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잠입
어두운 밤.
이안과 잭이 조용히 거리에 나섰다.
다른 호위는 없었다.
은밀할 필요가 있는 작업인만큼, 이안이 감옥에 잠입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오직 잭뿐이었다.
아직 부상의 여파가 남은 잭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미, 미안하지만 조금만 천천히 가지.”
이안의 발걸음이 잭에 맞춰 느려졌다.
잠시 숨을 고른 잭이 이안을 흘끗 보며 말했다.
“돌이켜보면 네가 우리랑 함께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나. 도박장에 다짜고짜 쳐들어왔었지.”
“그렇게 안 했으면, 얼굴도 못 볼 거 같더라고.”
“그때는 웬 미친놈인가 싶었는데…… 아. 지금도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긴 해.”
“…….”
잭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
“이제 그 소리로 귀에 딱지 앉을 거 같으니까. 그만해.”
“그래. 어쩌다 보니 얘기가 셌군. 물어보고 싶은 건…… 일을 마치고 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나?”
이안은 말없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잭이 이어 말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거지만, 이곳이고 저곳이고 인력 부족이야. 마일로 그놈 쪽 세력은 특히 마일로 없이는 뭐하나 돌아가질 않더군.”
“생긴 거 답지 않게 약한 소리하네.”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아니야. 이안.”
흐릿한 달빛에 비치는 잭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했다.
“혼자서는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나는 여섯 가문이 힘을 합쳐 통치했던 과거처럼,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을 거다.”
“외부인인 내가 껴도 되고?”
“하. 이제 너를 외부인이라 생각할 놈은 아무도 없어. 적어도 우리 조직에서는.”
잭이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만큼 잭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본인은 멀쩡하다고 하지만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안이 놀리듯이 말했다.
“사람이 죽을 위기를 한번 겪으니 마음이 약해졌네.”
농담에도 잭은 지극히 진지했다.
“여섯 가문의 시조도 원래는 뒷골목에서 같이 뛰어놀던 코흘리개 여섯이었다지. 나는 그때의 코헨으로 되돌릴 거다. 네가 힘을 얹어주면, 그것만큼 든든한 것도 없겠군.”
조직을 함께 운영하자니, 쉽지 않은 제안이었을 터다.
하지만 이안의 대답은 단호했다.
“미안하지만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 그거 아쉽군. 그래도 조금쯤은 고민해볼 거라 생각했는데.”
이안의 태도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다는 걸 깨달은 잭은 미련 없이 포기했다.
“뭐. 너도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거겠지.”
잭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는 감옥에 잠입하는 문제다. 네가 원하는 구역에 가는 것까지는 좋아도 문제는 어떻게 탈출 하나야. 내가 알기로 그 감옥에서 살아서 나온 놈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시체가 아니면 나올 수 없다.
악명 높은 코헨의 지하 감옥에 대해서는 소문으로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잭이 무얼 걱정하는지도 잘 알았다.
이안이 가볍게 말했다.
“뭐. 다 생각이 있어.”
“…… 도움이 필요해?”
“도와줄 방법은 있고?”
이안의 반문에 잭이 입을 다물었다.
아만이 기거하는 시청과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 지하 감옥은 잭조차 건드리기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게다가 이제 잭은 코헨에 있는 모든 뒷조직의 수장이다.
그의 작은 행동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안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조직 운영이나 잘 해. 내 짐이나 잘 맡아놓고.”
“하지만 빚이…….”
“아. 도착했다.”
어두운 거리에 횃불 하나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 하나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을 발견한 사내가 다급히 달려왔다.
“왜.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내가 너희랑 접선하는 걸 들키기라도 했다가는…….”
“알았어 친구. 일단 이것부터 받아.”
잭이 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사내에게 건넸다.
사내는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입을 다물었다.
“열어봐. 다 금화니까.”
“…… 진짜군. 진짜였어.”
“그걸로 딸래미 약이나 사줘. 레이브 공방으로 가면 값을 조금 깎아줄 거야.”
딸이라는 말에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사내가 잭에게 자신의 사정을 밝힌 적은 없었다.
이건 잭의 협박이었다. 배신했다가는 가족이 위험하다는 협박.
잭이 사내를 가리켰다.
“이쪽은 감옥에서 간수로 일하고 있는 베이커. 이쪽은…….”
“이름은 몰라도 돼. 어차피 저 아래 들어가면 이름 같은 건 무의미하니까.”
베이커가 이안의 위아래를 훑었다.
“검은 머리…… 구태여 감옥에 들어온다는 미친놈이 누굴까 했더니. 생긴 걸 보면 납득이 가는군.”
이안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고, 그 반응이 마음에 안 드는지 베이커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저 아래 들어갈 때까지다. 혹시라도 저 안에서 네 뒤를 봐주거나 할 거라고 착각하지는 마라.”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어.”
“…… 저 아래 가고서도 그런 말버릇으로 간수한테 얘기하면, 죽을 때까지 얻어맞을 거다. 어쨌든 서둘러 옷부터 갈아입어.”
베이커가 허름하고 해진 옷을 건네주었다.
등 뒤에 숫자 ‘1736’이 적혀 있었다.
“저 아래에 내려가면 너는 일칠삼육이다. 이제부터 익숙해 져야 할 거야.”
잭이 끼어들었다.
“아. 그리고 저번에 얘기했던 대로, 이 친구가 가지고 들어가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이 정도 크기의 주머닌데. 어때?”
이안이 요술주머니를 꺼내 보이자 베이커가 얼굴을 찡그렸다.
“주머니? 뭐 약이라도 반입할 생각이야? 좀 곤란한데…….”
잭이 말없이 베이커의 손 위에 돈자루를 하나 더 올렸다.
베이커가 헛기침하며 슬쩍 자루를 집어넣었다.
“흠흠. 잘 숨긴다면, 내가 우연히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러면 서두르자고. 이제는 진짜 시간이 없으니까.”
베이커가 앞장서서 걸어갔고. 이안이 잭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언제 나올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내 짐 좀 잘 부탁해.”
“…… 맡겨둬라.”
이안이 베이커의 뒤에 따라붙었다.
잭은 그런 이안이 멀어져가는 걸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도와줄 생각 말고 내 일에나 신경 쓰라 했나.’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잭은 그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
“들어가!”
꽈당.
베이커는 손과 발이 묶인 이안을 일부러 거세게 밀쳐 넣었다.
그리고 철창문을 거세게 닫아 버렸다.
철창 안에는 이미 잡혀 온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데, 베이커를 보고 다급하게 말했다.
“가, 간수님. 뭔가 잘못된 거 같습니다! 저는 아무 죄도 안 지었는데, 끌려왔습니다요!”
“저, 저도입니다! 저는 농사를 짓다가 갑자기 도적떼한테 끌려온 겁니다!”
베이커가 몽둥이를 꺼내 쇠창살을 깡깡 두드렸다.
“시끄러워. 니들이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여기 들어온 거지. 이빨 다 깨지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있어.”
아까 어둠 속에서 눈치를 살피며 불안에 떨던 베이커와는 전혀 달랐다.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협박을 내뱉는 그는 이미 훌륭한 한 사람의 간수였다.
하지만 잡혀 온 사람들도 필사적이었다.
“다시 한번 알아 봐주십시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합니다! 도와만 주신다면 사례도 두둑히 하겠습니다!”
코헨의 지하 감옥에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이들도 잘 알았다.
목숨이 걸린 만큼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해서는 안 될 짓을 해 버렸다.
쇠창살 밖으로 손을 내밀어 베이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것이다.
베이커가 화들짝 놀라 발을 뺐다.
그러고는 표정을 악귀처럼 일그러트렸다.
“…… 말로 해서는 안 되는구나.”
베이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다시 돌아왔다.
손에는 기묘하게 생긴 채찍을 들고 있었다.
한눈에 불그스름한 게, 사람의 피를 잔뜩 머금은 것처럼 보였다.
철컥.
철창이 열리자, 눈치 빠른 사람들은 채찍을 보고 뒤로 물러났다.
베이커는 성큼 걸어가 감히 자기 몸에 손을 댄 죄수의 뒷통수를 들어 올렸다.
“어어?”
잘 이해가 안 되는 광경이었다.
성인을 한 손으로 가뿐히 들어 올리다니. 게다가 베이커의 몸은 그렇게 좋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그제야 이안은 베이커의 팔목에 걸려 있는 팔찌를 알아챘다.
‘아티팩트인가…….’
철컥.
베이커는 사내를 질질 끌고 나가며 다시 철창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뒤.
“끄아아아악!”
자지러지는 비명이 건물을 울렸다.
비명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사내는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애원했지만 베이커는 멈추지 않았다.
심약한 사람들은 귀를 막고 몸을 떨었다.
이네스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세상에. 저게 아까 자기 딸을 걱정하던 그 사람이 맞는 건가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거니까요.’
이어지던 비명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사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뻔했다.
베이커가 돌아왔다.
얼굴과 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또 불만 있는 사람?”
이번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시선을 피하기 바쁠 뿐.
그 반응에 만족했는지 베이커는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 뒤로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그저 신에게 기도할 뿐이었다.
새벽.
멍청해 보이는 간수 하나가 찾아왔다.
“교대할 시간이다 베이커. 그만 돌아가라고.”
“이번에는 내가 죄수 이송까지 다 할게.”
“엉?”
“저번에 네가 한번 나 대신 서줬잖아. 빚은 갚아야지.”
“응? 그랬었나? 아무튼 나야 좋지. 새벽에 깬 김에 술이나 마시러 가야겠어. 아. 그나저나 오늘도 본보기로 한 명 죽였나?”
베이커는 말없이 피 묻은 채찍을 들어 올렸다.
간수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쩝.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다음에 해야겠군. 아무튼 부탁한다고.”
그리고 다시 침묵.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던 베이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다. 다 나와.”
사람들의 눈에 안대가 씌워졌다. 발에는 사슬이 채워지고, 손은 밧줄 하나로 모두를 묶어 마치 줄에 꿰인 굴비처럼 만들어 버렸다.
베이커가 선두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끌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 그렇다면…….’
이안은 손안에 호크를 소환했다.
들키지 않도록 광량을 최대한 낮추었다.
주위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넓은 시청 건물. 그 지하로 통하는 두꺼운 강철 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을 지키던 간수들이 베이커의 얼굴을 알아보고 문을 열었다.
이안이 이네스에게 설명했다.
‘하루에 한 번. 이 시간에만 딱 한 번 열리는 쇠문이에요.’
쇠문을 통과해 지하로 계단을 한층 내려가자, 도르래와 밧줄로 연결된 승강기가 보였다.
이안과 죄수들은 승강기에 올라탔다.
쿠궁.
베이커가 기구를 조작하자 로프가 움직이고, 승강기가 덜컹거리며 하강했다.
눈이 안대로 가려진 죄수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승강기. 유일하게 지상으로 갈 수 있는 통로죠. 탈옥수가 나오면 곧장 승강기 운행을 멈출 거예요.’
[이 정도의 보안이면 아무도 탈옥을 하지 못했던 게 이해되는군요.]
승강기가 가파른 절벽을 따라 내려갔다.
지하 공간은 예상보다도 더 크고, 깊었다.
가파른 절벽이 길게 이어졌는데, 이런 공간을 대체 어떻게 지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절벽의 중간중간에는 망루같이 생긴 감시탑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간수들은 이쪽을 향해 날카롭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덜컹.
마침내 승강기가 멈췄다.
내려선 곳에는 여러 개의 통로가 있었는데,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간수들이 다가와 죄수들을 인솔했다.
베이커가 이안의 목덜미를 잡으며 다른 간수에게 말했다.
“이놈은 내가 넣을게.”
“어? 3구역이었나? 그렇게 해.”
베이커는 이안을 끌고 가며 작게 속삭였다.
“약속은 지켰어.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알지?”
“그래.”
짧게 대답한 이안은 묵묵히 걸었다.
게임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 지하 감옥은 꽤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어딘가 현대적이고 최신의 건축 양식.
대륙의 다른 지역의 건물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느낌이었다.
‘여기가 고대 제국에서 만든 유적이었던가?’
그런 잡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죄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공간이 나왔다.
각 철창 속에는 죄수들이 여럿 갇혀 있었는데, 다들 음울한 얼굴로 말없이 이안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 얼굴에는 어떠한 저항 의지도. 희망도 없어 보였다.
베이커가 비어 있는 철창을 열은 뒤 턱짓했다.
“들어가. 그리고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야. 알겠지?”
“음? 우리가 알던 사인가? 나는 평범한 죄수일 뿐인데.”
“눈치는 빠르군. 문제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살아.”
끼익.
철창의 문이 닫혔다.
감옥에서의 생활이 진정으로 시작된 것이다.
“한동안 또 고생하겠네요.”
이안은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이네스에게 한 말이었다.
하지만 대답은 전혀 다른 곳에서 돌아왔다.
“그래. 고생하겠지. 그래서 머리 검은 친구. 자네는 누구의 명을 듣고 나를 죽이러 온 건가?”
어둠 속에 고요히 앉아 있던 한 노인이 그렇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