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3권] 119회 - 제일 위험한 부류
두 여자는 바로 레스는 무시해버리고 다시 서로에게 신경을 돌렸다. 샤카자이아는 다리를 위로 펄쩍 올렸다가 반동으로 몸을 일으켰다. 같은 순간에 타티아나는 다리를 넓게 벌리면서 뒤쪽 무릎은 세우고, 한 손으로는 땅을 찰싹 때리고 반대쪽 팔을 대각선 위로 뻗으면서 몸을 수그렸다. 흡사 한쪽 날개만 펼친 새 같았다.
샤카자이아는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애를 썼지만 계속 기침이 나왔다. 겨우 상대에게 한 방 먹이는 건 성공했어도 그녀는 그보다 몇 배로 맞았다. 만신창이인 건 피차 마찬가지다. 하지만 샤카자이아가 더 초조했다.
상대는 싸우는 내내 수시로 자신의 자세와 동작을 바꿨다. 체격으로 맞붙는 막싸움이 아니라 기술로 맞붙는 대련에서 승패를 가르는 가장 큰 변수는 상대의 특징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있다. 온갖 유파를 다루는 타티아나를 상대로 샤카자이아가 이길 가능성은 없었고 자신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심지어 상대는 승부를 내려고 무리하지 않고 시간만 끌어도 되는 상황이다.
샤카자이아는 레스를 바라보았다. 레스는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어느 한 곳을 향해 눈짓했다. 타티아나가 떨어트린 권총이 어느 틈에 샤카자이아 근처에 놓여있었다. 방금 그녀가 메치기를 하면서 상대와 자리가 바뀐 덕에 어쩌다가 일어난 이득이었다. 코앞의 상대를 바라보면서 반격할 생각만 하던 타티아나는 그들의 시선 교환을 조금 늦게 눈치채고 말았다. 무술가만의 습관 탓에 일어난 실책이었다.
“받아!”
그녀는 레스를 향해 권총을 걷어찼다. 타티아나는 양팔을 벌리고 풍차처럼 돌려서 그 반동으로 간격이 넓은 보법을 연속으로 써서 움직였다. 레스가 권총을 받아드는 순간 타티아나는 체중을 실어서 손바닥으로 그의 몸을 밀어버리고 책장이 넘어가듯 순식간에 자세를 반대편으로 뒤집어버리고 발을 넓히고 골반째로 낮춰서 샤카자이아의 칼질을 피해버렸다.
레스는 비틀거리면서도 권총을 들어 올렸다. 나강 리볼버는 더블 액션으로도 쓸 수 있는 총이다. 공이를 당기지 않고 방아쇠만 당겨도 총알이 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쓰면 나강 리볼버의 단점인 무거운 방아쇠 압력이 발목을 잡는다. 레스는 손가락을 방아쇠에 거는 순간 이대로 쐈다가는 실수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세를 낮춘 타티아나는 바닥에 손바닥을 때려서 반동으로 체중을 안정시키고 머리와 어깨로 상대를 밀쳤다. 그리고 몸을 통째로 돌려서 반대편 팔을 크게 돌려 샤카자이아의 목에 원심력을 실어서 손날로 쳤다.
“끄윽!”
샤카자이아가 무리해서 메치기를 하다가 다쳤던 곳이다. 그녀는 쥐고 있던 단도까지 놓치고 주저앉았다. 레스가 힘겹게 공이를 당기고 조준을 하려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조준할 때 타티아나는 다시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레스는 쏘았다. 그리고 타티아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녀는 총을 쥐고 있는 레스의 왼손을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목을 감싸면서 벽까지 밀쳤다. 레스가 컥컥거렸다.
“잠깐… 콜록! 타임아웃….”
◆
잠자코 타티아나의 이야기를 듣던 카르델이 건성으로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그 괴물처럼 잘 쏘는 놈이 코앞에서 쏜 총알을 피했다고? 진짜?”
“원래 실력이 아니었다.”
길게 말하기 싫은 타티아나를 대신해서 피카니가 말했다.
“믿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레스 알 하자르도 그냥 인간이야. 무거운 방아쇠 때문에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 몸도 저절로 긴장되지. 난생처음 쥐어보는 종류의 권총인 데다 왼손으로 들고 있었고 상황도 다급했었어. 각성제의 부작용 때문에 그 친구 몸 상태도 죽을 맛이었겠지. 녀석이 못 맞춘 것과 당신이 피한 게 겹친 거로군.”
“무엇보다도….”
타티아나는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
타티아나가 레스의 목을 감싼 손가락에 살짝 힘을 풀고 숨 쉴 틈을 줬다. 그녀는 분개했다.
“너. 일부러 급소를 피해서 조준했구나!”
“켁! 컥! 뭐…?”
레스는 대체 왜 화내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타티아나는 수치스러운 마음과 화가 섞여서 눈이 이글거렸다.
“네가 굳이 급소를 피해서 조준하지 않고 그냥 바로 쐈더라면 내가 피하기 힘들었을 거다! 뭐하자는 거냐! 도대체 너는 뭐 하는 놈이냐!”
“다짜고짜 내가 누구냐니 그건 너무 철학적인 질문….”
타티아나는 뒤에서 움직이는 기척을 들었다. 샤카자이아가 놓쳤던 단도를 다시 들고 일어나고 있었다. 타티아나는 레스에게서 억지로 권총을 빼앗아버리고 그의 가슴과 어깨 사이와 겨드랑이 밑에 있는 경혈을 잽싸게 손끝으로 찔렀다. 레스는 권총을 빼앗기는 순간 방아쇠울에 검지가 걸려 부러지고 말았다.
“아윽!”
저만한 통증이면 다시는 못 일어날 터였다. 그의 비명을 뒤에 두고 타티아나는 샤카자이아를 보았다. 그녀는 다시 찾은 자신의 권총과 힘겹게 서 있는 상대를 번갈아 봤다. 잠깐 고민하고 그녀는 권총을 옆으로 휙 던져버렸다.
“뭐?”
샤카자이아는 당황했다.
“그만 싸우자. 제발. 무기를 버려. 그리고 친구들에게 돌아오라고 전해.”
타티아나가 진심을 담아서 상대를 타일렀다. 진심보다 강력한 전달 수단은 없다. 샤카자이아는 여태까지 쌓인 사적인 감정은 내려놓고 말했다.
“나도 널 이길 수 없다는 건 알아.”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칼끝을 타티아나에게 겨누었다.
“그게 무슨 심정인지는 나도 잘 알아.”
그녀는 한숨을 쉬고 손날을 펼치면서 몸 앞에 들어 올렸다. 둘은 말없이 서서히 거리를 좁히거나 벌렸다. 샤카자이아는 대치하는 동안 마음을 다잡아서 어떻게든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결국에는 자신의 직관대로 움직였다. 칼로 상대를 향해 찔렀다.
동작은 간결하고 완벽했다. 하지만 상대가 더 빨랐다. 타티아나는 샤카자이아의 손목을 붙잡아서 칼질을 막아내고 다른 손으로 짧은 주먹질로 몸통을 연달아 때렸다. 상대의 손목을 붙잡았던 손을 풀고 이번에는 팔꿈치를 팔로 휘감아서 힘을 주자 샤카자이아는 비명을 지르면서 칼을 놓쳤다.
단도가 바닥에 떨어지자 메마른 소리가 울렸다. 레스에게는 싸움이 끝나는 신호로 들렸다. 하지만 둘은 아직도 엉긴 채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가 아픈 몸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뭐지?”
타티아나는 상대의 몸으로부터 전해지는 근육의 진동을 느끼고 당황하고 있었다. 오르골 때문에 약해졌던 샤카자이아의 근력이 돌아오고 있었다. 샤카자이아는 팔의 근력만으로 상대의 관절 잡기를 견뎌냈다. 오히려 타티아나가 힘 싸움에서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캬아아앗!”
샤카자이아는 기합을 지르면서 반동으로 상대를 밀치고 옷깃을 붙잡아 내동댕이쳤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다는 심정으로 그녀는 달려들었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공중에서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받아준 것처럼 허공에서 몸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더니 바닥에 닿을 때는 매끄럽게 몸을 굴려서 낙법을 하고 순식간에 벌떡 일어나 앞으로 팔을 뻗었다. 상대가 반격할 준비를 했든 안 했든 그녀는 지금 와서 멈출 수 없었다.
서로의 손이 서로의 몸에 맞붙기 직전, 타티아나는 골반, 어깨, 발목을 비틀어서 주먹 끝에 전신의 체중과 힘을 집중시켜서 공성추처럼 앞으로 박았다. 미세한 차이로 샤카자이아보다 타티아나의 주먹이 상대에게 먼저 닿았고…
[와드득-]
신경이 한계까지 고조된 두 사람은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몸으로 들었다. 샤카자이아는 몸이 직각으로 꺾이고 주춤거리다가 주저앉고 피 섞인 위액을 토해냈다. 타티아나의 얼굴에 진땀이 한 줄 턱으로 흐르다가 톡 떨어졌다.
그녀의 주먹은 손가락 하나만큼의 거리만 움직였다. 권법에서는 이 기습 공격을 촌타, 촌경, 발경 등으로 부르며 세간에는 일명 이소룡의 원 인치 펀치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얼얼해진 손을 펼치고 털면서 숨을 골랐다.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단순하다. 상대에게 맞지 않고 자신의 공격은 맞춘다. 더 나아가서 효율적으로 싸우는 방법은 상대가 달려드는 순간 이쪽이 먼저 맞추는 것이다. 사실 촌경의 위력 자체는 평범한 주먹질보다 약하다. 하지만 방금 샤카자이아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달려들다가 그 힘을 역으로 되돌려 받는 바람에 치명적으로 먹힌 것이다.
“무리해서 움직이면 뼈가 허파에 닿는다. 그대로 누워있어.”
“샤키!”
레스는 목의 핏대가 설 정도로 외치고 일어났다. 타티아나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경혈을 찔렸는데 아직도 일어날 수 있다고?!”
“여태껏 못 움직인 건 급소를 맞아서가 아니라 목을 졸려서 정신을 못 차렸던 거야. 통각은 이미 한참 전부터 맛이 갔었어.”
허세인지 자학인지 구분이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레스는 기껏 일어나놓고 벽에 기대어 연신 기침을 터트렸다. 타티아나는 근처에 샤카자이아가 떨어트렸던 흑요석 단도를 일단 줍고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으니까 친구들 불러서 이제 다 끝났다고 전해.”
“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전혀 몰라…. 우린 포기 못 해.”
“만약에 너희가 이대로 무사히 도시를 떠난다고 쳐도 붙잡히지 않으면서 얼마나 더 버틸 거 같아? 붙잡히지 않고 목적지까지 간다 쳐도 저 차기 마왕을 무슨 수로 왕좌에 앉힐 거지? 왕좌에 앉힌다고 해도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 거 같아? 너희가 이득 때문에 움직이는 무리가 아니라는 건 나도 충분히 알았다.”
“너 혼자구나.”
레스는 정색하고 쉰 소리로 말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그녀는 인상을 찡그렸다.
“뭐?”
“아직도 널 도우러 오는 사람이 없잖아. 나머지 사람들은 못 오는 거지?”
타티아나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바로 평정을 되찾았다.
“그래서 뭐. 총도 없으면 넌 아무것도 아닌데.”
그녀는 상대를 도발하려는 의미로 단도를 손목의 힘으로 던졌다가 다시 받았다. 레스는 엉거주춤 팔을 들어 올리고 싸울 준비를 했고 타티아나는 표정 없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때 건물 반대편의 입구에서 단테가 소총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상황을 보고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미리 대사를 연습해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상대를 총으로 겨누고 위협했다.
“물러나! 칼 내려놓고 물러나! 레스! 샤키 데려와요! 이제 출발할 수 있어요!”
하지만 타티아나는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위협을 받아주는 시늉조차 안 하고 오히려 뻔뻔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거 단발총이군. 한 번 쏘면 다음 총알을 넣는 데 얼마나 걸리지?”
그녀는 또 단도를 장난감처럼 위로 살짝 던졌다가 다시 받으며 상대의 반응을 재촉했다. 단테는 일방적으로 상대를 겨누고 있으면서도 기세에 밀리고 말았다.
“뭐! 뭐! 맞고 싶어?! 응? 진짜 쏜다니까?!”
레스는 어떻게든 타티아나가 빈틈을 보이면 바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다음과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려는데 갑자기 타티아나가 그 자리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두 남자가 반사적으로 무슨 일이냐고 외칠 차례에 타티아나는 레스의 코앞에 나타났다. 바닥의 먼지가 자취를 따라서 한 박자 늦게 일렁이면서 박차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레스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얼굴에 단도를 댔다. 레스에게는 저항하거나 반응할 기회가 없었다. 타티아나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사람을 역으로 위협했다.
“할 일은 말 안 해도 알겠지?”
“웃기지 마! 칼 내려! 안 그러면-”
“쏜다고?”
그녀는 레스의 목에 칼끝을 대고 서서히 찔렀다. 그곳에서 피가 방울져서 한 줄 한 줄 흘러나왔다.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레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자 단테는 결국 포기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총 버린다고. 그만해.”
“열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도 불러라.”
타티아나는 신경을 완전히 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으로 짧은 순간, 생각하는 시간. 레스는 직감으로 그 순간을 감지했고 바로 행동했다. 그는 왼손으로 타티아나의 오른손을 잡아채고는 움켜쥐었다.
“뭐?!”
타티아나의 오른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다. 레스의 목을 살짝 찌르고 있는 칼 말이다. 그가 억지로 잡아채는 바람에 목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 당연히 타티아나는 자신을 붙잡은 레스의 손아귀를 벗겨내려다가 비명을 질렀다.
“너… 너…! 윽! 아아악!”
레스의 손아귀 속에서 뼈마디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의 입에서 평소라면 절대 나올 일이 없는 살기 서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실히 나는 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가 손아귀에 한 차례 더 힘을 주자 타티아나의 이빨 사이에서 신음이 새었다.
“손 빠른 거랑 악력이라면 자신 있어.”
“정녕 죽고 싶은 거냐?!”
타티아나는 고통을 무시하고 다른 손까지 써서 레스와 온몸으로 힘 싸움을 했다. 아무리 레스의 악력이 강해도 물리적인 한계가 찾아왔다. 단도의 칼날은 타티아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단테가 급하게 다시 총을 들자 타티아나는 바로 자기가 맞지 않을 쪽으로 그를 방패 삼아서 숨었다.
그녀는 아직도 힘 싸움을 하느라 파들파들 떨면서 분노에 젖은 일갈을 외쳤다.
“기껏 내가 끝까지 좋게 봐주고 잘 대해주려고 했더니! 이 빌어먹을 놈이!”
그는 자기의 몸통을 찌르려는 칼날을 뚫어지라 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서 인간의 감정이 사라졌다. 몸을 맞대고 있는 타티아나에게도 언어로는 표현 못 할 감각이 신경을 흘렀다.
레스는 있는 힘껏 칼을 자신의 몸에 박아넣었다.
“뭐… 뭣?!”
“그으으읏!”
타티아나는 경악했고 그는 포효했다. 눈 감고 들으면 들짐승하고 구별이 안 되었다.
“갸아아아앗!”
레스의 얼굴이 마치 고대 시대의 벽화에나 나올법한 악마 같았다. 상대가 당황하면서 균형을 잃어버린 틈에 칼을 붙잡았던 손아귀를 풀고 대신 타티아나의 팔을 붙잡았다. 그대로 상대의 다리를 걸어서 넘어트리고 자신의 무릎에 붙잡은 팔을 힘껏 내리치자 타티아나의 팔꿈치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으스러졌다.
◆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자신의 팔을 감고 있는 석고붕대를 노려보았다. 아비투스가 어떻게든 침묵을 쫓으려고 말을 꺼냈다.
“팔은 괜찮아졌습니까?”
“예. 뭐. 복합골절에 비하면 탈골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곧 목인장도 때릴 수 있겠군요.”
하딘이 만년필을 내려놓고 물었다.
“화가 났어도 죽일 마음은 없었던 거로군? 그래서 자기 몸에 칼을 박으니까 당황했던 거고.”
“그렇게까지 깊게 찌를 생각은 절대 없었습니다. 잠깐 눈이 뒤집히기는 했습니다만.”
“나무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네. 그냥 그렇게 된 거였군. 그냥 그런 거였어.”
하딘은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피카니가 말을 꺼냈다.
“당신이 보기에는 그 일행은 어떤 사람들 같아?”
타티아나는 목을 가다듬고 지친 얼굴로 천천히 말했다.
“일단 단테인가 하는 사람은 얼굴이 괜찮다는 거 말고는 잘 모르겠고.”
고양이 귀를 약지로 긁적이면서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자리아 비온 라프라스는… 심지가 곧아요.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미숙하지만 성장하면 큰 잠재력을 피울 겁니다. 여러 면에 있어서요. 쉬이 타락할 사람 같지도 않았고요.”
카르델이 끼어들었다.
“그 슈슈니 이름은 샤카자이아라고 하더라.”
“톤토에게 이미 들었습니다. 샤카자이아도 마찬가지로 심지가 곧은 사람입니다. 제가 표현력이 별로인지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손을 섞어본 느낌으로는 같은 사부를 모시면서 사귀는 사이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 같았습니다. 다과를 즐길 때도. 아무튼, 이쪽도 많이 미숙하더군요. 경험이 적다는 게 가장 큰 흠이죠.”
말을 마치고 그녀는 왼손으로 눈가를 감싸 쥐었다. 남자들은 다음 단계를 묵묵히 기다렸다.
“레스 알 하자르. 그 사쿠라비는….”
타티아나는 중간에 말을 끊고 뜸을 들었다.
“적으로 두었을 때 가장 골치 아픈 상대는 강한 상대가 아닙니다. 무예와 군사 전략을 불문하고 겨뤘을 때 상대하기 가장 위험한 부류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예상할 수가 없는 놈.”
하딘이 자기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타티아나는 긍정해주는 시늉도 생략했다.
“다시는 적으로 만나기 싫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너무 많아서 못 하겠군요.”
남자들은 끄덕이거나 군말하지 않고 눈만 껌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