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 *
자신은 쏙 빼놓고 어떻게 이런 회사를 차릴 수가 있냐는 최수영의 공세에 '위험해서 그랬다, 이런 위험한 일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며 달래는 데만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나도 수호 씨 위험한 일 하는 거 싫거든요? 근데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이렇게 시작했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디펜서할 거예요. 말리지 말아요."
"좋아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최수영이라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더 마련해야 했다.
어쨌든 최수영이 다치는 건 싫으니까.
"채굴을 하려면 무기도 하나 사야 하고. 안전을 위해선 신체 능력도 더 강화해야 돼요. 코인이 꽤 들 거예요. 그래도 할 수 있어요? 그냥 당장 그 코인 다 팔면 평생 써도 못 쓸 돈이 생길 텐데요.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봐요."
"안 그래도 이 코인 다 팔아 우리 가족 모두 안전한 곳에 가서 지내자고 부모님께 말씀드려보긴 했는데 아버지가 계속 강남에 계시겠대요. 이럴 때일수록 병원이 더 필요하다나?"
최수영은 의자를 당겨 앉으며 상체를 내 쪽으로 숙였다.
"이렇게 된 바에야 나도 남은 코인 더 투자해서 서울에 있는 우리 가족들을 지켜주는 게 더 낫죠. 투자한 코인이야 그 괴수들을 잡다 보면 회수가 되지 않겠어요? 회수가 될 것 같으니 수호 씨도 이렇게 큰 회사를 차린 거 아니에요?"
이 정도까지 얘기하는 걸 보면 말리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수화기를 들어 인사팀을 연결했다.
"디펜서 계약서 한 부 가져다주세요."
"계약서도 써요?"
"별건 없어요. 활동에 필요한 제반 사항은 우리 메타디펜스에서 제공하는 조건으로 채굴된 코인은 디펜서 8대 회사 2로 나눈다는 내용이에요."
"8대 2? 우와, 수호씨 완전 장사꾼이었네?"
"그럼요. 하하. 나는 벌써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아요? 회수해야죠."
"알았어요. 계약서 쓰고 나면 나가서 밥이나 사줘요. 맛있는 걸로. 강화도는 뭐가 유명해요?"
"그럼 갯장어 먹으러 갈까요?"
"장어? 그런 걸 먹을 필요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정력이 제일 셀 거라고 소문난 메타디펜스 대표님께서?"
정력? 갑자기?
"갑자기 무슨? 강화도는 뭐가 유명하냐면서요. 여긴 장어가 유명하다고요."
"하하핫. 농담이에요 농담. 인터넷 댓글에서 봤어요. '힘, 체력 강화'상품을 사면 정력도 좋아지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수호 씨가 정력이 제일 셀 거라던데요? 어때요? 진짜 그래요? 하하핫."
"그 뒤로 아직 안 써봐서 몰……."
아, 이 성급한 주둥아리.
"흐흠. 장어 싫으면 뭐 다른 거 먹으러 가요."
"아니에요. 장어 좋아해요. 장어 먹으러 가요. 근데 수호 씨 얼굴 빨개진 거 봐. 하하핫."
똑똑.
때마침 계약서를 가지고 온 인사팀 직원이 문을 두드렸다.
이제라도 와 줘서 고마워요.
조금만 빨리 오지.
* * *
계약서 작성을 마친 최수영과 나는 함께 N마켓을 둘러보았다.
"수호 씨, 무기 이거 어때요?"
"어떤 거요?"
최수영이 내밀어 보여준 휴대폰 화면을 보자 'WFC(전투용 무기)' 메뉴에서 200NXT짜리 손도끼를 골라놓은 상태였다.
"손도끼?"
"범죄 도심에서 이걸로 싸우는 장면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하하핫. 이거 사고 남은 코인으로 신체 능력을 쭉 강화하면 나도 수호 씨처럼 싸울 수 있지 않을까요?"
"가까이서 싸우는 건 좀 위험할 수 있으니 좀 비싸긴 하지만 이건 어때요?"
내가 고른 무기를 최수영에게 보여주었다.
"활이네요? 나 활 쏠 줄 모르는데?"
"손도끼는 쓸 줄 알고요? 화살통에 화살은 무제한으로 채워진다고 하니 이거 사고 남은 돈은 '운동 신경 강화'에 집중하면 꽤 쓸 만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괴수들과 몸을 맞대고 싸우는 것보단 안전할 것 같은 무기를 골라 보여줬다.
활이라면 '힘, 체력 강화'에 코인을 더 투자할 것 없이 '운동 신경 강화'만 추가로 구매해도 효율이 극대화될 것 같다는 계산도 들어 있었다.
문제는 좀 비싸다는 것인데 화살을 무제한으로 쏠 수 있다는 이 활의 가격은 2,000NXT였다.
현재 시세로 4조 원이 넘어가는 무기.
"좋아요! 이거 사면 850NXT 남으니 그건 전부 '운동 신경 강화'를 구매하면 되겠죠? 그건 2개 더 살 수 있는 건가?"
"아무래도 '힘, 체력 강화'보다는 '운동 신경 강화'를 사는 게 활을 쏘는 데 유리하겠죠."
최수영이 휴대폰을 톡톡 두드리는가 싶더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에 커다란 활이 하나 생겨났다.
아무튼 돈 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여자다.
장갑 살 때도 그러더니 어떻게 저런 거금을 이렇게 쉽게 결제할 수 있을까.
최수영의 손에 들려 있는 활은 예상했던 옛날 활의 모양이 아닌 세련된 현대식 양궁 활이었다.
"어? 생각보다 멋지네요, 이거? 하하핫."
* * *
"쐐애액! 퍽!"
최수영이 뿌듯한 표정으로 양궁활을 천천히 내려 보였다.
"와……."
옆에 서 있던 양궁 개인 교습 선생님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채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활을 한 번도 쏴보지 않았다는 최수영의 말에 급히 섭외한 양궁 개인 교습 선생님은 비록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며 국민들에게 이름을 알리진 못했지만 양궁 선수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3년 연속 전국 체전 양궁 우승.
하지만 유독 국가 대표 선발전 때마다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올림픽에는 아직 출전 경험이 없는 선수였다.
예전에 올림픽에 처음 출전해 긴장한 어린 선수에게 코치가 이런 말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긴장하지 말고 쏴. 여기 올림픽이야. 전국 체전도 아닌데 뭘 그렇게 긴장해."
세계 올림픽 무대에서 외국 상대 팀을 상대하는 것보다 국내 전국 체전에서 순위에 드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그런 전국 체전을 3년 연속 석권한 선생님에게 양궁을 배운 지 사흘째, 방금 최수영은 25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과녁 한가운데 화살을 꽂아 넣었다.
뿐만 아니라 과녁 앞에는 반지를 실로 매달아 좌우로 움직이게 해둔 상태였는데, 그 반지는 최수영의 화살 허리에 걸려서 더 이상 진자 운동을 하지 못하고 멈춰 있었다.
망원경으로 과녁을 확인한 나는 박수를 치며 최수영에게 말했다.
"이야, 수영 씨 대단한데요? 혹시 더 멀리 있는 것도 맞출 수 있겠어요?"
"보이기만 하면 더 맞출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이거보다 멀어지면 과녁이 보이질 않을 것 같아요."
"저격용 스코프를 활에 설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네요. 개발팀에 요청해 놓을게요."
"색깔은 이 활에 맞춰서 하얀색으로 부탁해요. 하하핫. 이 활 참 마음에 들어요. 모양도 예쁘고."
자신의 양궁용 활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만족해하는 최수영을 보고 있자니 사무실에 놔둔 무식하게 까맣기만 한 내 검이 떠올랐다.
더럽게 비싸면 멋이라도 좀 있든가.
까만색이 뭐야, 까만색이.
더럽게 비싸고 무식하게 까만 내 마그네타 검은 회사에 있을 땐 사무실 한편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데 내가 일정 거리 이상 검에서 멀어지면 내 옆 공간으로 자동으로 이동됐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잡아서 집어 올리려고 하면 그 자리에 굳어진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는 최수영의 양궁 화살과 스키 장갑도 마찬가지였다.
최수영의 양궁 훈련이 막 끝나갈 때쯤 비서에게 전화가 왔다.
- 대표님, 30분 후 디펜서 후보 최종 면접이 있습니다.
"네, 알겠어요. 수영 씨도 함께 가요. 앞으로 우리와 함께하게 될지도 모르는 분들이니까요."
* * *
인사팀에서 서류 검토와 1차 면접을 마친 디펜서 지원자 두 명과의 최종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은 한 명씩 진행되었다.
첫 번째 지원자는 마흔한 살의 특전사 부사관 출신 넥시트코인 보유자였다.
구릿빛의 각진 얼굴이 누가 보아도 군인 같은 이 지원자의 이름은 박강훈.
"2차 습격 때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무기와 신체 능력 강화를 구입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퇴직금으로 이 코인을 사 모았었는데 코인 같은 건 처음 해봐서 12월 하락에 제때 팔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1월까지 들고 있게 되었습니다. 아휴, 작년 12월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하하하. 저도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대표님도요? 하하하. 어쨌든 이제 코인 가격이 많이 올랐으니 시골에 전원주택이나 크게 하나 지으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며 지내고 있었는데 수원에서 그 사달이 났습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있던 식당에 그 쥐새끼같이 생긴 것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N마켓에서 1,500NXT에 판매 중인 커다란 벌목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지원자는 말을 이었다.
"가지고 있던 넥시트코인을 모두 털어 이 벌목도와 '힘, 체력 강화' 두 개, '운동 신경 강화' 한 개를 샀죠. 덕분에 가족들은 지켰지만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하하하하."
빈털터리가 되었다며 호탕하게 웃고 있는 박강훈의 수원 고깃집 영상은 SNS에서 이미 여러 번 보았었다.
고깃집 안으로 난입한 거대한 스테인리스 쥐들을 박강훈이 이 벌목도로 모두 베어 버리는 영상.
한 번에 베어지지 않자 수십 번이고 같은 부위를 찍어내려 괴수의 몸통을 반으로 갈라버린 그 영상은 이미 뉴스에도 여러 번 나온 핫한 영상이었다.
"그럼 디펜서가 되시려는 이유는 다시 넥시트코인을 모아 전원주택을 사시기 위해서인가요?"
"우리 가족은 겨우 지켜냈지만 그 날 눈앞에서 수많은 시민과 군인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계 생물인지 뭔지 우리를 침공해 오는 그놈들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아들 녀석이 메타디펜스의 홍보 영상을 보여주었죠. 군 전역 후 무얼 해야 하나 갈피를 못 잡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제가 할 일을 찾은 것 같습니다."
"훌륭하신 분이네요. 디펜서로서의 목표가 있다면요?"
"그 잡것들이 더 이상 지구에 못 넘어올 때까지 이 벌목도로 베고 또 베는 것입니다."
"싸워보셔서 아시겠지만 만만치 않은 놈들이에요."
"이래 봬도 특전사 짬밥만 20년입니다. 그리고 코인이 채굴되는 대로 신체 강화 상품을 더 구입할 겁니다. 그렇게 그놈들이 계속 침공해 오는 한 저도 계속 N마켓의 상품을 구입할 겁니다. 대표님처럼 강해질 때까지요."
"채굴되는 코인 전부 다요?"
"물론 일부는 떼서 가족들 풍요롭게 지내게 해줘야죠. 하하하."
"좋아요. 합격입니다. 나가셔서 인사팀 안내를 받으시고 계약서 작성하신 후 내일부터 바로 트레이닝에 참여하세요."
"감사합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다음 지원자는 인도 사람이었다.
서류에는 나이가 52살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고 다부진 체구의 지원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국인의 얼굴에선 보기 힘든 크고 부리부리한 눈이 인상적이었다.
"안녕하쎄요. 인디아에서 온 아맛 라울 임니다. You can just call me Rahul."
라울이 서툰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라울, 한국말 하실 수 있어요?"
"한국말 아직 잘 못 함니다. So 그래서, I came with an interpreter. Could I let him in?"
라울은 직접 데려온 통역관을 면접에 참여시켜도 되냐고 물었다.
"Sure. tell him to come in."
짧고 어색한 영어였지만 옆에서 최수영이 '오오.' 하는 입 모양으로 바라보며 놀렸다.
곧이어 들어온 통역관은 라울 옆에 앉아 실시간으로 우리의 대화를 통역해 주었다.
라울은 타임지 표지도 장식한 적 있는 인도의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그 자산이 100조 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실제 나이는 52살이었으나 N마켓에서 '젊음 회복'을 구매해 젊어진 그는 메타디펜스의 홍보 영상을 본 후 회사의 경영권을 가족들과 전문 CEO들에게 모두 넘겨주고 한국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젊음 회복' 외에 N마켓에서 구매한 상품은 또 뭐가 있나요?"
"아직 없습니다. Mr. Kim과 뜻을 함께하고자 항공사와 공항 몇 개를 매각해서 그 돈으로 넥시트코인을 매수하고 바로 한국으로 왔습니다."
항공사와 공항 몇 개?
새삼 '부(富)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들의 평생의 꿈이 겨우 자기 집 하나 마련하는 것인데, 이 인도 재벌은 무슨 차라도 팔듯이 쉽게 항공사와 공항 몇 개를 팔아 디펜서가 되시겠단다.
"그래서 지금 8,000NXT를 준비해 둔 상태입니다. 영상으로 확인한 Mr. Kim의 행동과 뜻에 나는 엄청난 감명을 받았습니다. 돈이라면 이제 벌 만큼 벌었습니다. 다시 얻은 이 젊음으로 Mr. Kim과 함께 세상을 구하는 것이 내 인생 2막의 새로운 목적입니다. 이것이 내가 한국에 온 이유입니다."
8,000NXT면 한화로 약 17조 원이다.
"좋습니다. 합격입니다. 무기 구매는 잘 논의해서 결정해 보죠."
라울이 통역관을 거치지 않고 한국어로 대답했다.
"감싸 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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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1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8,062개]
[단가 21억 원]
[평가 금액 37조9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