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8화 〉[3권] 108화 - 종착점 (108/188)



〈 108화 〉[3권] 108화 - 종착점



안으로 들어온 카우보이는 근처에 있는 철제서랍장 뒤에 사람 그림자가 드리워진  보았다. 너머에 있는 사람을 맞추려고 서랍장을 쏘자 단테가 비명을 질렀다.


“와악!”

다행히도 단단한 공구들로 가득 찬 서랍장이라 총알이 그들한테 닿지는 않았다. 레스가 손만 바깥으로 뻗어서 마구잡이로 두 번 쏘자 상대는 일단 몸을 피했다. 레스가 단테에게 속삭였다. 장전 좀 해줘. 단테가 시키는 대로 하는 동안 레스가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그냥 생포 당하면 안 될까?!”

카우보이는 총으로 대답했다. 서랍장에 기대고 있던 그들의 뒤통수가 덜덜 떨렸다. 다시 장전된 총을 들면서 레스가 다시 속삭였다.

“엄호해줄 테니 혼자서 저쪽으로 뛰어가. 저 창고.”

“저 혼자?”

“난 뛸 수가 없어.”

레스는 일어나서 상대에게 닥치는 대로 쐈다. 카우보이는 숨어서 총성이 몇 번 들렸는지 속으로 세었다. 6번째로 총성이 나자 그는 몸을 드러내고 레스가 있는 곳을 향해 3번 속사했다.


단테는 지시받은 대로 움직였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문을 열자마자  일을 깨달았다. 카우보이가 레스에게 다가갈  단테가 무기고에서 이중 총열 산탄총을 갖고 나왔다.


“내 존만이한테 인사해라!”


상대는 오만상을 쓰며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단테가 쏜 산탄들은 외투에 막혔다. 상대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레스는 약병의 코르크 마개를 입으로 뽑고 내용물을 마셨다. 목울대가 울리고 위벽에 약이 닿는 순간 그는 동전처럼 눈을 부릅뜨고 눈동자를 까뒤집었다. 등이 뒤로 휘었다. 단테는 손만 바깥으로 뻗어서 계속 갈겼다. 소파 뒤에 숨어있던 카우보이가 중얼거렸다.

“귀찮아죽겠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카우보이가 안쪽으로 소리쳤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동료의 불평을 들은 카우보이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가 허리춤에 달고 있던 수류탄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핀을 뽑으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단테는 레스의 상태를 보았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귀신 들린 사람처럼 몸을 떠는 모습을 보아 제정신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상대가 어디에 있나 보고 조심스레 눈을 돌리는데 실내에 불빛이 확 번졌다. 불이 난 것이다.

“으와아아아악!”


카우보이는 화염병을 하나 더 던지고 방금 들어왔던 구멍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료가 그에게 물었다.


“왜 수류탄을 안 쓰고 굳이 불을 질렀어?”

“내가 던진 걸 저놈이 바로 쏴서 터트릴 수도 있으니까.”


“걱정이 과한 거 아냐?”


“파스낙이 저놈한테 두 번이나 당했어.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라지 않아. 이대로 기다리면 돼. 나올 곳은 여기 밖에 없으니까.”

레스는 까뒤집었던 눈동자를 원래 자리로 되돌렸다. 그의 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레스가 심호흡을 하자 달궈진 몸에서 나온 날숨이 입김으로 변했다. 단테는 손에 잡히는 대로 총알을 산탄총에 집어넣고 레스에게 달려갔다.


“내 말 들립니까?! 정신 차려요!”


“정신 차렸어.”


그가 몽유병 걸린 사람처럼 얼이 나간 얼굴로 단테를 바라보았다. 단테는 더욱 불안해졌다.


“아 하느님 이걸 어떻게 벗어나지!”

레스는 오른팔에 감겨있는 부목을 벗겨내고 손을 한 번 쥐었다가 펴보았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온몸이 너무 가벼워서 다른 사람 몸을 조종하는 기분이었다. 정신마저 가벼워졌는지 잠깐 신경을 집중하자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다. 점점 번져가는 불. 하나밖에 없는 탈출구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적. 권총. 은 탄환. 느려진 세상 속에서 레스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행동했다.

“지금 대체  하는 거야?!”

단테의 절규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카우보이에게까지 들렸다. 두 카우보이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서로를 흘겨봤다. 레스는 서랍장에서 볼트 커터를 꺼내고는 권총을 거기에 끼우고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단테가 뒤에서 붙잡고 말리려 들자 레스가 말했다.


“나갈 준비해.”


그는 달궈진 권총을 불에서 꺼냈다. 잠시 뒤에 카우보이들은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투항하겠어! 지금 무기를 버릴 테니 똑바로들 보라고!”


레스는 약실에 은 탄환을 거꾸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권총을 바깥으로 집어 던졌다. 카우보이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기들 발밑으로 날아온 리볼버를 흘겨보았다. 그들은 빗물이 닿을 때마다 수증기가 피어나는 달궈진 권총에서 눈을 떼고 다시 연기 나는 입구를 겨누었다. 그림자라도 보이는 순간 쏠 작정이었다.


그들 발밑에서 권총이 폭발했다. 파편이나 화염 없이 순수한 충격파에 카우보이들은 뒤로 고꾸라졌다. 레스하고 단테는 콜록거리면서 매캐한 연기 속에서 뛰쳐 나왔다. 쓰러진 카우보이가 이쪽을 향해 소총을 겨누자 레스는 볼트 커터를 휘둘러 옆으로 쳐냈다. 손가락이 소총의 방아쇠울에서 빠져나오자 카우보이는 바로 다른 손으로 권총을 꺼냈다. 레스는 권총을 짓밟았으나 상대는 팔 힘만으로 그를 통째로 들어 올렸다.

“으왓?!”


순식간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상대는 몸을 일으키고 그를 쏘려고 했다. 다른 쪽을 겨누고 제압하고 있던 단테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서 이쪽을 향해 쏘았다. 둔탁한 총성과 함께 굵은 무언가가 카우보이의 몸에 박혔다. 그는 움찔하다가 자기 외투에 박혀있는 뭉개진 고무 덩어리를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단테가 입을 벌렸다.


“아.”

단테가 손에 잡히는 대로 장전했던 총알은 고무탄이었다. 어쨌든 레스는 기회를 틈타 상대의 다리 사이를 걷어차 버렸다. 카우보이는 굴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주저앉아 신음을 흘렸다. 보고 있는 단테도 미간을 찌푸렸다.


“어후!”


“뒤에 봐 뒤!”


레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까까지 단테가 제압하고 있던 카우보이가 그사이에 일어나서 개틀링 건을 겨누고 있었다. 단테가 머리를 겨누고 쐈으나 상대는 끄떡도 안 했다. 그가 손잡이를 돌리기 직전에 단테는 다른 곳으로 허겁지겁 달아났다. 레스는 자기 옆에 떨어진 레버 액션 소총을 들고 정수리를 땅에 박았다. 그대로 뒤집힌 세상을 향해 쏘았다.


총알을 쏟아내던 개틀링 건이 갑자기 멈췄다. 카우보이는 손잡이의 이음매가 총알에 맞아서 꺾여나간 걸 뒤늦게 깨달았다. 레스는 소총의 레버를 한 번 움직이고 몸을 돌려서 포복 자세로 바꿔서 다시 쏘았다. 이번에는 멜빵이 끊어져서 게틀링 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레스는 왼손으로 바닥을 밀면서 일어나고 레버에 걸친 오른손으로는 총을 뒤로  젖히고 돌려놨다. 서서 쏴 자세로 상대를 겨누면서 그가 말했다.

“나라면 양손을 들겠어.”

카우보이는 간을 보고 잽싸게 허리춤으로 손을 뻗다가 바로 다리와 오른손에 총을 맞았다. 그는 뒤에 있는 놈도 잊지 않고 허벅지에 한 발 쏘았다. 하지만 상대는 사기가 꺾이긴커녕 허리에서 단도를 뽑고 달려들었다. 그는 칼날을 피하고 달궈진 총을 상대의 목에 쑤셨다.

“아아악!”

상대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레스는 조준을 옆으로 치워서 상대의 귓가에 쏘았다. 총성에 정신이 나간 상대는 이마에 개머리판을 맞고 혼절했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나머지 카우보이가 왼손으로 권총을 힘겹게 뽑으려 들기에 레스는 벨트를 맞춰서 끊어버렸다. 벨트가 땅으로 떨어지자 여태껏 숨어있던 단테가 상대의 뒤통수를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단테가 겨우 긴장을 풀고 헐떡거렸다.


“우리가 해냈다.”


“그러게.”

레스는 담백하게 대꾸하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곧 불길이 안 닿는 곳에 놔둔 그의 소지품들을 갖고 금방 돌아왔다. 단테가 빗물 젖은 머리를 가다듬으면서 다가왔다.


“아까 총에 집어넣은 총알은 대체 뭐였죠?”

“캘러헬 씨가 최후의 수단으로 쓰라며 줬던 거야. 마법의 힘이 담겨 있었어.”

레스는 자신의 권총을 주웠다. 아직도 따끈했다. 단테가 그걸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권총 자체는 멀쩡한데 손잡이가 부서졌네요. 흑단 나무 손잡이 굉장히 좋았는데.”


“스승님이 날 죽일 이유가 하나 더 늘었어.”

“확실히  총알을 직접 쐈다간  망가졌겠네요.”


콜록거리면서 레스는 카우보이들의 무기를 뺏었다. 레스가 빼앗은 무기를 몸에 매는 동안 단테는 저들을 지켜보았다. 당분간 깨어날  같지는 않았다.


그는 38구경 더블 액션 리볼버를 왼쪽 허리춤에 차고 중절식 싱글 액션 44구경 리볼버는 허리 뒤에 달았다. 어제 잡화점에서 새로 샀던 검은색 가죽조끼를 셔츠 위에 걸쳤다. 머리에 씌운 모직 천을 낙타 털로 만든 끈으로 고정하고 자락을 목깃 안쪽에 넣어서 정돈했다. 마지막으로 불에 그을려서 색이 훨씬 진해진 회색 폰초를 걸치고 자신의 단발 소총 ‘비나예 야하니’를 몸에  다음 손에는 탄약을 가득 채운 레버 액션 소총을 들었다.


단테는 레스가 건네준 탄띠를 받고 의미 없는 질문을 했다.


“우린 안 달아나는군요?”

“싸운다. 지금이 종착점이야. 달아날 곳은 없어.”


레스의 동공이 수축해있었다. 정신이 반쯤 어디론가 떠다니고 있거나 과도하게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그래도 목소리는 또렷하고 안광도 날카로웠다. 두 사람 뒤로 불붙은 건물이 연기를 봉화처럼 피워 올렸다. 곧 그들은 말발굽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단테가 외쳤다.


“경찰들이다!”

총성과 연기를 보고 사방에 깔려있던 병력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레스는 소총의 레버를 한 번 당기고 낮게 외쳤다.

“바짝 따라와. 내 뒤에 있는 한 죽을 일도 죽일 일도 없어.”







한편 도시 어느 곳에서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순찰 중이던 기마경찰대들은 동료들이 부는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계속 모여들었다. 그리고 모두 한 마음으로 놀라면서 같은 말을 했다.


“쫓아!”


레오포드와 윈프리는 말을 타고 빗속을 달리고 있었다. 아자리는 그 위로 지팡이를 타고 날아다녔고 가장 앞에는 샤카자이아가 라키키와 함께 늑대를 타고 달렸다. 그들 앞으로 기마 경찰들이 길을 가로막고는 권총을 겨눴다.


“멈춰라!”

라카키가 손뼉을 치고는 뭐라고 중얼거리자 경찰들이 타고 있는 말이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 경찰들이 타고 있는 말들에게 움직이라며 재촉했지만 그사이에 일행들은 지나갔다. 총을 겨누고 쏘려는 사람도 있었으나 총이 고장 나서 발사되지 않았다. 샤카자이아가 라카키에게 물었다.


“방금 어떻게 된 건가?”


“저 애들한테 부탁했어. 싸우기 싫다고.”


그녀는 한 손으로 늑대를 붙잡으면서 다른 손으로 몸에 매어둔 활과 화살집을 고쳐잡았다. 샤카자이아가 이번에는 늑대에게 물었다.

“나 무겁지는 않은가?”

‘웡’하고 늑대가 한 번 짓자 라카키가 뒤이어 말했다.

“예쁜 사람은 항상 가볍대.”

“보기보다는 진지한 성격은 아니었구나.”

그들은 계속 달렸다. 어느새 공장이 들어선 구역까지 이르렀다. 캘러헬이 적들과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저편에 보이는 화재 현장의 연기까지 어렴풋이 보였다. 높은 곳에 있는 아자리가 공장 쪽을 보고 외쳤다.


“저쪽에 열차가 있어요!”

공장에는 외부에서 연료와 자재들을 실어오는 화물 열차가 직통으로 올 수 있는 전용 철로가 깔려있었다. 철로가 사보타주로 끊어진 이후로 공장에는  길이 없어진 기관차가 기약 없는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멈췄다. 윈프리가 말했다.


“이제 계획대로 갈라지자. 꼭 무사히 돌아오렴!”

“부탁드리겠습니다!”

샤카자이아를 따라서 아자리도 외쳤다.


“우린 지지 않아요!”


윈프리는 레오포드와 고갯짓을 주고받고 공장 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레오포드가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난 여기서 경찰들을 막아보마.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

샤카자이아가 늑대 위에서 내려오고 말을 받았다.

“저도 그렇습니다.”

“나누고픈 이야기가 많았는데 안타깝구나. 마토아카에게 안부 전해주렴.”


아자리가 말했다.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요?”

“혼자는 아니야.”

늑대가 레오포드의 곁으로 가고 이쪽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강렬한 눈빛에 흠뻑 젖은 털들이 한결 더 늠름한 인상을 더 했다.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또 다른 소리가 났다. 아자리와 라카키가 같은 순간에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아자리가 크게 말했다.


“마법이다. 녀석이 저기에 있어요.”

라카키가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큰일 났다! 나 없이는  혼자서 못 버틸 텐데!”

아자리는 후드를 벗고 접어둔 고깔모자를 머리에 썼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눈짓만 주고받고  길을 서둘렀다. 레오포드는 늑대와 함께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반역자들에게 경의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