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무르익다
이안은 목이 잘려 머리만 남은 리치의 두개골을 들어 올리며 눈을 맞췄다.
“악마에 대해 알고 있다고?”
“물론. 이래 봬도 이곳에 갇히기 전에도 꽤 긴 시간을 살았다고.”
“아니, 어떻게 봐도 나이는 많아 보이는데…….”
이안은 흙과 곰팡이가 묻어 있는 리치의 두개골을 노려 보다, 되물었다.
“나한테 질문이 있다고?”
“그래.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인지라.”
“혹시라도 수작을 부리려 하면…….”
“쓸데없는 기 싸움이나 으름장은 됐다. 전성기의 나였다면 몰라도 어차피 지금의 나는 너한테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단 말이지…….”
이안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 해골은 신뢰를 가지기에는 생김새가 너무 사악했다.
‘뭐. 어때. 일단 들어보기라도 하죠.’
다만.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리치의 말은 진실인 듯했다.
리스크가 없다면 굳이 이야기하길 마다할 이유는 없다.
“좋아. 한번 들어는 보지.”
“그 전에 내 몸을 다시 돌려주지 않겠어?”
“왜. 그 상태로는 안 돼?”
“기분의 문제라서 말이다.”
이안은 순순히 리치의 두개골을 녀석의 몸체에 던져주었다.
앙상한 뼈다귀가 두개골을 이리저리 끼우더니, 다시 로브를 뒤집어썼다.
“음. 이제 좀 낫군.”
“빨리 시작하자고. 시간 아까우니까.”
“그래. 악마의 어느 부분이 궁금한 거지?”
“그냥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걸 털어놔.”
“까다로운 주문이군.”
리치는 앙상한 검지로 이마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모양.
그러다 리치의 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좋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대충 알겠군. 우선 악마에 관해 설명하려면 영혼에 관해서 설명해야겠지.”
사령술사는 직접적으로 영혼을 다루는 마법사들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나온 게 기쁜 지, 리치의 안광이 번뜩였다.
“영혼은 무엇이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참으로 오랜 세월을 고민했다.”
“적당히 빨리 설명해주면 안 될까?”
“설명 중에는 끼어들지 말도록. 아무튼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영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물질이라고.”
리치는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영혼은 자연의 섭리를 비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 영혼에서 떨어져나온 부스러기들이 바로 우리가 믿음이니 감정이니 사념이니 하는 것들. 그리고 그 부스러기들은 자신과 성질이 비슷한 것들과 뭉치려는 성향이 있다.”
리치가 손을 휙 휘젓자, 해골 병사들이 바닥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푸른 실선의 해골들의 머리 위에 생기더니, 실선들이 모여 리치의 앙상한 손 위에 흐릿한 구체가 만들어졌다.
“그런 부스러기들을 긁어모아 사용하는 게 바로 우리 사령술사들이다. 이제 알겠나?”
“……그래서 악마가 뭔데.”
“여기까지 설명했는데도 못 알아먹다니. 아둔한 학생이군. 부스러기들은 비슷한 성질끼리 모인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양의 어두운 부스러기가 모인 걸 인간은 악마라 부르지.”
어두운 부스러기.
즉. 허무함이나 질투, 두려움 같은 어둡고 혼탁한 감정들.
그런 감정들이 뭉치고 뭉쳐 만들어지는 게 바로 악마라는 존재.
리치의 긴 설명을 곰곰이 곱씹던 이안이 물었다.
“그게 다야?”
“그래. 내가 아는 건 이게 다지. 어때? 놀랍지 않나?”
“뭐. 나름 유용한 정보는 맞지만…… 지금으로선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악마를 불러내는 의식에 대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의식을 방해해서 소환되는 악마를 약화시키는 거니까.
그런 이안의 불평에 리치가 껄껄 웃었다.
“크흐흐! 역시 아둔하군.”
이안이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답했다.
“뭐가.”
“악마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지금까지 기껏해야 책장이나 뒤졌겠지. 맞나?”
“그래.”
“거기서 정보를 하나라도 찾았나?”
“……아니.”
부정할 수 없었다.
꽤 긴 시간을 투자해 학자들의 숲을 뒤졌지만. 지금까지 소득은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무언가를 조사할 때 정보가 없으면. 그와 연관된 주위 것들을 조사하거나, 성질이 비슷한 것들에 대해 조사해야지. 내 설명을 듣고, 악마와 비슷하다고 느낀 게 있지 않나?”
이건 스스로 알아채야 한다는 듯.
리치는 입을 다물고 이안의 답을 기다렸다.
이안은 생각에 잠겼다.
‘감정은 영혼의 부스러기. 부스러기는 비슷한 성질끼리 모인다. 그런 부스러기가 모여 만든 게 악마…… 아.’
머리에 번뜩이듯, 얼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도서관의 구석을 돌아다니던 글자처럼 생긴 존재.
“혹시 정령을 말하는 거야?”
“다행히 아주 멍청이는 아니었군. 악마와 정령은 근원 자체는 비슷한 존재다. 성질이나 행동 원리는 꽤다르지만 말이야.”
으스대듯이 말하는 리치에게 이안이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정령에 대한 걸 조사하면 악마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는 거네?
“최소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악마에 대한 서적을 멍청하게 뒤지는 것보다는 확률이 높겠지.”
이 미치광이 사령술사는 믿을만한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그가 하는 말 자체는 이치에 닿아 있는 듯했다.
‘확실히. 무턱대고 찾는 건 조금 무모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 리치의 의견은 합리적이에요.]
어쨌든. 들어야 할 건 모두 들었다. 이안은 곧장 검을 뽑아 리치의 머리를 부수려 했다.
리치가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잠깐 잠깐! 이건 약속이 다르잖아.”
“응?”
“내가 질문에 대답해줬으니, 너도 대답해야지.”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상대가 누구든. 일단 약속을 했으면 지킬 생각이었다.
“그래서 뭐. 뭐가 궁금한 건데?”
“정확히는 네 머릿속에 있는 또 다른 영혼에 대해서 궁금한 거다. 찬란하게 빛나는 강한 영혼인데…… 누구인지부터 알려줘.”
“흠.”
아무래도 사령술사답게 이안의 속을 꿰뚫어 본 모양. 이안은 이네스와 상담했다.
‘말해도 될까요?’
[어차피 대화를 마치면 마무리할 거 아닌가요? 어차피 이야기가 밖에 새나갈 일도 없는데, 상관없겠죠.]
고개를 끄덕인 이안은 이네스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200년 전에 대악마를 쓰러트린 영웅이시다. 악마와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지.”
“아. 그렇다면 이해가 되는군. 왜 그런 꼴을 하고 있는지.”
“그런 꼴이라니?”
“영혼이 인위적으로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지 않나. 하나의 온전한 영혼을 인위적으로 조각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흠. 역시 완벽하게 파괴하지는 못했나?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이런 식으로 덮어서…… 상상도 못 할 일이군.”
중간부터 리치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잊고. 이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혼자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말을 건다고 대답해줄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이안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조사가 끝났다. 리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충 원리는 알았다. 흥미롭군.”
“알아냈으면 나도 좀 알려줘.”
“흐흐. 거기까지 설명해줄 의리는 없어서 말이야. 그래도 한 가지 말해주자면, 내가 활동하던 때의 악마는 이런 터무니없는 짓은 할 수 없었다.”
리치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악마보다 이네스 시대의 악마가 더 강하다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악마는 더…….
리치는 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미련은 없다! 이 좁은 곳에 갇혀 지루하던 참이었는데, 마지막에 진귀한 걸 봤어. 마무리는 깔끔하게 검으로 머리를 갈라…….”
빠각.
이안은 리치의 목을 잡아채 그대로 땅에 처박은 뒤. 오른발로 놈의 두개골을 밟아 박살 내버렸다.
놈의 영혼이 하늘로 빠져나갔다.
“있어 보이게 죽고 싶었으면 말을 예쁘게 했어야지.”
이안은 자신을 아둔하다고 비아냥거리며 자존심을 살살 긁던 걸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자존심을 긁으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수밖에.
[좀 더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음…… 리치니 상관없으려나.]
핀잔을 주려던 이네스도 더 뭐라 하지 않았다.
‘어쨌든. 방향이 새로 정해졌네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정보를 얻었다.
말이 통하는 괴수. 그것도 악마에 대한 지식을 지닌 괴수를 코덱스에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번엔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찾아온 행운을 헛되이 할 순 없지.’
그렇게 다짐하며, 이안은 다음을 준비했다.
***
레아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저번엔 제가 결례를 범했네요. 부디 용서해주지 않겠어요?”
“…….
“…….
정적.
레아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너무 딱딱하다.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함께 차라도 한잔하시지 않겠어요?”
거울에 비친 레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특별히 저를 용서할 기회를 드릴게요.”
“…….
쿵.
레아가 머리를 벽에 박았다. 예쁜 이마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
솔직히.
아프다. 그리고 부끄럽다.
얼굴에는 여전히 차가운 가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만약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것 같다.
제국의 모든 역사부터 시작해, 궁중 예절, 검술, 각 지방의 지질학적 특징과 세금 추이까지.
궁중에서는 별의별 것들을 다 배웠건만, 왜 또래 학우에게 사과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단 말인가.
괜스레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벌써 1주일인가.’
여태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안이 꽤 성실하게 수련한다는 건 알았다.
그 이안이 수련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벌써 1주일.
레아는 그게 신경 쓰여서 미칠 지경이었다.
‘혹시 그때 내가 한 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아니겠지?’
새삼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날 이후. 벽을 뚫어낸 레아의 실력은 그동안 정체한 만큼 보상을 받으려는 듯.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었다.
레아는 이안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레아가 인정한 상대는 손에 꼽았다는 걸 생각하면, 이는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묻고 싶은 게 많아.’
대체 어디서 검을 배운 건지. 왜 황가의 검술과 비슷한지. 어떻게 자신의 문제점을 바로 파악했는지.
얘기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관계부터 개선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안 있어 오라버니가 올 텐데…….’
레아는 복잡 미묘한 얼굴로 거울을 바라봤다.
세상에 단 하나 남은 혈육이 학사를 방문한다.
분명 기뻐야 하는 게 당연하나…….
기분은 복잡 미묘했다.
그에게 손위 형제는 언제나 어려운 존재였으니까.
“후우.”
왜 이리 복잡한 일들이 많은지. 레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거울을 보며 연습을 시작했다.
***
화륵!
맹렬하게 쏘아진 자그마한 불꽃이 세워져 있던 과녁을 순식간에 불태웠다.
열기는 잘 압축되어 있고, 속도는 빠르며, 정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대로 불꽃을 다루던 피에람 가문. 그중에서도 희대의 천재라 칭송받는 플로라이기에 가능한 묘기.
플로라는 새하얀 장갑 낀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후. 나쁘지 않네.’
한정된 공간. 대련이라는 특수성. 게다가 상대는 만만치 않은 실력의 검사다.
여러모로 마법사인 플로라에게 불리한 조건이지만, 플로라는 본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위대한 피에람의 일원이니까.’
어렸을 적부터 플로라는 과거에 악마를 무찌른 영웅. 로잘리아 피에람에 대해 귀가 따갑도록 듣곤 했다.
그녀가 이뤄낸 위업들과 해왔던 박진감 넘치는 모험. 세상에 남긴 커다란 족적은 플로라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녀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모험을 하고, 업적을 세워 세상에 자기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로잘리아만큼은 힘들겠지만…….
이번 대련이 플로라의 모험이 시작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영웅의 후손인 황태자 앞에서 실력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분발해야 했다.
‘분명 화염 저항 아티팩트를 덕지덕지 챙겨 오겠지. 그 기분 나쁜 자식.’
플로라는 루크가 마음에 안 들었다. 남들은 귀족의 귀감이니 뭐니 띄워주지만, 이따금 차가운 얼굴을 내비칠 때가 있다.
특히 플로라를 향해서만 날카롭게 눈을 빛내곤 했다.
플로라는 그게 루크의 본 모습이라 믿었다.
‘속이 시커먼 녀석. 검은 머리 멍청이보다 더 짜증 나는 놈.’
루크와 더불어 이안까지 씹어댄 플로라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공간이 좁으면 어떤가? 대련이면 어떻고. 또 상대가 뛰어난 검사든, 화염 저항 아티팩트를 가지고 오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나는 플로라 피에람인데.’
막아서는 건 뭐든지 불태워 버리면 될 뿐이다.
화륵.
사납게 회오리친 화염의 폭풍이 주위 일대를 뒤덮었고.
그렇게 모두의 밤이 무르익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