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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화 〉[3권] 118회 - 피는 피로 (118/188)



〈 118화 〉[3권] 118회 - 피는 피로



오르골의 뚜껑이 열리고 원반을 움직이는 톱니가 한 바퀴 돌자 온갖 일이 벌어졌다. 히콕은 귀를 틀어막고 무릎을 꿇었으며 라카키는 단말마를 지르며 그림자 연극의 등장인물처럼 껌뻑이다가 그 자리에서 증발해버렸다. 타티아나는 이를 악물고 자세를 낮게 잡아 견뎌냈고 루나는 지팡이에 기대다가 엎어졌다. 뒤를 살피면서 달아나던 레스는 갑자기 아자리와 샤카자이아가 신음을 지르자 깜짝 놀랐다. 둘은 급소를 세게 맞은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질식하면서 비틀거렸다.


“애들아! 왜 그래?!”

“일단 가기나 합시다!”


레스는 단테와 함께 친구들을 끌었다. 아자리는 말에 태웠고 샤카자이아는 늑대에게 태웠다. 단테와 늑대에게도 반응이 있었으나 거리가 멀었던 덕에 둘은 털이 조금 곤두서는 정도로 끝났다. 그리고 땅의 균열을 메우던 신비로운 빛들은 사그라져갔다.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다시 시작되자 피카니는 자기가 한 짓을 깨달았다.


“이 천하에 도움 안 되는 자식!”

타티아나가 갈라지는 소리로 진심을 담아서 고함쳤다. 다들 뒤쪽에선 무슨 일이 나고 있는지 궁금해서 돌아보고 싶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일행은 아무도 없었다. 단테, 아자리, 레스를 태운 말과 샤카자이아가 올라탄 늑대가 달렸다. 세 사람이나 올라탄 바람에 말은 조금 빨리 걷는 수준의 속도밖에 못 냈다. 뒤쪽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하늘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울려 퍼졌다.


“세상에!”


이미 축축해진 옷에 레스의 식은땀이  스며들었다. 한 번 조각났다가 붙였던 땅이니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은 피카니가 사고를 친 곳만 깔끔하고 순식간에 무너져서 연쇄반응이 없었다. 어느 정도 달리다가 아자리가 애원했다.

“잠깐만, 잠깐만 쉬어요. 따돌렸나 봐요.”


그들은 골목으로 방향을 틀고 숨어서 상황을 살폈다. 말의 체력도 살필 필요가 있었다. 단테는 안장 가방에서 수통을 꺼내줬고 일행들은 서둘러서 돌려가며 물을 들이켰다. 아자리와 샤카자이아는 아직도 얼떨떨해 보였다. 레스는 털썩 주저앉았고 두 여자는 벽에 기댔다.

“대체 어떻게 됐던 거야? 왜 나만 빼고 다들 이상해진 거지?”

명치를 누르면서 숨을 고르고 아자리가 말했다.


“몰라요. 당신 같은 평범한 인간한테 효과가 없는 건 확실하네요.”


샤카자이아가 헐떡이면서 입김을 올렸다.


“아까 라카키 씨가 사라지는  봤어. 어째서 그 사람만?”


아자리는 생각했다.

“그 난리의 정체가 뭐였는지는 몰라도, 당했을 때 당하는 쪽이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멀거나 가진 힘이 강할수록 치명적인 게 틀림없어요. 라카키 씨가 가장 강했으니까요.”


“그럼 죽은 거야?”

충격에 젖은 투로 레스가 말했다. 그녀는 얼굴을 싸매면서 뇌까렸다.

“모르겠어요. 페어리들은 규칙을 어기지 않는  불멸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레스는 어금니를  깨물면서 목소리를 뭉갰다.


“피카니 이 개새끼…. 넌 얼마나 심각해?”

아자리는 자신의 지팡이를 보여주었다.


“켈커트리 씨 덕분에 최악은 면했어요.”

일행들의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단테가 말했다.

“그 지팡이 잊을만하면 활약하네요. 저번에 폭격을 맞았을 때도 그랬죠.”

“유서 깊은 마법 장비들은 스스로 힘을 모았다가 유사시에 스스로 움직여요. 파스낙의 지팡이 칼이 죽이는 쪽이라면 이건 지켜주는 쪽이죠. 라카키 씨도 지켜줬으면 좋았을 텐데.”


“너 하나만으로도 벅찼을 테지.”


레스가 끼어들어서 화제를 바꿨다. 그가 단테를 바라보았다.

“그 뒤로 어떻게 됐던 거야?”

“레오포드 씨가 절 찾았습니다. 이쪽으로 오는 경찰들과 함께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계셨죠.”

“경찰들이 그 사람을 붙잡은 게 아니라?”

“그분은 당신이랑 피카니한테 납치당했던 거로 되어 있으니까요. 아무도 의심하지 않더군요. 실제로도 난리라서 그런  따질 새도 없었고요.”


단테는 안장 가방에서 페미컨도 꺼냈다. 쪼개서 나눠 먹었다. 자기 몫을 먹다가 샤카자이아가 말했다.


“이거 내가 만든 페미컨이 아니다.”

“핑커튼에게서 받은 거예요. 윈프리 씨의 사람이요. 이제 갑시다.”


그들은 지금까지 1분 정도 쉬었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었다. 아자리는 샤카자이아와 함께 늑대 위에 올라타고 단테와 레스는 말에 올라탔다. 도망이란 골치 아픈 일이다. 서둘러야 하면서도 조심해야 했다. 그들은 걷는 것보다는 조금 빠른 수준으로 움직이며 사방을 살폈다.


레스는 말을 몰고 있는 단테의 옷깃을 왼손으로 잡고 있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거야?”


“상업지구 바로 옆에 있는 공장으로 갈 겁니다. 거기에 화물 수송용 철로와 열차가 있어요. 윈프리 씨가 공장의 자물쇠를 따두고 열차를 출발시킬 준비를 해뒀답니다.”

옆에서 아자리가 말했다.

“상황 봐서 여차하면 도망칠 생각이었어요. 여행에 필요한 것도 거기에 실어주시겠데요.”

“단테의 물건들하고 마차는 포기하는 건가.”


그가 대답했다.

“물건 대부분 환금해서 계좌에 넣어두거나 어음으로 바꿔놨고 ‘부치’와 ‘선댄스’는 윈프리 씨가 잘 맡아주시겠답니다. 그 외에 저한테 특별한 건은 없으니 괜찮아요.”

“끌어들여서 미안하다….”

“어허. 사람 참.”


공장의 굴뚝이 보였다. 그리고 동도 트고 있었다. 연이은 지진 때문에 가로등의 전구들은 모두 깨져있었다. 사물들은 점점 또렷해지고 그들이 숨을 곳도 줄어갔다. 이제부터는 걸어가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일행들은 땅으로 내려왔다. 샤카자이아는 자신을 태워준 늑대를 꽉 껴안아 주면서 속삭였다.

“게안내타하 들로오(준비된 새) 씨에게 전해줘 슌카와칸(큰 개). 캐모사베(진정한 친구)로 여겨줘서 고맙다고. 잘 있어 난탄 르팡(회색 늑대). 미타쿠예 오야신.”

늑대는 알아들었다는 듯 그녀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비비고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단테가 레오포드에게서 빌렸던 말도 그들의 의중을 눈치채고 알아서 어딘가로 사라졌다. 귀소본능으로 갈 곳은 알아서 찾을 터이다. 일행은 모퉁이와 모퉁이를 조심스레 지나다녔다. 왠지 어디선가 기척이 들려서 그들은 잠깐 지나갈 때까지 숨었다. 기척이 지나갔어도 일단 그들은 잠자코 상황을 보았다. 아자리가 속삭였다.


“피카니 일행이 어떻게 됐는지 본 사람 있어요?”

일동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샤카자이아가 답했다.

“금발 머리랑 다른 놈들은 아무래도 좋지만 파란 머리는 걱정되는군.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우린 정말 끝이었어.”


레스가 말을 받았다.


“그 사람 이름은 루나야. 루나 센델자레.”

그녀는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이름을 발음할 때 제대로 경의를 담았다.


“왜 루나 씨는 우릴 도와줬을까? 난 이번이  번째로 만나는 거라 전혀 모르겠다.”

“그놈들한테  어울리는 사람이었던 건 확실해.”

순간 레스는 얼굴이 굳었다.


“생각해보니 나하고 아자리 때문에 추격대가 꾸려진 건 그렇다 쳐도 루나 씨는 어쩌다가 따라온 거지? 그만한 실력의 마법사가 쉬이 모집될 리도 없고 심지어 대학교수잖아. 교수가 왜 군인이랑 같이 다니는데?”

그 말을 듣고 아자리도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들과 우리 사이에 쫓고 쫓기는 관계 말고도 복잡한 무언가가 더 있군요. 잡히면 안  이유가 늘었네요.”


앞장선 단테가 손짓으로 가자고 신호했다. 공장을 둘러싼 담벼락에는 철조망이 처져서 넘을 수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철조망을 치울 수도 있었으나 안으로 들어가는 철문의 자물쇠가 따져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공장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출근하긴커녕 주변 시민들은 대피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래도 방심은 못 할 짓이다. 종점이 가까울수록 서둘렀다가는 일을 그르치는 수가 있다. 그들을 쫓는 사람들의 수를 생각하면 누군가가 어디에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행은 집요할 정도로 시간을 들여서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 때만 노려서 자동차나 적재된 잡동사니 같은 숨을 곳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확실한 건 좋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레스는 아자리의 어깨를 톡톡 쳤다.

“왜요?”


“너의 부모님. 붙잡은 놈들이 정기적으로 가두는 장소를 바꾸고 있어. 시작하기에는 욜스카가 좋다고 파스낙이 말했어. 그리고 모든 방계가문이 반란에 참여했어. 네 가문까지 포함해서.”

그는 겨우 알아낸 소중한 정보가 자기 머릿속에 묻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아자리는 비명이 나오려는 걸 스스로 입을 틀어막아서 참았다.


“아무도 믿으면  돼. 아무도. 그리고 수장을 알아내려면 셀라렐로….”

샤카자이아가 귀를 쫑긋거리더니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서 그의 입을 가렸다. 일행들이 숨어있는 곳 근처로 누군가가 담벼락을 휙 넘어서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타티아나는 낙법 자세 그대로 몸을 낮춘 채 주변을 살폈다. 일행들은 다들 코와 입을 가리고 상대가 어디론가 가기를 기다렸다. 이내 자신들이 남기고 온 발자국 때문에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도 아니고 네 사람이 같이 움직였으니 땅에 흔적이 아주 선명했다. 샤카자이아는 상대가 저걸 놓치길 기도하느니 손에 활을 들었다.


타티아나가 권총을 들고 외쳤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여기서  복잡하게 만들지 마!”

그녀가 외치는 순간에 샤카자이아가 몸을 빼내고 활을 겨누었다. 타티아나는 조금 당황해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일단 옆으로 몸을 굴려서 화살을 피했다. 샤카자이아가 다른 화살을 화살집에서 꺼내고 말했다.

“먼저 가! 바로 쫓아갈게!”


다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다. 샤카자이아가 활로 엄호해주자 나머지 일행은 이번에야말로 마지막 체력을 쥐어짜서 달렸다. 타티아나는 시선을 저쪽으로 돌리고 다급히 쫓았고 그 뒤를 샤카자이아가 따라잡았다. 두 사람은 각자의 무기로 서로를 겨누었다. 샤카자이아가  빨랐다. 타티아나가 사용하는 M1895 나강 리볼버는 소음기를 사용할 수 있는 대신 많은 단점을 갖고 있는데 그중에는 방아쇠의 압력이 무겁다는 문제도 있었다.

화살이 그녀의 왼쪽 어깨를 스쳤다. 상처는 가볍다. 반사신경으로 공격을 피한 타티아나는 코앞의 상대를 내버려 두고 저쪽에 있는 상대를 향해 달렸다. 달아난 일행들은 이미 공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샤카자이아는 다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하지만 상대가 곡예사처럼 장애물들을 뛰어넘으며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자 그녀도 어쩔 수 없이 달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일행들은 코를 찌르는 석탄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다. 하루만 머물러도 병이 줄줄이 걸릴법한 곳이었다. 이제 반대편으로 빠져나가면 열차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절반쯤 갔을 때 타티아나도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저건  누구예요?!”

단테의 질문에 타티아나는 총알로 대답했다. 제대로 겨눌 시간이 없었기에 일단 위협 사격으로 쏜 거였다. 일행들은 달리다 말고 일단 몸을 숨겼고 그쪽으로 가면서 그녀가 말했다.


“이성을 챙겨! 마계는 가망이 없다! 갈 수도 없고! 내가 거기서 왔으니까 알아! 난 너희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타티아나의 말에 샤카자이아는 화살로 대답했다. 그녀도 막 건물 안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이번에도 반사신경으로 타티아나가 화살을 피해버리자 샤카자이아는 다른 화살을 다시 시위에 거느니 그냥 덮쳐버리는  낫다고 생각했다. 타티아나는 정면으로 우악스럽게 달려드는 상대를 향해 권총을 겨누는 대신 자기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 탓에 반사적으로 자세를 잡았다.

레스는 샤카자이아가 저렇게 힘을 냈으니 엄청난 소리가 날 거로 생각했는데 그냥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타티아나는 상대의 몸통박치기를 받아내면서 서로 손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권총은 그 와중에 놓치고 말았다. 느낌이  좋았다. 레스는 타티아나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지만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건 호흡을 관리하는 모습으로도 알 수 있었다. 레스는 아자리하고 단테에게 말했다.

“먼저 가서 열차에 시동을 걸어! 내가 샤키랑 같이 돌아올게!”

단테가 여태껏 맡아두었던 그의 소총을 전해주려고 하자 레스는 손사래를 쳤다.

“지금 몸이 너무 아파서 조준을 못 하겠어! 서둘러!”

“그쪽도요!”

아자리는  말을 남기고 단테와 같이 부리나케 달렸다. 타티아나는 아직도 샤카자이아와 다투고 있었다. 샤카자이아가 상대의 팔을 붙잡고 체중을 실어서 밀어붙이자 타티아나는 뒤에 놓은 발끝을 세우고 앞발의 발꿈치에 힘을 줬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고 물러나는 보폭을 넓게 잡아 무게 중심을 굳혔다. 묵직한 동작을 주로 내세우는 홍가권 특유의 자세다. 힘이 부치려 하자 샤카자이아는 무작정 밀치고 물러나려는 생각에 자세를 푸는 순간 타티아나는 양팔을 좌우로 펼치면서 상대를 걷어차고 학처럼 한 발로 섰다.

둘은 거리를 벌리고 호흡을 골랐다.

“핫!”

샤카자이아는 기합을 한 번 지르고 차인 곳을 손으로 털면서 옷매무새를 다잡았다. 타티아나는 발을 넓게 벌리면서 왼손을 허리에 대고 오른손은 갈고리처럼 구부러트려서 얼굴 높이로 올렸다.

“아까 그것 때문에 완력이 많이 약해지셨군.”


“그러는 너는 이상한 재주를 부리지 못하게 됐고.”


“무공은 쓸 수 없어도 내게는 형(形)이 있거늘 너한테 승산이 있겠느냐?”
타티아나가 손목을 돌리면서 우두둑거리는 소리를 냈다. 레스가 크게 소리치면서 끼어들었다.


“그만해! 우린 거래했잖아! 그것도 네가 제안했었고!”


“난 현실주의자다. 너희와는 달라.”


그녀는 눈도 깜짝 안 하면서 냉랭히 대꾸했다. 샤카자이아는 각오하고 레스를 바라보았다.

“아직  만해. 나한테 맡겨….”


샤카자이아가 말하는 사이에 타티아나는 순식간에 레스한테 접근하고는 그를 돌려찼다. 레스도 일단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올려서 막았지만 충격이 온몸은 물론 오른팔에까지 전해졌다.

“아아아아악!”

그는 바닥에 엎어졌다. 타티아나는 물 흐르듯 춤동작처럼 자세를 고쳐잡고는 그의 오른손에 발을 올렸다. 상대를 도발하는 눈짓과 함께 자신의 고양이 귀를 쫑긋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초보자!”


그녀가 발에 힘을 주자 레스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샤카자이아는 이성을 잃고 눈에 핏대를 올리며 허리춤에서 흑요석 단도를 뽑았다. 그녀는 레스의 손을 밟았던 발을 살짝 들어 올리고 무릎만 펼쳐서 상대의 앞다리를 짓밟았다. 그리고 몸을 구부정하게 앞으로 숙이면서 제자리에서 앞으로 펄쩍 뛰어 무릎으로 샤카자이아의 몸을 찔렀다.


견뎌내고 그녀는 칼을 휘둘렀다. 타티아나는 대각선으로 세운  팔로 샤카자이아의 팔꿈치를 쳐내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목에 손끝으로 찔렀다. 순간 자세가 무너졌지만 샤카자이아는 뒤로 물러나면서 손목의 반동으로 단도를 역수로 고쳐 쥐고 횡으로 그었다. 타티아나는 순간  자리에서 사라졌나 싶더니 어느새 팔꿈치가 샤카자이아의 뺨에 박혔다. 발동작과 골반의 움직임으로 몸통을 돌려서 피하는 동시에 팔꿈치로 반격했다. 눈앞에서 보면 정말 사람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완전히 자세가 무너지자 타티아나는 자꾸 물러나려는 상대를 쫓아가며 연속으로 때렸다. 어깨와 허리를 사용하지 않고 주먹의 아랫부분으로 내려찍는 식으로 체력을 아끼면서 매우 빠르게 때렸다. 팔을 돌린다는 느낌으로.

끝없이 뒤로 물러나다가 샤카자이아는 발꿈치에 벽이 닿는 걸 느꼈다. 그녀는 뒷발을 벽에 대고 힘을 모았다가 기습적으로 몸을 숙이고 여태껏 쏟아지던 연타를 막던 양팔로 상대를 끌어안았다. 상대가 자신을 끌어안고 밀어붙이자 타티아나는 팔꿈치로 샤카자이아의 등을 계속 찍었다. 샤카자이아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는 상대를 통째로 잡아들어서 자신의 머리 뒤로 넘겨버리고 같이 넘어졌다. 메치는 소리가 공장에 시원하게 울렸다. 메아리는 금방 가라앉았다.

“끄… 으으으으으으….”

타티아나의 벌어진 입에서 피리 소리가 흘러나왔다. 충격이 너무 심해서 숨도 못 쉬는 중이다. 레슬링 무대처럼 탄성이 있는 바닥도 아니고 공장의 콘크리트로 칠해진 바닥에 꽂혔으니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타티아나의 몸집이 작았으니 크게 아픈 정도로 끝났지 만일 건장하고 육중한 체격이었다면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크게 아픈 건 샤카자이아도 마찬가지였다. 본디 메치기는 쓰기 까다로운 기술인데 배운 적도 없는 걸 직감으로 질러버렸으니 대가는 정직하게 돌아왔다.

“아으으으으….”

온몸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울리는 걸 느끼며 레스는 겨우 일어났다. 나란히 누워있는  여인을 보면서 그가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여자가 그 자리에서 발작을 일으키듯이 벌떡 일어나고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럼 그렇지.”


레스는 바로  말을 후회했다. 두 여자는 나란히 힐난하는 눈으로 그를 곁눈질했다. 그가 느끼기에는 자신을 한심한 놈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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