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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화 〉[3권] 75회 - 전망이 없다 (75/188)



〈 75화 〉[3권] 75회 - 전망이 없다

그녀가 총에 맞았던 곳에는 일부러 피가 서서히 흘러나오도록 붕대가 대충 감겨 있어서 붉은색으로 범벅이었다. 소독도 제대로 안한 탓인지 악취도 났다. 피카니는 괜히 루나를 깨우면 아프게만 만들 거 같아서 그대로 어깨에 들쳐 업으려고 했다.


두 사람은 피카니가 루나에게 가는 동안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아자리가 레스의 말투를 흉내 내어 그를 놀렸다.


“오 전하, 제가 악마를 한두  봤겠습니까. 저는 악마와 손을 잡아서라도 피카니하고 결판을 내겠습니다. 퍽이나.”

“나중에 말하자.”

레스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받아쳤고 아자리도 담백하게 말을 이었다.

“딱히 불만 있다는 건 아니고, 오히려...”

그때 피카니가 뒤에서 바닥을 기는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여기 와서  도와줘...”


두 사람은 그제야 피카니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피카니의 기진맥진한 얼굴을 보아하니 루나를 업고 갈 힘이 없는 듯 했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자 피카니가 다시 말했다.


“레스, 마법사님을 업어줘.”

레스는  말을 듣고 루나와 피카니를 번갈아보다가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급해. 어서 서둘러.”


아자리가 두 남자 사이에 끼어들고는 피카니의 몸에 손을 댔다. 그녀는 인상을 쓰면서 정신을 집중하더니 심각해진 얼굴을 계속 굳혔다. 아자리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대체 몇 번이나 맞았죠?”

“아까 맞은 것까지 합치면 일곱.”


말하는 사이에 피카니는 더욱 초췌해져있었다. 아자리도 피카니처럼 진지한 태도로 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피카니 씨는 지금 피만 안 흐를 뿐이지 안쪽은 난장판이에요.”

“알았어. 알겠다고.”


더 이상 설명을 듣지 않아도 지금은 한시가 급하다는 건 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레스는 루나의 겨드랑이와 무릎 아래로 팔을 넣어서 조심히 안아들었다. 배에 총을 맞았으니 등으로 업으면 위험할 수도 있어서 그랬다.

피카니는 아자리의 손을 붙잡고 힘겹게 다시 일어났다. 루나가 레스에게 안겨있고, 자신이 아자리에게 부축을 받고 있는 지금 피카니는 이제야 상황의 기묘함이 새삼 느껴졌다. 아자리도 그랬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대면했던 상황까지 되돌아보니 피카니와 아자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레스가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루나를 안아 든 팔을 고쳐 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이제 어디로 나가냐?”


레스는 루나를 맡아야하니 싸울 수가 없고 피카니는 몸이 성치 못했다. 결국 아자리 홀로 그들 셋을 맡게 됐다. 레스가 평소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데 아자리가 지팡이 끝으로 그의 등을 쿡쿡 찔렀다. 뒤를 돌아보며 그가 말했다.


“뭐?”

“저쪽으로 물러나 있어요. 혹시 모르니까.”

두 남자는 무슨 뜻인지 깨닫고 아자리가 가리킨 곳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녀는 총을 겨누듯 지팡이를 쳐들고 상영관 한편을 노려보았다.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로 짧게 속삭이고는 그녀가 침착하게 읊조렸다.

“아다치아 데르피 얄타르 칼레.”


그녀가 지팡이를 땅에 찍자 지진이라도  듯  앞으로 상영관의 바닥에 균열이 일었다. 균열이 뱀처럼 계속 앞으로 이어지다가 막다른 곳에 닿자 벽이 소리 없이 모래처럼 저절로 무너졌다. 곧 그곳에는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가 틀로 찍어낸 듯 깔끔하게 나있었다. 그리고 아까 생겼던 균열들은 알아서 달라붙어서 흔적도 남지 않았다. 본인도 결과물이 마음에 드는지 아자리가 휘파람을 불었다. 일행들이 다가오자 그녀가 말을 걸었다.

“피카니 씨는 괜찮으세요?”

창백한 얼굴로 그가 애써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레스의 권총까지 양손에 들고 있었다. 일행들은 아자리가 만든 통로로 달아났다. 레스가 통로를 걸으면서 중얼거리자 그의 목소리가 살짝 울렸다.

“부수기만 할 줄만 알았는데 재주가 되게 많다?”


“원하는 곳만 스스로 무너지도록 물질 구조를 망가트린 거예요.”


걸을 때마다 그들의 발밑에 있는 고운 가루에 발자국이 보기 좋게 선명히 찍혔다.


“그럼 뭐든 부술 수 있다는 거야?”

레스는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걷느라 걸음걸이가 조금 엉거주춤했다. 아자리는 앞장서서 일행들의 걸음을 재촉했다.

“아뇨. 구운 벽돌이나 시멘트처럼 무른 것에나 통해요. 금속이나 바위 같은 거엔 안돼요.”

그때 피카니가 말했다.

“하지만 한 곳이 갑자기 무너지면 다른 곳도 필연적으로 분명...”

갑자기 그들 머리 위에서 밀가루처럼 고운 먼지가 푹하고 내려왔다. 순간 그들은 당황해서 굳었다가 본능적으로 힘을 쥐어짜서 뛰었다. 다행히 바깥은 코앞이었다. 그들이 영화관에서 굴러 나오다시피 골목으로 들어서자 지나왔던 곳으로부터 소름끼치는 소리와 진동이 울렸다. 다들 먼지투성이다. 두 남자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자기를 째려보자 아자리가 겸연쩍어하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아다치아 계열 마법은 특기가 아니야.”

두 남자는 그 말을 흘려 넘기고 몸에 묻은 먼지를  다음 다시 발길을 옮겼다. 그들이 있던 곳에 사람 모양의 먼지구름이 맴돌았다. 피카니가 레스에게 물었다.


“달리 갈  있어?”

“선택지는 많은데 일단 나오고 생각하자고.”


그 와중에 루나는 어느새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는 거 같았다. 그만한 소란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녀가 숨넘어갈 듯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뭐라 웅얼거리자 피카니가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그녀는 바싹 마른 입술을 옴죽거리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하늘 저편을 보았다.

“여기... 어디? 엄마... 아빠...”


제정신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보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목에는 굵은 핏대가 불거지고, 호흡은 가파르고, 안색은 파랬다. 피카니가 외쳤다.


“당장 시내병원으로 가! 심각해!”

여태껏 움직이기에만 바빠서 레스는 루나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몰랐다.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고 나서 레스도 마음이 급해졌다.


“아자리. 네가 어떻게든 못하겠어?”

“총상이 패혈증으로 커졌어요. 이렇게까지 감염이 심해지면 정말 큰일인데.”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남자들의 애원하는 눈빛을 견디며 아자리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제 마법으로 어떻게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일단 수액을 투여해서 혈압을 안정시키고 깨끗한 곳으로 옮겨야 할 텐데...”


다시 루나를 안아들고 레스가 말했다.


“병원은  돼. 거기도 갱단들 구역이야.”


그들은 다시 걸었다. 피카니가 말했다.


“지금 그런  따질 때야?!”


아자리가 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따질 때네요.”


그녀의 등만 바라보면서 따라오던 남자들은 그제야 저 앞을 보았다. 파스낙 리차트라가 땅에 지팡이를 꽂은 채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있었다. 그을음 가득한 정장 위에는 프록코트를 걸치고 머리에는 실크 모자를 썼다. 뒤로 도시의 야경을 등진 탓에 이쪽에서는 그늘진 모습만 보여 윤곽이 어두웠다.

파스낙이 지팡이를 슬쩍 들어서 방금 아자리가 망가트린 건물 한구석을 가리켰다.

“물어내.”


“진작 안 나타나고 뭐 하고 계셨어?”


아자리가 지팡이를 고쳐 잡으면서 파스낙에게 삿대질하듯 지팡이 끝부분으로 겨눴다. 파스낙은 쓰고 있는 실크 모자의 테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내가 먼저 나서면 내 손으로 영화관이 박살나니까.”

그가 지팡이의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광선처럼 가느다란 세검이 우아하게 뽑혀 나왔다. 이상하게도 뽑혀 나온 칼이 칼집보다 훨씬 길었다. 칼의 자태를 감상하며 파스낙이 중얼거렸다.


“안타까운 일이야. 믿고 맡길 사람이라곤 언제나 나뿐이지.”

“포르차 페카!”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작은 불덩어리가 화살처럼 변해서 날아갔다. 허나 파스낙도 이번에는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그의 칼이 허공을 한번 가르자 불덩어리는 쪼개져서 불꽃으로 변해 나약한 빛을 발하며 땅으로 떨어졌다.

피카니는 경악해서 권총을 꺼내는 것도 잊어버렸다.


“마법을 베었어?”


파스낙이 칼자루를 고쳐 잡으며 자신의 여유를 과시하듯 천천히 다가왔다. 아자리는 쓰고 있던 고깔모자를 고쳐 쓰고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걸리적거리니까 어서 가세요.”

레스가 소리쳤다.

“가라고?! 넌 어쩌고!”

“됐으니까 먼저 가요!”

분했지만 두 남자는 아자리에게 방해만 되는  사실이었다. 그들도 비정하다고는 생각했으나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남자는 루나와 함께 반대방향으로 달려갔다.


파스낙이 그걸 내버려 둘리 없었다.


“싸우는 와중에 등을 보이면 쓰나!”


그가 칼집으로 쓰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찍자 골목 좌우에 있는 건물의 벽돌들이 튀어나와서 저절로 분해되고 조립되어 길을 막았다. 아자리는 지팡이를 오른손으로 쥐어서 파스낙에게 겨누고 왼손으로는 일행들을 향해 뻗고 외쳤다.

“아모르 데페카 스레미!”


그러자 일행을 가로막던 벽의 벽돌들이 다시 분해되더니 시간을 거꾸로 돌리듯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심지어 그 와중에 땅으로 떨어졌던 회반죽 부스러기들까지 되돌아갔다. 덕분에 일행들은 길이 트였지만 아자리는 파스낙에게 완전히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피카니도 그제야 가만히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권총을 뽑아서 파스낙에게 모조리 꽂아 넣었지만 역시나 총알은 허공에 멈췄을 뿐이다. 파스낙이 칼집을 쥔 손을 옆으로 휘두르자 총알이 왼쪽으로 날아가서 건물 벽에 박혔다. 그리고 아자리를 향해 칼을 찔렀다.

아자리의 지팡이와 파스낙의 칼이 맞닿자 귀가 찢어지는 소음이 나고 번개도 불도 아닌 기이한 빛이 골목을 환히 비췄다. 아자리는 오만상을 쓰며 아직도 달아나지 않은 일행들을 향해 외쳤다.

“가라니깐!”


폭발이 일어났다. 아자리는 겨우 손에서 지팡이만 놓지 않고 충격으로 골목에서 튕겨 나와 땅을 굴렀다. 잠깐 넋이 나갔던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도심의 가로등 불빛이 별처럼 눈앞에 번쩍였고 소란을 들은 시민들이 달아나거나 구경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행들은 그 사이에 무사히 달아났는지 보이지 않아서 아자리는 안도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재촉하듯 혼잣말을 하며 지팡이를 붙잡고 힘겹게 일어났다.

“삭신은 쑤시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제 누구 휘말릴 걱정할 필요 없잖아.”


파스낙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골목의 어둠 속으로부터 태연히 걸어 나왔다. 싸움 그 자체보다는 시민들의 시선이 더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그는 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얼굴을 그늘지게 만들고 아자리에게 말을 걸었다.


“벽돌들을 ‘치료’해서 길을 만든 건 꽤 참신했다. 요즘은 학교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주나?”

“자퇴한지 오래야!”

그녀가 근처에 세워져있던 자동차를 흘깃 바라보고는 양손을 번쩍 들어서 뻗었다. 그리고 허공을 쥐어짜서 파스낙에게 집어던지는 시늉을 하자 자동차가 파스낙에게 날아갔다. 구경하던 시민들은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다른 사람들을 따라 달아났다. 파스낙은 날아오는 자동차를 피하지 않았다. 그저 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르듯 칼을 가볍게  번 휘둘렀을 뿐이다. 곧 자동차는 보이지 않는 힘에 붙잡혀 다른 주차구역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쥐고 있는 무기를 고쳐 잡으며 그가 말했다.

“염력으로 승부해보시겠다?”


파스낙이 옆에 있는 가로등을 향해 칼을 휘두르자 가로등의 밑동이 젤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소리 없이 깔끔하게 잘려나가고 전구의 불이 나갔다. 그대로 균형을 잃고 쓰러지려는 가로등은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아자리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주문을 읊었고 파스낙은 칼집을 그녀에게 겨누었다.


“받아봐.  차례야.”

가로등이 투창처럼 수직으로 날아갔다. 아자리는 피하지 않고 맞섰다.

“포르차 데르피 스포르티 칼레!”

사람 몸집만한 굵기의 광선이 그녀의 앞에서 뿜어져 나왔다. 온 힘을 쥐어짠 그녀의 공격에 가로등은 날아오는 도중에 흔적 없이 증발해버렸다. 가로등을 날려버리고도 광선은 기세가 죽질 않아 파스낙까지 날려버릴 듯 했다.


아자리의 눈에 보인 것은 자신이 날린 광선이  갈래로 쪼개져서 파스낙의 좌우로 날아가는 광경이었다. 쪼개진 광선들은 건물에 맞아서 또 다른 재산피해만 늘렸을 뿐이다. 건물 외벽은 맞은 곳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금이 갔고 유리창이 깨져서 반짝거리는 파편들이 주변에 쏟아졌다. 파스낙은 들고 있는 칼로 올려 베기를 했던 자세에서 원래대로 돌아오고 목을 이리저리 기울여 관절 꺾는 소리를 냈다.


아자리는 눈에 띄게 숨이 거칠어져있다. 파스낙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다른 마법사하고 몇 번이나 겨뤄봤지? 세 번? 다섯 번? 하, 고상하신 분인데 그랬던 적이 있을 리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책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나는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짓을 해왔다. 네 또래였을 때부터 이 짓을 해왔다. 숨통을 끊은 놈 중에 너보다 쌘 마법사만 골라도 열이 넘는다. 너한테 이용가치가 없었으면 이미 뼛조각 하나 안 남았어. 주변 민폐 끼치는  관두고 그만 품격을 갖추시지.”


그녀는 눈을 힘껏 찌푸린 다음 숨을 골랐다. 뒷걸음질을 멈추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아자리가 대꾸했다.


“내 품격은 내가 정해.”


“과연. 그 애비에 그 딸이야.”

아자리가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찰나에 파스낙이 칼을 쳐들고 돌진했다. 흡사 태풍에 날아온 연처럼.

비정상적으로 빠른 찌르기를 아자리는 간신히 반사 신경으로 지팡이만 쳐들어서 막아냈다. 아까처럼 두 사람의 힘이 맞붙자 기이한 빛이 한밤의 도시를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자리가 확연히 밀리고 있다.

그녀는 한쪽 무릎이 구부러졌고 파스낙은 체중을 실어서 내려찍는 자세로 변했다. 두 사람이 신경을 집중할수록 눈에서 나는 빛도 광채가 진해졌다. 아자리의 눈은 붉은색으로, 파스낙은 녹색으로. 파스낙이 도발하듯 고개를   앞으로 들이대고 말했다.

“왜, 죄책감이라도 드시나? 가족들을 저버리고 홀로 달아나서?”


그리고 그가 기합을 지르며 한층 더 힘을 가하자 아자리는 양쪽 무릎이 구부러졌다. 그녀를 완전히 내려다보며 그가 다시 말했다.

“아니면 비참하신가?! 기껏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 버림받아서?!”

“진짜로 가버리니까... 조금 섭섭하긴 하더라...!”


아자리는 힘에 억눌려 몸이 웅크려지다시피 했다. 파스낙이 한쪽 입가를 비틀었다.

“뭔지는 몰라도 지팡이는  좋은 거 쓰는 군. 나중에...”


마침 몸이 웅크려지니 손이 겨드랑이하고 가까워져 있었다. 아자리는 파스낙이 말하는 도중에 손을 권총집에 뻗었다. 그리고 보이는 대로 그의 발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한 번 울린 총성이 멎기도 전에 무언가 번쩍하더니 어느새 파스낙은 저편으로 멀리 날아가 있었다. 지금은 자기 발을 부여잡고 땅을 뒹구는 중이다. 아자리는 자기가 서있던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스스로도 놀랐다. 그녀가 권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래서 마법사는 전망이 없다는 건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변덕으로 저지른 거라 그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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