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3권] 107회 - 시대의 흐름
그곳에서 난 총소리가 마치 우박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오늘은 번개 없이 천둥만 쳤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들렸다. 하라스가 남들에게 들릴 정도로 혼잣말을 했다.
“저 자식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적응.”
“뭐?”
“강화 인간이 되면 체력이 강해지는 건 물론 특별한 능력이 생기기도 하지. 저 양반의 특징은 적응이야.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몸이 그때그때 변한다던가. 다만 정신력은 별개라더군.”
“그럼 약점은?”
그의 목소리는 추위를 타는 사람처럼 떨렸다. 우두머리 총잡이는 아직도 잦아들지 않는 총소리를 배경으로 깔고 기어가는 투로 말했다.
“여러 가지 있는데 일단 피를 많이 흘리면 죽어.”
“지금 농담이 나와?”
“사람은 30%의 피를 잃으면 죽지. 근력하고 골밀도가 공룡하고 맞먹지만, 그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아. 그리고 저 양반은 희귀 혈액형이라서 수혈받기도 힘들고.”
굵은 소나기가 총잡이들의 모자를 계속 때렸다.
캘러헬은 집중포화를 받고 있었다. 겨누지 않고 손만 뒤로 뻗어서 이따금 권총을 쐈을 뿐 자세를 낮추고 달아나느라 바빴다. 그들끼리의 거리는 금방 좁혀졌다. 2인조와 분대는 그가 갈만한 길목을 가로막았다. 캘러헬은 골목 가운데에 갇혔다.
그가 숨어있는 대형 쓰레기를 쏟아지는 총알들이 톱날처럼 깎아냈다. 앞뒤로 공격받았다. 캘러헬은 눈을 한 번 질끈 깜빡이고 메고 있던 산탄총을 손에 들었다. 빗물로 차가워진 피부 아래로 따듯한 피가 온몸으로 도는 게 느껴졌다. 독도 온몸으로 퍼졌으나 동시에 신진대사도 끓어올랐다. 심호흡 한 번에 그는 몸의 떨림이 멎었다. 캘러헬은 펌프 액션 산탄총의 공이를 뒤로 잡아당기고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재장전을 하느라 잠깐 총소리가 멎었다. 정신없이 쫓아가느라 교대로 쏘는 것도 까먹었었다. 빈틈을 막기 위해 카우보이 중 하나가 다시 손을 호루라기에 댔고 캘러헬은 그때 나타났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몰려오는 자들을 향해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캘러헬은 손가락을 방아쇠에 계속 걸었다. 왼손으로 펌프를 당기자 탄피가 약실에서 나오면서 뒤로 빼둔 공이가 다음 총알의 뇌관을 터트렸다. 그의 손과 총은 죽음을 생산하는 기계가 되어 1초 만에 약실과 탄창에 들어있던 6발의 산탄을 전부 쏟아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총성을 진짜 천둥으로 착각했다.
M1897는 리볼버 패닝처럼 방아쇠를 당긴 채 펌프로 공이를 움직여서 연사할 수 있다. 속칭은 ‘슬램 파이어’. 격렬한 반동을 캘러헬은 괴력으로 버텨냈다. 버티지 못한 것은 몸에 붙은 빗방울과 내리고 있던 빗방울, 그리고 총구 앞에 있던 것들이다. 폭풍을 맞은 사람들은 발목 위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카우보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대 하나가 그렇게 전멸했다.
똑같이 느려진 시간 속에서 2인조 카우보이들도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둘은 감정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각자의 무기를 사용했다. 한쪽은 쐈고 한쪽은 불었다.
캘러헬도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몸의 반응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움직였다. 철갑탄 하나가 캘러헬이 들어 올린 왼팔에 박혔다. 두 번째 철갑탄은 맞은편에서 날아온 권총탄과 인사를 나눴다. 캘러헬은 몸 한복판에 총을 맞고 휘청거렸고 상대는 한쪽 눈이 터졌다.
“썅!”
호루라기를 불던 카우보이는 눈에서 피를 흘리는 동료를 데리고 옆으로 몸을 피했다. 맥을 재보니 기적적으로 동료는 숨이 붙어있었다. 그는 다시 몸을 추스르고 골목을 겨눴다. 캘러헬은 건물의 벽과 벽을 걷어차면서 뛰어올랐다. 카우보이는 물웅덩이가 떨릴 정도로 크게 외쳤다.
“위쪽으로 갔다!”
다른 카우보이들이 도시 곳곳에서 건물 옥상으로 솟아났다. 캘러헬을 포함해서 다섯 명의 사람들이 비바람 속을 날다시피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서로를 쏘았다. 그 안에는 방금 애꾸눈이 된 이도 있다. 쉴 시간이 없는 건 서로 마찬가지였다.
캘러헬은 숨이 거칠어졌다. 머리가 어지러워진 그는 굴뚝 뒤에 몸을 웅크리고 잠시 쉬었다. 추격자들은 수신호를 주고받으면서 그곳을 둘러쌌다. 교회 종탑에 있는 저격수는 조준기의 십자선을 그의 머리가 있을 곳으로 옮겼다. 날숨을 뱉으며 그가 속삭였다.
“아디오스 아미고.”
저격수가 쏜 대구경 탄환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굴뚝을 뚫은 탄환은 벽돌 조각과 함께 캘러헬의 머리를 때리고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갔다. 추격자 중 하나가 수류탄을 들고 핀을 뽑으며 외쳤다.
“수류탄 투척!”
소리를 들은 캘러헬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도 갖고 있던 수류탄에서 핀을 뽑고 맞서 던졌다. 핀이 뽑혀나간 수류탄끼리 허공에서 서로 부딪혔다. 이내 공중폭발로 인근의 지붕이 모조리 박살 나고 비가 잠시 거꾸로 흘렀다. 상대의 넋이 나간 틈에 캘러헬은 자신의 발밑을 주먹으로 부숴버리고 들어갔다. 그 건물의 창가를 겨누면서 저격수는 욕을 뱉었다.
“쉽게 좀 죽으란 말이야 빌어먹을….”
다시 호흡에 집중하려는데 저격수는 갑자기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그가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는 순간 총알이 그의 뺨을 뚫었다. 총성은 거의 안 났다. 오히려 공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더 컸다. 저격수는 부서진 이빨과 핏물을 토해내며 습격자를 똑똑히 보았다.
“너…!”
레모니 타티아나는 왼손으로 나강 리볼버의 공이를 때리고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도 총성은 소음기와 빗소리에 묻혔다. 그녀는 시체를 옆으로 치우고 바닥에 엎드린 다음 소총을 몸에 바싹 붙였다.
◆
은신처의 강철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단테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문을 잠갔다.
“레스! 샤키! 아자리! 어디 있어요?!”
안은 컴컴했다. 전구를 켜자 바로 소파에 쓰러져 있는 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팔에 감긴 부목을 보고 단테는 경악했다.
“맙소사.”
아픈 사람을 깨우긴 싫었으나 지금은 한시가 급했다. 그는 다가가서 레스를 흔들었다. 곧 레스는 기침을 하다가 눈을 떴다.
“단테?”
레스는 그를 보고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해서 안도했다. 하지만 단테의 얼굴은 정반대였다.
“아자리하고 샤키는 어디 있어요?”
이제 레스도 상황파악이 갔다. 굳은 얼굴로 그가 말했다.
“애들은 너 찾으러 나갔는데.”
“아 설마 했는데! 이걸 어쩌면 좋아!”
단테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뇌까렸다.
“넌 어쩌다 여기 왔어?”
“나도 같은 생각이었죠! 하지만 그게… 설명하면 길어져요. 놈들은 몰려왔고 캘러헬 씨는 지금 혼자서 싸우는 중이에요. 어쩌면 좋죠?”
캘러헬과 무리가 싸우는 소란은 이쪽에까지 들리고 있었다.
“일단 나 좀 잡아줘.”
레스는 부축을 받고 힘겹게 일어났다. 근육통 때문에 온몸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총에 맞은 곳과 오른팔은 물론이고 몸 곳곳에 난 멍이 뼛속까지 활개를 쳤다. 그는 탁자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보았다. 은 탄환, 약병, 우유병, 가지런히 정돈된 그의 무기들. ‘조심해야 하네’라고 적힌 쪽지도 남겨져 있었다.
레스는 자기 목에 걸려있는 꿈 덫을 손으로 들어서 슬쩍 바라보고 말했다.
“아자리하고 샤키는 괜찮을 거야. 믿을만한 동행이 있어. 하지만 캘러헬 씨는 그렇지 못해.”
“우리는 어떤데요?”
도망쳐야 할까. 아니면 망가진 몸을 이끌고 싸우러 가야 할까? 레스는 현실적인 판단과 직감 사이에서 고민해야만 했다. 그에게는 힘겨운 결정이었다. 단테는 입술을 깨물고 일단 레스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레스는 눈을 크게 떴다.
“단테? 혹시 미행당했어?”
“미행?”
누군가가 강철 문을 억지로 움직이려는 소리가 났다. 레스하고 단테는 허겁지겁 탁자에 있는 물건들을 챙겼다. 단테는 레스가 가리키는 곳으로 그를 부축해주면서 움직였다.
“이번에는 분명히 조심했는데!”
“엎드려.”
하라는 대로 했다. 탄막이 은신처 안을 휩쓸었다. 연달아 터지는 총성을 통해 단테는 알아보고 정색했다.
“맙소사 개틀링 건이잖아!”
건물 바깥에서 카우보이가 개틀링 건을 몸에 매고 다니면서 크랭크를 돌리고 있었다. 단테와 레스는 바닥을 기어서 무기고로 향했다. 개틀링 건의 탄창이 비었다. 다른 카우보이는 레버액션 소총을 가지고 너덜거리는 벽돌벽을 발로 밀어서 부쉈다. 레스는 덜덜 떨리는 왼손으로 자신의 권총을 들고 숨을 죽였다. 부스러기들이 밟혀서 부서지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
우두머리 총잡이는 35mm 박격포를 직접 들고 부하들과 함께 움직였다. 박격포는 굵기가 어른 팔뚝만 했다. 기존의 박격포로는 설치하고 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급한 상황에서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때문에 포다리나 받침대가 달리지 않았다. 원래는 땅에 세우고 손으로 직접 각도를 잡아서 쏘는 물건이었으나 우두머리 총잡이는 포탄을 집어넣고 어깨에 짊어졌다. 포 끄트머리에 있는 뾰족한 부분이 포탄의 추진 작약에 불을 붙였다. 포탄은 굵고 짧은소리를 내며 날아가 4층 건물의 벽을 부쉈다.
안에 숨어있던 캘러헬은 충격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팔에 박혀있던 철갑탄을 입으로 빨아서 꺼냈다. 몸에 박힌 것은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걸 꺼내면 잃을 피가 너무 많았다. 고통을 무시하고 재생된 왼팔로 산탄총을 장전하는데 위에서부터 인기척이 들렸다. 애꾸눈 카우보이는 바닥을 주먹질로 구멍을 냈다. 곧 추격자들은 자신들이 갖고온 약병들은 모조리 쏟아부었다. 캘러헬이 그걸 보고 고무공처럼 자리에서 튀어나왔다. 등 뒤에서 약병들이 깨지자 그는 갑자기 기침을 격하게 터트렸다.
“안단시움! 이런… 망할….”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그는 계단을 구르다시피 해서 내려갔다. 우두머리 총잡이는 박격포에 다시 포탄을 넣으려다가 생각을 바꾸고 부하를 바라보았다.
“태워버려.”
명령을 받은 카우보이는 저벅저벅 걸어서 건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스카프를 벗었다. 카우보이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고함을 지르며 입에서 불을 뿜었다. 하라스와 다른 평범한 인간들은 그 광경을 보며 질겁하고 살짝 뒷걸음질 쳤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건물 1층은 모조리 불로 가득 찼다. 캘러헬은 밑에서부터 올라온 연기를 마시고 기침이 더욱 심해졌다.
하라스가 우두머리 총잡이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죽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안심하면 우리가 죽어.”
우두머리 총잡이는 담백하게 대꾸했다. 건물 안에서 총성이 다시 울렸다. 추격자들이 스카프와 방독면을 쓰고 캘러헬이 달아난 방향으로 총알을 뿌리고 있었다. 그들은 3층에 있었다. 네 명의 카우보이들은 서로의 사각을 살펴주면서 움직였다. 문 하나를 지나가는 순간 캘러헬이 나타났다. 그는 온몸으로 그들을 들이박고 계속 뛰었다. 무리가 그를 향해 쏠 겨를도 없이 캘러헬은 벽으로 돌진해서 뚫어버리고 바깥으로 떨어졌다. 달리는 기세가 워낙 거세서 그는 골목으로 떨어지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2층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두머리 총잡이는 다시 박격포를 쏘려다가 크게 소리쳤다.
“집합!”
지금 쏘려고 했다가는 아군이 맞을 수도 있었다. 반파된 건물에서 두 카우보이가 튀어나왔다. 합류한 부하들에게 우두머리 총잡이가 물었다.
“매켈란하고 키노는 왜 안 와?”
“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애꾸눈 카우보이와 친구는 캘러헬이 뛰쳐나간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그들은 좁은 방으로 들어왔다. 기다리고 있던 캘러헬이 그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에서는 총성 대신 맥빠지는 소리만 새어 나왔다. 플라스틱이 개발되기 전에는 산탄총 탄약들은 파라핀 먹인 방수 종이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황동 탄피로 만든 총알조차도 비가 오는 날이면 불량률이 치솟았는데 종이로 만든 총알을 두말할 것도 없다.
캘러헬은 들고 있는 산탄총을 그들에게 휘둘러서 집어 던지고 권총을 뽑았다. 자세가 무너져있던 두 카우보이도 무거운 산탄총 대신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고 지향 사격을 했다. 이성을 잃어버린 총잡이들은 권총 몇 발로는 쓰러지지 못했다. 캘러헬과 두 사람은 계속 쏘면서 서로에게 다가갔다. 총알이 떨어지자 캘러헬은 애꾸 눈 카우보이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주먹을 주고받으며 이리저리 뒤엉켰다. 애꾸 눈은 안구가 사라진 눈가에 주먹을 맞아버리고 얼굴을 감싸며 발광했다. 다시 자세를 잡으려던 캘러헬은 기침을 하다가 옆으로 고꾸라지고는 피를 토했다. 다른 카우보이는 이제야 상대를 확실히 겨눌 수 있었다. 코앞에 있는 상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나가지 않았다.
사수는 당황했다. 불발탄인가? 아니. 캘러헬이 산탄총의 약실을 붙잡고 악력으로 우그러트린 거였다. 캘러헬은 붙잡은 산탄총을 양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벽까지 몰아붙이고 다시 힘을 주자 개머리판이 상대의 몸을 뚫어버리고 벽에 박히는 감각이 팔에 전해졌다.
곧, 실신했던 애꾸 눈 카우보이도 목이 부러지면서 친구의 뒤를 따랐다. 캘러헬은 이제 그들에게 예를 갖출 여유가 없었다. 머리가 아파서 그들의 이름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대로 주저앉고 쉬려는데 아래쪽에서 또 탄내가 올라왔다. 멍하니 그가 중얼거렸다.
“이런….”
우두머리 총잡이는 캘러헬이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어내리는 걸 보았다. 그는 낙법도 하지 않고 그냥 철퍼덕 떨어졌다. 우두머리 총잡이가 외쳤다.
“거리를 유지해라,”
어차피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두머리 총잡이와 그 부하들은 복잡한 얼굴로 캘러헬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광장에 있었다. 숨을 곳이나 달아날 곳은 이제 없다. 과정은 엉망이었으나 캘러헬은 그들이 의도한 대로 여기까지 몰리게 됐다. 그는 한 번 더 피를 토하고 붉은 웅덩이를 넓혔다. 피로 물든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안단시움에 노출되면서 몸이 망가진 탓에 이제는 노인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주름살이 깊게 파이고 수염도 길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땅을 밀면서 캘러헬은 저쪽을 바라보았다.
“윌리엄!”
당장이라도 죽을 몰골인데 그 소리는 듣는 사람의 생존 본능을 자극했다. 우두머리 총잡이도 외쳤다.
“그랜드마스터!”
“그날 너희가 등을 돌리지만 않았어도 도시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다!”
그의 부하가 박격포를 건네받았다. 사람들은 무기를 들어서 저쪽을 겨누었다.
“사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그저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였을 뿐이지! 세상은 이제 우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한 게 저희 탓입니까?!”
모든 사람이 그곳을 둘러쌌다. 캘러헬은 마지막으로 생명의 불꽃을 태웠다.
“시대가 너희를 만들지 않았다! 세상이 너희 대신 길을 골라주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자기가 고르는 대로 사는 거야!”
“그리고 당신은 죽음을 골랐지. 잘 가시오.”
우두머리 총잡이가 손을 높이 올렸다가 내렸다. 카우보이가 박격포에 포탄을 집어넣었다. 모두 방아쇠에 손가락을 댔다. 아득한 곳에서부터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나더니 박격포를 들고 있던 카우보이의 머리에 총알이 박혔다. 뒤늦게 총성이 광장에 울리고 혼란이 퍼졌다.
카우보이가 뒤로 쓰러지면서 들고 있던 박격포의 조준이 위로 올라갔다. 포탄이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사람들은 넋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자리를 피한 곳으로 포탄이 떨어졌다. 하라스는 귀가 먹은 와중에도 악을 질렀다.
“저격수다! 다들 엎드려….”
우두머리 총잡이는 하라스를 억지로 붙잡고 총알이 날아온 쪽으로 들어 올렸다. 저격이 몇 차례 다시 날아왔으나 우두머리 총잡이는 무사했다. 그는 죽어버린 하라스를 내팽개치고 엄폐물로 들어갔다.
“우리 저격수는 뭐 하고 있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부하 중 하나가 종탑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안 보입니다!”
카르델은 자신의 스프링필드 소총에 클립을 집어넣고 다시 부지런하게 쏘았다. 숨을 곳 없는 개활지에 있는 캘러헬을 둘러싸느라 저 패거리들도 숨을 곳이 별로 없었다. 엎드려봐야 소용없고 엄폐물을 찾아도 소용없었다. 어디에 있든 저들은 측면을 완전히 잡혀서 카르델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카르델은 계속 살피다가 박격포에 넣는 포탄들이 담겨 있는 자루를 보았다. 호흡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기자 탄환이 포탄의 탄두에 있는 충격 신관에 박혔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일어난 대폭발은 제법 장관이었다.
쇼크 상태에 빠진 패거리들이 다시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다른 방향에서 총알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고 카우보이도 하나 쓰러졌다. 살아남아서 몸을 피한 우두머리 총잡이는 공격이 날아온 쪽을 보았다. 어느새 히콕과 아비투스가 근처의 건물 2층까지 맥심 건을 끌고 와서 쏘고 있었다. 맥심 건은 히콕이 잡았고 아비투스는 부사수를 맡아줬다.
히콕을 알아본 카우보이 중 하나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히콕! 이 망할 자식아!”
히콕은 잠깐 쏘는 걸 멈추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보는군! 형제들!”
“배은망덕한 새끼야! 제국이랑 손을 잡다니?!”
“사적인 감정은 없어!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였을 뿐!”
그는 다시 맥심 건의 발사 손잡이를 잡아당겨서 시대의 흐름을 선사했다. 캘러헬은 어느새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피카니와 하딘이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쏘아버리며 다가왔다. 엄폐도 안 하고 당당하게 걸었다. 패거리들은 모든 측면에서 공격받았다. 한쪽으로부터 공격을 피하면 다른 누군가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졸병들이 모조리 달아나거나 쓰러져버리니 이제 싸울 사람은 우두머리 총잡이랑 바로 옆에 있는 부하가 전부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 부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드러내서 맞서 싸우려했다. 하딘은 침착하게 소총의 레버를 연달아 움직여서 속사했다. 피카니가 휘청거리는 상대를 향해 그의 자동권총 ‘거버먼트’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자 슬라이드가 빗물 속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방탄복과 심장이 박살난 상대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뒤로 넘어졌다.
우두머리 총잡이는 한숨을 길게 쉬면서 한쪽 무릎을 세우고 가만히 기다렸다. 피카니와 하딘이 자신을 겨누면서 다가오자 그는 의욕 없이 양손을 들었다. 피카니가 말했다.
“또 보는군.”
피카니의 기억은 틀림없었다. 루나가 납치당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고 루나를 방패로 삼기까지 했던 그놈이었다. 우두머리 총잡이는 긍정이나 부정도 하지 않고 길게 입김만 불었다. 피카니는 눈을 한번 깜빡이고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아디오스 아미고.”
피카니는 오른손 검지를 방아쇠울에 집어넣고 왼손으로 총을 움직였다. 한번 총알이 발사되자 나머지 총알이 반동으로 알아서 연사 됐다. 이리하여 그들은 완벽하게 한물간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