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18화 (118/150)

118화 10조 달러

채권이 뭘까?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증서.

발행 주체가 국가면 국채, 회사면 회사채라고 한다. 결국 ‘채권은 빚 문서’다.

국채 거래는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서 이루어진다. 신차와 중고차로 이해하면 빠르다. 다만, 신차는 비싸고 중고차는 싸야 정상인데, 국채는 금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국채 가격과 금리는 거꾸로 간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국채 가격은 내려간다. 금리가 내리면? 당연히 국채 가격이 오른다.

예를 들어 처음 발행된 만 원짜리 국채가 3% 할인율을 적용할 경우, 구매자는 9,700원만 주고 산다. 그리고 만기에 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국채 금리가 높을수록 채권의 본래 가격은 떨어진다. 그래서 국채를 거래할 때 가격이 얼마냐 하는 것보다 채권 수익율이 얼마냐를 더 따지는 것이다.

그럼, 이 할인율(이자율)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과일을 팔겠다는 상인은 이 과일이 신선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제값을 받으려 할 거고, 사려는 사람은 온갖 흠집을 잡으며 싸게 사려고 할 것이다.

결국 신용도의 문제다. 현재 그 국가의 재정 건전성과 미래 발전성, 갖가지 변수 등을 고려해서 합의하기 마련이다.

국채는 국가가 갚아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후대에 빚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강대국에 선진국이라 해도 국채는 발행한다. 평균 이자율이 2% 내외의 신용 등급을 가진 국가라면 3% 이상만 경제가 성장해도 이득이기 때문이다.

이 국채는 경쟁입찰 방식에 의해 시장의 실세 금리로 발행되고, 거의 은행이나 투자신탁사 같은 투자은행, 특정 펀드사가 주 고객이다.

메리웨더의 LTCM 펀드의 주종 업무도 채권 거래였다. 비슷한 자산을 가진 채권의 양방 배팅.

채권 이익율이 낮은 때 샀다가, 높을 때 판다. 반대로 높은 채권을 사기도 한다. 외부의 어떤 요인으로 인해 높낮이 차이가 나는 채권은 서로 만나게 되는 지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를 노벨상을 수상한 두 교수를 영입해서 면밀한 프로그램을 짠 것이다. 절대 손해를 보지 않고 그 차액을 먹는 방식이다.

다만, 안전한 반면 이익율이 너무 극악하다. 그래서 30배의 레버리지를 쓰는 것이다. 땅콩 한 알씩 한 바가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아예 땅콩 밭을 사서 부스러기만 담아도 마차로 몇 대는 나오니까.

“어서 오세요, 메리웨더.”

“…네, 보스. 오랜만입니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 너무 늦게 왔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녜요. 그만큼 바빴다는 말이잖아요? 거의 사 년이 흘렀네요. 잘하고 있더군요.”

“감사합니다.”

그 뒤론 둘 다 말이 없다.

메이웨더에게 시혁은 악몽이다. 언제든 자신의 평판을 나락으로 추락시킬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사람이 시혁이니까.

자신을 대놓고 사냥개라고 했던가? 계속 사냥을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시혁 때문에 생긴 것이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바로 삶아 먹을 것이다.

“메리웨더 대표.”

“네? 네, 넵.”

“숄즈 교수의 양방 배팅 솔루션. 정말 훌륭한 프로그램이예요. 그런 분을 발탁한 그대의 안목에 경의를 표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로스 페로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있었다고? 과거형이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 사람이 쓴 책 제목이 ‘독수리는 떼를 지어 날지 않는다.’였습니다. 겉멋이 잔뜩 든 거죠. 독수리는 오히려 무리를 지어 다니거든요.”

“네…….”

“흔히들 독수리가 높은 창공을 나는 멋진 모습만 생각하는데… 힘들게 사냥하는 것보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노리죠. 썩은 고기조차 소화시킬 수 있는 위장 기능을 가진 게 독수리입니다.”

“…….”

“하늘에서는 당할 자가 없는 독수리가 왜 떼를 지어 다닐까… 또, 죽은 사체나 강탈해서 먹고 살까…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보스, 저는 독수리에게 그런 습성이 있다는 것도 처음 듣습니다.”

“그럴 겁니다. 대부분 그렇겠죠. 그래서 로스 페로도 그런 식의 말을 책 제목으로 삼았을 테니까요.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팩트를 놓치면서도.”

아직 메리웨더는 시혁이 왜 이토록 장황한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독일의 통일 국채를 사려고 합니다. 메리웨더 대표가 한 팔 거드세요.”

“……!”

드디어 올 게 왔다.

공사홍 부회장을 통해 레버리지 투자에 대해 협조하라는 말을 들었던 터다. 단칼에 거절했었고, 메리웨더는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이건 회장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떨칠 수 있는 기회다. 회장의 제안에 단호히 노를 해야 한다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 때려치우고 자신의 이름을 붙인 새로운 펀드사를 설립하면 된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보스, 저는 대표 펀드 매니저입니다. 리스크 있는 투자를 할 수는 없습니다. 보스께서도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펀드 매니저는 절대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안 된다고.”

“호오!”

“차라리 제가 그만두겠습니다. 아쉽지만, 보스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

“예. 보스, 그동안 감사했습니…….”

하지만 메리웨더는 마지막 말을 할 수 없었다. 시혁이 탁자에 서류 뭉치를 올려 놓으며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보스… 이게 뭡니까?”

“입 닥치고 들어! 냄새 나니까.”

“……!”

또 시작되었다. 저 거친 행동과 말투, 그럼에도 꼼짝 못하고 들어야 하는 내 신세. 메리웨더는 한숨을 내쉬고 입을 닫았다. 냄새난다잖나.

“자고로 펀드매니저 된 자가 눈앞의 보장된 이익을 보고도 배팅을 하지 않았다면? 리스크 헷지(hedge)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게 리스크 제로로 만들 수 있는 투자를 안 한다면?”

“…….”

“그대는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해임을 당할 거야.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펀드매니저를 두고 볼 이사회와 주주는 없을 테니.”

“…….”

“어때? 지금도 사표 던지고 새 펀드사를 세울 결심인가?”

“저는 지금껏 매년 40%에 육박하는 경이적인 수익을 거뒀습니다. 제가 파면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팔짱까지 낀 시혁이 한심한 듯 메리웨더를 내려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봐, 그게 뭔지… 설명하기도 귀찮으니 보고 나서 다시 말해. 그때도 당당하면, 내 인정하지.”

메리웨더는 급히 시혁이 던져 놓은 서류를 넘겼다.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삼십 분간 두 사람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팔짱을 풀지 않는 시혁과 서류 한 장 한 장에 목숨을 건 듯한 메리웨더.

“보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왜?”

“너무 비상식적입니다. 이런 펀드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 회사는 이자 따위를 받는 은행이 아니라고요!”

“이봐, 그대는 아직 우물 속에 있어. 오직 우물 뚜껑 위의 하늘이 세상 전부인 줄 알지?”

“…….”

“리스크 헷지를 왜 하는 줄 알고 있을 거야. 윈윈이 최선이라면 루즈 루즈가 최악, 그래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리스크 헷지(위험 분산)를 하는 게 아닌가?”

“네.”

“우승자만 상금을 주는 시합이 있어. 준우승을 해도 땡전 한 푼 없다고 쳐. 다 먹을 거냐, 서로 합의해서 무승부를 선언하고 나눠 먹을 거냐 선택하는 행위. 이건 달리 말하면 위험을 제거하는 대신 둘 다 손해를 보는 거지. 절반씩 나눠야 하니까.”

“…….”

“그런데 메리웨더, 당신은 그 절반의 손실조차 담보가 있네? 거기다 그 담보는 당신이 혹시라도 지게 될 손실보다 훨씬 더 많아.”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는 메리웨더에게 시혁은 한층 더 차갑게 내뱉었다.

“이 한 판으로 당신이 피똥 싸며 일 년 동안 거둔 40% 이익율을 먹을 수 있어. 그런 판을 뻔히 알면서 안 한다? 당신이 택할 길은 사표가 아니라 파면이 맞는 거 아닐까?”

“…….”

“맞아. 지금 이 상황도 고스란히 녹화되고 있어. 이사회와 주주총회… 아, 주총은 할 필요가 없겠네. 내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으니. 어떻든 언제든 공개할 수 있으니, 그 품고 있는 사표 내놔 봐. 자신 있으면!”

이제야 꿈에서 깬 듯한 메리웨더. 하지만, 얼굴은 더 창백해졌다. 보스가 내놓은 서류는 세븐시스터즈 전 회사가 회사채를 발행한다는 이사회 의결서였다. 자그마치 2조 달러.

“왜? 왜… 이 정도면 상업은행을 통해 자금 조달이 가능할 텐데… 왜? 저를 부르셨습니까?”

“당신 정말 바보야?”

“……!”

“어느 상업 은행이 이 정도 자금을 한 방에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왜?’라고 물었지?”

“네, 보스.”

“내가 왜 다른 놈하고 나눠 먹어야 하는데? 내가 독수리야? 떼지어 다니며 죽은 사체를 나눠 먹어야 할 이유가… 있냐고?”

오늘 메리웨더는 여러 번 기겁할 정도로 놀라고, 평생 처음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충격을 받아야 했다.

아직 보스의 숨은 그림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먼저 5조 달러 이상이라 평가받는 세븐시스터즈 전 회사들이 2조 달러의 회사채를 발행한다.

놀랍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눈앞에 사인한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이사회 의결서 원본이 있지 않나?

이중 1조 달러를 메리웨더가 중심이 된 월가의 다른 투자은행 컨소시엄이 매입한다. 나머지 1조 달러는 1년간 백지 신탁하고 만기 때 지급하지 못하면 같이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담보 형식이다.

오히려 회사채를 매입한 컨소시엄은 세븐시스터즈가 디폴트 되기를 빌 판이다. 겨우 3% 회사채 이자보다 두 배를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세븐시스터즈 모두가 망한다? 지구상의 모든 석유가 갑자기 증발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꿈 같은 일이다.

그리고 세븐시스터즈는 확보한 1조 달러를 시혁의 회사 K 미르 컴퍼니에게 대여한다.

미친 짓 아닌가?

전혀.

시혁은 시스터즈 각 회사의 지분을 최소 52%에서 57%까지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주인. 그 지분 전부를 담보로 회사에 제공하는데?

“보스, 만약에… 정말 만약입니다만, 보스께서 최종적으로 1조 달러를 독일 통일 국채에 투자하셨다가 독일에서 상환을 못 하거나(디폴트) 유예하는(모라토리엄) 경우, 어쩌려고 하십니까?”

그게 가장 핵심이다. 월가에는 이미 모든 이가 휴지로도 쓰지 않겠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통일 비용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독일이 생각하는 최선은 일단 당겨 쓰고, 이자만 지급하면서 국채를 연장하는 시나리오. 그러나 시혁은 연장이 불가능하다. 도미노처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시혁이 넘어가면, 세븐시스터즈가 갚아야 한다. 물론 시혁이 담보로 제공한 주식을 정리하면 되겠지. 문제는 1조 달러를 쓰기 위해서 추가로 제공한 1조 달러의 담보 금액도 갚아야 하는 점.

왜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는 걸까? 메리웨더는 이 점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월가의 전 투자은행 모두가 덤벼야 할 거야. 10조 달러는(약 1경) 만만한 돈이 아니거든.”

“헉! 왜 갑자기 10배가 됩니까? 1조 달러만 해도 숨이 멎을 금액입니다!”

여전히 팔짱을 풀지 않은 시혁의 눈빛은 얼음보다 차가웠다. 미친 게 아니다.

“1조 달러가 필요했다면 내가 왜 당신을 부르나? 레버리지(차입 투자)를 좀 쓰자고 하지 않았던가?”

“진짜 미쳤군요. 미국을 다 팔아야 그 돈이 될 겁니다. FRB(연준)이나 정부에서 허락할 것 같습니까?”

“응, 당신은 신청만 해. 하루만에 허락이 날 테니까.”

“오 마이 갓!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당신은 완전히 미쳤어요.”

“흐흐흐. 걱정 마. 국채 가격이 5%만 떨어져도 반대 매도에 들어가는 조건이거든. 정부도, 연준도, 당신 컨소시엄도 손해 보는 일은 없어. 최악의 경우, 나만 쫄딱 망하면 끝나.”

“역사상 누구도 이런 도박을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보스, 이건… 아닙니다. 생각을 돌리세요.”

“됐고, 메리웨더 당신! 명심해. 내가 손에 쥔 10조 달러의 사용처가 독일 국채 매입이라는 사실, 지금까지 아무도 몰라. 혹시라도 다른 이가 안다면 당신 입에서 나갔다는 거지.”

“제 입은 천금보다 무겁습니다.”

“응, 믿고 싶어. 그래서… 이거, NDA(비밀유지 각서)야. 서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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