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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화 〉[3권] 76회 - 직업 정신 (76/188)



〈 76화 〉[3권] 76회 - 직업 정신

일단은 총알이니 아프기야 하겠지만 파스낙이 맞은 건 탄두가 고작 연필심만한 크기인 22구경이다. 파스낙은 금방 자신의 발을 고치고 말없이 이쪽을 노려보았다. 권총을 꺼낸김에 아자리는 다시 검지에 힘을 줬지만 방아쇠는 뻑뻑하기만 했다.

“어? 이게 왜... 아 그렇지.”


싱글 액션은 공이를 일일이 젖혀줘야 한다. 그녀는 사람을 향해서 진짜로 총을 쏴본 것이 처음이기에 까먹고 있었다. 파스낙은 인상을 찌푸린 채 한쪽 발을 조금 절룩거리며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집을 쥐고 있는 손은 방패처럼 앞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자리는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엄지로 공이를 당기고 쏘았다.

역시나 총알은 파스낙 바로 앞에서 멈췄다. 여태껏 여유를 과시하며 쉬지 않고 떠들던 파스낙은 살벌한 표정만 지키고 있다. 한방 먹이기는 했지만 의미 있는 일은커녕 상대의 화만 엄청 나게 돋운 모양이다. 아자리도 떠들 마음은 없었다. 이제 권총을 쓸 곳이 없으니 그녀는 리볼버를 총집으로 도로 넣었다.  동작은 기류를 일으켜 다시 싸움을 시작하는 신호탄이 됐다.

파스낙은 눈꺼풀을 반쯤 감고 녹색 안광을 뿜었다. 주변에 흩어져 있던 갖가지 도로 타일과 유리조각, 콘크리트 파편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파스낙의 감정을 대변하듯 공중으로 떠오른 수백가지 잡동사니들이 단단한 폭풍이 되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팔랑크라 라피키 페르카!”

아자리는 온몸의 솜털이 정전기로 뻗치는 기분을 느꼈고 그녀의 주변으로 유리막 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녀의 보호막에 파편이 튕길 때마다 두꺼운 이불을 몽둥이로 때리는  같은 둔탁하고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를 몇 초 만에 수백 번쯤 듣게 되자 아자리는 본격적으로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다.

투석의 위력은 무시할게 못 된다. 성인 남성이 한손으로 집어던지는 돌의 운동량은 보통 140J이며 방금 아자리가 쐈던 22구경 탄환의 위력이 그와 비슷하다. 요컨대 그녀는 지금 기관총 세례를 맞고 있는 셈이다. 파스낙은 어느새 칼을 칼집에 꽂아서 지팡이로 되돌려놓고 땅에 찍고 양손을 그 위에 얹고 있었다.


그저 잡동사니를 움직여서 두들겨 팰 뿐인 투박한 공격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아자리는 체력을 갉아 먹혀서 얼굴이 창백해져갔다. 파스낙은 허세나 가식을 배제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그 눈빛에는 하는 일이 효율적으로 제대로 되는지 확인하는 사무적인 감정만 엿보였다.


결국 아자리가 제풀에 지칠 기미가 보이자 파스낙이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 휘날리던 파편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돌덩어리들은 자갈로 변해 반질거렸고 유리조각은 구슬이 됐다. 땅바닥은 긁혀서 패인 구덩이가 생겼고 그 한가운데에 아자리가 있었다.


기진맥진한 얼굴로 지팡이에 기대어 반쯤 쓰러진 아자리를 향해 그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일단 좋은 소식부터 말하자면...”

아자리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녀는 힘이 빠진 척 연기하는 걸 그만두고 눈에서 붉은 안광을 뿜었다. 여태껏 자신을 괴롭혔던 파편들을 한꺼번에 들어 올리고는 고스란히 파스낙에게 되돌려줬다.


파편들은  번 그의 방어막을 때리다가 허공에 그대로 멈췄다. 파스낙은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지팡이를 팔과 옆구리 사이에 끼었다. 그가 여태껏 방어용으로 써왔던 마법이었고 방금 아자리가 썼던 마법이기도 하다. 파스낙이 끊어졌던 자기 말을 다시 이었다.

“네 덕분에 반성 좀 했다는 거야. 정신이 번쩍 나더라고.”

“나쁜 소식은?”


아자리는 뒤로 엉거주춤 물러났다. 파스낙은 자신의 방어를 풀지 않은 채 아자리하고 똑같은 속도로 걸어왔다.


“굳이 들을 필요가 있을까?”


파스낙이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는 듯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뽑았다. 그때 총성이 울렸다.


“이쪽이다 뺀질이!”

여태껏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레스가 파스낙의 등  저편에 보였다. 그의 손에는 하늘을 향해 쏜 권총이 초연을 피어올리고 있었다. 파스낙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한심하다는  저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죽어도 등은 쏘지 않겠다는 건가?”

파스낙이 바지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지 않고 그대로 고개만 돌려서 뒤를 쳐다봤을 때, 피카니가 다른 방향에서 집어던진 화염병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심지에 붙은 불이 밤공기를 가르는 모습이 넋을 뺄 정도로 근사했다.

“아.”


“아.”

파스낙과 아자리의 입에서 똑같은 단발마가 터졌다. 화염병은 방어막에 닿아서 파스낙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당연히 파스낙은 그것을 다른 곳으로 치워버리려 했지만 그전에 레스의 권총이 번쩍였다. 화염병의 내용물이 파스낙에게 쏟아졌다.


화염병의 내용물 자체는 방어막에 막혔으나 열기는 그렇지 않았다. 알코올과 휘발유 혼합물이 일으킨 1400도의 불길이 그를 완전히 끼얹었다. 그의 마음이 흐트러지자 방어막이 사라졌고 파스낙은 모자와 옷에 붙은 불을 끄려고 땅을 굴렀다. 여태껏 주변에 떠다니던 총알과 파편들은 목줄이 풀린 개처럼 아무렇게나 날아다녔다.


한 차례 난장판이 지나가고 나서야 파스낙은 간신히 침착해졌고 몸에 붙은 불을 껐다. 그가 반쯤 타버린 실크 모자를 벗어버리고 아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아자리는 그 사이에 자신의 일행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레스는 어두운 곳에 잠시 내려놨던 루나를 다시 안아 들고 외쳤다.

“이쪽이야! 서둘러!”


그녀는 달리다가 뒤를 돌아봤다. 파스낙의 얼굴이 주위에 나뒹구는 불처럼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가 칼을 거꾸로 쥐어서 땅에 대고 긁어 불꽃을 일으켰다. 불꽃은 그대로 레스 일행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파도처럼 몸이 불어났다.

레스, 피카니, 아자리는 간신히 다시 만나서 사이좋게 도망쳤다. 다 좋은데 그새 파스낙이 날린 불꽃의 파도가 어느새 불곰만 해져있었다. 루나를 안고 달리느라 레스는 헐떡거렸다.


“이거 안 좋은데!”


서너 번 엎어지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피카니가 뒤집힌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하아아아!”

“왜요?!”

“저거! 저걸 써 봐요!”


피카니가 가리킨 곳에 때마침 옥외 소화전이 있었다. 원래 거리마다 하나씩은 있는 흔한 거지만 정신이 없었던 아자리는  말을 듣고서야 손을 뻗고 외쳤다.


“스누피 레르카!”

아자리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쩍였고 소화전이 박살나더니 거센 물줄기가 근처 건물의 옥상까지 닿을 기세로 땅에서 뿜어져 나왔다. 물줄기의 허리가 뚝 부러지더니 이내 아자리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날아갔다. 불꽃의 파도와 물이 만나자 연막처럼 수증기가 자욱하게 터졌다. 옷은 축축해지고 가로등 불빛에는 테가 둘렸다.

한참을 달려도 파스낙의 다른 공격이 날아오는 기미는 없었다. 그나마 안전해진 거 같아 레스가 피카니를 향해 물었다.

“아직 멀었어?!”


피카니가 허리춤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서 시각을 보았다.


“거의 다 왔어! 시간표대로라면 분명 여기 근처야!”

아자리가 물었다.

“어디에 거의 다 왔다는 거예요?!”


“저거요! 저거!”


그들은 사거리 길로 들어섰고, 왼쪽을 보니 마침 지상 전차(트램)가 정류장을 떠나던 참이었다. 일행들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서 전차 뒤쪽에 바짝 붙었다. 먼저 피카니가 올라갔고, 그의 손을 붙잡고 아자리가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루나를 안고 있는 레스가 올라왔다.


모든 승객들이 기이한 얼굴로 일행들을 바라봤다. 레스는 루나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피카니가 모자를 벗고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겠지.”

레스가 루나의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에 대고 정중히 눕혔다. 그리고 그 말에 대꾸했다.

“이것만 가지고 안심하기는 너무 낙관적이지 않아?”


“불만 있으면 내려.”


아자리가 끼어들었다.


“목소리 낮춰요. 승객들이 보고 있어요.”

이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무서워 시선을 돌리기는 했으나 어쨌든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아자리가 먼저 운을 떼었다.

“진짜로  줄 알았는데…. 결국 와줬네요.”

레스가 담백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래서 왜?”

“구..구해줘서 고맙다고요. 여러분들에게요.”


레스와 피카니는 감흥 없는 얼굴로 서로를 노려보다가 대체 무슨 말을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레스가 말했다.

“너까지 사로잡히면 더 골치 아파지는데 진짜 우리끼리만 갈 줄 알았어?”

진지하게 감사를 표하려던 아자리는 김이 빠져서 주제를 바꿨다.


“그런데 화염병은 어디서 났어요?”

“술은 노점에서 급하게 가져왔고.”

“휘발유는 주차되어 있던 차에서 빌려왔습니다.”


레스와 피카니가 번갈아서 설명했다.

“그리고 마침 갖고 있던 알사탕도 가루로 만들어서 고무 조각이랑 같이 집어넣었지. 그럼 농도가 진해져서 불이 오래가거든.”

레스가 설명을 마무리하자 아자리가 물었다.


“그런데 용케도 방어 마법의 약점을 알고 있었네요?”


피카니가 대답했다.


“말하면 길어집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자리가 얼굴에 맺힌 구슬땀을 소매로 훔쳐내며 고깔모자로 얼굴을 부채질했다. 레스는 루나에게 무릎베개를 해주고 있었다. 아자리가 자신의 지팡이를 루나에게 쥐여주고 피가 나는 곳에 손을 대었다. 지팡이가 자신의 역할을 시작했는지 은은한 오렌지 색이 지팡이의 겉에 감돌았다.  창백했던 루나의 얼굴에 혈색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해볼게요. 저는 집중할 거니까 어디로 갈지는 둘이 생각해봐요.”


그때 일행들 곁으로 역무원 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오더니 정중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표를 보여주시겠습니까?”


피카니는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급히 고개를 올렸다. 다름이 아니고 저번에 봤던  차장이었다. 상어처럼 날카로운 치열에 눈동자는 붉었다. 가까이서 보니 머리카락은 색소가 빠져서 노인처럼 희끗거렸다. 이런 사람이 둘이나 있을 리가 없다. 기겁하고 있는 피카니와는 달리 사정을 모르는 레스는 차장에게 성의가 모자란 태도를 보였다.

“나중에요. 저희가 지금 바빠서.”


“표를 보여주시지 않으면 무임승차로 판단하겠습니다.”


“예예 그러세요.  내버려 두시죠.”

한창 힘쓰고  직후라서 레스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로서는 지금 판국에 무임승차가 대수냐는 생각이었으나 피카니는 급하게 지갑을 꺼냈다.


“여기요! 여기! 1인당 10배 요금이었죠?!”

차장은 피카니의 지갑에서 지폐를  장 가져가고는 자신의 모자챙을 움직여서 일행들에게 예를 갖췄다.


“정거장에서 오셨으니 평소 요금으로 정산합니다. 본 전차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레스도 고개를 끄덕여서 차장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 맞아. 우리도 일단 손님이었지. 손님이라면 예를 갖춰야겠지.”

차장이 저편으로 사라지자 피카니가 레스를 째려보았다.


“너 방금 나한테 목숨 하나 빚진 거야.”

“내 목숨값이 겨우 전차 표 4장이라고?”


“됐어. 이제부터 어쩌지? 병원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군부대로? 핑커튼이 우리를 도와줄까?”

“내 현상금을 생각해. 그것만 해도 모터바이크 한 대 값은 나올 텐데.”


“아 닥쳐! 너도 머리 좀 싸매봐!”

레스는 손가락을 아래로 향해서 루나를 가리키고는 반대쪽 손가락을 자기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했다. 아자리는 관자놀이를 꿈틀거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애써 무시했다. 피카니가 잇몸이 보일 정도로 이빨을 딱딱거리며 화를 억누르자 레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딱 하나 그나마 괜찮은 곳이 하나 있어.”

“어디?”

“우리가 머물던 숙소. 원래는 너희들한테 들킨 거 같아서 잡히기 전에 떠났는데 지금 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주인장도 좋은 사람이야.”


“확실해?”

“우리가 가진 딱총으로  도시를 상대할  아니라면 거기 말곤 모르겠다. 그런데 너도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네가  쫓아야지. 내가 널 챙겨주는 게 아니라.”

“챙겨줘?! 나도 딴 곳으로 새긴 싫은데 살살 맞았다고 총알이 안 아픈  아니거든?!”


“나도 할 말 많아! 우린 폭격을 맞았어! 그때부터 3일도 안 됐다고!”

아자리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두 남자의 귓불을 잡아채고 벌떡 일어났다.


“아야야야야야야!”


“아야야야야!”

“작작 해 이 머저리들아.”


마무리 공격으로 그녀는 손톱으로 두 남자의 귓불을 확 잡아당기고는 양손을 털었다. 한심한 꼴로 웅크려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아자리가 말했다.

“나도  상황이 마음에 안 들지만 적어도 이딴 일에 체력 낭비하지 마!”

레스는 자기 귀를 어루만지며 변명했다.


“미안...”

피카니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그녀에게 물었다.


“루나는 상태가 어떻습니까?”


“시간은 벌었어요. 하지만 원체 몸이 연약한 사람이라 안심할 수가 없어요. 수술도 필요하고.”


“수술이요?”


“총알이 아직도 몸 안에 있거든요. 게다가 총에 맞았을  옷조각도 몸속으로 들어갔네요. 아무래도  자식들이 일부러 내버려   같아요.”


피카니만이 아니라 레스도 그 말을 듣고 치가 떨렸다. 아자리는 다시 루나의 간호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동안 전차가 덜컹거리는 소리만 흐를 뿐 그곳에는 아무 목소리가 없었다.

레스가 먼저 피카니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운을 뗐다.

“너. 나한테 있어서 용사나 연방 보안관이 되는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알고 있지?”

피카니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래. 나도 알아. 그리고 나도 지금 신세가 즐겁지는 않아.”

레스가 감정 없는 말투로 읊조렸다.


“너. 너하고 나에 대한 건 다른 사람들이 안전해지면 해결하자. 할 말은 그게 다야.”

조금 뜸을 들이고 피카니가 말했다.


“고맙다.”


“나도 루나 씨에게 신세를 졌으니까.”

바깥에서 들려온 이질적인 소음이 적막을 깨트렸다. 폭죽이 연달아 터지는 소리로 들렸는데 한편으로는 짐승이 우는 소리로도 들렸다.  남자는 각자 권총을 쥐고 전차 뒷문으로 향했다. 아자리도 지팡이를 루나에게 단단히 쥐여주고 그들을 따라갔다.

“무슨 일이에요?”


 남자가 뒷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다섯 명의 총잡이들이 모터바이크를 타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까부터 들리던 이상한 소리는 엔진 소리였다. 총잡이들은 레스와 피카니가 눈에 띄자 한 손으로 조종간을 붙잡고 권총을 뽑았다.


“어쩐지 너무 쉽게 풀리더라!”

레스가 욕지거리를 뱉으며 아자리의 어깨를 붙잡고 숨었다. 총알이 전차를 때리자 안에 있던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창가에서 몸을 치웠다. 그 와중에 차장은 여전히 냉정하고도 침착한 얼굴로 안내방송을 이었다.


“본 전차는 이런 종류의 흔한 사태에 대비하여 완전 방탄이므로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고 문화인의 자세를 취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시민들을 진정시켜주지는 못했으나 차장의 말대로 총알들은 전차를 전혀 뚫지 못하고 있었다. 일행들을 쫓아온 총잡이들도  쏴봐야 소용없을 거라 판단하고 속도를 올렸다. 아무리 초기형 모터바이크라고 해도 노면 전차를 따라잡는 건 일도 아니다.


서로 가까워지자 피카니는 반드시 맞출 자신이 생겨서 몸을 내밀고 한  쏘았다. 총알이 한 총잡이의 몸 한복판에 박혔으나 상대는 인상만 찌푸렸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총알 세례를 피해 다시 숨으면서 피카니가 말했다.


“썩을. 방탄복이야!”


아자리의 입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나왔다.


“모터바이크에다 방탄복까지 일일이 챙겨주다니. 파스낙이 자기 바로 아래에 있는 사람은 정말 잘 챙겨주네. 지금이라도 저쪽으로 붙으면 안 될까요?”


레스가 고개만 내밀어서 바깥을 보다가 하늘을 보고는 정색했다.

“바로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 딱 정확한 표현이었어.”

피카니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보면 알아.”


레스는 옆으로 비켜서 자기가 본 것을 일행들에게 보여주었다. 파스낙이 외투를 펄럭이며 밤하늘을 등지고 새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도중에 밟을 만한 전봇대나 가로등이 있으면 파스낙은 도움닫기로 걷어차서 나는 속도를 높였다. 얼굴에는 전에 봤던 눈구멍과 숨구멍만 뚫려있는 밋밋한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파스낙 외에 다른 사람일 리는 없었다.

파스낙 바로 아래에 있는 도로에서는 모터바이크를  총잡이들이 속력을 높이고 전차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사수들이 전차를 둘러싸고는 다 같이 창문을 향해 쏘았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와중에 총성과 유리 깨지는 소리까지 합쳐지니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이에 질세라 경쟁하듯 비명과 고함을 높였다.

인제 와서 놀랍지도 않게 그 와중에 차장은 총알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꼿꼿이 서서 시민들에게 친절하게 상황 대처법을 설명해줬다.

“유탄과 파편 때문에 위험할 수 있으니 창문을 닫지 마시고 몸을 좌석 밑으로 숨기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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