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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48화 (48/150)

48화 어둠 속의 그림자

“국가 주도 사업의 핵심 멤버라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네, 그건 이해합니다. 시간을 두고 계속 추적해 주세요.”

“그리고 회장님.”

“느닷없이 웬 회장?”

“월가에서 최고 핫한 K 글로벌 USA의 실질적 지배자, 컬컴이라는 신생기업의 독과점 주주, 엔바디아의 새로운 인수자… 이 정도면 회장님으로 불려도 무방합니다.”

“윌슨, 당신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저는 알고 있는 게 없습니다. 회장님께서 고용한 사립 탐정에 불과합니다. 제 입에서 정보가 새어 나갈 걱정은 마십시오.”

윌슨 잭 다니엘,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뉴욕에서 적당히 심부름을 시킬 탐정을 찾던 중 눈에 보이는 간판을 보고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윌슨과의 첫 만남은 그냥 우연이었다. 엔바디아와 컬컴 개발자들의 위치를 필요로 했었고, 마침 사립 탐정 간판을 발견한 것 뿐이었다.

“문 닫으쇼. 추워.”

“여기 탐정 사무실 맞나요?”

“오늘까지는.”

“하하하. 내일부터 문 닫나요?”

“그런 셈이오. 워낙 돈 버는 재주가 없어서.”

한마디로 엉망이다. 전에 몇 명이 근무한 흔적은 보이지만, 텅 비어 있다. 탐정의 책상에는 피자 박스가 뒹굴고 있었다. 삐죽 비치는 피자가 말라 비틀어진 것으로 보아 이 상태는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탐정이란 사람이 런닝 차림으로 책상에 다리를 꼬으고 있는 꼴이라니.

“거 참, 이왕 문 닫을 거 이사 비용이라도 벌래요?”

“내가 그 돈 떼어먹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러쇼?”

“거기… 그거… 문신 보고.”

“뭐?”

“명색이 세계 최강의 데브그루(네이비 씰 6팀) 출신이 쪽팔리게 푼돈 떼먹고 도망가지는 않겠지. 아닌가요?”

그렇게 윌슨은 시혁의 의뢰를 수락했었다.

그러나 연이어 결과물을 보고 시혁도 달리 생각하게 된 사람. 보고서에는 단순히 대상자의 행방만 적시한 게 아니라 주변과 현재 처한 환경까지 낱낱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단순히 사립 탐정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정부 기관에 깊숙한 끈이 있지 않고는 파악하기 불가능한 내용들. 그런 디테일한 정보를 주면서 윌슨은 추가비용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윌슨, 뭘 원하나요?”

“회장님, 그날 회장님이 저를 찾지 않으셨으면 어차피 죽었을 목숨입니다.”

“예?”

“서랍 속에서 막 권총을 꺼내 입에 처박고 당기기 직전, 노크를 하신 분이 회장님이세요. 그리고 제 명예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시혁, 하지만 마지막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명예라… 최소한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사람은 아니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미국, 그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티어 원급 최 정예는 딱 둘이다. 해군의 네이비씰과 육군의 델타포스.

그 강력한 네이비씰에서 또 다시 추린 전사가 모인 씰6팀, 속칭 데브그루는 말이 필요 없는 최고 중의 최고가 모인 집단이다.

그런 경력을 가진 사내가 명예를 얘기한다. 더럽고 구차하게 사느니 죽으려 했었구나.

묘한 인연이다.

“윌슨, 군을 제대하고 뭐 했습니까?”

“…CIA 블랙팀에 있었습니다.”

“아! 거기! 주로 X파일 공작을 주로 한다는?”

“…….”

“왜 그만두셨어요?”

“사고가 있었습니다. 소련에서 망명한 정치인을 경호하는 중에 제가 독단적으로 놈을 죽였습니다.”

“왜요?”

“놈은 안하무인이었어요. 자신이 가진 고급 정보를 미끼로 온갖 더러운 짓을 일삼았죠. CIA는 모른 척 묵인했고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예, 하지만 놈은 선을 넘었습니다. 여자 요원에게 치근덕거렸습니다. 몰래 마약을 먹이고 그 짓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단숨에 목을 부러뜨려 죽였습니다.”

“흠. 그 일로 쫓겨난 거네요. 그 다음 탐정 사무실을 열었고?”

“…제가 워낙 일을 가려 받는 바람에 일 년도 못 버티고 망했죠. 사회성이 별로 없어서.”

이 정도라면… 괜찮은 인재 아닐까?

“윌슨, 내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예 소속을 우리 회사로 하는 겁니다.

“…받아만 주신다면. 하지만 저는 사람 죽이는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회장님께 누가 될 지 모릅니다.”

“아뇨. 죽일 줄 안다는 말은 살리는 방법도 안다는 거잖아요?”

“……!”

“나는 오늘도 적을 한 명 만들고 왔습니다. 거기다 기존의 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윌슨, 저를 지켜 줘요. 당신은 남자의 명예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 내 등을 맡기겠습니다.”

눈빛이 바뀌었다. 윌슨 잭 다니엘은 거구의 덩치를 일으키더니 시혁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보스, 저보다 먼저 죽도록 하지 않겠습니다. 보스의 등은 제 목숨을 던져 막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합니다.”

생각지 않았던 보석을 또 하나 얻었다. 아무리 시혁이 각성한 육체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한계는 명확하다. 적들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시혁을 노릴 것이다.

방패가 되어 줄 남자를 줍줍했다. 어두운 정보를 얻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꿀이다.

“윌슨, 이걸 예상하고 오신 것은 아닐 터, 다른 용건은 뭡니까?”

“네, 두 무리가 보스의 뒤를 캐고 있습니다.”

“흠… 한쪽은 알겠네요.”

“혹시 제가 오기 전 누굴 만났습니까?”

“하하하. 그래요. 한쪽은 이미 상견례를 했어요.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바핏 회장.”

“빠르군요.”

“걱정 안 합니다. 우리도 앞으로 정보망을 확충하면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일, 또 다른 쪽은 어딥니까?”

그런데, 예상치 못한 말이 윌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보스의 고국인 한국입니다.”

“……!”

“예, 혹시 삼송전자 아십니까?”

“더 자세히.”

“미국 지사가 뉴욕에 있습니다. 그쪽에서 보스의 동선을 캐고 있습니다. FBI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이 새끼들… 징글징글하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 지사에게 오더를 내린 거네?

이학소 실장……? 아니다. 적어도 그 위다. 그러면, 딱 한 사람밖에 없다.

이건호 회장이 움직인 것이구나. 그의 지시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

“윌슨, 사람을 모으세요. 윌슨과 같은 사람들로. 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신뢰가 최우선입니다.”

“예, 보스.”

“완전하게 시스템을 구축할 때까지 자금은 무제한으로 써도 좋습니다. 뉴욕으로 돌아가서 K 글로벌 USA 공사홍 감사를 만나 그와 함께 작업을 하세요.”

천려일실이라 했다. 앞에서 쏘는 화살은 피할 수 있지만 뒤에서 찌르는 비수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시혁 자신의 안위보다 공사홍이나 주위사람이 다치면 곤란하다.

미리 알아서 다행이다. 방패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참… 너희와 얽힌 이 악연은 언제 끝을 낼 수 있을까?

* * *

한국에서 치러진 88 올림픽은 성공적인 막을 내렸다. 그 유명한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를 부르면서. 국민들의 자긍심은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노태후 대통령도 이에 탄력을 받았다.

야당 영수들을 초청해 국정에 대한 의견을 경청하기도 했다. 물처럼 흐른다는 물통령의 위력이 서서히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더니 7.4남북 공동 성명을 이끌어 내는 성과도 거뒀다.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공동 성명이었다.

노태후는 동구권 국가들과 연이어 수교를 타진했다.

한반도의 미래를 다지는 초석, 첫 발걸음이 노태후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훗날 역사에서 다시 재평가하지 않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정책, 서민들이 생각하는 노태후의 치적 1호는 (아직 시행되지 않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범죄와의 전쟁이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조폭의 씨가 말랐고, 모두 음지로 기어 들어가 버렸다. 조폭에게 피를 빨리던 서민들 입장에서 본다면 쾌거가 아닐 수 없지.

아스토리아 호텔 창밖을 바라보던 시혁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무기로 써도 무방한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시혁아.]

“왜? 새끼야.”

[그게 인사냐? 나는 개미지옥에 빠트리고, 너는 미국에서 백발의 여자들과 응응응 하면서?]

“응응응이 뭔데?”

[됐고, 고자 새끼야. 여기 지하층 뚜껑 덮었다. 내일부터 1층 공사 들어가.]

“그래서? 고생한다고 둥기둥기 해 달란 말이냐?”

[너는 꼭 너 같은 아들을 쌍둥이로 얻게 될 거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참담함을 쌍으로 당하며 살 거야. 개자식아.]

“그건 악담이 아냐. 등신아. 축복이지. 하여튼 별일 없지?”

[시혁아, 나 힘들어. 그냥 짤라 주면 안 될까?]

“응, 안 돼. 원래 종신 계약은 무를 수 없는 법이거든.”

[그건 술김에 한 소리지. 시혁아 나 10킬로 빠졌거든?]

“축하한다. 다이어트가 대세더라.”

[사탄, 마귀, 벨제붑, 루시퍼, 빠다 처먹다가 미끄러져 뒈질 새끼야.]

“쓰잘데기 없는 소리 그만하고, 요즘 현도 정 회장님은 자주 들리시냐?”

[응, 한 달에 두 번은 꼬박꼬박 와서 챙긴다. 여기 현장소장님이 죽을 상이다. 회장님 안 오게 해 주면 공기를 더 단축시킬 자신 있다고 사정한다.]

“큭큭큭, 말린다고 들을 노인네가 아냐.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

[시혁아. 너랑 계약한 것은 투자회사잖아? 그런데 왜 내가 공사 총감독을 해야 하는 건데에?]

“복에 겨웠네. 그 건물 꼭대기 바로 아래층에 사무실이 들어설 건데?”

[왜 하필 꼭대기 바로 아래층이야? 나는 꼭대기층이 좋다.]

“응, 또 안 돼. 거긴 내 아방궁을 만들 거니까. 흐응… 설계도 자세히 안 봤구나.”

[나쁜 새끼, 나는 사무실에서 죽도록 일을 시키고, 너는 아방궁에서 응응응 하겠다는 말이네.]

“오백 원 없다. 끊어라. 거지 새끼야.”

이만큼 편한 친구가 또 있을까?

술이 약한 박하송을 꼬드겨 잔뜩 취하도록 만들고, 손가락을 당겨 지장을 찍었었다. 빨간 인주가 없어 식당 이모의 입술 루즈까지 빌려서. 그뿐이랴. 녹음도 야무지게 해 뒀다.

박하송은 한국에 숨겨 둔 시혁의 칼이다. 출국하기 전 K 글로벌 코리아 대표이사에 등기까지 마쳤다.

백 할머니의 영향력이면 아무도 모르게 구덩이를 팔 수 있을 것이다. 삼송이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깊고 넓은 구덩이를.

‘하송아, 너에게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길이다. 너는… 미래에 할머니의 모든 자산을 다 까먹고 감빵까지 간단 말이다. 하지만 나하고 같이 하면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시혁이 한국대학교에서 유일하게 정을 붙인 친구. 박하송을 끌어들인 이유는 꼭 백 할머니를 등에 엎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저축은행을 만들어 할머니의 자금을 양성화시켰지만 잇따른 사고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친구가 안타까웠던 것이다.

따르릉-

이 촌스런 휴대전화 벨소리. 아쉽지만 아직 컬러링 서비스 같은 거 없다. 누구 전화인지도 깜깜이다. 무조건 받아야 한다.

“네. 여보세요?”

“저… 혹시 김시혁 씨 아닌가요?”

여자? 그것도 젊은 여자의 목소리다.

“네, 제가 김시혁 맞습니다만.”

“…….”

“누구시죠? 전화를 하고 아무 말도 없으면 어떻합니까?”

조금 까칠한 말이 튀어나왔다. 시혁은 기억속에 없는 여자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해 버렸다.

“아! 죄송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전화하라고…….”

“……!”

“뉴욕이신가요?”

“…….”

“아까 저보고 말이 없다고 야단하셨는데요.”

“할아버지는 정조영 회장님 말씀하는 거겠죠?”

“네, 저는 정성희라고 합니다.”

아… 이 영감님. 나보고 어쩌라고?

“할아버지께서 꼭 만나 뵙고 식사를 대접하라고 하셔서 전화드린 건데요.”

“정성희 씨, 제가 지금 워싱턴에 있습니다. 조만간 뉴욕에 가긴 합니다. 그러나 일정을 정확히 못박기 쉽지 않네요. 전화번호를 주시면 제가 뉴욕에 갈 때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사실은요. 할아버지께 매일 혼나고 있거든요. 오늘은 제 카드를 정지시켰어요.”

나보고 어쩌라고?

“시혁 씨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나면 풀어 주겠다고 하셔서… 제가 카드 없으면 당장 생활이 힘들거든요.”

그래서 어쩌라고오?

“제가 워싱턴으로 갈 테니 식사 한 끼만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시혁은 현기증에 머릴 짚었다.

이 영감탱이… 잘못 걸렸다. 이런 식으로 엮을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쩐지 한 며칠 전화가 없었어.

당했네. 멍군을 부를 수 없는 빼박 외통수.

생강이 묵으면 왜 매운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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