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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72화 (73/222)

72. 항쟁(3)

“끄윽!”

“무, 물을…….”

지난 전투에서 과도하게 도핑한 조직원들이 병상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환자들의 안색이 심히 좋지 않았다.

대부분은 나흘 안에 죽을 가능성이 컸다.

마일로는 그들을 한없이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 수심이나 죄책감은 일절 없었다.

모든 걸 걸고서라도 원하는 걸 관철하는 것.

설령 그게 목숨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코헨의 사내들이니까.

이들은 고통스러워할지언정 후회하지는 않았다.

설령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마일로의 명령 하나에 다시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지겠지.

쿨럭!

부하 하나가 뱉어낸 피 섞인 가래 일부가 마일로의 구두에 튀었다.

마일로가 얼굴을 일그러트리자 옆에 서 있던 사내가 황급히 엎드려 자신의 소매로 오물을 닦아냈다.

누워 있던 사내 중 하나가 마일로를 알아보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두, 두목. 명령만 주십쇼. 싸워야 한다면, 지금이라도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아니. 이제 너희들은 필요 없어.”

죽음을 앞둔 부하들에게 자상한 말 한마디를 건넬 만도 하건만.

마일로의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들은 한없이 잔인했다.

하지만 누워 있던 부하들은 무엇을 알아챘는지, 한결 안심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두목입니다.”

마일로는 대꾸 없이,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걸어나갔다.

***

조직원 모두가 길을 따라 걸었다.

그 회색 물결에 시민들은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굳은 얼굴의 잭이 다소 뜬금없는 화두를 뱉었다.

“너는 왜 코헨의 사람들이 어두운 색깔을 즐겨 입는지 알아?”

“왜인데.”

“뭐가 잘 묻어도 티가 잘 안 나거든.”

찰팍!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잭은 바닥에 고인 탁한 물웅덩이를 힘껏 밟았다.

옷에는 오물이 튀었지만, 잭의 말마따나 그 흔적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언제든 쉽게 더러워질 수 있다는 게 이 코헨이라는 도시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뭐. 별로. 그냥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라서.”

앞서가던 잭의 부하가 녹슨 문을 열어젖혔다.

끼익.

약속 장소는 마녀들이 원래 사용하던 시 외곽의 폐건물이었다.

남아 있던 도구들을 모두 시에서 쓸어가 버려 휑한 실내만 남은 이곳은, 일을 마무리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아만에 대항하기 위한 두 조직이 일을 마무리하기에는 상징성도 있었고.

내부에는 미리 대기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왼쪽에는 잭의 부하들과 그 협력 조직들.

오른쪽에는 마일로의 부하들.

그 둘은 혹시라도 내부에 부려놨을 수작질을 찾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는 한편. 서로를 향해 강한 살의를 담아 노려보곤 했다.

얼마 전의 전투로 양측의 감정의 골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져 있었다.

‘이래서야 승패가 난다 해도 승복할지가 문제네.’

잭이 마일로에게 제안한 조건은 이랬다.

각자의 조직에서 실력 있는 셋을 뽑아 서로 겨룰 것.

상대가 죽거나 항복할 때까지 싸울 것.

마일로와 잭은 반드시 나올 것.

3명이 모두 쓰러지면 패배로 간주.

그 아래에 남은 조직원들은 이긴 조직의 휘하에 들어갈 것.

하지만 지금 양측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게다가 마일로는 몰라도 잭은 그 부하들을 식구라 부를 정도로 사이가 끈끈하다.

여기서 잭이 죽는다면?

부하들이 순순히 마일로의 아래로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차라리 공멸을 각오하고 달려든다면 모를까.

주위를 둘러본 잭이 너스레를 떨었다.

“분위기가 살벌하군. 다들 긴장 풀어. 그냥 길게 끌어 오던 싸움을 끝내려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형님. 만약 형님이 잘못된다면 저희는…….”

부하들이 발끈했다.

반면, 마일로 쪽 사내들은 덤덤하게 서 있었다.

그 반응에 잭은 쓴웃음을 지었다.

‘신뢰받지 못하고 있구나.’

이번 싸움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두 명이 누가 나오든, 양측에서 가장 강한 잭과 마일로의 싸움이 승패를 가를 것이다.

하지만 잭의 부하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무력에 있어서는 마일로가 잭보다 한 수 위라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잭의 부하들은 불안을.

마일로의 부하들은 평정을.

그 사실이 잭은 그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부하들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 약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걱정 마라. 이기면 되는 거니까. 미리 준비한 것도 있고. 아니면 나를 못 믿는 거냐?”

“그, 그건 아닙니다.”

“믿습니다. 형님.”

잭이 억지로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그제야 부하들도 안심했다.

그때.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긴 마일로가 부하들을 마저 이끌고 들어왔다.

잭이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렸다.

“늦었다 꺽다리 놈아.”

“겨우 이 정도 갖고 뭘 그래. 어차피 마지막인데. 자. 어서 시작하자고.”

마일로가 부하들을 제치고 앞서 나왔다.

사내들이 서로의 진영에 따라 양 옆의 벽으로 붙어섰다.

가운데에 생겨난 너른 공간에 의자 두 개와 책상이 하나 놓였다.

마일로와 잭이 마주 앉았다.

“우선 규칙 확인부터. 사람은 총 세 명이고 순서는 상관없이 3명 모두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 맞지?”

“엄밀히 말하면 죽는 게 아니라 패배하는 거지만……. 뭐. 같은 말이겠지.”

“그래그래. 그리고 외부에서 개입하는 게 아니라면 어떤 수단이든, 어떤 무기든 상관없다. 맞지?”

“그게 코헨 다운 거니까.”

마일로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둘의 얼굴이 한 뼘 앞에서 대치했다.

마일로의 광기 어린 눈동자와 잭의 굳은 시선이 마주했다.

“좋아좋아. 네가 한 것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이야. 사실, 네가 이런 제안을 할 줄은 몰랐거든. 너는 언제나 뒤에서 구경하는 겁쟁이였잖아? 뭐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마일로의 도발에 잭은 코웃음 쳤다.

“됐고. 마무리하지?”

“쓸데없는 신경전은 필요없다 이건가. 좋아.”

둘은 상대의 찻잔에 차를 따라 준 뒤, 주저 없이 입속에 털어 넣었다.

손수건을 꺼내 입을 훔친 마일로가 외쳤다.

“여기 있는 모두 잘 들어!”

마일로의 목소리가 실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우린 방금, 코헨의 사내로서 약조를 맺었다! 이곳에서 누가 이기든 그 뜻을 따를 거야. 그러니, 너희들도 코헨의 사내라면 결과에 승복해라.”

지켜보던 조직원들이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옆에 있던 조직원에게 물었다.

“방금 차를 마신 게 무슨 의식 같은 거야?”

“아, 예. 코헨에서는 찻잔을 나누는 건 상징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서요…….”

“그렇단 말이지.”

나가 있던 잭이 되돌아와 부하 중 하나에게 물었다.

“토마스. 괜찮겠어?”

“맡겨만 주십시오.”

큰 체격이 돋보이는 조직의 넘버 3이자, 젊은 피.

토마스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조금 긴장한 잭이 토마스와 이마를 맞대었다.

“부탁한다. 네가 선봉인 만큼, 네 역할이 크다.”

“걱정 마십시오.”

선봉은 대장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다.

먼저 승리해 분위기를 휘어잡을 수도 있고, 후에 남아 있는 적이 초조하게 만들 수도 있다.

토마스는 긴장된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갔다.

동료들의 그런 토마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없이 무운을 빌어주었다.

“에덴. 너가 나가라.”

“네.”

마일로 쪽에서도 선봉이 나왔다.

체격이 큰 토마스보다도 머리가 한 뼘이나 큰 장정이었다.

둘은 서로 인사도 없이, 약병의 마개를 땄다.

꿀꺽.

그 안에 든 약물을 삼키자, 둘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보라색. 바로 3단계부터 시작하는구나.’

쿵쿵.

둘의 심장 박동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누군가 커다란 북을 두드리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탕!

둘은 동시에 땅을 박찼다.

서로에 대한 인사도. 시합을 알리는 종소리도 없이 그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건 스포츠 시합도. 귀족 자제들의 대련도 아니니까.

둘은 모두 권사였다.

토마스는 너클을. 에덴은 주먹을 전부 감싸는 건틀릿이었다.

팡!

서로의 주먹이 서로의 얼굴을 강타했다.

너클과 건틀릿을 낀 만큼, 주먹이라 해도 둔기로 후려친 것만큼의 충격이 있을 터.

하지만 둘은 얻어맞은 뒤에도 계속해서 서로에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팡! 팡! 팡!

이제껏 본 적 없는 호쾌한 전투였다.

서로가 서로의 스타일을 너무나 잘 아는 만큼 눈치 보거나 간을 보는 것도 없었다.

도핑으로 인해 단단해진 신체를 믿고, 그간 단련해왔던 대로 그저 주먹과 발차기를 무자비하게 날렸다.

지켜보던 관중들도 감탄을 흘렸다.

“대단한 싸움이야.”

“둘 다 엄청나군.”

“피가 끓어 올라. 이래야 코헨의 사내지.”

공수의 교환 자체는 활발하지만, 치명타는 없었다.

자연히 싸움이 길어지고 체력전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그 점을 염두에 뒀는지, 노련한 싸움꾼인 토마스는 가드를 올리고 큰 동작을 최소화하려 했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때.

에덴의 두 눈을 번뜩였다.

급작스럽게 온 힘을 쏟아 폭발적으로 달려든 에덴이 손가락을 폈다.

“무슨……!”

평범한 건틀릿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손바닥 부분에 낚시 같이 생긴 미늘이 절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토마스는 바로 대응하려 했지만, 에덴이 한 호흡 더 빨랐다.

에덴이 가드를 위해 올려진 토마스의 양팔을 붙잡았다.

콱!

날카로운 미늘이 토마스의 피부를 뚫었다.

약으로도 미처 줄이지 못한 고통이 팔을 타고 흘렀다.

“끄아아악!”

에덴이 양팔을 쭉 펼치자, 토마스의 팔도 그에 딸려갔다.

누군가 외쳤다.

“도, 독인가?”

그 물음에 대해, 에덴이 흰 의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런 멋대가리 없는 짓은 안 해.”

토마스의 팔을 단단히 고정한 에덴이 그대로 한쪽 발을 뻗었다.

명치에 닿은 에덴의 발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제야 지켜보던 이들은 에덴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잭이 다급히 외쳤다.

“토마스! 빨리 항복해!”

하지만 안타깝게도, 항복하기에는 젊은 토마스의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뿌드득.

에덴이 점점 힘을 강하게 주었다.

토마스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이미 에덴은 자세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에덴은 계속해서 힘을 줬고……. 맨손으로 에덴의 팔을 찢어버렸다.

퍽!

“끄아악!”

피가 사방에 튀었다.

양팔을 잃은 토마스가 바닥에 엎어졌다.

에덴은 토마스의 찢긴 팔을 든 채, 승리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에덴! 에덴!”

“다 죽여버려!”

완벽한 승리.

에덴은 토마스를 압도했고, 분위기까지 완전히 이쪽으로 끌어들였다.

선봉으로서 할 일을 다 한 셈이었다.

잭의 부하들이 토마스에게 달려가 응급처치를 했다.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토마스는 힘을 쥐어짜 잭에게 말했다.

“죄, 끄윽. 죄송합니다 형님.”

“괜찮다. 고생했다.”

잭은 침울한 얼굴로 답해주었다.

이안은 방금 있었던 싸움을 곰곰이 복기했다.

‘신체 스펙 자체는 둘이 비슷했어요. 하지만 싸움이 길어져서 체력 소모를 줄이려던 토마스와 달리, 저쪽은 오히려 그 타이밍에 찔러 들어왔죠.’

[성향의 차이라 해야 할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예. 저 건틀릿도 그렇고. 아마 이쪽에서 선봉으로 토마스가 나온다는 걸 예상한 모양이에요.’

에덴은 더 노련했고, 전략까지 토마스를 겨냥해 짜왔다.

이미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져 있던 것과 다름없었다.

이안이 잭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마 저쪽에서는 저 에덴이라는 놈이 다시 나올 거 같은데. 어느 정도 이쪽 전력을 예상하고 있는 것 같고.”

“그런 것 같더군. 원래라면 필을 내보내는 게 맞는데…….”

조직의 이인자인 필을 내보는 게 순서상으로는 옳다.

하지만 잭은 옆에서 있는 필을 힐끔 보았다.

앞에서의 패배가 워낙 잔인했는지, 필은 크게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두려워하거나.

“이쯤에서는 분위기를 바꿔야 해. 내가 나선다.”

“......괜찮겠어?”

“안 괜찮아도 해야지.”

잭이 걸어나가자 마일로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설마?”

“그 설마가 맞다.”

“몸이 달아오르셨나 보군.”

마일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가 내 부하한테 당해버리면, 네 면이 안 살 거 아니야? 그러니까 마지막은 내가 직접 해줄게.”

“......그말, 후회하게 해주지.”

약병의 도핑약을 단숨에 들이킨 잭이 주저 없이 달려들었다.

***

카가각.

단검과 단검이 교차하며 불티가 튀었다.

둘은 예상외로 호각의 싸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싸움이 아마도 오늘의 가장 중요한 싸움일 걸 알기에, 지켜보는 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오직 쇠 부딪히는 소리만이 실내에 울렸다.

칵! 카각!

거리를 벌리지도 않은 채, 몸을 딱 붙여 서로의 급소를 노리는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코헨의 사내들은 도무지 뒤로 물러날 줄 모르는 저돌적인 인간들이었다.

‘견제 일절 없이, 오로지 서로의 급소를 노리는 싸움이라니. 남자답다고 해야 할지 무식하다 해야 할지.’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둘이 호각으로 싸운다기보다는…….]

싸움을 지켜보던 이네스가 말을 흐렸다.

아무래도 이들은 싸움을 길게 끌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다.

짧은 공방 이후에 펼쳐지는 마일로의 찌르기에, 잭이 행동에 나섰다.

마치 배 쪽을 지키듯이 몸을 부자연스럽게 구부리는 모습.

이안이 한번 지적했었던 잭의 버릇이었다.

역시나 마일로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마일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계적인 동작으로 잭의 빈틈을 노렸다.

‘함정이다!’

이안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잭은 조금 허술한 부분이 있을지언정, 이미 한번 지적받은 버릇을 고치지 않을 정도로 멍청한 사내는 아니다.

예상했다는 듯. 다시 한번 허리를 비튼 잭이 단검을 뻗었다.

마일로의 칼끝이 향하는 건 잭의 허리. 잭의 칼끝이 향하는 건 마일로의 눈동자.

어느 쪽인 더 치명적일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명확했다.

‘자신의 단점을 역으로 미끼로 사용해, 상대를 끌어들인 건가. 허투루 조직의 수장을 맡은 게 아니었어.’

아마도 이건 잭이 반드시 성공시킬 거라는 마음을 가지고 갈고 닦은 비장의 한 수 였을 것이다.

아까 부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했던 말은 허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잭의 노림수가 성공한 듯 보였다.

잭이 팔을 뻗는 속도와 마일로가 다가오는 속도가 합쳐져. 도무지 마일로의 역량으로는 피할 틈이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보여진 모습대로라면 말이다.

탓!

“......!”

마일로가 양손의 단검을 던졌다.

팔을 뻗었고. 잭의 팔을 툭 쳤다.

약한 힘이었다. 하지만 궤적을 틀기에는 충분했다.

던진 단검 하나가 잭의 가슴에 박혔고.

하나는 공중에서 역수로 잡아 그대로 잭의 가슴을 갈랐다.

푸욱.

위에서 아래로.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동작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모두가 경악했고 특히 잭의 충격이 제일 컸다.

“이 정도였다고……!”

마치 마일로는 갑자기 빨라지고 실력이 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그저……. 처음부터 봐주고 있었을 뿐이다.

“적당히 체면 생각해서 놀아주려 했더니. 대머리, 너도 성장이라는 걸 하는구나. 잘못하면 당할 뻔했어.”

그렇게 말한 마일로의 얼굴에는 위기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잭이 바닥에 허물어졌다.

피 웅덩이가 빠르게 퍼졌다.

마일로가 이죽거렸다.

“그거. 수술하면 어쩌면 살 수도 있을걸. 근데, 빨리 게 소독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내 아버지처럼 상처가 썩어서 죽을 테니까.”

“끄, 끄윽.”

“뭐. 그렇게 살아난다고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마일로와 그 부하들이 낄낄거렸다.

이미 승패는 났다.

마일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단 한 명 빼고.

“아직 안 끝났잖아. 우리 쪽 한 명 남은 거 아니야?”

침울한 잭의 부하들을 제치고, 이안이 앞으로 나섰다.

“......뭐?”

마일로가 눈매를 좁혔다.

“이런 싸움에 마저, 외부의 손을 빌리다는 거냐? 대머리. 그 정도 지조도 없어?”

들것에 실린 잭도 수긍했다.

“끄, 이건. 이건 우리 싸움이다. 이안, 마음은 고맙지만…….”

이안이 태평스럽게 대꾸했다.

“다들 나보고 형님이라 부르더만, 지금은 임시 식구 아니었어? 식구가 왜 외부인이야.”

그 말에 잭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대체 왜…….”

“그냥. 갚아줄 원한도 있고.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머릿속에 잠깐, 어수룩하게 웃던 소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대충 그 이유를 짐작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잭이 물었다.

“하, 할 수 있겠어? 저쪽은 세명 다 멀쩡하고, 넌 한 명인데.”

이안은 상대 쪽을 곰곰이 쳐다보았다.

털이 쭈뼛 선다거나 본능이 경고를 울리는 일은 없었다.

그게 의미하는 건 단순했다.

이안이 검을 뽑으며 답했다.

“까짓거, 한번 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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