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한 자본, 내 맘대로 세상 만들기-119화 (119/150)

119화 유로를 뿌리째 먹어 볼까나

“프레지던트, 이걸… 정말 이걸 할 생각입니까?”

“그러니까 모셨죠.”

“하아! 배짱이라 해야 하나? 아니, 제정신이라면 이럴 수는… 정말 치매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멀쩡합니다. 극히 정상이예요.”

“프레지던트는 제가 이걸 승인하리라 봅니까?”

“그야 모르죠.”

“프레지던트가 모르면 누가 압니까? 도대체 우리는 왜 불렀습니까?”

갑자기 백악관 호출을 받은 FRB 의장은 부시를 미친놈 보듯이 하고 있었다. 같이 호출 받은 재무부 장관도 넋을 놓고 부시만 쳐다보고… 그 역시 기가 막히는지 입을 떡 벌린 채 말이 없었다.

“설명할 사람을 부를 테니 직접 듣고 판단하시구려. 단, 내 생각과 그의 뜻은 같습니다.”

부시를 움직인 사람? 부시가 그라고 부르는 사람? 그리고 그의 뜻이 내 생각이다? 무조건 하라는 말이잖아!

미국을 움직이는 게 대통령?

맞는 말이긴 하지만,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몇 사람이 있다. 그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이가 FRB 의장과 위원들이다. 돈을 쥐고 있으니까.

어느 나라나 자국의 화폐를 발행하는 주체는 국가다. 중앙은행을 민간이 운영하는 곳은 없다.

그런가?

아니, 미국은 아니다.

미국 달러를 찍어 내는 기관, 통화량을 조절하는 기관, 금리를 결정하는 기관. 산하 은행을 통제하는 기관, 이게 FRB(연방 준비제도 이사회)다. 여기서 결정되어야 연방 은행에 해당하는 FED에서 달러를 발행한다.

FRB 7명의 이사를 임명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최장 14년 임기로 단임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게 민간 조직이라는 것. 일개 민간 조직이 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실질적인 세계의 경제 대통령은 이 사람… FRB의 의장 엘런 그린스펀이다. 그런 사람을 불러 놓고 대통령이 협박을?

가당찮다.

들이받고 일어난들 대통령이 제재할 방법이 없다.

미국이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두 가지 요소는 세계와 맞짱을 떠도 이길 수 있는 막강한 국방력과 세계 모든 무역과 석유를 거래하는 화폐가 달러이기 때문이다. 그 달러 발행권을 쥔 곳이 민간 기구인 FRB.

만약 정치 권력의 정점 부시와 경제 권력의 정점 엘런 그린스펀이 정면 대결을 한다면… 미국도 젖 담는다.

그런 상황을 모를 부시가 아니건만, 왜 이리 막 나가는 걸까? 뭘 믿고?

“엘런 그리고 프레이저. 내 영혼의 친구를 소개하겠소. 마이다스 킴, 들어오게.”

“……!”

“……!”

어째 나쁜 예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 것인지. 둘의 표정은 썩은 땅콩을 깨문 듯 일그러지고 말았다.

부시가 한껏 바람을 잡아 놓은 후 등장한 시혁. 엘런 그린스펀 FRB 의장과 프레이저 재무장관은 마지못한 듯 일어나 악수를 나누었다.

마음속으로는 찟어 죽이고 싶겠지만.

“죄송하지만 다 들었습니다. 오벌 오피스에 방음 기능이 있다 해도 그렇게 큰 소리로 소리를 치니, 안 들을 수가 없더군요.”

“그렇소? 다 들었다니 서로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참 다행이오.”

대뜸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엘런 그린스펀 의장. 그나마 재무장관은 대통령 앞이라 입을 닫고 있었다.

“맞습니다. 시간을 아낍시다. 제가 두 가지만 먼저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를 다 듣고도 동의를 못 하신다면, 저도 돌아가서 샤워하고 잠들겠습니다.”

“해 보시구려. 내 맘이 바뀔 리 만무하지만.”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엘런 그린스펀.

“첫째, 10조 달러는 역사상 처음 동원하는 큰 금액입니다. 하지만 1조 달러가 원금이고 FRB는 레버리지로 9조 달러를 내는 셈이죠. 손실? 리스크? 제로입니다. 10조 달러의 5%인 5천억 달러만 가격이 떨어져도 바로 반대 매도를 할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원금에서 5천억 달러가 남습니다.”

“…….”

“둘째, 여러분의 뿌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역대 FRB의 의장 전부와 위원 전부는… 유태인이었어요. 또 역대 재무장관의 70% 역시 유태인, 결국 미국의 달러 패권을 가진 사람 모두 유태인이란 말이죠. 제 제안이 그 뿌리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

아직 몰라? 그렇게 감이 없어서 어떻게 경제 대통령을 하고 있나?

“미합중국은 항상 주적이 존재했습니다. 공산주의와 대적하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소련과 냉전을 벌였고, 돈지랄하는 일본을 내려 앉혔습니다.”

“…….”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이라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죠. 홀로 고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아요. 힘을 보여 주지 않으면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포를 뼈에 새겨 주었어요.”

“…….”

“문제는 지금! 다음 주적은 어디일까요? 군사적으로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이란도 있고, 북한도 있고, 러시아도 있죠. 그런데, 경제적으로는? 정치적으로는?”

거기까지 들은 엘런 그린스펀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지금 마이다스 킴은 통일 독일을 생각하는 것이오?”

“빙고! 아직 치매는 아닌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오? 또 독일은 적이 아니라 우방이에요.”

“그래요. 그쪽은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를 지향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온전한 미국의 동지냐? 이건 물음표가 붙죠. 문제가 독일 하나일까요? 주변의 친구들을 불러 모아 어깃장 부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설마… EU(유럽연합)가 발족한단 말이오? 벌써 오래전부터 서로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지지부진한 그들이 뭉칠 수 있다 보는 거요?”

경악성을 내뱉는 엘런 그린스펀의 가슴을 향해, 시혁이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심장에 비수가 박혀야 아픔을 느낀다면… 너무 늦어요. 그들은 이번 독일 사태를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독일이 무너지면 그나마 겨우 붙잡고 있던 유럽의 독립은 영영 물 건너가니까요.”

“유럽의 독립?”

“원래 힘이 센 형을 모시는 동생은 항상 틈을 노립니다. 그늘이 너무 짙어서 햇볕을 쬘 기회가 없거든요. 그들은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서 자기들만의 생태계를 만들 겁니다. 이건 역사의 흐름,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겨우 전체 맥락을 이해한 모양이다. 재무장관도 헤벌린 입을 다물었다.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킴, 차마 내 입에서 내뱉기 민망한 이야기지만, 아까 두 번째로, 우리 뿌리를 지켜 준다고 했습니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수천 년 광야를 떠돌던 유태인이 비로소 세 개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하나는 팔레스타인 땅에 건국한 이스라엘이고, 하나는 여기 미합중국이죠. 마지막 하나… 그게 독일의 로스차일드 가문, 아닌가요?”

“……!”

“이대로 두면 독일의 원 뿌리 로스차일드 가문은 망합니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에 있는 로스차일드 지부가 돈은 더 많을지 몰라도 원 뿌리가 시들면 맘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지켜 주죠. 그들의 자산과 명예를 지켜 줄 것을 약속드립니다.”

오벌 오피스의 주인 부시와 재무장관은 관람객으로 변했다. 오롯이 대화는 시혁이 이끌고, 엘런 그린스펀이 박자를 맞추는 모양새였다.

“좋습니다. 그럼 이 일로 킴이 얻는 건 뭐요?”

“오! 이제야 진일보한 주제가 나와서 반갑습니다. 간단합니다. 저는 무한 자본을 가질 겁니다.”

“무한 자본?”

“예, 독일을 영원히 미합중국에 복속시키는 정치적인 목적과 더불어…….”

“더불어?”

“EU의 단일 통화, 유로(Euro) 발행권… 그걸 갖겠습니다. 당신들 유태인이 미국 달러를 가졌듯이.”

“갓뎀… 오 마이 갓!”

점잖은 엘런 그린스펀의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오고, 지금까지 입을 닫고 있던 재무장관도 한마디 보탰다.

“이거 좋아해야 하는지, 아니면 잠을 설쳐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 괜히 늑대를 잡으려다 사자 입에 대가리를 들이미는 느낌입니다. 오싹해요.”

“걱정 마세요, 장관. 당신 머리통은 줘도 안 먹을 테니.”

* * *

숙원이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경상도 사투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럽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도 오래전부터 하나의 공동체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48년 베네룩스 3국이 관세 동맹을 체결하고.

로마 조약에 의해 이듬해 EEC(유럽 경제 공동체)가 창설되고.

EEC가 EC(유럽 공동체)로 개편되면서 관세 동맹이 완료되었고.

그리스가 EC에 가입하여 총회원국이 10개 국이 되었고.

독일이 통일된 후에는 옛 동독까지 편입시켜 총 12개국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유럽 단일 시장을 완성하는 것과 여기서 사용할 단일 화폐를 확정하는 것만 남은 것이다.

초읽기에 들어간 EU(유럽연합).

하지만 아직 국가 간의 사소한 이익과 반대 의견이 팽배한 상황이라 완전한 경제통합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했었다.

또 저러다 10년, 20년 세월이 갈 것이라 보고 있었다.

프랑스 엘리제 대통령궁.

사디 카르노 대통령과 토탈 에너지 루이 자그레브 회장이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루이 회장님, 우리가 설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카르노 대통령, 더 미적거리면 안 됩니다. 이번 기회에 발족해야 되지 않겠소?”

“…왜 이러는 겁니까? 토탈 에너지가 유럽 최대의 석유 메이저 회사고, 시장이 넓어지니까 좋은 현상이라는 건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정치적인 문제까지 개입하는 진짜 이유가 뭡니까?”

“방금 정답을 말씀하셨네. 전 유럽이 단일화되면 우리 토탈 에너지가 그 시장을 다 먹을 수 있잖소? 프랑스 전체 수출의 20%를 토탈 에너지가 맡고 있어요. 단숨에 몇 배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란 말이오.”

“제가 대통령이 된 게 루이 회장님 덕분입니다. 오랜 세월 제 정치적 후원자의 말을 거절하는 게 아니란 뜻입니다. 하지만 독일과 우리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맺힌 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독일이 망하면? 박수 칠 일이오? 독일 경제는 누가 뭐래도 유럽 제일, 그 여파가 조국을 덮칠 건 뻔한 일… 같이 무너져요. 폭풍도 피하고 더불어 성장도 할 찬스, 밀어붙이세요.”

“회장님, 좀 스탭 바이 스탭으로 가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칼자루는 독일에게 없습니다. 무리한 통일 자금으로 이빨이 왕창 뽑혔단 말입니다. 나머지 국가들 상황도 살피면서 천천히 가시지요.”

“대통령, 내가 지금 부탁하는 것으로 보이오?”

“……!”

“내가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드느라 들어간 돈이 얼마고, 동원한 인맥과 인력이 얼마요? 그렇다고 한 번이라도 부탁한 적 있는지 생각해 보시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청을 이렇게 거부하면… 당신과 나는 오늘부로 끝이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총리 관저에서 안토니오 라구엘 총리와 에니(ENI)의 회장 지오바니 조제페 회장이 냉랭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경제 권력이 정치권력에 개입하면 말로가 좋지 않아요.”

“내 노후 걱정까지 총리가 할 필요 없소이다. 총리는 퇴임하면 놀겠지만, 나는 여전히 에니의 회장일 테니.”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글쎄… 나는 권유하는 건데, 총리는 협박으로 듣는구려.”

“그 권유가 꼭 협박처럼 들리니 문제 아닙니까?”

“할 만하니까 하는 거지.”

“에니는 국민 기업입니다. 또 정부가 30%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회사를 엉뚱한 사람 입에 털어 넣은 회장님께서 염치가 좀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에구에구… 총리, 에니가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큰 기업이라 한들, 엑슨모빌과 비교하면 실로 보잘 것 없지. 또 BP는? 로열 더치 쉘은? 다 에니보다 몇 배 덩치가 큰 공룡 아닌가? 그들도 마주하면 숨을 죽이는 존재가 있어요.”

“……!”

“당신 정도는 씹던 껌보다 더 쉽게 짓이겨 줄 총회장, 그분을 거론하려면 말 조심하는 게 만수무강에 좋을 거요.”

“혹시… 이 오더가 그 사람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노코멘트! 재차 경고하는 데 선을 넘지 마시오.”

전 유럽이 들썩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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