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잠 못 이루는 밤
어찌 보면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었다.
감옥에는 정해진 일과가 있고, 그 일과에서 벗어나는 건 간수들로서는 큰 부담이었다.
게다가 이안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일한다고? 미친 건가? 아니면 다른 꿍꿍이라도?’
다른 꿍꿍이라 해봤자 탈옥이나 도주 시도 정도.
지금껏 이곳에서도 탈옥을 시도하는 이들이 번번이 있어 왔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때로는 놀라운 용기를 발휘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모두 무산되었다.
대부분의 탈옥자는 승강기의 근처도 가지 못하고 사살당했다.
‘아니면 도주?’
이 또한 흔치는 않아도 가끔 벌어지는 일이었다.
이 유적을 파다 보면 가끔 복잡한 구조의 미로나 던전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고된 작업이 싫은 죄수들이 그 안으로 도망쳐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죄수들 대부분은 유적의 괴수나 함정에 걸려 목숨을 잃거나, 식량이 떨어져 되돌아오곤 했다.
간수는 생각했다.
‘결국 둘 다 상관없다. 탈옥은 불가능하고, 도주는 의미가 없어. 게다가 작업장은 승강기와는 정반대에 위치 해있어. 뭔가를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거지.’
우선 결론은 나왔다. 이안의 부탁을 들어주는 건 위험성이 없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이안의 의도다.
‘대체 왜? 진짜로 일이 좋다고?’
간수가 혼란스러워하자 이안이 소근댔다.
“유물을 더 파면,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죄수들과 더 넉넉히 먹을 수 있구요.”
“아.”
그제야 간수는 납득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였군. 일칠삼육.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실로 이타적이구나. 다른 죄수들과는 달라. 개인적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헤헤. 그렇습니까?”
이안의 아부하는 듯한 웃음에 간수도 너그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알겠다. 내가 따로 시간을 내서 뒤에서 지켜봐 주겠다. 마음껏 작업하도록.”
“감사합니다!”
“그리고…… 백사심삼. 그러니까 펄먼에 대해서 혹시 아나?”
이안이 잠깐 눈치를 보다 얼른 대답했다.
“아, 예. 들어는 봤습니다.”
“너도 만약, 충분한 실적을 낸다면 그놈처럼 발목의 족쇄를 풀어주지. 그러면 더 편하게 작업이 가능하지 않겠나?”
이안을 이곳에 불러들인 간수, 베이커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제안이다.
“이야, 감사합니다!”
이안은 감사를 표하면서 습관적으로 간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표정을 찌푸린 간수가 그대로 이안을 힘껏 밀쳤다.
바닥에 부딪혀 쓰러진 이안의 머리를 붙잡아 들어올리며, 간수가 말했다.
“이봐 일칠삼육. 내가 널 좋아하긴 하지만, 우리들은 친구가 아냐. 네가 그걸 잊고 있는 것 같군.”
간수는 이안을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
그 눈동자에 들어 있던 호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랫것을 쳐다보는 듯한 냉정과 경멸만이 남았다.
이안은 말을 잃었다.
‘…….’
[이안. 지금은 참아야 해요.]
‘저를 뭘로 보고. 그 정도는 알아요. 그냥 누가 제 머리 붙잡고 있던 건 오랜만이라. 조금 자존심이 상하네요.’
이안이 입을 열었다.
“헤헤. 제가 아무래도 실수를 해버린 것 같군요.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너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는 거다. 다른 죄수였다면 이미 손이 잘렸어.”
간수가 고개를 홱 돌려 걸어나갔다.
그런 간수의 등에 이안이 말했다.
“그나저나 여태 봬오면서 간수님의 성함도 몰랐었네요? 꼭 알아두고 싶은데.”
“……타놀. 타놀이다.”
“헤헤. 꼭 기억해두겠습니다.”
간수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안은 그 간수의 등을 차갑게 노려보다, 품 안을 뒤졌다.
자그마한 주머니가 손에 걸렸다.
이안은 성검이 들어있는 요술 주머니를 한동안 만지작거렸다.
***
“자자. 이쪽을 좀 더 파주세요!”
“옙!”
“아! 오른쪽 두 번째 통로는 그만 파시고, 왼쪽 세 번째 통로로 파주세요!”
그날 이후, 3구역의 죄수들은 하나가 되어 이안의 지시에 따라 삽을 펐다.
이네스의 감각이 구체적이지 않고 대략적인 만큼, 비슷한 방향으로 여러 굴을 파는 방식으로 해야 했다.
이안 혼자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죄수들의 손을 빌려야 했고, 성과는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안과 자발적인 지원자 몇 명은 밤늦게까지 작업을 진행하니, 그 진척 속도가 빠른 건 당연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곧 있으면 던전이 드러나겠지.’
순조롭다.
던전이 있는 쪽이라 그런지 유물의 발굴량도 눈에 띄게 늘었다.
간수들도 이번 달 치 할당량을 맞출 수 있어 크게 만족하는 눈치.
그 탓인지 펄먼 패거리의 간섭도 일절 없었다.
죄수들은 점점 더 이안을 따랐는데, 실적이 좋자 간수들이 점점 3구역을 편애하고.
죄수들에 대한 대우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잠시 동안 이곳이 지하 감옥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잊고.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바쁜 일과를 마치고, 밤늦게까지 작업을 마치고 겨우 돌아온 이안에게 레이먼이 말을 걸었다.
“오늘도 바쁘구만.”
“혹시 제가 깨운 겁니까?”
“원래 일어나 있었으니 걱정하지 말게. 늙으면 잠이 줄어드는 법이라네.”
이안은 레이먼의 앞에 조용히 앉았다.
레이먼은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았다.
들을 준비가 된 이안을 보고 레이먼이 운을 띄웠다.
“자네가 왜 이 지옥에 굳이 들어왔는지 궁금했었는데, 요 근래 자네의 행보를 보고 대충 갈피가 잡혔네. 이 거대한 유적에서 무언가 찾고 있는 게 있던 거야. 안 그런가? 그래서 죄수들을 인솔해 원하는 곳을 파게 하는 거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거야. 맞나?”
“뭐. 비슷합니다.”
숨겨 무엇하랴.
레이먼은 이안의 감옥 생활부터 그를 도우며 이것저것 알려주던 사람이었다.
이안의 행동을 보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잠시 말없이 고민하던 레이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한껏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나는 두렵네. 어쩌면 자네가 이곳에서 찾으려는 게, 결코 세상 밖으로 나와서는 안되는 물건일수도 있으니까. 그게 두려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르신.”
“때로는 숨겨져 있어야 하는 물건이 있는 법이고, 감춰야 하는 진실도 있는 법이네. 그런 것들이 세상의 빛을 본다면…… 그 주위 모든 것들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어.”
레이먼의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눈동자는 갈피를 못 잡는 게 무언가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듯 했다.
이안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그건 영감님 이야기입니까?”
레이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자네는 궁금해했었지. 왜 우리 가문이 전부 이곳에 수감되었는 지를.”
한때 코헨을 다스리던 여섯 가문 중 하나였던 제타 가문.
제타 가문은 다른 가문들의 만장일치로 추방당했다.
가문 간에 균형이 깨져 아만이 주도권을 잡게 되는 대사건이기도 했다.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는 듯, 레이먼이 힘겹게 말했다.
“전부 내 탓이네. 내가 알아서는 안 될 진실을 알아버린 탓이야…….”
“들려주세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겁니까?”
“……제타는 학자 가문이야. 나는 어렸을 적부터 물리학과 연금술, 수학, 철학, 그리고 신학에 대해 공부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바로 천문학이었어.”
레이먼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그곳에 마치 별자리가 펼쳐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어느 날 생각했네. 저 하늘의 별들은 모두 둥그런데, 어째서 우리가 사는 이 별만은 평평할까…… 하고.”
이 세계에서 일반적인 믿음은 땅은 평평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떠한지는 이안도 모른다.
지구처럼 둥글 수도 있고, 판타지 세계니까 진짜로 평평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주제에 이안은 레이먼의 설명을 조용히 들었다.
“나는 연구했네. 수많은 책을 탐독했고, 역사서도 훑었어. 과거의 자연 현상들을 보면 아무리 고민해도 내 생각이 옳았네. 우리 사는 이 별은 구체여야 해. 교단의 말과는 달리!”
교단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 레이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눈빛에는 학자 특유의 탐구심과 광기에 가까운 번뜩임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네! 이 별이 태양과 달 사이에 온 그날! 그 그림자 모양으로 이 별의 모양을 알 수 있었지. 어땠을 거 같나. 평평했을까? 아니면 원형이었을까?”
이안은 잠시 고민했다.
그의 지식으로 생각했을 때, 별은 구체 모양이어야 맞았다.
그게 이안이 가진 상식이었다.
“음, 둥그렇지 않을까요?”
“하하하! 자네도 특이한 사람이군. 감히 교단의 주장을 부정하다니, 적어도 신실한 교인은 아닐 거야 그치?”
“그런 셈이죠.”
“하지만 틀렸네! 둘 다 아니었어!”
“……네?”
목소리를 높이던 레이먼이 이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원도 아니고 평평하지도 않은. 이곳저곳이 기묘하게 찌그러진, 타원형이라고 부르기도 미묘한 형태였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찌그러진 타원형이라니.
그런 의문에 대해 레이먼이 설명했다.
“궁금했네. 왜 우리 별이 이런 모양인지. 그러다 알아챘네. 원래 이 별은 원형이었어!”
“아, 예.”
“하지만 이 땅이 평평하다는 믿음이. 그 믿음이 모이고 모여 점점 힘을 이루고…… 이 땅을 변형시킨거네!”
믿음이 힘을 지니는 세계다.
이 거대한 별마저도 그 법칙에서는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레이먼이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맙소사, 교단이 거짓을 고하고 있었어! 잘못된 믿음이, 거짓이 세상을 좀 먹고 있네! 진실을 먹어치워, 오히려 그 자신이 진실이 되어가고 있는 거야!”
“그것참…… 충격적이네요.”
“충격적이지. 믿음이 이 정도로 강한 힘을 발휘하다니. 나는 이런 일들이 또 있나 찾아다녔네. 그리고 비슷한 걸 한가지 찾아내었지.”
레이먼은 눈을 감고 읊조리듯 말했다.
“평민은 귀족보다 열등하다. 마법과 신비는 오로지 귀족의 전유물이다. 오로지 제국과 그를 따르는 왕국들에만 있는 믿음이지.”
레이먼은 분노했다.
“처음에는 거짓이었겠지만 귀족들이 퍼트린 그 간악한 소문에 힘이 붙고. 이제는 완전히 상식이 되어버렸네. 거짓된 믿음이 오히려 우리 평민들을 하찮게 태어나게 한 거야! 난! 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네……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
코헨은 자유의 도시다.
이곳에서만큼은 평민들은 차별 없이 생활할 수 있다.
그렇기에 레이먼은 믿었다. 동료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이리라 믿었다.
“난 평민들을 계몽시켜야 한다 생각했네. 귀족과 평민. 지배자와 노예. 난 이 저주받을 굴레를 끊어내야 한다 믿었지. 하지만 다른 가문들은…… 생각이 달랐어.”
―레이먼 제타. 이 사실을 또 누구에게 말했지?
―내 핏줄들. 그리고 자네들이 전부네.
―그렇다면 건의를 하지. 제타 가문을 지배 가문에서 배제하고, 레이먼 제타와 그 가솔들을 전부 감옥에 수감하는 게 어떻나. 동의하는 사람은 손을 들게.
올라가는 다섯 개의 손.
젊은 시절의 레이먼이 당황했다.
―자, 잠깐! 자네들! 대체 무슨 짓인가!
―제타. 당신의 사상은 너무나 위험합니다. 그런 사상을 펼치고 다닌다면 온 대륙을 적으로 돌려야 합니다.
―교단과 왕국. 그리고 제국들을 상대하라니. 사흘도 안 돼 코헨이 잿더미가 되겠군.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코헨을 지켜야 합니다. 레이먼. 이해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코헨을 받치는 기둥 중 하나가 사라졌다.
레이먼이 다시 눈을 떴다.
“내 호기심이. 이 저주받을 진실이 나의 핏줄을 모두 죽였지. 나는 매일 밤 그날을 회상하네. 그때 좀 더 신중했다면. 차라리 모른 척 했더라면. 내 아내. 내 아들. 내 가족들은 살 수 있었을까.”
레이먼이 자신의 경험으로 얻은 교훈을 토해냈다.
“세상에는 나와서는 안 될 것들이 있는 법이네.”
“…….”
“이 지하감옥은 멸망한 제국의 유적이네.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곳으로 보이네. 윌리엄 아만은 이곳을 파내 전력을 증강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반대야. 하나의 제국이 멸망한 자리네. 그 깊숙한 곳에 대체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두렵네.”
레이먼이 이안의 손을 양손으로 덥석 잡았다.
“그러니 이렇게 부탁하겠네. 무얼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네는 능력이 있으니 결국에는 찾아내겠지. 제발 그만둬주게. 나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 주게.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늙은이의 부탁이야.”
그 어조가 간절하다.
하지만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다.
고민하던 이안이 레이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걱정 마십시오. 어르신.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자네……!”
“그리고 아까 말 하셨죠? 잘못된 믿음이 세상을 좀 먹고 있다고.”
이안은 머리카락 하나를 툭 끊어서 레이먼에게 건네주었다.
이 지하 감옥보다도 더 새까만 색깔.
레이먼이 눈을 부릅떴다.
“그래! 맞아! 검은 눈에 검은 머리! 하지만 어째서 그 능력은…….”
“제가 여러모로 상식을 벗어난 사람이라서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영감님이 우려하는 그런 상황은 없을 겁니다.”
“…….”
“그리고 어르신의 연구와 지식이 큰 도움이 될 때가 분명 있을 겁니다. 절대 쓸모없는 게 아니지요.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아 주세요.”
레이먼이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듯 말을 토해냈다.
“나는 감옥에서 남은 여생을 썩을 일만 남은 늙은이네. 하지만 말만으로도 고맙네.”
이안의 확신하는 태도에 레이먼도 설득이 불가능하다 생각했는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그 손은 여전히 미약하게 떨렸는데, 죽어간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했다.
[자유의 도시에서, 그 자유에 대한 대가로 모든 걸 잃어버린 인간이라…….]
입맛이 썼지만, 위로가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이안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젖어 들었다.
그렇게 잠 못 이루는 밤이 지나가고, 다음 날.
드디어 던전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