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0화 〉[5권] 170회 - 흑사병과 콜레라 (170/188)



〈 170화 〉[5권] 170회 - 흑사병과 콜레라




“자, 슌카와칸 씨. 아 하세요.”

머리를 깔끔하게 민 사내가 무릎을 꿇고 늑대와 마주 보면서 그렇게 말하자 늑대가 입을 쩍 벌렸다. 사내가 늑대의 입안을 전기 랜턴으로 비추면서 치열을 쭉 훑어보았다. 사내는 늑대의 아가리에 머리를 넣다시피 가까이 다가가 내부를 자세히 보다가 뭔가 찾아내고 말했다.

“이제 다무셔도 됩니다. 치통의 원인을 찾았어요. 어금니 안쪽에 치석이 쌓였네요. 충치도 났고요.”


의자에 앉아 있던 레오포드가 이쪽을 향해 양 팔꿈치를 무릎에 올리고 보고 있었다. 레오포드가 늑대의 불안해하는 시선을 받고는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평소에 열심히 관리를 해줬는데도 그 날이 또 오고야 말았군. 뽑자.”

늑대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겁에 질린 몸짓으로 고개를 매우 빠르게 저었다. 레오포드가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빈센트 피에르 씨. 당장 뽑을 수 있겠소?”


빈센트는 위아래로 긴 두상을 갖고 있었고 구레나룻부터 입가까지 숱이 짧은 수염이 근사하게 자라 있었다. 콧방울 주변과 보기 좋게 둥글고 넓게 펴진 이마에는 도예가가 세긴 듯한 주름이 그의 연륜을 근사하게 보여주었다. 키가 크고 마른 편인데 어깨도 넓고 길쭉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인상과는 달리 체격까지 탄탄해서 전체적으로 듬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자신의 왕진 가방을 활짝 열어서 살피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산화질소를 대체할만한 게 없네요. 모르핀이 있긴 한데 이빨 뽑을 때 그런  쓰는 건 좀 아니죠. 그리고 펜치도 없습니다.”

그들은 카페 하나를 통째로 전세 내서 문에 ‘영업  함’ 팻말 걸어두고 실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캘러헬과 라카키도 있었다. 탁자 위에 신발을 벗고 다리를 올려놓은 자세로 누워 있던 캘러헬이 한쪽 팔을 진자처럼 느긋하게 좌우로 흔들며 끼어들었다.

“이리 온 슌!  믿지? 슌?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며 뒷걸음질을 치는 거니? 슌! 정신 차려!  네 친구잖아?  잊어버린 거니? 슌!”


“크르르르르르. 크르르. 우으으으.”


늑대 옆에 다소곳이 쪼그려 있었던 라카키가 늑대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고는 캘러헬이 향해 말했다.


“수의사에게 가겠다는데.”


“레오. 슌한테 혹시 의료 보험 들어줬어?”

캘러헬이 레오포드를 향해 묻자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캘러헬. 여긴 아메리카야.”


“맞아 그랬었지. 슌? 치과 진료는 엄청나게 돈이 들어. 게다가 우리는 무법자잖니. 고작 마취 없이 충치 뽑는 거 가지고 겁먹지 마! 전에도 잘 견뎌냈잖아!”


캘러헬이 천천히 말하면서 늑대를 안심시키려다가 갑자기 달려들고는 아가리를 억지로 열면서 고함을 질렀다.


“젠장! 레오! 좀 도와줘! 슌의 치악력은 300kg이 넘는다고!”


참고로 보통 회색 늑대의 치악력은 약 200kg이다. 레오포드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라카키가 늑대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여주자 늑대가 최면에 걸린 듯 초점 없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렸다. 눈치껏 빈센트가 전기 랜턴으로 늑대의 입안을 비춰주자 캘러헬이 맨손으로 충치를 노렸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게 물든 치아가 그의 손끝에 뽑혀 나왔다. 라카키가 뜬금없이 숫자를 셌다.

“셋. 둘. 하나.”


멍하니 굳어 있던 늑대가 갑자기 제정신을 차리고 캘러헬한테 달려들었다. 캘러헬은 큰 개하고 놀아주듯 웃으면서 적당히 어울려줬으나 늑대는 진심으로 캘러헬의 팔과 손을 물고 있었다. 손과 팔에서 피가 철철 나오는 데도 캘러헬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웃으면서 늑대의 북슬북슬한 털과 머리를 쓰다듬었다. 빈센트는 눈을 돌리고 레오포드의 옆으로 갔다.

“슌카와칸 씨의 나이가 얼마나 되죠?”

레오포드가 탁자 위에 있던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우리 부족의 전승에 따르면 삼백 번의 겨울 전에 조상들이 신성한 땅에 있는 숲에서 발견하고 수호신으로 모셔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인과 직접 대화해본 바로는 그 정도로 오래되진 않았다나. 구체적인 나이는 자기도 모른다더군.”


빈센트가 침을 한  삼키고 말했다.

“치열이 아주 깔끔하고 근사하더군요. 방금 뽑은 충치 빼고요.”


“이빨이 다시 나니까. 상어처럼. 보면 알다시피 평범한 난탄 르팡(회색 늑대)이 아니잖소.”

빈센트는 뜸을 들이고 다시 말을 걸었다.

“늑대와 친구가 되는 건 무슨 기분입니까?”


레오포드는 탁자에 팔꿈치를 기대면서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개랑 똑같지.”


“그렇군요.”

“사실, 슌카와칸은 과거 문명인들이  황무지 전반을 어느 탐험가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통칭할 시기에 생겼던 유래 깊은 단어요. 약 500년 전부터 문명인들이 본격적으로 원주민들과 접촉을 시도했었고. 당시 우리 선조들은 그들이 말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지. 그때는 이곳에 야생마가 없었으니까. 선조들은 말이라는 생물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일단 네발 달린  짐승이니까 슌카와칸이라 불렀소. 커다란 개라는 뜻이지.”


빈센트가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었다.

“말만큼 문명발전에 이바지한 생물은 없죠. 개도 사람들의 가장 좋은 친구고요.”


캘러헬이 자기 한쪽 팔을 물고 있는 슌카와칸을 질질 끌고 오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빈센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묻는  깜빡할 뻔했는데,  1공화국 출생입니다. 지금 쇼생은 어떻게 됐나요?”


빈센트는 잠깐 질문의 뜻을 이해하느라 시간을 들여야만 했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100년 전에 혁명이 터져서 1공화국에서 왕국이 됐고, 50년 전에 혁명이 터져서 왕국에서 2공화국이 됐고, 30년 전에 혁명이 터져서 지금은 3공화국입니다.”

“레볼루숑!”


캘러헬이  소식을 한심하게 여기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늑대는 그 와중에 아직도 캘러헬의 팔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빈센트는 의자를 잡아당기고 레오포드가 앉은 탁자에 같이 앉으면서 말을 이었다.

“요즘은 드레퓌스라고 하는 소수민족 출신 장교가 유죄냐 무죄냐로 난리지요.”

레오포드가 말을 받았다.


“그 소식이라면 여기까지 닿았소. 인종차별 때문에 사법살인이 일어날 거 같더군.”

빈센트는 입을 다문 채 콧방귀를 뀌었다.

“벨 에포크. 우리나라 말로 좋은 시대라는 뜻이죠. 좋은 시대라니.”


레오포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자신의 정장 소매를 걷어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바라보았다. 빈센트는 늑대와 놀아주고 있는 라카키와 늑대에게 공격당하는 캘러헬에게서 눈을 떼고 레오포드에게 다시 집중했다.

“슌카와칸이 부족의 수호신이라고 하셨죠. 레오포드 씨와 톤토 씨가 부족으로부터 추방되셨을 때 슌카와칸까지 데려가는 걸 부족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습니까?”

그가 질문을 받고 잠깐 성냥을 이빨 사이에 끼우고 잘근거리다가 대답했다.


“슌카와칸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오. 우리 부족의 소유물도 아니고, 내 소유물도 아니지. 슌카와칸은 자신의 의지로 우리를 따라왔소. 그래서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그렇습니까.”


“사실은 슌카와칸이 부족에 남아있으면 자신들과 같이 좋지 못한 꼴을   확실하다고 생각해서 나와 같이 내보냈을 거요. 딱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다 지난 일이지.”


잠깐 침묵으로 간격을 두고 그가 물었다.


“네바로 족은 보호구역으로 이주당한 뒤로 어떻게 됐습니까? 소식은  들었습니까?”

 성냥을 잘근거리다가 그가 답했다.


“도시로 일하러 온 부족 사람들은 ‘포니 익스프레스’를 이용해서 보호구역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고 있지. 하지만 나는 일부러 관심을 끊고 살고 있소. 부족을 나간 이후로 계속.”

빈센트가 한숨을 크게 쉬고 한쪽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면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저는 헨리 하딘 대위하고 동기입니다. 일생 대부분을 군의관으로 살았죠. 여러분들이 저희를 와시추라고 불렀던 전쟁에 저희도 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희가 여러분들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렸군요.”


레오포드는 주먹으로 턱을 괴고 있다가 코웃음을 치고 탁자 구석에 뒤집혀 있던 머그잔을 하나 가져와 거기에 주전자를 기울여 커피를 따랐다. 그리고 머그잔을 상대에게 내밀며 위로하는 투로 말했다.


“연결고리라면 아예 없진 않소.”


“네?”


“T. T 캘러헬!”

친구의 말을 듣고 그가 자기 다리를 물고 있는 늑대를 질질 끌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왜 불러?”

“네 제자 중에 우리 부족 출신이 얼마나 있었지?”


캘러헬은 자기 발목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기억을 되짚었다.

“우리가 해산했을 때 네바로 출신은 하나만 남아있었어. 그런데 나도 헤어진 제자들하고는 소식을 끊고 살아서 어떻게 됐을지 확실히 몰라.”


레오포드가 이빨 자국 가득한 성냥개비의 머리를 위로 향해 쳐들면서 말했다.


“‘하얀 곰’은 믿을만한 녀석이었어. 네가 그렇게 가르쳤지. 안 그래?”

“됐으니까 애 좀 달래줘. 슌! 언제 화 풀래!  지금 맨발이라고! 지지에요 지지!”

그는  번 씨익 웃어주고 성냥개비를 이빨 사이에 끼워서 담배처럼 물고는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복화술 하듯 능숙하게 말했다.


“들었지? 계속 물었다간 혓바닥에 무좀 날지도 몰라.”


그 말을 듣고 늑대는 겨우 화풀이를 멈췄다. 그의 발목에서 주둥이를 치우고 바닥을 향해 헛구역질하면서 라카키 옆으로 물러났다. 늑대가 심통 난 표정을 지으며 앞발을 겹치고 배를 바닥에 깔면서 앞으로 엎드리자 라카키가 토닥토닥 머리를 두드려줬다.


빈센트가 대접받은 차가운 커피를 시간 들여서 절반 정도 마시자 바깥에서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빈센트는 차림을 고쳐잡으며 마음의 각오를 했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카페의 창가에 커튼을 치고 문을 잠갔다. 그들 중 하나가 일행에게 다가오고는 레오포드와 빈센트를 향해 말을 걸었다.

“의자 2개와 탁자 하나가 필요합니다. 자리를 비켜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창문에 들어오는 햇살이 거의 없으니 실내가 밤처럼 깜깜해졌다.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일제히 전기 랜턴을 켰다. 레오포드와 빈센트가 자리를 비켜주자 사람들이 탁자와 의자를 실내의 정중앙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탁자 위로 물건들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긴 받침대가 달린 수정 구슬 2개가 탁자의 가운데에 세워졌다. 빈센트가 자세히 보니 그냥 구슬이 아니라 천체 망원경에나 쓸법한 거대한 렌즈처럼 생겼다.

그다음에는 다이얼식 가정용 전화기가 올라왔다. 전화기 자체야 비싼 물건이라는 거 빼면 특이한 점이 없었다. 그저 전화선이 꽂혀있지 않았을 뿐. 빈센트는 저들이 뭘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그의 표정을 보고 레오포드는 눈치껏 작은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화상 원거리 통신을 준비하는 거요.”

“원거리 통신? 전화기에 전화선이 안 꽂혀있는데?”


“중요한 건 전화기보다도 수정 렌즈지.  있으면 저들이 우리더러 자리를 비키라고 할거요.”


 말대로 사람들이 준비를 다 마친 분위기가 되자 그들  하나가 일행에게 말했다.


“캘러헬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2층으로 올라가서 대기해주시죠. 보안을 위해서입니다.”


캘러헬은 벗었던 신발을 다시 신고 아직도 삐져있는 늑대를 쓰다듬어주고, 라카키와는 손바닥을 맞부딪히고, 레오포드와 빈센트에게는 눈짓을 나눴다. 일행이 다들 자리를 떠나고 사람들이 일제히 전기 랜턴을 끄자 1층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처럼 컴컴해졌다. 캘러헬은 의자를 잡아당기고 탁자에 삐딱하게 앉았다.


전화기가 울리자 캘러헬은 수화기를 들어서 얼굴에 댔다. 탁자에 설치된 수정 렌즈에서 가늘게 광선이 흘러나와 자리에 앉은 그의 모습을 훑듯이 위아래로 비추었다. 곧 수정 렌즈가 캘러헬의 맞은편으로도 광선을 내보내더니 광선은 빛의 입자로 변하여 이내 사람을 닮은 허상을 이루었다. 허상은 빛과 약간의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흑백 영화의 등장인물이 뛰쳐나온 거 같았다.

캘러헬이 들고 있는 수화기에서 억양이 딱딱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태어난 날을 저주한다. 흑사병과 콜레라보다도 세상에 해로운 놈. 지옥에 떨어지면 악마가 하청할 곳을 찾게 할 놈. 개척시대 때 널 죽였어야 했는데.]

캘러헬의 자리 건너편에는  남자가 그와 마찬가지로 수화기를 들고 캘러헬을 째려보고 있었다. 물론 정확히는 수정 렌즈에서 나오는 허상이었다. 수염이 윗입술과 턱에만 붓으로 살짝 칠한 것처럼 날렵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뺨은 홀쭉하고 광대뼈가 높았다. 콧대는 높고도 예리했고 눈썹도 붓털처럼 선명했다. 아몬드형 눈매 속에서 바둑돌 같은 검은색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리는 모습이 수정 렌즈의 허상 속에서도 선명했다. 검은색 머리카락은 길게 길러서 적당히 뒤로 넘겨서 꽁지를 틀어 정돈하고 비녀를 꽂아서 고정하고 있었다.


캘러헬이 일상적인 어투로 마주 인사했다.

“안녕, 미스터 리. 아니면 미스터리라고 해줄까?”

[방금  농담은 내 자살 충동을 자극하는군.]

“요즘 어때?”


반대편 탁자에 있는 모르스 요원의 허상은 말없이 그를 째려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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