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고인물로 살아남기-165화 (166/222)

165. 대수림(5)

우마딜로.

스토리 후반부에나 만날 수 있는 캐릭터로 숲의 종족들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재능을 자랑하는 인재.

힘이면 힘.

싸움이면 싸움.

자연의 힘조차 빼어나게 다루는 그는 ‘만능’이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다.

그런 그가 한쪽 무릎을 품에 끌어 앉아, 기다란 막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뻐끔뻐끔 피워내고 있었다.

“이름이 뭐지?”

“이안.”

우마딜로의 자연스러운 반말에 이안도 짧게 답했다.

“이안. 이안. 이안.”

이름을 입에서 몇 번 굴려본 우마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느껴지는 좋은 이름이다.”

“이름 칭찬은 처음 들어보는데. 우마딜로라는 이름도 어…… 독특하네.”

이안의 어색한 대답을 깔끔히 무시한 우마딜로가 말했다.

“아버지를 구해줬더군.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겠다.”

그는 방 한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는 노인을 가리켰다. 노인은 멍한 얼굴로 코를 후비고 있었다.

“집안에 얌전히 있으라고 해도 도저히 들어 먹지를 않더군.”

“전사보고 얌전히 있으라니! 그렇게 말하는 너는 대체 누구냐!”

“우마딜로. 아버지의 아들이다.”

“뭐? 나한테 아들이 있었다고?”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노인은 이내 멍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코를 후볐다.

우마딜로는 별 표정 변화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시간의 저주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다. 나무든, 바위든, 전사든.”

숲의 종족들은 우직하고 굳센 경향이 있다. 마치 대수림의 거목들처럼.

그런 딱딱함은 숲의 종족들을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우마딜로의 회한 어린 목소리에는 인간적인 슬픔이 짙게 배 있었다.

담배 연기를 뱉어낸 우마딜로가 이안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보다시피 숲의 상태가 좋지 않아, 찾아오기 힘들었을 텐데.”

이안은 우선 라울에 대해 말했다.

“우리 일행 중에 아들이 병에 걸린 사람이 있어. 너희들이 가진 자연의 힘으로밖에 치료받지 못하는 상태야.”

“그자를 치료해달라는 거군.”

“그래.”

“어려울 거 없는 일이다. 일족의 치료사를 보내주겠다.”

우마딜로는 흔쾌히 승낙했다.

적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시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 모습에 속으로 감탄하던 이안에게 우마딜로가 말했다.

“하지만 그게 본 목적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이안. 숲에 방문한 이유가 뭐지?”

이안은 속으로 적절한 단어를 고르다, 이내 대답 대신 성검을 뽑았다.

우마딜로는 차분한 눈으로 검을 쳐다보았다.

이안이 물었다.

“이 검이 뭔지 알아보겠어?”

“좋은 검이다. 언뜻 투박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심상치 않은 힘이 느껴진다. 이름이 뭐지?”

“성검.”

우마딜로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성검의 검신을 유심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명불허전이다.”

“별로 안 놀라네?”

“악마에게 맞설 성검의 주인. 머지않아 찾아올 거라 예상했다. 악마를 상대하는 결사대에는 언제나 우리들이 있었으니.”

마법사, 사제, 황족, 숲의 종족, 그리고 성검을 쥔 영웅.

긴 역사 동안 수차례나 이어진 악마와의 싸움에서, 결사대는 언제나 이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말이다.

우마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영웅…….”

“그냥 이안이라 불러.”

“이안. 혹시 네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나 때문인가?”

“그래. 결사대에는 네가 필요해.”

우마딜로는 담배를 다시 한 모금 머금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이안은 그 갈등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만큼 명예로운 자리이고, 숲의 종족들은 용맹하며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미안하다.”

“……뭐?”

순간 잘 못 들었다고 생각한 이안이 되물었다.

하지만 우마딜로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우리들은 바깥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결사대든. 악마든. 우리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거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게임에서도 가장 동료로 영입하기 쉬웠던 게 바로 우마딜로였기 때문이다.

이안이 황급히 물었다.

“악마를 막아내는 데에 실패한다면 이 숲도 온전치 못할 거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마저 자연의 뜻인 거다. 너희들은 그걸 운명이라고 부르던가? 우리는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갈 거다.”

우마딜로는 그리 말하며 담뱃대를 내려놓았다.

차분한 표정에서는 이미 충분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결심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도.

말을 잃은 이안에게 우마딜로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 결사대는 다른 사람을 알아보도록 해라.”

이안이 더 설득해보려던 그때, 멍하니 앉아 있던 노인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잉? 결사대?”

노인의 주름진 얼굴이 기대감에 잔뜩 어려 있었다.

“너 결사대냐?”

“……?”

“그렇군. 또 한 번 세상이 위기에 빠지게 된 건가! 그렇다면 대수림 제일의 전사인 나, 카도를 찾아온 것일 테군.”

“아니…….”

“세상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나는 기꺼이 결사대에 들어가, 악과 맞서 싸우겠다!”

치매 노인이자, 부족의 족장. 카도가 의기충만한 모습으로 이안의 옆에 섰다.

그 모습을 보고 이안과 우마딜로, 모두 말을 잃어버렸다.

***

얘기를 마친 이안은 우마딜로의 집을 나섰다.

그런 이안의 뒤에 카도가 따라붙었다.

몇 번 떼어내려고 했지만, 도저히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치매면서 왜 이건 빨리 안 잊냐고.’

그렇다고 아픈 노인을 모질게 대하기도 뭐한 법이다.

이안은 한동안 카도를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안이 나오자 플로라와 스텔, 라울이 다가왔다.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진 건 라울이었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소?”

“치료사를 보내준다고 합니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으세요.”

긴장이 풀렸는지 라울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 고맙. 정말 고맙소.”

이안은 그런 라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보던 플로라는 이안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카도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할아버지는 왜 함께 온 거야?”

“아 그게.”

“오늘부터 결사대에 함께하게 된 카도다. 함께 악마를 상대로 힘내보도록 하자.”

이안이 설명하기도 전에 카도가 선수를 쳐 버렸다.

이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방금 그 유창한 설명은 뭐냐고. 정말 치매 맞는 거야?”

“아니아니. 이 노인이 우리 동료라고 진짜?”

“앞으로 잘 부탁한다!”

플로라가 다급히 걸어와 이안에게 소곤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진짜 동료야? 병이 있다며!”

“그럴 리가 있겠냐. 갑자기 결사대라는 말에 꽂혔는지, 저러고 다닌다.”

상황을 이해한 플로라가 카도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사이, 카도는 스텔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음! 사제인가? 어린 나이에 결사대라니, 대단하다.”

“……나 안 어려.”

무감정한 스텔조차 꺼림칙해 하는 느낌이었다.

그 사이, 뒤늦게 나온 우마딜로도 카도의 모습을 보며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어. 음. 미안하다.”

“네가 좀 말려주면 안 되냐?”

“아버지는 자기가 정한 일은 반드시 하는 성격이다. 내가 말려도 소용없다. 원한다면 강제로 잠들게 하겠다.”

다소 과격한 제안에 잠깐 갈등한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뭐. 금방 잊어버리겠지. 어차피 한동안 여기 남아 있을 생각이었고.”

“바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나? 남아서 나를 설득할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해결해야 할 거 아니야.”

이안은 마을 중앙에 모여, 시든 나무처럼 널브러져 있는 주민들을 가리켰다.

척 봐도 정상적이지는 못한 상태였다.

우마딜로가 완강하게 말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외부인에게 맡길 수는 없어. 마음만 받겠다.”

“너희들끼리 해결할 수는 있고?”

그 말에 우마딜로가 말을 잃었다.

이안의 말마따나 상황이 영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어차피 나도 득 보는 게 있어서 같이 싸워주려는 거니까, 별로 신경 쓰지 마.”

“득?”

“그런 게 있어.”

대수림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원흉. 그 원흉을 처리하면 성검 조각을 얻을 수 있다.

조각을 얻기 전까지, 이안은 대수림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 사이에 우마딜로를 설득할 수 있다면 더 좋고.’

갈등하던 우마딜로는 결국 이안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무 괴수를 단칼에 베어내는 실력자의 도움을 거절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이안이 물었다.

“일단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봐. 최대한 자세하게.”

잠시 고민하던 우마딜로는 하늘을 가리켰다.

“어느 날부터 해가 뜨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햇볕이 없으면 힘을 잃는다.”

공터의 크기에 맞춰 원형으로 뚫린 하늘에는 먹구름만이 잔뜩 껴있었다.

이안은 숲의 종족이 얼마나 빛에 민감한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용병일을 하던 나바혼도 빛을 쐬면 치유가 되었을 정도니까요.’

우마딜로가 계속 설명했다.

“여러 노력을 했다. 하지만 구름은 걷히지 않았다. 그리고 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피부에 검은 반점이 생겨나는 정도였다.

우마딜로나 주민들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검은 반점이 점점 퍼져나가고.

병자들의 성격이 점점 포악해져 가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 나무께 답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자 병자들이 갑자기 우릴 공격하기 시작했다. 설마 배신당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 뒤로 변절자들은 마을을 벗어나, 주민들이 어머니 나무에게 향하는 걸 집요하게 막아서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쪽에게 우세한 싸움이었지만, 점점 전황은 불리하게 변했다.

병은 계속해서 퍼져 어쩔 수 없이 전사들을 격리해야 했고, 적들은 이내 나무 괴수까지 전력으로서 부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나무 괴수의 정체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병이 진행된 끝에, 결국 괴수화에 이르렀다는 걸.”

“그래서 마을 분위기가 이 모양이었구만.”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숲의 종족들에게 죽음은 그리 두려운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병에 걸려 추악한 괴수가 된다는 건, 그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를 병을 두려워하며, 언제 다시 뜰지 모르는 태양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당신들은 해가 뜨지 않아서 병이 도는 거라고 생각하고, 이 문제를 해결할 해답을 그 어머니 나무란 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네?”

“그렇다.”

이안은 우마딜로의 말을 자기가 가진 지식과 곰곰이 대조해 보였다.

‘뭐. 결과적으로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나.’

그 어머니 나무에 가야 한다는 부분은 정답이었다.

단, 이 일의 모든 원흉이 그 어머니 나무지만…… 구태여 지금 말해봤자 좋은 반응은 얻기 힘들 것이다.

얘기를 마친 우마딜로는 마을 중앙 공터로 향했다.

그나마 먹구름을 뚫고 온 햇빛이 가장 잘 비치는 자리에는 부상병들이 신음하며 누워 있었다.

우마딜로는 부상병 하나하나의 상처를 살피며 안부를 물었다.

“몸은 좀 어떤가?”

“괜찮다.”

“상처는?”

“보이는 그대로다.”

딱딱한 어조에서도 걱정하는 마음과 안심시키려는 마음이 엿보였다.

개중에는 상태가 심각한 부상병들도 있었다.

변절자들이나 나무 괴수와 싸울 때 생겨난 상처들.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는 이들을 보며 우마딜로가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햇볕만 비췄다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상처인데…….”

우마딜로뿐만 아니라 다른 주민들마저 안타까워하던 그 순간.

어디선가 밝고 따뜻한 빛이 뿜어져 나와 병자들을 비추었다.

주민들은 놀란 얼굴로 일제히 빛의 발원지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면 되려나?”

“핍!”

그곳에 이안과 푸드덕거리는 호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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