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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화 〉[3권] 101회 - 유기동물 보호소 (101/188)



〈 101화 〉[3권] 101회 - 유기동물 보호소



4개월 전.


레모니 타티아나는 발을 절룩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그녀는  앞에 멈춰 서서 손등으로 두드리려다가 소매에 묻은 피를 보았다. 그저 보았을  신경 쓰지는 않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방 안에 있는 파스낙 리차트라가 대답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파스낙이 설탕 시럽을 와인 잔에 따라서 마시고 있었다. 그가 앉아있는 소파 앞으로 벽난로가 활활 타올랐다. 타티아나가 문을 닫고 물었다.

“당뇨 안 걸리나요.”

“나도 오늘 힘들었거든. 어땠어? 놈들이 뭐라고 해?”


“저희 쪽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합니다.”

말하다가 문득 타티아나는 자신의 신발하고 바지에도 피가 묻은 걸 깨달았다. 파스낙이 시럽을 마시다가 그걸 보고 사레가 걸려 기침을 거칠게 토했다.


“뭔 짓을  거야. 내가 피바다는 안 된다고 했지.”

“이건 다른 일로 묻은 겁니다.”

“다른 일이라. 문 바깥에 숨어있는 누군가랑 관련 있는 건가?”

타티아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레 몸을 옆으로 비켰다. 그녀가 문을 열자 몸집이 작고 지저분한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슬그머니 들어왔다. 여자아이는 바짝 긴장해있었는지 사람을 처음 보는 새끼동물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파스낙은 잠깐 뚱한 눈으로 타티아나를 째려보다가 얼굴을 활짝 펴고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이름이 뭐니?”


“소... 소냐. 소냐에요. 성은 없어요….”


“소냐라고 하는구나! 이름이 예쁘네. 저 무서운 언니가 여기까지 데려와 줬구나. 저 언니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잠깐 여기서 기다려주겠니? 자, 여기 소파에 앉아서 불 쬐고 있어.”


파스낙은 설탕 시럽이 들어있는 병과 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냐는 이렇게 지저분한 차림으로 저렇게 커다랗고 화려한 소파에 앉아도 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당황했다. 파스낙이 괜찮다면서 손짓까지 하며 재촉하자 여자아이는 쪼르르 다가와 숨까지 헐떡이며 불을 쬐었다.

파스낙하고 타티아나는 바깥으로 나오고 복도를 걸었다. 불도 켜지지 않은 캄캄한 복도를 걷다가 창가에서 둘은 멈췄다. 파스낙이 팔짱을 끼고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뭐야.”


“오는 길에 저 아이가 나쁜 짓을 당하려던 걸 막았어요. 남자 여럿하고 다퉜죠.”

그녀는  낯이 없다는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파스낙이 잔과 병을 창가에 올려놓고 입가를 비웃음으로 비틀었다.

“가끔은 착한 사람 행세도 괜찮겠지. 하지만 돈만 쥐여주고 헤어졌어야지 저게 뭐야?”


“마침 허드렛일 담당이 필요하던 참이었잖아요. 말  듣고  무거운 사람으로. 언제까지 저희끼리 청소나 쓰레기 버리는 담당 따위를 번갈아서 할 건가요.”


“아, 그건 그렇네. 네가 만드는 밥을  먹는 건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 인간들 땅이다 보니 사람 찾기가 쉽지도 않고.”


타티아나의 관자놀이에 한순간 핏대가 솟았다. 곧 그녀는 침착해졌다.


“순진한 아이예요. 부모한테 버림받고 갈 곳이 없어서 길거리 생활을 전전했대요. 우리가 거둬 준다면 저흴 철석같이 따를 거예요. 우리가  하는 사람이던 신경도 안 쓸 거고요.”

파스낙은 조리개가 닫힌 카메라의 렌즈처럼 생기 없는 눈으로 그녀를 한참 동안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그가 집게손가락으로 타티아나의 이마 한가운데를 거칠게 꾹 찔렀다.

“책임지고 맡아. 책임지라고. 두 번이나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타티아나는 손가락에 밀려서 고개가 뒤로 젖히는 와중에도 감정 없이 대꾸했다. 파스낙은 잔과 병을 다시 들고 어딘가로 향하면서 중얼거렸다.


“우리의 제국이 시작될 곳을 유기동물 보호소로 만들다니.”






현재.



타티아나는 어느 버려진 건물 안에 있었다. 하딘이 그녀를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우리 중에 까먹은 사람도 있을 거 같으니 제대로 다시 소개하지, 욜스카 공국의 공작원 출신인 레모니 타티아나 소위다. 보다시피 마족이고. 지금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예의 특수인물, 파스낙 리차트라의 심복이었으며 최근 전향했지.”

안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피카니는 아비투스와 카르델 사이에 끼어있었다. 마치 그가 도망치는 걸 막으려는  분위기가 흉흉했다. 히콕, 윈프리 그리고 레오포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로 모여있었다. 여기에 하딘과 타티아나까지 더해서 총 여덟 명이다. 레오포드의 단짝은 건물 바깥에서 꼬리로 땅을 쓸면서 망을 보는 중이고. 이야기에 끼어서도 안 되고 들어서도 안 되는 신세인 단테는 늑대와 같이 있었다.

타티아나는 손을 허벅지에 붙이고 꼿꼿이 몸을 세운  허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손뼉을 쳐줘야 하는 분위기였지만 다들 꾹 참았다. 아비투스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리다가 머쓱히 다시 내렸다. 하딘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파스낙 리차트라의 본거지는 어디에 있나?”

“그는 키르기스탄 대사관에서 살고 있습니다.”

실내가 술렁거렸다. 반응은 제각각이었으나 다들 당황해하고 있었다. 카르델이 가장 먼저 손을 들어 올리고 물었다.


“키르기스탄이면 마족 동맹  하나인 그 나라?”

“네. 고블린하고 난쟁이들의 고향이요.”

“대사관에서 살고 있다는 게 설마 단어 그대로 의미야?”


“예.”

실내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타티아나 바로 근처에 서 있던 하딘이 물었다.


“설명해주겠나.”


“저하고 리차트라는 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대사관 건물을 차지했습니다. 전쟁이 난 이후로 대사관은 방치되어서 사실상 그냥 노숙이었죠. 하지만 저희가 행한 다양한 수작을 통해서 대사관은 다시 작동하게 됐습니다.”

하딘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작동하게 됐다는 건. 설마 대사관에 있는 치외법권이 유효하다는 건가?”


“그뿐만 아니라 리차트라는 외교관으로 등록되어있습니다. 대사관 직원들은 모두 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들이고 실제로 하는 일도 전혀 없으나 법적으로는 실존합니다.”

히콕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씨부렁거렸다.


“허, 씨발. 외교관으로 등록되어있다면 면책 특권도 있다는 거잖아.”


사람들 모두 머릿속이 아찔거렸다. 군인들이 레오포드를 바라보자 그가 대답했다.

“놈이 날 불러서 일을 시킬 때는 항상 영화관에서 만났어. 거기까지 알아낼 여유는 없었네.”

이번에는 피카니가 말을 꺼냈다.


“파스낙 리차트라가 어떤 자인지 자세히 말해주시겠습니까?”

타티아나는 피카니의 얼굴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신경 쓸  워낙 많아서 할 말부터 했다.


“저도 그 남자 밑에서 오랫동안 일해왔지만, 완벽히는 모릅니다. 출신 불명, 행적 불명, 그 이름이 진짜인지도 불명. 그런데도 마계에 속한 모든 나라의 국적과 수십 가지의 신분을 가지고 있죠. 전 마왕 아레이스타의 직속 요원이 되기 전에는 암흑가에서 마법사를 죽이는 마법사, 그리고 암살자를 죽이는 암살자로 악명을 떨쳤다고 합니다. 이건 본인이 저한테 자랑하던 소리라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모릅니다만.”


“그렇게 거창한 이력을 가진 놈치고는 은근히 허당이었는데….”

피카니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의 주목이 한곳으로 쏠렸다. 타티아나는 대체  소릴 하는 거냐는 표정이었다. 피카니는 돋보기에 뭉쳐진 햇빛에 타죽는 개미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기 전에 하딘이 주의를 끌었다.

“하여튼 녀석을 공격하려면 대사관을 공격해야 한다는 거지?”


“네, 허깨비인 치외법권이지만 국제 문제가  겁니다.”

아비투스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싸움 자체의 승산은 얼마나 됩니까?”

난처해하는 표정을 지을 뿐 타티아나는 뚜렷한 답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때 레오포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섰다.

“이 아씨는 방금까지 병상에 있다가 나왔어. 상황을  알지는 못해. 내가 답하겠네.”


피카니는 타티아나가 고양이 귀를 쫑긋거리며 안심하는 걸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도망치면서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한  핑커튼이라고 했었다. 둘은 면식이 있을 터이다. 레오포드가 자신의 자리를 타티아나에게 양보해주고 대신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이야. 자네들하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승산이 높아졌어. 숫자로는 아직 우리보다  배는 되고 파스낙도 아직 살아는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수백 명을 상대로 싸울 일은 없을 거야.”

“근거는?”

하딘이 말했다.

“이 도시에 있는 갱단  개 중 둘은 이미 자네들이 반신불수로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제일 큰 갱단도 윈프리한테 들은 바로는 내부가 혼란스러울 거래.”

“어째서지?”


“그 사고뭉치들하고 관련된 거야.  부분도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

타티아나하고 윈프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한숨을 쉬며 손을 내저었다. 타티아나만이 그 사고뭉치들이 누구인지 몰라서 어리둥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필요 없겠군. 아무튼, 가뜩이나 자기들 상황도 여의치 않은데 파스낙의 명령 때문에 갱단들은 마지못해 싸우러 나왔고 그 결과는 막대한 손해로 돌아왔지. 파스낙이 이 도시에 자신만의 제국을 세웠지만 고작 몇 개월 만에 세워진 제국이야.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긴 한데 핵심은 기반이 허술하다는 거지. 갱단이 그에게 충성을 계속 바칠 확률은 낮아.”

카르델이 말했다.

“그리 쉽게?”

“자네도 한때 갱단에 있어봐서 알지 않나. 무뢰배 사이에 의협심 따위는 없어. 게다가 파스낙은  사고뭉치들하고 오늘 두 번 싸워서 두  모두 당했지. 그 덕에 나하고 타티아나가 이 자리에 있는 거고. 녀석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졌어.”

타티아나는 대체  사고뭉치들이 누구인지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실내의 분위기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겹쳐서 전망이 깜깜했다. 하딘도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레오포드가 윈프리에게 물었다.


“네 쪽은 어떻게 됐어 케이트?”


“부를  있는 사람은 다 불러봤어.  이쪽으로 먹을 거랑 탄약이 배달될 거야. 무슨 일이 생기면 주둔지까지 소식이 전하도록 연락망도 만들라 시켰고. 우리한테 합류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어. 다들 자경단원들이라 자기들 동네 지키는 데만으로도 벅찰 테니.”


윈프리는 나이가 제법 있는데도 깊은 새벽에 굴하지 않고 피곤한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일단 먹을 게 온다는 소식에 앉아있던 남자들은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레오포드가 다시 내용을 진행했다.

“대치가 길어질수록 시간은 저쪽 편이  거야. 아무리 권위에 금이 갔어도 파스낙 쪽이 힘을 모을 여지가 더 많아. 무리해서라도 내일 안에는 결판을 내야 해.”

히콕이 대꾸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더 못 싸웁니다 선배님.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하도 난리라 기관총의 탄약도 절반 이상 썼고요.”

“지금은 쉴 때지. 알고 있네 카우보이. 언제까지 쉴지는 장교에게 맡기는 편이 좋겠군.”

레오포드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타티아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자리를 내주고 앞으로 나섰다. 그때 카르델이 손을 들었다.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건데. 저 아가씨가 허리에 찬 총하고 칼은 순수히 호신용입니까?”


하딘이 대답했다.

“그녀가 자원했다.”

“그건 안 되죠. 살리려고 어떤 고생을 했는데 제정신입니까?”

타티아나는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기에 불쾌해하지 않았다. 그녀가 침착하게 카르델에게 다가왔다. 카르델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마주 보자 타티아나의 작은 키가 한눈에 드러났다. 홀로 있을 때는 탄탄한 체형과 수인들 특유의 야성미 덕분에 작은 키가 드러나지 않지만 카르델 바로 앞에서는 머리가 하나만큼 차이가 났다. 둘은 눈싸움을 했고 타티아나가 먼저 말했다.

“내가 걸리적거려서 신경 쓰인다는 거군.”


“잘 아네.”

“날 쳐봐.”

주변 사람들이 당황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르델은 한쪽 눈을 가늘게 떠서 자신의 감정을 격식 없이 드러냈다.

“뭐라?”


“날 맞추면 얌전히 있어주지. 못하면 나한테 참견하지 마.”

카르델은 주변의 눈치를 훑어보고 판단했다. 이젠 다들 이 싸움을 말라기보다는 타티아나의 실력을 보고 싶어 했다. 적어도 카르델에게는 그렇게 느껴져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이빨 사이로 숨을 뱉었다.


“좋아. 여자라고 봐주는 거 없이 있는 힘껏 휘두른다? 진짜?”


“언제든지.”

타티아나는 장승처럼  있기만 했다. 카르델이 주먹을 그녀의 어깨 쪽으로 날렸다. 이제 피하든지 막든지 그럴 테지. 어느 쪽도 아니었다. 타티아나는 손만 위로 올려서 카르델이 날린 주먹을 그대로 감싸 쥐었다. 힘 대 힘으로 막아낸 것이 아니라 감싸 쥐기만 하고 방향을 틀어버렸다.


손을 붙잡힌 카르델은 어느새 바닥으로 쓰러졌고 이내 타티아나는 그의 양 손목을 잡아서 오랏줄로 묶는 시늉까지 보였다. 눈깜빡할 사이에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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