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 *
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1층 스크린을 살펴보자 '상주 허염환'이 적혀 있는 호실이 보였다.
나는 옷매무새를 대충 정리한 다음 급히 해당 호실로 내려갔다.
"어? 여기가 맞는데?"
찾아간 호실엔 불이 꺼져 있었다.
내가 호실을 잘못 봤나 싶은 생각에 전화해서 물어보려고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어둠 속에서 염환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 왔어?"
불 꺼진 장례식장 안에서 염환이가 걸어 나왔다.
"야, 너 뭐야? 왜 불은 다 꺼놓고 있어?"
"올 사람도 없는데 뭘. 아니다, 너 왔으니 이제 불 켜야겠네. 이리 들어와."
아, 이 상황만은 제발 아니길 바랐는데.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은 도대체 어떤 놈이 만든 건지…….
우려했던 대로 염환이는 장례식장에 혼자 있었다.
그것도 불을 다 꺼둔 채.
"그렇다고 불을 다 꺼놓으면 어떡해, 인마!"
나는 애써 밝은 척, 어깨동무를 하고 전등 스위치가 있을 법한 쪽으로 염환이를 끌고 가서 장례식장 불을 밝혔다.
작은 호실의 열 개 남짓 되는 테이블은 모두 비어 있었고 흔한 상조회사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 테이블 위에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비탕이 두 그릇 놓여 있었다.
"이건 웬 갈비탕이야?"
"어. 너 오는 시간에 맞춰서 시켜놨어. 일하느라 배고팠지? 따뜻할 때 같이 먹자."
"어? 나 일하다 온 거 어떻게 알았어? 새벽까지 투잡하는 얘기 너한테 했었던가? 뭐 어쨌든 고맙다. 배고팠던 참이야. 근데 보통 갈비탕은 잔칫집에서나 먹는 거 아니냐? 장례식장에서 갈비탕은 좀 생소하네."
"잔칫집, 초상집이 무슨 상관이야. 그런 건 아무 의미 없어. 수호 너 갈비탕 좋아하잖아. 그래서 시켰어."
염환의 아버지 빈소에 간단히 재배(再拜)를 올린 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에 마주 앉아 갈비탕을 먹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야? 어디 편찮으셨어?"
"응. 뭐 여러 군데가 안 좋으셨었지. 당뇨에 고혈압에 온갖 합병증까지."
"그랬구나……. 아버지도 너도 고생이 많았겠다."
"고생이 많았지. 그러니 이렇게 고생이나 할 바엔 죽고 끝내는 게 훨씬 낫지 뭐. 차라리 다른 계정으로 새로 시작하는 게 나아."
"야!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그게 무슨 소리냐, 인마."
"수호야. 내가 이 세상의 비밀을 알아버린 게 중1 때였어. 널 만난 건 중2 때고. 유일하게 내 말에 귀 기울여줬던 너한테는 내가 여러 번 설명해 줬잖아. 살고 죽는 거,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아……, 또 저 소리.
망할 메타버스인가 뭔가.
"야, 허염환. 오늘 같은 날까지 그 소리냐? 그래, 네 말대로 그렇다 치자. 그런데 어쨌든 '나'라는 캐릭터를 조종하고 있는 것도 이 세상 밖의 '나'라며? 그럼 지금 이곳의 '내'가 결국 그냥 '나'인 거 아니야?"
듣다 보면 묘하게 빠져드는 탓에 예전부터 염환이의 이 메타버스(Metaverse)와 관련된 이야기를 곧잘 들어줬었는데, 염환이의 말이 헛소리든 사실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엔 달라질 게 없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아, 젠장.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 봐도 머리가 어질어질 어렵네. 어쨌든 인마, 그냥 열심히 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기쁜 일 있으면 웃고 슬프면 울고. 염환이 너도 좀 그렇게 살아보려 노력하라고 말했잖아."
"그건 네 말이 맞아. 나도 중2 때 처음 수호 네 의견을 듣고 충격을 좀 받았었지. '이 세상 속의 '나'를 조종하는 게 '나'라면 그건 결국 '나'일 뿐이다.' 정말 너 다운 멋진 해석이었어."
"그래, 인마. 내 말이 맞는다며. 너도 그럼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살아. 아버지 장례식장에서까지 이렇게 세상 싫은 표정하고 있지 말고!"
여기까지만 말했어야 했는데.
"이럴 거면 난 뭐 하러 불렀어? 아버지 로그아웃하신다고 문자나 하나 보내고 말지."
아, 실수다. 너무 흥분해 버렸어.
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 로그아웃하신다고 문자나 보내라니.
미친 김수호, 정신 차려.
"그래, 맞아.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도 다 너 덕분이야."
"그래. 다행이다, 인마. 그런데 올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어? 친척들은?"
"아직 연락 안 했어."
"연락을 안 해? 왜?"
"응. 이제 해야지. 그냥 그 사람들 와서 쓸데없는 헛소리들 하는 거 듣기 전에 너랑 좀 진짜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
다행이다.
정말 올 사람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수호 네 말 대로 살 수 없는 이유는……."
참고 들어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오늘은 너희 아버지 장례식이다, 이 자식아!
"아, 쫌! 그만!"
더는 못 참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잠시 내 눈을 바라보던 염환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수호 네 말이 다 맞는데, 내가 너처럼 살 수 없는 이유는… 이 시스템이 언제까지고 이렇게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야. 돈? 건강? 명예? 그런 것도 다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야. 시스템이 바뀌면 다 뒤집어지는 거라고."
인제 와서 큰 소리로 화를 내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중2 때부터 수십 번을 화내고 어르고 달래보아도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 녀석이었다.
"휴, 그래 내가 졌다. 염환이 네 말이 다 맞아. 그 얘기는 그만하자."
나는 좀 현실적인 화제로 대화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장례비에 대해 물어보았다.
"잠깐, 그런데 넌 돈 같은 덴 관심이 없었잖아? 장례비는 있어? 아버지도 따로 모아놓으신 돈이 없으셨을 텐데."
"없지. 그래서 네가 좀 빌려줬으면 해."
"뭐?"
"빌려달라고. 여기저기 물어보니 납골당 비용까지 해서 천만 원 조금 더 들던데?"
화제를 괜히 돌렸네.
젠장.
"그걸 나한테 빌려달라고? 갑자기?"
"응. 너 코인 해서 돈 많잖아. 내가 꼭 갚을게."
내가 이 녀석한테 코인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던가?
아닌데, 나 이 얘기 가족들한테도 안 했는데…….
"야. 그래, 우린 친구니까 빌려줄 수도 있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지금? 이렇게 갑자기? 이게 말이 되냐?"
염환이는 아무 말 없이 내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꼭 갚는다고 했다.
염세적이고 유별나긴 해도 그 이상한 메타버스 이야기 말고는 허튼소리를 하는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이 돈을 갚기 위해서라도 이제 경제 활동을 시작해야겠네?
그러다 보면 이 녀석이 좀 달라질 수 있을지도.
그래! 친구 인생 살린다 생각하고 오늘 밤 코인 천만 원 빠진 셈 치자!
그 돈 갚으려면 뭐 알바라도 시작하겠지.
대리운전이라도 가르쳐볼까?
그런데 이놈, 운전면허는 있던가?
"좋아. 빌려줄게."
"빌려줄 줄 알고 있었어. 고맙다."
염환이는 잠시 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더니 나에게 물었다.
"수호, 너 코인 지갑 주소 좀 알려줘. 우선 이것부터 보내줄게."
"갑자기 또 무슨?"
"글쎄 코인 지갑 주소 보내보라니까."
이 염세주의자 놈이 코인 투자를?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주소를 보내줘 보긴 했다.
어디서 났든 간에 뭐 얼마 안 되는 코인이라도 나한테 넘겨주고 부담감을 좀 덜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지.
잠시 후 알림음과 함께 내 지갑에 새로운 코인이 추가되었다.
"이게 뭐야? 넥시트코인? 개당 단가 50원?"
처음 들어보는 코인이었다.
하긴, 코인 투자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냥 점찍어 둔 리더이움만 계속 사고 있었을 뿐.
나머지 코인 시장엔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상장되어 있는 코인 이름을 다 알지도 못했다.
"뭐야, 이거? 4만 개? 넌 뭐 이런 코인을 4만 개나 샀어? 아, 4만 개 다 해봐야 2백만 원이구나. 그래, 어쨌든 잘 받았다. 빚 2백만 원 청산 완료."
"이건 내 말을 유일하게 믿어 준 대가야."
그렇게 넥시트코인 4만 개가 내 코인 지갑에 들어오게 되었다.
* * *
한 달 후, 11월 22일 월요일.
교무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옆자리 선생님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오늘도 역시 코인 대화였다.
나는 코인을 하고 있는 사실을 주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코인 대화에서는 늘 빠져 있었다.
어차피 리더이움만 매주 사 모으고 있었고 시세와도 상관없이 매수하고 있으니 코인 근황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그들의 코인 대화는 귓등으로 흘려넘기고 있었다.
"영어 쌤, 그 넥스트코인 샀어요?"
"에이, 한국사 쌤, 저는 세력이 장난질하는 코인은 안 사요. 그리고 '넥스트' 아니고 '넥시트'에요. Next랑 Exit의 합성어라고 하던데요? 세력질 코인 주제에 이름은 번지르르하게 잘 지었단 말이야."
"영어 쌤이라 역시 달라. 넥스트나 넥시트나. 하하하. 어쨌든 나는 그거 좀 사볼까 하는데 어때요? 지금 들어가면 완전 물리려나?"
"아니, 무슨 세력들 장난질도 적당히 해야지 이젠 종말론이라니요? 그런 코인 탔다가는 진짜 상장 폐지당해요. 시가 총액이 뭐 120억밖에 안 한다던데요? 그게 코인이에요?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어떻게 상장됐을까? 일주일 전엔 시가 총액 1억도 안 했대요."
듣고 있던 최수영 국어 선생님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시총으로 코인 상장이 돼요?"
"어? 최수영 쌤도 코인 해요? 금수저시라 이런 건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 아! 쌤 금수저 얘기 싫어하시죠, 참."
"괜찮아요, 쌤."
핸드폰을 들어 코인 거래소를 확인하던 최수영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 진짜 저번 달에 상장할 때는 시가 총액이 2천만 원이었네? 이런 게 어떻게 상장이 된 거예요?"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코인 얘기를 나누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으나 최수영 선생님이 대화에 끼어들자 나도 자연히 귀가 기울여졌다.
국어 담당 최수영 선생님.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리고 이 학원에서 소문난 금수저 선생님이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아버지가 역삼동에 있는 큰 종합병원 원장님이라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자기가 집안에서 제일 공부를 못했다고 하는데 그래놓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여대를 졸업했다.
교직 이수는 따로 하지 않았었는데 졸업 즈음해서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학원 강사가 되었다고 한다.
항상 웃는 얼굴에 주위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최수영 선생님은 금수저치고는 별로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지도 않았지만, 얼굴과 몸 전체에서 자연스럽게 귀티가 넘쳐났다.
처음엔 나와 너무 다른 환경을 가졌음에 호기심이 생겼었는데 자꾸 관심을 두다 보니 요즘 이상하게 얼굴을 마주 보기가 어려워졌다.
자꾸 보니 예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런 최수영 선생님이 코인에 관심을 보이니 자연스레 나도 그들의 대화를 더 이상 귓등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유심히 듣게 되었다.
"이게 오늘 오전에만 또 300퍼센트가 올랐네요? 엄청나네."
"아! 사흘 전에 움찔움찔거리기 시작할 때 들어갔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니까요. 영어 쌤, 이거 지금 들어가면 물리겠죠? 그렇죠?"
"아, 쌤! 물린다고 상폐된다고 몇 번을 말해요. 더 오를 수도 있으니 들어가 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거죠? 큰 욕심엔 큰 화가 따른다는 말, 몰라요? 이제 곧 올라간 속도보다 몇 배는 빠르게 내려갈걸요?"
그때, 최수영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 넥시트코인 지금도 계속 오르고 있는데요? 3만 원 넘었어요, 이제."
잠깐만, 넥시트코인? 어디서 들어본 코인 이름인데…….
허염환!
허염환이 준 코인이다!
염환이가 보내준 코인은 지갑에서 거래소로 옮겨두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에 거래소 앱 내 투자 내역에 따로 표기가 되지 않았었다.
워낙 잡코인인 듯하여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뭐?
지금 개당 3만 원이 됐다고?
50원이던 게?
성급히 휴대폰을 들어 거래소에서 넥시트코인의 단가를 확인해 보았다.
진짜 3만 원이 넘었네?
이번엔 코인 지갑으로 들어가서 내가 가진 넥시트 코인 4만 개를 확인했다.
평가 금액 12억?
염환이가 준 잡코인 2백만 원어치가 12억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도 계속 지붕을 뚫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 * *
11월 22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40,000개]
[단가 30,000원]
[평가 금액 12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