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사람은 착해
혼자서 질질 짜고 있던 로든을 데리고 필요한 약채를 모두 캤을 때는 이미 해가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그렉과 마리, 그리고 이안을 보며 로든이 궁금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물어볼 정도의 용기는 그에게 없었다.
“후딱 보고하고 해산하자고.”
마틴이 있는 자치회 사무실에 의뢰를 보고하려던 이안은 문 앞에서 멈칫했다.
‘말소리가 들리네. 누구랑 같이 있나?’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니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여전히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는 마틴과 소파에 앉아 홍차를 홀짝이는 회색 머리 소년.
루크 브레이브하트였다.
의외의 인물에 이안도 놀랐지만, 마리와 그렉은 몹시 당황한 모양이었다.
“루, 루크 님. 아니. 루크.”
“여기에는 왜…….”
마틴이 서류를 한쪽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미 서로 아는 사이야? 반이 다른 거로 아는데 신기하네. 루크가 자치회에 관심이 많다고 들어서 조언을 좀 해주고 있었는데…… 근데 다들 꼴이 왜 그래?”
그렉은 한쪽 다리를 절었고 마리의 얼굴도 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흙과 먼지가 가득 묻어 넝마가 되어 버린 옷만 봐도 뭔가 일이 있었다는 건 쉽게 알아챌 만했다.
“그게…….”
“숲에서 정령이라도 만난 거 아닐까요? 기본적으로 코르디스에 있는 정령들은 온순하지만, 숲에 손대는 걸 안 좋아하는 녀석들도 있으니까요.”
마리가 설명하기 전에, 루크가 끼어들어 말했다.
마틴이 안경을 고쳐 잡으며 물었다.
“그런 거야?”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숲의 정령을 맞닥뜨려서 싸우다가 그만…….”
“흠. 요즘에는 숲에 정령이랑 짐승도 잘 안 나온다는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그래도 그렉과 마리라서 다행이네요. 둘은 사이드 클래스지만, 실력은 정말 뛰어나거든요.”
“그래?”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마틴한테 친우를 칭찬하는 루크의 모습은 그야말로 훌륭한 귀족의 표본.
그 검은 속을 아는 이안마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처세였다.
다만, 듣는 그렉과 마리는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임무에 실패했다는 게 명확해졌으니, 앞으로 둘은 루크의 신뢰를 사기 힘들어지겠지.
언젠가 브레이브하트 가문을 이끌 루크의 신뢰를 잃었다는 건, 결코 작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뒷사정을 모르는 마틴은 따뜻한 눈으로 후배들을 훑으며 조언을 건넸다.
“갑자기 정령을 만나다니, 당황했겠네. 그래도 어떤 일을 하다가, 이런 식으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지는 건 의외로 흔할거야.”
“예. 확실히…….”
그렉은 떨떠름한 얼굴로 이안을 쳐다봤다.
그에게 가장 예상치 못한 일이라면 이안의 실력이었을 터다.
“이번에 그걸 느껴봤으니, 다음에는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거야. 고생 많았어. 로든 너도 후배들을 잘 이끌어줬네.”
“어, 어. 그, 그렇지.”
“자, 여기 보수 받아. 너희한테는 큰돈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직접 땀 흘려 번 거니까 그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야.”
마틴의 이런 멘트도 이미 준비되어 있는 걸까.
어쨌든 마틴의 말은 신입생들의 마음에 확실히 전해진 듯했다.
건네받은 은화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렉과 마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무실을 나섰다.
“또, 또 보자. 이안.”
인사를 남긴 로든도 허겁지겁 방을 나서고, 루크도 끝까지 미소 지은 얼굴 그대로 떠났다.
‘독하다.’
솔직히. 자신의 계략이 먹히지 않아 사소한 반응이라도 보여줄 줄 알았다.
하지만 루크는 그런 낌새를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별로 크게 신경 안 쓰는 건가.’
이안 정도는 심심풀이 정도의 느낌이라 해야 하나.
애초에 이번 일 자체도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정도로 찔러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리와 그렉은 확실히 실력이 뛰어났지만, 결국 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다음번 노림수도 이렇게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더 치밀하고, 더 교묘하게 이안을 옥죄어 올 터.
‘그나마 저 외에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이 정도지…… 저를 집중 마크하기 시작하면 꽤 골치 아파지겠네요.’
[그런 걸 방지하려면 이안도 이안의 편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까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솔직히 힘들겠죠 그건?]
‘가끔 이네스 님은 말을 신랄하게 할 때가 있어요.’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마지막으로 방을 나서려고 할 때.
분주하게 서류 작업을 하던 마틴이 이안에게 말했다.
“루크. 좋은 애야. 나랑은 예전부터 가문간의 교류가 있었거든. 모두에게도 친절하지만, 자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정말 끔찍이도 챙겨주지.”
“아, 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루크는 겉으로 보면 훌륭한 사내다. 이안에게 적대적이어서 문제지.
마틴이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듯 말했다.
“하아. 기본적으로 나는 이 학사의 풍조를 별로 안 좋아해. 경쟁을 시키고 그에 따라 차별을 하니. 아래 등수에 있는 애들은 열등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위에 있는 애들은 등수를 유지하려고 전전긍긍하지.”
마틴은 학사에서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결국, 경쟁에 못 이겨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학생들. 자기 혐오로 끝내는 극단적 선택마저 하는 아이들.
마틴은 안타까운 경우들을 참으로 많이도 봐왔다.
“결국, 이런 곳에서 남는 건 친우밖에 없더라고. 루크랑 같은 반이니까, 기왕이면 친해지려 노력해봐. 학사 생활을 할 때 크게 도움이 될 거야. 사실…… 아까 너에 대해 넌지시 말을 해놨거든.”
이안은 말을 잃었다.
말을 해놨다는 거는, 사실상 자기 이름을 걸고 이안을 추천했다는 것과 다름없다.
가볍지 않은 배려다.
‘화이트가문 핏줄은 잔정이 많은 모양이네요.’
그 형에 그 동생이라는 걸까.
이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더니 그쪽에서는 뭐랍니까?”
“글쎄. 루크도 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하던데. 좋은 뜻으로 말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아마 좋은 뜻은 아닐 거예요. 이안은 속으로 대답을 삼켰다.
***
1학기의 가장 큰 이벤트라 하면 여름이 접어 들쯤 일어나는 악마 소환 사건.
이안이 기다리고 있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중간중간 자잘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하긴 하는데…….’
하지만 무시해도 될 정도로 시시하거나, 보상이 시원찮은 경우가 대부분.
굳이 품을 들여야 할까 고민이 된다.
‘게다가 감시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루크는 벌써 교내에 여러 학생에게 손을 뻗치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반뿐만 아니라, 사이드 클래스 학생들, 자치회와도 벌써 연이 있는 모양이니 그 영향력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놈의 성격상 이안에게 감시를 붙이지 않을 리 없으니, 이안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다.
결국.
여기서 괜스레 이곳저곳 움직이면 상대에게 찔러 들어올 틈을 주는 것밖에 안 된다.
‘일단은 지금 실력을 올리는 데에 집중하긴 해야 하는데…….’
루크의 공격이 생각보다도 더 빨랐다.
이대로 가면 반년은커녕, 두세 달도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이안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럼 루크의 세력이 아니면서 전혀 꿀리지 않는 사람한테 붙어먹는 게 좋을 텐데.’
당장 생각나는 건 선배들. 아무리 루크라 해도 아직은 신입생이다.
선배들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을 터다.
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될 리가 없지.’
딱히 선배들이라고 이안을 좋아할 리가 없다.
헤더 페어윈드나 마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만, 딱히 친분이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결국엔 신입생 중에 같은 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
저 앞에서 걸어오는 빨간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평소보다는 단출한 복장이지만, 언제나 착용하는 순백의 실크 장갑이 눈에 띄는 소녀.
플로라 피에람이 그 추종자들과 함께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플로라가 앞장서고, 추종자 4명이 ‘v’자로 뒤따라오는 모양새였는데.
꼭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가 생각나 이안은 웃음을 삼켰다.
‘잠시만. 생각해보니…….’
루크와 달리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플로라. 게다가 가문도 절대 꿀리지 않는다.
이안을 보고도 애써 모른 척 지나가려던 플로라를 향해 툭 말을 걸었다.
“야. 왜 보고도 모른 체하냐?”
플로라는 고개를 휙 돌리며 걸음을 서두르려 했다.
“아앗……!”
하지만 실수로 발을 삐끗했는지, 앞으로 기우뚱 넘어지려던 걸 뒤에 있던 추종자 둘이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플로라의 양팔을 붙잡아 잡아 세웠다.
수치심으로 새빨개진 얼굴을 애써 감추며, 플로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 고마워요. 에밀리 양. 엠마 양.”
“아니에요.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실로 능숙한 대처였다.
이안이 감탄하며 말했다.
“와. 대단한데. 네 친구들 덕분에 이제 넘어지거나 길 잃을 일은 없겠다. 잘됐네.”
“시끄러워! 그리고 함부로 친한 척하지 말라고 했지!”
“왜 그렇게 화를 내. 배고파서 그래? 빵 좀 먹을래?”
“안 먹어!”
가슴속에 불꽃을 품은 마법사답게 플로라의 반응은 언제나 격하다.
그 반응을 보노라면 괜스레 골려주고 싶어진다.
이안이 실실 웃으며 품속에서 빵을 꺼내 건네주자, 플로라는 휙 손을 휘둘러 빵을 쳐냈다.
“아…….”
툭. 손에 들려 있던 빵이 맥없이 떨어졌다.
이안이 말없이 빵을 내려다보자, 플로라가 입을 벌렸다 닫았다 우물거렸다.
‘아. 미안해하는 표정이다. 근데 미안하다고 말하기에는 자존심 상하는 표정.’
[자기보다 어린 애를 놀려먹으니까 좋은가요?]
‘재밌잖아요.’
이안이 그저 말없이 바라보자, 플로라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네, 네가 잘 못 한 거잖아.”
“…….
“겨우 빵 쪼가리고…….”
어쨌든 미안해한다는 감정이 있다는 건, 플로라의 본판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좀 재수 없는 부분은 있어도, 그건 환경의 문제겠죠.’
게다가 원래라면 그냥 무시했을 것도 이렇게 신경 쓴다는 건, 이안과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플로라가 폭발하기 전에, 이안이 품에서 브로치를 내밀었다.
“미안하면 이거나 충전시켜 줘.”
“......안 미안하거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조금 안도한 표정을 지은 플로라가 이안이 건넨 물건을 확인했다.
한번 사용해 버려서 빛이 바래 버린 피에람의 긍지.
원래였다면 모닥불을 몇 시간 동안 피워서 다시 충전해줘야 했겠지만, 플로라가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대체 뭐 하는 데 사용한 거야.”
“어쩌다 보니.”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브로치를 내려다보는 피에람이 손안에서 불꽃을 피워냈다.
거세지만 열기는 느껴지지 않는 신기한 불꽃.
이네스가 감탄했다.
[불꽃을 완벽하게 제어해서 주위에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대단하네요. 제 동료였던 로잘리아도 저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맹한 구석이 있어도 천재니까요.’
불꽃이 브로치의 보석을 뒤덮었고. 순식간에 브로치가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플로라가 보여주는 묘기에 추종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대단하세요. 플로라 님.”
“역시 피에람 가문의 여식!”
“아름다운 불꽃이에요.”
한껏 치켜세워주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플로라가 양 허리에 손을 얹고 턱을 추켜올렸다.
“후후!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 알겠지?”
“그래. 진짜 대단하네.”
“…….
막상 순수하게 칭찬을 받자, 플로라는 조금 부끄러운지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훽 들었다.
“어쨌든. 그 브로치. 내가 나중에 반드시 되찾아갈 테니까 조심히 쓰라고!”
그 말을 남기고 플로라와 그 추종자들은 멀어져갔다.
앞서가던 플로라가 연신 무어라 재잘댔는데, 그럴 때마다 추종자들이 과장스러운 리액션을 보이곤 했다.
만화나 소설에 나올 귀족 영애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친구들이 생긴 게 쟤 성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네요.’
[저걸 친구라고 부르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말이죠…….]
나중에 플로라가 적이 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으니, 꾸준히 체크할 필요는 있지만…….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조금 재수는 없고 허당이지만. 그래도 사람은 착해요. 타락하지 말고 이대로만 컸으면 좋겠네요.’
[그거 칭찬 맞죠?]
어쨌든 지금 당장 플로라의 무리에 들어가는 건 어려울 듯싶었다.
당장 플로라가 허락할 것 같지도 않았고, 별로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루크가 이미 귀족으로서 완성되었다고 한다면, 플로라는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느낌이니까요.’
기반 자체는 플로라가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
그녀의 재능은 이미 모두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다시 없을 천재라는 얘기를 듣고 있고.
가문 역시 황가를 제외하면 비견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잠깐. 어쩌면 루크가 경계하는 건…….’
불현듯 스쳐 가는 생각에,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흘러가는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플로라를 경계했던 건가. 그래도 플로라의 기반을 생각하면 웬만한 방법으로는 힘들 것 같은데…….’
고민하던 이안은 생각을 털어냈다. 딱히 지금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급한 건 이안 자신.
‘이제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 남았다.
루크나 플로라에게 뒤지기는커녕, 그 배경만큼은 누구보다 고귀한 사람을.
이안은 수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최근. 교직원 회의가 수시로 열리고 있었다.
모두가 바쁠 학기 초지만, 이 회의의 필요성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회의 주제는 하나. 바로 이안이다.
“직접 수업을 해보니 어떻습니까. 대니얼 교수.”
교직원들의 틈에서 머리숱이 휑한 역사 교수. 대니얼은 이마에 땀을 닦으며 말했다.
“질문을 몇 개 던졌는데, 막힘 없없이 답하더군요. 개중에는 저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은 부분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교직원들이 웅성거렸다. 대니얼은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석학 중 하나였다.
그런 대니얼이 인정할 정도라면…….
이번에는 다른 교수가 질문 대에 섰다.
“예절 수업에서는 어땠습니까?”
“솔직히.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흠잡을 데가 별로 없었습니다. 조금 옛날 스타일이긴 했지만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평소에는 껄렁하게 다니지만, 알 건 다 안다 이건가…….”
교수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론적으로 많은 교수들이 이안을 시험해봤지만, 이안이 그 모든 걸 훌륭하게 돌파했다는 것.
이안의 뒤에 이네스라는 존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당연히 그런 사실을 교수들이 알 리가 없었다.
한 교수가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가 보낸 인물인 건 확실하고…… 능력도 보통 뛰어난 게 아니군요.”
“그 정도로 잘 훈련된 인물이라면 충성도도 뛰어나겠죠. 조건을 걸고 회유한다고 넘어오지도 않을 겁니다. 다른 무엇보다 황태자 전하의 의도를 함부로 속단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인데…….”
회의는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이안에 대한 처우 문제는 도무지 고민해도 쉽사리 정해지지 않았다.
아직 그냥 지켜보자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법이니까.
그날도 별다른 결론 없이 회의가 끝나고.
교수들이 지친 얼굴로 교직원 기숙사로 돌아갈 때.
한 교수가 무리에서 빠져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숨겨 놓은 새장을 꺼냈다.
가둬둔 전서구의 다리에 종이를 묶었고. 머리를 툭툭 두드리자 전서구는 이내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졌다.
“…….
전서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걸 확인한 교수는 이내 황급히 교직원 기숙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