 소리야?”
“알아. 나도 안다고. 하지만 우리는 놈들한테 할 수 있는 게 없었잖아. 그런데 우리를 대신해서 누가 대신 심판을 내려줬잖아. 황야개척시기를 그렇게나 좋아하던 놈들의 수준에 맞춰서. 당연히 통쾌하지.”
파트너는 더 할 말을 못 찾고 혀를 찼다.
더 이상 이곳에 볼일도 없는데 자신의 파트너가 말 위로 오를 기미가 보이질 않아서 기마경찰대원이 물었다.
“그런데 왜 자꾸 여기 있는 거야? 여기 냄새 난다고.”
“내 생각이 맞는다면 연방보안관이 특단의 조치를 내렸을 거야.”
“뭐?”
“드디어 저기 온다.”
시민들 너머로 소란이 터지더니 인파가 케이크 쪼개지듯 좌우로 갈라졌다. 그 사이에 나타난 형상을 보고 경찰대원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조 ‘아퀴라스’ 레오포드.”
밀짚으로 만든 하얀색 중절모를 쓰고 세로 줄무늬가 들어간 정장을 입은 중년의 신사가 구둣발로 현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정장 위로는 갈색 프록코트를 걸쳤고 허리춤에 권총은 없었다. 대신 작은 단도가 허벅지에 묶여있었다. 파리한 얼굴 가운데에는 크고 굽은 매부리코가 소총의 가늠좌처럼 솟았고 연하늘색 눈동자는 무생물처럼 빛났다. 입가와 뺨에는 깊은 주름이 파여 있다. 피부는 검붉었다.
경찰대원의 파트너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단짝.”
레오포드의 옆에서 사람 몸집의 두 배는 될법한 거대한 회색 늑대가 같이 걸었다. 멀리에서도 털의 보풀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까지 생생하게 보였다. 늑대가 사람 옆을 따라 도심 속을 걷고 있으니 그 모습에서 장엄함까지 느껴졌다.
다른 경찰들이나 시민들은 늑대가 무서워서 그에게서 물러났지만 두 기마경찰은 정중한 태도로 레오포드를 마중했다. 기마경찰의 파트너 쪽이 먼저 말했다.
“선생님. 비록 저희들이 서로 복잡한 처지이기는 하지만 저는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옆에 있던 기마경찰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혹시 저희가 도울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레오포드는 감정 없는 눈빛으로 눈살만 오므렸다.
“자네들 담배 피우나?”
목소리는 나무를 깎아 만든 피리처럼 맑고 울림이 깊었다.
경찰대원이 그 말을 듣고 바로 호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며 말했다.
“네, 하나 드리겠습니다.”
레오포드는 고개를 저으면서 손바닥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근처에서 피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려던 거였네. ‘슌카와칸’이 싫어해.”
그가 성냥을 이빨 사이에 끼우고는 덧붙였다. 입을 거의 벌리지 않고도 발음이 또렷했다.
“그리고 지금 금연 중이라네. 연방보안관은 어디에 있나?”
“사람들에게 대충 일만 시키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하던 대로군.”
말을 마치고 레오포드는 성냥을 깨문 채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경찰대원은 다급히 방금 꺼낸 담뱃갑을 도로 넣었다. 상대가 길을 비켜달라는 손짓을 하자 두 사람은 딱딱한 자세그대로 갈라졌다.
현장으로 들어가자마자 레오포드는 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의 앞으로는 아스팔트 도로에 혈흔들과 분필그림들이 펼쳐져있었다. 그는 핏방울들이 튀긴 모습들을 슥 훑어보고는 중얼거렸다.
“부채꼴 핏자국의 꼭짓점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군. 쓰러진 다섯 명 모두 같은 자리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은 건가. 달아나려다가 쓰러진 놈도 있고.”
레오포드는 현장 수습을 감독한 부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이빨 사이에 성냥은 여전히 끼워둔 채였다.
“여기 있던 자들은 무슨 총에 맞아서 죽었나?”
“소총에 맞았습니다. 그리고 안 죽었습니다.”
부관이 더듬거리면서 대답하자 레오포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안 죽었다고?”
“그게 그... 마치 일부러 노리고 쏜 것 마냥 총알이 치명상을 비켜나갔습니다. 저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레오포드가 그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런데 자네 안색이 안 좋군.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부관은 헛기침을 하고 뒤로 살짝 물러나면서 말했다.
“그... 늑대가...”
“슌카와칸은 아무나 물지 않네. 두목의 시신은 어디에 있나?”
“발모가지 아래만 빼고 나머지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맞춤 제작된 구두라서 새겨진 머리글자를 보고 겨우 알아봤죠. 폭탄을 제대로 맞았나봅니다.”
“이상하군.”
레오포드는 건물 방향을 무심하게 바라보면서 그리 말했다. 바로 생각에 빠진 그를 향해 부관이 말을 걸었다.
“저기... 어떤 게 이상하다는 겁니까?”
“탄내가 나질 않아. 그리고 폭약 냄새도. 폭발은 일어났는데 왜 이렇지?”
“아!”
부관과 다른 경찰들은 여태껏 시체들 치우는 일과 피 비린내에 정신이 팔려서 거기에 생각이 닿질 않았다. 레오포드가 건물을 검지로 가리키면서 물었다.
“나하고 슌카와칸만 들어가도 되겠나. 방해받고 싶지 않네.”
부관은 옆에서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는 늑대가 신경 쓰이기도 했고 그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었다. 레오포드는 건물로 향했다.
그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현장을 훑었다. 이곳에서 죽은 인원은 모두 일곱이었다.
“지금 여기 쓰러져 있는 놈들은 모두 손에 무기를 쥐고 있었군. 일상생활을 하다가 불시에 기습당한 게 아니라 정면으로 싸우다가 당했어.”
분필 그림 중에는 근처에 주인이 떨어트린 무기들의 모습도 간략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갱단원들이 서있던 곳 근처의 벽에는 좁쌀만 한 구멍들이 조밀하게 뚫려있었다. 산탄으로 생긴 자국이다. 권총 총알 자국도 보인다. 레오포드의 눈앞으로 마치 사건의 광경이 재연되듯 그 싸움의 순간이 스쳐지나갔다.
“들고 있던 산탄총의 탄약을 다 쓰자마자 침착하게 부무장을 꺼내서 싸웠어. 놈들이 엄폐할 틈도 없이 단숨에. 용감하고 날쌔군.”
싸우기만을 위해서 태어난 인간은 없기 마련이라 대부분의 총잡이들은 총격전이 일어나면 겁부터 먼저 먹고 어중간하게 쏘다가 몸을 피하는 게 보통이다. 목숨이 걸렸을수록 겁먹지 않고 침착한 자가 더 잘 싸우는 게 당연한 법이고, 그 차이가 전사와 건달을 확실히 구분 짓는다.
레오포드는 자신의 늑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계속 찾아보자. 이번에는 일할 보람이 있겠구나.”
늑대가 마치 그 말을 알아 들었다는 듯이 한 번 작게 짖었다. 레오포드는 지금 있는 방 뒤편에 있는 공간으로 향했다. 창고로 쓰이던 곳으로 역시나 분필 그림과 혈흔이 곳곳에 있었다. 세어보니 여기서 죽은 갱은 여섯 명이다. 핏자국은 시체들의 머리가 있었을 법한 곳에만 고여 있었다. 피말고도 걸쭉하고 투명한 액체도 보였다. 뇌수다.
“전부 머리만 맞아서 죽었군. 아주 강력한 총알 때문에 머리가 박살나다시피 했고. 쓰러진 모습과 핏자국을 보아하니 기습을 당해서 죽었나.”
그는 허리를 굽혀서 바닥을 굴러다니는 탄피를 주워서 살폈다. 중요한 증거품이지만 현장 보존을 위해서 아직 경찰들이 정리를 덜 마친 상태였다.
“45구경. 난생 처음 보는 탄피인데. 최신형 총알이군. 리볼버 중에 이런 걸 쓰는 총은 없어. 최신형 총알을 쓰는 최신형 권총이라. 황무지에서 만든 총은 절대 아니로군.”
늑대가 창고 구석을 자신의 코로 가리키며 낑낑 울었다. 레오포드가 가서 살펴보자 처음 보는 물건을 찾았다. 손안에 들어가는 금속 상자였는데 안에는 45구경 총알이 몇 발 들어있다. 그는 바로 개틀링 건을 장전할 때 쓰는 것과 비슷한 물건임을 깨달았다. 권총에 넣는 탄창이었다.
“최신형 무기에 쓰는 탄창인가. 전술 재장전을 하느라 총알이 3발이나 남아있군.”
방금 찾아낸 탄창을 주머니에 넣으며 그는 바깥으로 나갔다. 부관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레오포드는 깨물고 있던 성냥을 뱉고 부관에게 상황을 말했다.
“‘페일 라이더’에서 당한 10명. 두목 하나. 그리고 여기 18명. 두목을 포함해서 29명이 죽었으니 사실상 갱단은 괴멸 당했군. 여기 2인자는 아직 살아있나?”
부관은 시간을 들여서 머릿속을 더듬다가 답했다.
“두목 자리는 누가 맡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예전과 같은 위세를 다시 부리지 못할 겁니다. 이제 배급 상황도 정상으로 돌아오겠군요.”
심호흡을 하고 레오포드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을 말해보겠네. 시작은 이렇게 돼. 먼저 용의자들은 인질극을 시도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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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둔지 천막 안에 방금 들어온 하딘 대위와 그의 부하들, 그리고 피카니까지 모여 있었다. 살벌한 공기 속에서 아비투스가 말을 이었다.
“일단 다음 계획은 인질극이었습니다. 오랏줄에 묶인 두목을 사무소로 데려가고 원하는 물건과 교환할 생각이었지요.”
피카니가 말을 이었다.
“아비투스 씨의 체격이 훨씬 건장하고 위협적이니까 두목은 제가 붙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목 받으면 위험하기도 하고요.”
하딘 대위가 바닥에 쌓여있는 술병들을 뒤적거렸다. 유리병들이 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의료용으로 쓰이다가 다 쓰고 버려진 것들이다. 하딘 대위는 거기서 그나마 내용물이 남은 버번을 찾아서 한 병 들었다. 하딘은 굽힌 몸을 피면서 고개를 들어 올리고 그들을 신경질적으로 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피카니가 말했다.
“놈들이 먼저 쐈습니다. 겁줄 생각이었는지 주변 땅으로 총알이 몇 개 박혔죠. 자기 쪽이 수적으로 우세하니까 협상하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저는 두목을 풀어줬습니다.”
하딘이 물었다.
“두목을 풀어주고 멀쩡히 돌려줬는데 어떻게 갱단 1/3이 물리적으로 사라졌어?”
아비투스가 덤덤히 설명했다.
“피카니 경이 두목의 옷 주머니 안에 스페이드 카드를 2개나 넣어놨었습니다. 두목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피카니 경이 그걸 총으로 쏴버렸죠. 두목은 무작정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그 다음부터는 상황이 우리들의 전문분야가 되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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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포드가 말했다.
“두목의 몸에는 폭탄이 둘러져있었어. 풀어주는 척하고는 가장 효과적인 순간에 터트린 거 같아. 건물 안을 봤는데 폭발로 인해서 연소된 흔적이 전혀 없더군. 순수하게 충격만 있었다는 뜻이야. 마법으로 만들어진 폭탄이 확실해.”
부관이 수첩을 끼적이면서 물었다.
“어떤 마법으로 만들어진 폭탄입니까?”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내가 마법사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아나. 뛰어난 마법사가 그들을 도왔다는 건 말 안 해도 알거라 믿네. 하여간 아무리 상대가 갱이라고는 해도 사람한테 폭탄을 심어두다니. 엄청난 냉혈한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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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딘은 들고 있던 버번의 내용물을 벌컥 들이켰다. 달아오른 분노에 끼얹은 차가운 인내심이 증발해서 몸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처럼 한숨이 거칠게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가 이번에는 카르델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카르델은 한쪽 다리를 꼬고 서있었다.
“그 동안 너는 뭘 하고 있었어?”
카르델이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엄호해줬지 말입니다. 싸움은 대부분 건물 안에서 해가지고 딱히 할 게 없었지만. 나중에 두 사람이 볼일 다 마치고 나오려할 때 우리들 뒤를 잡으려고 숨었던 놈들이 나오데요. 그놈들만 처리하고 저도 자리를 떴습니다. 옆에 있던 꼬마한테는 사탕도 줬고.”
“어린애?”
하딘의 목소리가 살짝 뒤집어졌다. 대체 자기가 뭘 들을 지 예상조차하기 싫다는 듯.
“민간인 집으로 들어가서 발코니에 자리를 잡아가지고... 안에 어린애 하나만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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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포드가 여기서 보이는 어느 건물의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던 저격수가 상대를 즉사시키지 않았던 것은 그 편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야. 사람이 죽으면 한 사람 손해지만 부상자는 다른 동료들의 발목을 늦추고 주변에 공포도 퍼트려. 이런 고상한 짓은 전쟁터를 뛰어본 놈들이나 부리지. 연방보안관에게 전하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걸세.”
부관은 들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얼굴이 멍해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레오포드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성냥을 이빨에 끼우고 말을 돌렸다.
“감방에는 알아서 들어가겠네. 따라올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