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40화 (41/222)

40. 의외의 곳에서

이안과 그렉, 마리가 책을 정리하던 구역에 이미 학생이 한 명 기다리고 있었다.

얇은 책을 얼굴에 얹고 잠을 청하던 학생이 늘어지게 하품하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나른하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

이안이 마리에게 눈빛으로 묻자, 마리가 속삭였다.

“라이젤. 사이드 클래스 2반에 있는 녀석이야. 초원 출신답게 승마랑 활을 특기로 다루는 녀석이고.”

이안은 라이젤을 살폈다.

이국적인 외모에 또래의 소녀들에 비해 특히 건장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활이 특기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오른쪽 어깨가 반대쪽에 비해 더 발달한 게 눈에 보였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렉이 으르렁거렸다.

“여긴 왜 찾아온 거야. 책이랑은 평생 하나도 안 읽어봤을 것 같은 놈이.”

“푸하하. 네가 할 말이야?”

“…….

“그리고 마리와 그렉. 너희 둘은 완전 저놈의 졸개가 다 되었구나.”

“뭐야!”

“……그만해. 그렉.”

그렉이 욱하며 달려나가려 했고, 그걸 황급히 마리가 제지했다.

돌아가는 대화를 보고 이안은 상대가 누구인지 대충 알아챌 수 있었다.

“너도 루크가 시켜서 온 거냐?”

라이젤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래. 원래라면 저 멍청이 둘을 대신해 내가 널 조져줘야 했겠지만…… 요즘 우리 도련님이 바빠서 말이야.”

라이젤은 심히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렉이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그럼 여기는 왜 찾아온 건데.”

“너희들이 혹시라도 개 짓거리할까 봐 감시역으로 온 거지. 아무래도 이런 곳은…… 이것저것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잖아?”

라이젤의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이안을 노려보았다.

마치 속을 꿰뚫어 보려는 듯했는데, 이안은 심드렁하게 그 시선을 맞받아쳤다.

하! 하고 웃음을 흘린 라이젤이 비아냥거렸다.

“재수 없는 놈이 눈만 살아서는. 어쨌든, 이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허튼 짓거리는 하지 마라고.”

그렇게 말한 라이젤은 역설적이게도, 곧바로 눈을 감고 코를 골아댔다.

난감한 얼굴의 마리가 물었다.

“저거 그냥 놔둘 거야?”

“놔둬야지. 감시만 할 뿐이라면 딱히 내칠 명분도 마땅치 않아.”

“끙…….”

라이젤은 당당하게 자신이 감시하러 왔다고 목적을 밝혔다.

언뜻 바보 같아 보이는 언사지만, 오히려 이안은 라이젤이 꽤나 영리한 인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단순히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쉽게 행동할 수 없으니까요. 스트레스는 둘째 치고.’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저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 하나면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나저나 내가 악마에 대한 내용을 찾고 있다는 걸 알아채면, 곤란한데.’

한동안은 루크의 견제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너무 낙관적인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특별히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안과 마리, 그렉은 조용히 책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건 지질학책. 이건 생물학. 코르디스의 역사. 아름다운 화단을 가꾸는 법…… 뭐가 이렇게 잡다해?’

짜증이 났지만 이안은 끈기를 가지고 책을 읽어내렸다.

어차피 하루 이틀 안에 찾아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

라이젤의 코 고는 소리만이 도서관을 맴돌았다.

***

하루하루 꽤 바쁜 일상이 이어졌다.

오전에는 학사 수업을. 그 이후에는 도서관에 가 악마에 관련된 정보를 찾았고. 자기 전에는 코덱스에 깃든 괴수들과 전투를 벌여야 했다.

괴수들과의 전투는 대부분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었지만. 개중에는 극독을 사용하거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공격하는 등.

상대하기 까다로운 경우도 더러 있었다.

게다가 코덱스에 대체 얼마만큼의 정교한 마법이 부여된 건지.

괴수들과의 싸움에서 생긴 상처는 극심한 정신적 피로로 남아 이안을 괴롭혔다.

그렇게 이안이 일에 치중하는 사이.

학사의 분위기도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원래도 화려하던 건물들이 가을을 맞은 단풍마냥 한껏 치장을 시작했고.

학생들도 연일 곧 있을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웠다.

“이번 황태자 전하께 보이는 시범 대련. 누가 이기려나?”

“글쎄. 순위로 보면 루크가 더 높잖아. 그리고 대련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마법사와 검사의 상성을 생각하면, 피에람 양은 좀 힘들지.”

“그래도 피에람 양이 실력은 뛰어나잖아. 좀 재수 없긴 하지만…….”

“그렇긴 하지. 좀 재수 없지만…….”

대련에서 누가 이길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단골 주제였다.

개중에는 누가 이길지에 대해 돈을 거는, 도박도 성행하고 있다고.

‘귀족이든 뭐든 사람 사는 곳은 똑같구나.’

하지만 이안 만큼은 그 둘의 승패에 대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이안이 생각하기에는 어떤데요?]

‘플로라가 제 실력을 내면 루크는 절대 못 이겨요. 지금 설령 황녀나. 혹은 윗 학년 선배들이 덤벼도 못 이길 거요?’

이안은 확신에 차 말했다.

‘재능 하니만큼은 말도 안 되게 뛰어나단 거. 이네스 님도 아시잖아요.’

[그렇긴 하죠…….]

‘게임에서 비중도 없는 놈이 이길만한 상대는 절대 아니에요. 게다가…… 원래 게임에서는 학년 말에 열리는 토너먼트라는 이벤트가 있거든요?’

그 토너먼트에서 플레이어가 특별히 무언가 수를 쓰지 않는 한. 언제나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을 거머쥐는 게 바로 플로라다.

그렇기에 이안은 추측이 아니라 확신했다.

플로라는 반드시 이긴다.

그러다 생각이 들었다.

‘잠깐. 도박이 열린다는데 플로라한테 돈을 걸면…….’

[이안. 이제 도박과는 연을 끊기로 약속했잖아요. 저와의 약속을 어길 생각이에요?]

‘하지만 결과를 알고 베팅하는 건 도박이 아니라 투자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씁!]

이안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학사의 분위기는 착실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또 다른 변화라면 교수들의 태도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지 하나같이 죽을상을 짓고 다녔는데, 이제 이안을 보면 경계하는 게 아니라 아예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개중에는 수업이 끝나고 굳이 이안을 불러내는 교수들도 있었다.

머리숱이 휑한 역사 교수. 다니얼이 이안에게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안 학생.”

“……무슨 일이신가요?”

“하하. 교수가 아끼는 제자를 불르는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 말에 주위 학생들도. 이안도. 말한 교수 본인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안이 어색하게 답했다.

“아, 예.”

“하하. 내가 이안 학생에게 특히 질문을 많이 하는 건, 그만큼 이안 학생에게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거에 대해 혹시라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게.”

“……예.”

주위를 휙휙 살핀 다니얼은 이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잘 좀 말해주게.”

“……누구한테요?”

“참. 다 알면서 그러나! 부탁하네!”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남기고 다니얼은 후다닥 나가 버렸다.

대체 누구한테 뭘 전해달라는 건지. 이안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외에는 별 특별함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만. 요즘 들어 레아가 뒤에서 헛기침하며 지나간다거나, 가끔 시선이 느껴 뒤를 돌아보면 눈이 마주치거나 하는 게 많은 느낌이었지만…….

‘뭐. 그냥 기분 탓이겠지.’

저번 수련장에서의 일 이후로, 이안은 레아에 대해서는 후순위로 미뤄두고 있었다.

이미 미운털이 박힌 상태에서 억지로 다가가봤자, 역효과밖에 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어차피 나중에 스토리적으로도 엮일 일이 많았고.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다른 일에 집중하자.’

사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는데…….

쿵!

“으악!”

갑자기 엎어진 책장에 기겁한 그렉이 급하게 몸을 웅크렸다.

책장에서 빠져나온 책이 그렉의 머리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급하게 책을 피해낸 이안은 범인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야.”

“아? 미안 미안. 손이 좀 미끄러졌네?”

라이젤은 생글거리며 비아냥거렸다.

“근데, 뭐. 안 다쳤으면 된 거 아니야?”

“뭐 이 자식아? 말 다 했어!”

“불만 있으면 덤비던가. 사내새끼가 입만 살아서는.”

라이젤이 도발하듯이 말하자 그렉이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이 자세를 잡았다.

마리와 이안은 그런 그렉을 말렸다.

“일부러 도발하는 거잖아. 일일이 반응 좀 하지 마.”

“황태자 전하의 방문으로 교수님들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여기서 싸움질이라도 하면. 교수님들이 참 좋아하겠다. 그지?”

“내, 내 잘못이야?”

오히려 자기가 핀잔을 듣자 억울해하는 그렉.

이렇듯. 라이젤은 번번이 이안의 일을 방해하고 있었다.

마치 이안이 언제 폭발할지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는 느낌이었는데.

시기도 시기 인지라 대처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었다.

‘얄미운 새끼.’

그런 방해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정리 일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 가지 놀라운 변화라면. 그렉도 마냥 책을 분류하기만 하는 건 질렸는지, 조금씩 내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는 것.

마리가 경악한 얼굴로 말했다.

“드디어 짐승이 지성을 탐하기 시작했구나.”

“지, 짐승이라니 무슨 소리야! 그리고 내가 책 읽는 게 뭐 어때서 그런 표정이야.”

주로 읽는 건 신체 단련에 관한 내용이거나, 의외로 그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로맨스 소설이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젤 같은 경우는 시비를 거는 시간을 제외하면 주로 주저앉아서 잠을 청했지만, 가끔 어디론 가로 사라질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이안은 호기심을 못 이기고 질문을 던졌다.

“너는 가끔 어디로 사라지는 거냐?”

라이젤은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응? 꽤 묘한 냄새가 나는 곳들이 있어서. 둘러보느라.”

그리 말하며 라이젤은 코를 벌름거렸다. 하는 모양새가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모양새가 수상쩍어 이안은 서둘러 지난번 악마 소환 흔적이 있던 곳을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없네요?’

[…….누군가 치운 모양이네요.]

닭과 비둘기 사체. 두개골.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서적 따위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바닥에 잘게 부수어진 종이 쪼가리만 흩뿌려져 있을 뿐.

장소가 들통난 걸 알아챈 범인이 다녀갔고, 흔적을 지운 모양이다.

이안은 사서에게 급히 달려가 부탁했다.

“출입 명부. 출입 명부 있죠?”

“어…….어?”

“빨리요!”

사서는 얼떨결에 출입 명부를 이안에게 넘겨주었고, 이안은 명부를 빠르게 훑었다.

하지만 쓸 만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게다가…….’

[이곳의 출입구나 정문 하나라고는 단정할 수 없죠. 비밀 공간도 많은데, 숨겨 놓은 출입구가 한두 개 정도 있어도 이상하진 않겠죠.]

그 말대로다.

명부에 있는 사람들 외에도 용의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어쨌든. 꽤 절묘한 솜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악마 소환 의식의 흔적을 지워내다니 말이다.

‘어쨌든 간에 계속 활동하며 돌아다닌다는 건데…….’

아마도 앞으로 도서관에서 일을 벌이지는 못할 터.

코르디스에는 남들 눈에는 안 띄는 으슥한 장소가 꽤 있었고, 이안도 범인이 있을 만한 곳을 몇 군데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가 부족하다.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뭐야. 갑자기 급하게 가길래, 똥이라도 마려운 줄 알았더니. 여기는 왜 온 거야.”

어느새 뒤따라온 라이젤은 능글맞게 웃었다.

이안은 눈매를 좁혔다.

요근래 갑자기 감시로 붙은 라이젤.

라이젤 오고 의식의 흔적이 사라졌다. 단순한 우연일까?

“너는 똥 싸러 가는 사람을 왜 따라오는데. 그리고 너랑 상관없잖아.”

“너무하구만.”

차가운 이안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이는 라이젤.

이안은 그 반응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괜히 신경 써봤자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 뿐이다.

지금은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

“딱딱!”

“딱딱!”

땅속에서 일어선 해골 병사들이 마치 군가를 외듯. 규칙적으로 턱을 부딪치며 움직였다.

그런 해골 병사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로브 차림의 뼈다귀.

리치가 음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실로 오랜만의 포식이다! 너희의 동료를 늘려라!”

“딱딱!”

못해도 수십은 넘어 보이는 해골 병사들이 한 손에 녹슨 검을 쥐고 질주했다.

이안은 혀를 찼다.

‘쯧. 이번에는 리치인가요.’

[타락한 사령 술사들이 도달하는 최악의 결과…… 리치는 원래라면 그 존재가 확인되는 것만으로 교단이 움직일 정도의 강력한 괴수에요.]

하지만 코덱스에 봉인되어 지낸 세월 앞에는 리치의 강함마저 녹슬었다.

그걸 증명하듯. 리치의 눈구멍에 서린 푸른 광채는 불안정하게 점멸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쨌든. 할만해 보이네요.’

빡!

이안은 검을 휘둘러 가장 앞서서 달려오던 해골 병사의 두개골을 부쉈다.

하지만 머리를 잃은 해골 병사는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카각!

성검과 해골 병사가 든 녹슨 검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이안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놈의 척추를 부러뜨려 버렸지만. 해골 병사는 바닥을 기어서라도 이안을 공격하려 했다.

‘끈질기네요.’

[언데드는 태양 빛이나 신성력에 약해요. 둘 다 없으면…… 시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조각조각 내버려야 하죠.]

‘저랑은 상성이 좋지 않네요. 그렇다면…….’

후욱.

이안은 가볍게 뛰어오르며 해골 병사들 사이에 착지. 풍차를 돌리듯 검을 원형으로 휘둘러 해골 병사들의 척추를 순식간에 동강냈다.

끈질길진 몰라도, 결국 오래된 뼈다귀들. 내구성은 형편없었다.

탓.

이안은 해골 병사들의 사이를 일자로 뚫으며 곧장 리치를 향해 달렸다.

굳이 까다로운 해골 병사들이랑 영양가 없는 싸움을 하느니. 곧장 머리를 칠 생각이었다.

“순순히 죽어라!”

리치가 손에 든 낡은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푸른색 불꽃을 방사했다.

“끼야야악!”

불꽃에서는 고통 어린 절규와 비명이 흘러나왔다.

듣는 이의 정신을 뒤흔드는 마법.

비명에 질려 저도 모르게 몸이 굳는 순간, 푸른색 불꽃이 곧바로 사냥감을 집어삼키는 구조다.

하지만 이안은 불꽃의 궤적을 읽고 간단히 피해 버렸다.

절규도 큰 영향을 주지는 못 했고.

당황한 리치가 외쳤다.

“어째서!”

이안은 검을 휘둘러 깔끔하게 리치의 목을 날렸다.

퉁! 하고 날아오르는 리치의 두개골. 하지만 돌연. 리치의 두개골이 푸른 불꽃을 내뿜으며 비행하더니, 이안의 어깨를 물었다.

“뭐, 뭐야!”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이안이 화들짝 놀랐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푸하하! 사령술사한테 거리를 주다니! 이제 네 영혼을 거두어…… 아, 안 되잖아?”

리치의 안광이 마구 흔들렸다.

예상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안은 리치의 두개골을 한 손에 쥐었다.

리치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횡설수설 나불대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렇게 강대한 영혼을. 아니. 심지어 온전한 형태도 아닌가? 대체 머릿속에 무슨 괴물을 키우고 있는 거냐!”

‘그렇다는데요?’

[빨리 죽이죠. 이안.]

괴물이라는 말에 이네스가 차갑게 말했지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야.”

“으, 음?”

“혹시 악마에 대해서 좀 아냐?”

[이안.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알겠지만 사령술사들과 악마는 그렇게까지 큰 관련이…….]

“악마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기는 하지.”

밑져야 본전 식으로 찔러본 말이었다.

설마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단서를 찾은 셈이었다.

이안이 리치의 두개골을 양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빨리 알고 있는 거 다 말해.”

“흠…….”

잠시 고민에 빠진 리치가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원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걸 알려주마. 네놈이 내 질문에도 답해준다면 말이야.”

리치가 거래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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