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2권] 68회 - 서로에게 걸린 올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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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못 구한 건 아쉬웠다. 결국 갖고 있는 상품들 처분한 거 말고는 한 게 없군.”
걸으면서 샤카자이아가 작게 말했다.
“아무리 불경기라지만 우리가 손댈만한 게 하나도 안 남았을 줄이야. 그렇게나 사람이 몰릴 줄 몰랐습니다.”
단테가 답답해하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샤카자이아는 홀가분해하는 얼굴로 손깍지를 뒷목에 대고 기지개를 폈다. 단테는 그 모습을 보고 샤카자이아는 따분한 걸 정말 싫어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현상금 사냥은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건 의뢰가 꽤 쌓여있었다.”
“그러게요. 쫓기는 몸만 아니면 했을 텐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샤카자이아가 옆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넓은 풀밭에 나무들을 옮겨 심은 공원이 있었는데 마침 두 사람이 지나가던 곳 근처에 호수도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이 도시는 지하수에 의존한다고 했는데, 여기 호수가 있잖아?”
“저건 사람 손으로 만든 호수에요.”
“뭐?”
놀라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위해 단테는 친절히 설명했다.
“땅에 구멍을 뚫고 물길을 돌려서 물을 모은 거예요.”
샤카자이아는 말을 다 듣고 멍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럼 저기에 물고기도 살고 있나?”
단테는 쓴웃음을 지었다.
“물고기만 있을까요. 오리나 다람쥐까지 살고 있죠. 생태계가 있답니다.”
입을 다물고 뜸을 들이다가 공원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사람에게 길들여진 땅인가... 보고 있으니 묘하군.”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살아온 그녀로서는 인공 호수와 공원이 기이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단테는 그게 어떤 감정일지 짐작도 안 가서 이해해주는 척하느니 재촉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어서 갑시다. 나중에 그 두 사람하고 같이 구경해봅시다.”
“응.”
자동차와 마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들을 건너 건물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들이 묵는 숙소로 가까워질수록 인적이 드물어졌다. 방향을 알고 있으니 처음 보는 골목을 돌아다녀도 길 잃을 걱정이 안 들었다. 도시의 신비다.
단테는 걸어가는 동안 잡다한 걱정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그들은 골목의 중간 즈음에 있었다. 샤카자이아가 갑자기 멈칫하고 쓰고 있던 후드를 벗자 그도 멈추고 물었다.
“왜 그러시죠?”
샤카자이아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험악한 얼굴로 뒤쪽을 째려보며 외쳤다.
“숨어있는 놈은 나와라!”
주변이 조용한 덕에 샤카자이아는 자신들에게 붙은 미행의 기척을 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에 대답하듯 그들 뒤편의 골목 끄트머리에서 히콕이 튀어나와서 총을 겨눴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단테의 옷깃을 붙잡고 자기 뒤쪽으로 쓰러트렸다.
히콕은 외투 속에 숨겨두었던 소드 오프 샷건을 쏘았다. 샤카자이아는 산탄에 맞을 것을 각오하고 온몸을 움츠렸지만 그녀의 초인적인 동체시력에 보인 것은 하얀색 덩어리였다. 샤카자이아는 자기도 모르게 그 하얀색 덩어리를 손으로 낚아챘다.
히콕은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쓰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괴물 같으니.”
방금 히콕이 쓴 것은 빈 백이라고 불리는 탄환이다. 질긴 재질로 만든 주머니에 쇠구슬을 넣어서 화약으로 날리는 물건인데, 맞아도 죽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갈비뼈쯤은 쉽게 부러트린다. 총을 써야하지만 상대를 죽이고 싶지 않을 때 쓰이는 총알이다. 물리적으로 일반적인 총알에 비해 날아가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물건인데 총열이 짧은 소드 오프 샷건으로 쏘는 바람에 더 느려졌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샤카자이아가 초인 종족이었어도 총알을 손으로 낚아채는 기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군가가 자기 손바닥을 몽둥이로 후려친 듯 오른팔이 통째로 얼얼했다. 히콕이 쏴버린 다른 총알을 그녀는 맨눈으로 피해버리고 상대와 대치했다. 단테는 샤카자이아에게 떠밀려서 넘어진 뒤로 총성을 듣고 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침내 상대의 정체를 알아채고 샤카자이아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화살이 허벅지를 완전히 뚫었을 텐데!”
히콕은 대답하지 않고 손에 힘을 풀어서 들고 있던 소드 오프 샷건을 땅으로 떨어트렸다. 그리고 총을 쥐고 있지 않던 손으로 약병을 꺼냈다. 그가 이빨로 코르크 뚜껑을 뽑아서 내용물을 마시는 동안 샤카자이아는 단테를 노려보고 소리쳤다.
“뛰어!”
단테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저.. 저도 같이 싸울게요!”
“됐으니까 먼저 돌아가!”
당장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었지만 방금 총성을 듣고 경찰이나 다른 동료들이 이쪽으로 몰려올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단테에게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이렇게 좁은 곳에서는 같이 있어봐야 그녀에게 걸리적거렸다. 비상사태였으니 더 고민할 겨를도 없이 단테는 죄책감을 느끼며 샤카자이아를 내버려두고 먼저 달아났다.
그녀도 단테와 같이 달아날 수 있었지만 샤카자이아의 성미로는 달아나기보다는 당장 맞서 싸워서 해결하고 싶었다. 마침 히콕도 그녀와 결판을 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전사로서 도전을 피하기 싫다는 자존심도 그녀의 판단에 한몫했다.
히콕은 포션의 힘이 온몸으로 퍼지는 감각을 느끼며 목을 한 바퀴 돌렸다. 우두둑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그가 서서히 다가왔다. 그는 샤카자이아 외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달아나고 있는 단테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또 골목에서 싸우는군.”
그가 평소의 말투로 운을 떼었다.
“어떻게 상처를 고쳤지?”
똑같은 말투로 그가 답했다.
“다 비결이 있지.”
“또 나타나면 네 머리가죽을 벗겨버리겠다고 했을 텐데!”
“흠.”
한발자국 크게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가 덧붙였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을 거잖아.”
서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샤카자이아는 고양이처럼 빛살 같은 반응속도로 온몸의 근섬유를 튕겨서 돌격했다. 다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사정 봐주지 않고 휘둘렀다.
히콕은 피하지 못했다, 사실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능숙하게 복싱자세를 취하고 그 살기서린 공격을 기합과 함께 평범하게 쳐냈다.
“흡!”
자기 공격을 막아낸 상대는 난생 처음이어서 그녀는 충격으로 순간 넋을 잃었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히콕이 짧은 주먹질을 잽싸게 그녀에게 여러 번 날렸다. 샤카자이아는 견제 공격을 필요이상으로 움직여서 피했다. 간격을 벌리고 다시 대치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방금 대체 뭘 먹은 거냐?”
아까 이상한 약을 먹은 뒤로 히콕의 얼굴에는 굵은 핏대가 서고 혈관에 흐르는 피는 모조리 녹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는 악력의 힘만으로 손마디에서 우두둑 소리를 내서 대답했다.
이번에는 히콕이 먼저 움직였다. 왼손으로 견제를 넣고 빈틈이 생기면 오른팔로 정권을 질렀다. 힘과 반사 속도는 인간을 초월했고 동작은 하나같이 효율적이었다. 샤카자이아는 쳐내기에만 급급했다.
공격을 집어넣는 동안 참았던 숨을 다시 쉬면서 히콕은 뒤로 빠지고 원래 자세로 돌아왔다. 그대로 둘은 서로 신경전을 벌였다. 방금 공방으로 샤카자이아는 체력이 순식간에 빠져서 헐떡였지만 히콕은 호흡이 흐트러진 기색조차 없었다.
갑자기 히콕은 그녀와 눈싸움을 하다말고 자신의 허리춤에 시선을 두었다. 또 다른 약병이 탄띠에 꽂혀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거두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샤카자이아는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대체 무슨 약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안색을 보아하니 너무 독해서 부작용이 있는 거 같아. 효력이 다 할 때까지 버텨야해.’
인정하기 싫지만 서로 같은 근력과 반사 속도라는 조건 속에서 자신은 히콕을 맨손 전투로 이길 수 없었다. 히콕이 힘껏 내지른 주먹을 샤카자이아는 그만 오른손으로 쳐내버렸다. 다친 손으로 공격을 막는 바람에 그녀가 이빨 사이로 비명을 지르고 뒤로 물러났다.
그가 자세를 조금 풀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제 포기해.”
어떻게든 시간을 벌 필요도 있어서 샤카자이아는 대답했다.
“날 데려가고 싶다면 받은 돈 값을 해라.”
갑자기 그는 목에 감고 있던 스카프를 얼굴로 끌어올려서 얼굴을 가렸다. 복면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난 심각해. 해치기 싫다고.”
말하면서 그는 혁대에 꽂고 있던 또 다른 약병을 손에 움켜쥐었다. 샤카자이아는 그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릴 거라 생각해서 다급하게 움직였다. 히콕은 상반신만 움직여서 그녀의 발길질을 피하고 오른손에 쥐고 있는 약병을 악력으로 깨버렸다. 안에 있던 내용물이 바깥으로 나오자 순식간에 휘발해서 코를 찌르는 형용 못할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잡고 팔꿈치를 옆으로 휘두르려고 했지만 냄새를 맡고 몸이 순간 굳었다.
“윽?!”
히콕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명치와 복부에 짧은 주먹질을 끊어서 치듯 연달아 질렀다. 그리고 뒤로 물러났다. 샤카자이아는 몇 번 기침을 하고는 다시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히콕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부서진 약병을 땅에 버리자 유리조각이 땅에 닿는 소리가 났다. 계속 앓는 소리만 내면서 땅에 고개를 박다시피 한 상대를 바라보며 그가 읊조렸다.
“이건 정말 쓰기 싫었어.”
샤카자이아가 땅을 기는 목소리로 물었다. 말하면서 연거푸 기침을 터트렸다.
“콜록! 욱! 크헉! 독이냐..?”
“우리한테만 독이지. 지금 너는 평범한 인간이나 마찬가지야.”
그녀는 정신력으로 아픔을 이겨내고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어느새 히콕은 마취제로 손수건을 적시고 샤카자이아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평소라면 바로 뿌리치겠지만 샤카자이아는 저항하면서 이만한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온 몸에서 힘을 쥐어짜도 히콕은 끄떡도 안했다. 샤카자이아는 의식이 멀어질수록 분함과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선명해졌다. 눈물로 흔들리는 풍경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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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포드는 자신의 늑대 ‘슌카와칸’과 함께 승강기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걸은 늑대를 보고도 겁먹어하기는커녕 반갑다는 듯이 양손을 흔들어 인사해줬다. 슌카와칸이 혀를 늘어트리고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다소곳이 앉았다. 레오포드가 점잖은 말투로 그녀에게 인사했다.
“수고가 많소.”
엘리베이터 걸은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뭘요. 어디로 향하시나요?”
레오포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플러머를 만나러.”
엘리베이터 걸이 연방보안관 사무소로 향하도록 승강기를 조작해줬다. 도중에 중앙청사직원들이 승강기에 몇 명 올라타거나 내리기도 했는데 모두 슌카와칸을 보고 한 번씩은 인사를 해줬다. 승강기가 원하는 곳에 멈추자 레오포드와 슌카와칸은 바깥으로 나왔다.
복도를 지나 둘은 연방보안관의 화려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헨리 플러머는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자기 자리에 앉아있었다. 레오포드는 꼿꼿한 자세로 호주머니에 주머니를 꽂아 넣은 채 상대가 먼저 입을 열도록 배짱을 부렸다.
결국 플러머가 침묵을 깼다.
“내 부관에게서 보고서를 받았어.”
레오포드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용건만 말하게.”
“최고의 탐정이라는 놈이 겨우 그거밖에 못해? 이정도 분석은 누구나 할 수 있어! 결국 용의자들은 어디에 있다는 건데?!”
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왔다는 건 나도 인정하지.”
플러머가 그에게 삿대질을 했다.
“솔직히 말해. 더 추적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숨기고 있지?”
레오포드가 한쪽 눈썹을 올리며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네 애완동물은 아무리 사소한 단서라도 얼마든지 냄새를 맡고 추적할 수 있잖아. 사실상 네 명성의 절반이상은 그 늑대 덕분이지. 그런데 기껏 꺼내줬더니 너 혼자만 일하고 돌아와?”
“내 능력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걸 어쩌겠나.”
플러머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손깍지를 미간에 댔다. 그리고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 소극적인 반항이 어디까지 갈지 두고 보자 아퀴라스.”
“할 말 끝났으면 감방으로 돌려보내주게.”
돌아오는 것은 언짢아하는 혀 차는 소리뿐이다.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며 레오포드는 사무실을 나왔다.
“슌카와칸 산책 시켜준 건 고맙군.”
인상 쓰는 얼굴로 그를 마중 보내주고는 플러머가 중얼거렸다.
“유능한 부하만 더 있었어도...”
◆
하딘은 피카니와 아비투스, 카르델과 함께 주둔지 뒤편의 외진 곳에 있었다. 텐트 안에서도 안심하고 나눌 얘기가 아니었다. 루나는 자기 일로 바빴다. 심각한 얼굴로 하딘이 말했다.
“연방보안관의 속내는 예상한 것 그대로였다. 마법사님이 만들어준 카드 덕분에 확실히 알 수 있었어. 모든 갱단들로부터 뇌물을 골고루 받고 있었다. 배후에 뭔가 있는 것도 확실해.”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남자들이 다들 자기 할 말을 꺼내려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하딘은 노골적으로 짜증난다는 표정과 함께 손을 내리라고 눈짓했다.
“너희들. ‘천국의 문’ 사건 알고 있나?”
아비투스는 굳은 표정을 지켰고 피카니와 카르델은 모른 다는 얼굴이었다. 하딘이 설명했다.
“개척지에서 생겼던 총격전에 붙은 이름이다. 예전에 거대 농장주들이 용병을 고용해서 소작농들을 약탈한 사건이 있었다. 소작농들은 무장해서 맞서 싸웠지. 제국 측에서 이걸 수습하러 기병대를 출동시켰고. 하지만 기병대 중에 상당수가 거대 농장주에게 매수를 당해버렸지.”
그는 속이 쓰리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이었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사실상 인간 사이의 내전이었어. 싸움은 삼파전으로 변해서 마치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었어. 농장주와 기병대 장교들은 언론에 뇌물을 뿌려서 이 사건을 묻었다. 지금 내가 왜 이런 얘기를 꺼내는지 이해가 되나?”
피카니가 말했다.
“아뇨.”
“연방보안관이 조 레오포드를 데리고 있었다. 너희들이 저지른 현장으로 보냈다더군.”
듣고 있던 남자들이 다들 표정을 구겼다. 아비투스가 중얼거렸다.
“일손을 더 고용해도 모자를 판에 하필 거기에 레오포드가?!”
“우리들 꼬리가 잡히는 건 시간 문제일거다.”
카르델이 자신들의 처지를 자학하는 헛웃음을 뱉었다.
“허어. 허허. 이거 참.”
피카니도 사태의 심각성은 이해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었다.
“이게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애초에 저희만으로 이 싸움을 시작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됐잖습니까. 수단을 가릴 때입니까?”
하딘 대위가 눈을 부릅뜨고 손짓을 해가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칭찬만하고 싶어. 임기응변으로 고작 셋이서 갱단 하나를 박살내고 공작원을 살려낸다는 숙제도 해결했으니까.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우르르 생겼잖아! 조폭도 엄연한 민간인이야! 국경 바깥에서 군인이 민간인을 무차별로 쏴 죽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얼마나 큰 외교문제인지 알아?!”
“제게 면책 특권이 있으니 무마할 수 있습니다.”
피카니의 말을 듣고 하딘은 살짝 마음이 가라앉은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화를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좋아. 정치적인 문제는 나중 일이라 치자고. 문제는 조 레오포드야. 사실 그런 대단한 탐정이 아니라도 고작 셋이서 그런 난리를 피웠으니 누구든 뭔가 낌새를 치겠지. 연방보안관이라면 오늘 일어난 일을 보고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아비투스가 의견을 말했다.
“일단 다른 갱단끼리의 내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딘이 바로 말했다.
“내가 연방보안관이라면 우리를 보자마자 바로 붙잡거나 쏴죽이라고 경찰들에게 지시할거다. 마침 우리들은 표면적으로 제국군 신분도 아니니 저항할 도리도 없지. 피카니 경이 신분을 드러내면 놈들 배후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더욱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이제 내가 왜 ‘천국의 문’을 언급했는지 이해가 되겠냐?”
남자들은 한숨만 쉬었다. 하딘은 울분 섞인 목소리로 다시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상대할 것들에 갱단 말고도 경찰 수백 명까지 더해졌다고! 하다못해 방금 그 난리를 치기 직전에 나하고 만나서 이 내용을 들었다면 적어도 일을 터트리기 전에 조심은 했겠지!”
카르델이 복잡한 얼굴로 읊조렸다.
“두목님 열 받게 하기는 싫지만 막상 돌이켜보니 우리도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 말입니다. 원래라면 처음에 도망치고 봤을 텐데.”
“그게 정상이라고! 일이 틀어지면 일단 달아났어야지! 도시에 오고 24시간도 안 돼서 29명을 죽이는 게 아니라!”
한숨을 쉬고 하딘이 중얼거렸다.
“망할 부하들 실력이 너무 좋아도 문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