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메타버스 코인재벌-1화 (1/200)

1화

【 프롤로그 】

12년 전, 2009년 인천 남운중학교 체육관 뒤편 공터.

"어디 더 지껄여 봐! 하하하하! 병신아, 뭐? 우리가 게임 속 캐릭터라고?"

같은 교복을 입었지만 덩치가 두 배는 큰 박영식은 이미 얼굴 여기저기가 터지고 퉁퉁 부은 허염환을 붙들고 소리쳤다.

"더 말해 봐, 이 병신 새끼야. 왜? 내 양말이 입에 너무 꽉 차서 말을 못 하겠어? 계속 씨불여 보라고, 이 씨X놈아. 누가 누굴 조종해?"

짝! 짜악!

박영식이 뺨을 때릴 때마다 허염환의 고개가 힘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그 눈은 여전히 박영식을 노려보고 있었고 피가 흐르는 입가에는 비웃는 듯한 미소마저 띄워져 있었다.

"하하하. 야, 이 병신 이거 맞으면서도 실실 쪼개는 거 봐라. 이거 완전 또라이야. 야, 아주 헛소리를 못 할 때까지 밟아버려."

박영식의 말에 네 명의 일당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두꺼운 축구 양말을 입에 물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허염환을 마구 걷어차기 시작했다.

그때, 키가 제법 크고 덩치가 다부진 학생이 체육관 뒤편으로 뛰어오며 소리쳤다.

"야! 뭐 하는 거야! 박영식! 그만해!"

박영식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김수호.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세요, 이 씨X놈아. 너 새끼도 요즘 자꾸 거슬린다?"

박영식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허염환 옆에 쪼그리고 앉아 뒷머리 채를 잡아 끌어올리며 물었다.

"야, 허염환. 네 친구 왔다. 어디 다시 한번 말해 봐. 뭐? 뭔 버스? 우리가 뭔 버스에 타고 있다고?"

입에 물고 있던 양말을 퉤 뱉은 허염환이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박영식을 노려보며 차분히 또박또박 말했다.

"이 무식한 놈아. 버스를 타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이 바로 메타버스라고."

"와, 이 지독한 새끼. 들었냐, 김수호? 이 새끼 헛소리하는 거?"

"그만하라고 했다!"

들고 있던 허염환의 머리를 바닥에 휙 내던진 박영식이 일어나 김수호에게 다가갔다.

"야, 김수호. 너 공부 좀 하고 공 좀 찬다고 봐줬더니 우리가 아주 만만해 보이지? 어? 흙수저 새끼들이 끼리끼리 깝치네, 아주."

김수호 역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공만 잘 차는 줄 아냐? 네 뚝배기도 한번 깨줘?"

"뭐? 이 새끼가!"

박영식이 팔을 뒤로 당겼다가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김수호는 어이없이 큰 동작을 차분히 지켜보다가 가볍게 허리를 숙여 주먹을 피해 냈다.

그러고는 구부렸던 허리를 그대로 세우며 박영식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박영식은 잠시 휘청하더니 다리가 풀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뭐 별로 치지도 못하는구만, 어디서 일진 놀이야, 병신이. 야! 너희도 덤빌 거야? 아니면 이 새끼 데리고 당장 꺼져."

중학교 2학년임에도 거의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박영식이었다.

그런 그가 김수호의 주먹 한 방에 그대로 뻗어 버린 모습을 목격한 나머지 일당들은 겨우 박영식을 부축해 급히 자리를 떠났다.

달아나듯 자리를 피하는 일진들을 노려보던 김수호가 쓰러져 있는 허염환에게 다가가 물었다.

"허염환. 괜찮냐?"

"크아악, 퉤!"

허염환의 입에서 검붉은 핏덩이가 툭 튀어나왔다.

"어, 괜찮아. 고맙다, 김수호."

"가자. 우리 집 가서 약 바르고 그 메타버스 얘기나 좀 더 들려줘."

"역시 내 얘기를 믿어 주는 건 이 세상에 너밖에 없어, 김수호."

"뭐래? 병신. 하하하. 나도 안 믿어, 인마. 근데 이상하게 재미있단 말이야. 얼른 가자! 엄마가 오늘 돈가스 해놓는다고 하셨어. 그리고 딴 애들한테는 그 얘기 좀 하지 마. 그런 말을 누가 믿냐?"

"수호 너. 넌 믿어 주잖아."

"안 믿는다니까. 하하하."

김수호는 허염환을 부축해 학교를 빠져나갔다.

오늘의 행동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것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 채.

* * *

메타버스(Metaverse).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단어 'Meta'와 우주를 뜻하는 단어 'Universe'의 합성어.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 경제,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 세계.

가상 현실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으로 가상 현실 속 아바타가 현실과 같은 사회, 문화적 활동을 하고 그 안의 재화를 소비하며 또한 재창조할 수 있는 세계를 뜻한다.

【 넥시트 코인 】

2021년 현재.

영동대교 남단을 빠져나와 삼성동 쪽으로 좌회전을 하기 위해 핸들을 틀었다.

몸이 오른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벤츠 S클래스의 액티브 멀티 컨투어 시트가 부풀어 오르며 나의 우측 허리를 부드럽게 받쳐주었다.

고성능 스포츠 세단도 많이 타보았지만 정숙도와 승차감만큼은 단연 지금 운전하고 있는 이 S클래스가 최고다.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브랜드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자 차량 번호를 인식한 차단기가 자동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지하 4층까지 내려가고 나서야 주차장에 빈자리가 보였다.

입주민 간의 암묵적인 룰에 의해 지하 깊숙이 내려오고 나면 다들 주차선을 한 개 반씩 차지하고 여유 있게 주차를 해놓는다.

덕분에 나도 다른 차들과 마찬가지로 주차선을 여유 있게 물고 편안하게 주차를 완료했다.

뒷좌석에 앉은 말끔한 정장 차림의 신사가 앞 좌석으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기사님, 여기 자주 와보셨나 봐요. 네비도 안 찍고 잘 찾아오시네요? 덕분에 아주 편안하게 잘 왔습니다."

나는 뒤에 앉아서 지폐를 내밀고 있는 신사에게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하. 제가 주로 강남 쪽에서 일을 많이 해서요. 그리고 법인콜 부르셨으니 결제는 이미 다 됐습니다."

"덕분에 편하게 잘 와서 제가 따로 드리는 겁니다. 받으세요."

"아, 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참 차분하고 신사적이다.

대리운전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가진 사람들은 차분하고 친절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처럼 이런 사람들은 남들에게 베푸는 것에도 인색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멋진 중년 신사가 될 내 모습을 상상하며 다시 기사용 대리운전 어플을 켰다.

"자, 그럼 이제 두 콜만 더 타고 집으로 가볼까?"

지금 시간은 새벽 2시.

내가 살고 있는 사당역 근처 작은 원룸까지는 여기서 N버스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하지만 몇만 원이라도 더 벌어보기 위해 다시 기사용 대리운전 어플을 들여다보며 삼성동 고급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내일 학원 출근은 오후 2시까지이기 때문에 벌써 집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하루에 네 타임에서 여섯 타임.

그렇게 밤 10시까지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고등부 수학 강의를 하고 나면 온몸에 진이 다 빠져버리는 느낌이지만, 나는 그때부터 새벽까지 다시 대리기사로 일한다.

* * *

흙수저.

이 흙수저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태어날 내 2세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다.

학비를 벌기 위해 학교 다니면서 알바로 하던 학원 강사 생활이 자연스럽게 직업이 되었다.

잘나가는 일타 강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대치동 학원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내 수입은 그렇게 적은 편은 아니었다.

졸업 전에 이미 대기업 초봉은 넘는 대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취업보다는 학원 강사의 길을 택했고, 지금도 회사원 친구들보다 내 수입이 더 높다.

하지만 그 수입은 내 생활비와 인천에 계신 어머니 생활비, 그리고 여동생 학비 보조에 모두 들어가고 있다.

이렇게는 결국 흙수저의 삶을 벗어날 수 없기에 작년부터 나는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대리운전을 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200만 원 안팎.

나는 그 돈을 일 년 반째 한 푼도 빼지 않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

가상 화폐, 일명 코인.

나는 대리운전을 해서 번 돈을 모두 가상 화폐에 적립식으로 투자 중이다.

처음엔 24시간 널뛰는 차트에 일희일비하기도 했었지만 가상 화폐 차트를 자주 들여다보니 안 그래도 빡빡한 생활이 더욱 피곤해졌다.

그렇게 부족해진 잠 탓에 대리운전을 하다가 크게 사고가 날 뻔한 뒤로는 더 이상 차트를 들여다보지 않기로 했다.

그저 평균적으로 거래량이 가장 낮은 매주 일요일마다 점찍어둔 메이저 알트코인인 리더이움을 무조건 매수했다.

물론 1년 반 동안 리더이움의 차트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듯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하지만 등락과 관계없이 무조건 매주 대리운전으로 번 돈 전부를 투자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투자한 총금액은 3천8백만 원, 현재 평가 금액은 2억4천3백만 원이 되었다.

수익률 540퍼센트.

일 년 반 동안 대리운전을 해서 번 돈이 2억4천만 원이 되었다고 하면 꽤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돈은 남들 놀거나 쉴 때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서 번 돈 3천8백만 원이 종잇조각이 될 수도 있었던 위험한 투자의 대가였다.

그렇게 난 오늘도 내 건강과 수명을 깎아 먹으며 투잡을 해서 내 미래를 위한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

2억4천만 원.

사회 초년생치고는 꽤 큰 돈이 모였지만 방금 운전했던 S클래스를 한 대 사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 돈이다.

심지어 조금 전 걸어 나온 삼성동 브랜드 아파트는 매매가가 45억이다.

흙수저를 벗어나기엔 아직 멀었다.

* * *

대리운전 콜을 잡기 위해 들여다보고 있는 휴대폰이 전화 수신 화면으로 바뀌면서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허염환'.

중학교 때 만난 친구로 지금은 일 년에 한두 번 연락이 오고 가는 사이였다.

둘 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공통점 때문에 친해지게 되었는데, 유독 염세적(厭世的)이고 좀 유별난 녀석이라 주변에 친구라곤 나밖에 없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어, 염환아. 오랜만이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무미건조한 염환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녀석의 목소리는 언제나 이렇게 무미건조했다.

- …수호야, 잘 지냈어?

"나야 항상 똑같지 뭐. 여전히 흙수저 탈출 미션 중이다. 하하하. 너는 어때? 요즘은 뭐 하고 지내냐?"

허염환.

세상을 싫어하고 모든 일에 부정적이었던 이 친구는 대학도 가지 않고 취업도 하지 않았다.

- 오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장례는 치러야겠는데 부를 사람이 너밖에 없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어디 편찮으셨었어?"

- 나이 들면 다 죽는 거지, 뭐. 로그아웃하는 거랑 똑같아. 그래도 평생 나를 키워준 아버지인데 장례는 치러드려야겠다 싶어서 일단 장례식장에는 안치했다.

부를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문득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에 염환이가 혼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일단 빨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 누구랑 있어? 친척들은? 혹시 너 혼자 있어? 어디야 거기가? 지금 갈게."

- 응. 여기 인천 큰길병원. 어딘지 알지? 우리 중학교 근처에 있는…….

친척들이라도 좀 와있겠지? 혹시 진짜 혼자 있는 거 아니야?

"어, 알지, 알지. 나 지금 강남인데 바로 택시 타고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 고맙다. 역시 수호 너밖에 없어. 택시는 안 타도 될 거야. 아무튼 병원 앞에 오면 전화해.

"무슨 소리야? 지금 새벽 2시야. 이 시간에 인천 가려면 택시밖에 없지. 아무튼 당장 갈 테니까 기다려!"

전화를 끊고 고개를 아래로 내려 오늘 입은 옷을 살펴보았다.

완전한 상갓집 복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히 어두운색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길가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데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들어보니 아직 끄지 않은 기사용 대리운전 앱에서 배차가 들어왔다.

[출발지 : 삼성역. 도착지 : 인천 구월동 로데오아파트. 요금 : 4만 원]

구월동 로데오아파트? 큰길병원 바로 옆이잖아?

나는 바로 수락을 누르고 손님이 있는 출발지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염환이가 택시 안 타도 될 거라고 했는데? 신기한 일이네.

* * *

10월 20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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