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 *
나를 포함한 네 명의 디펜서는 매일 트레이닝 센터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훈련을 했다.
라울은 본인의 무기로 창 하나와 방패 하나를 샀고, 놀랍게도 박강훈에게 선뜻 200NXT을 선물해 박강훈이 '힘, 체력 강화' 3단계와 '운동 신경 강화' 2단계, 3단계를 구매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한화로 약 4천2백억 원어치의 선물을 받은 박강훈은 너무 놀라 라울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으나 라울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저 웃으며 말했다.
"Mr. Park, 우리는 팀이야. Mr. Kim이 말했써. 그놈들과 싸우려면 3레벨 필요하다고. We need at least 3 levels of physical ability."
영어를 잘 못하는 박강훈이었지만 풍부한 표정과 손짓 발짓을 동원해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말하는 라울의 말은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오케이. 땡큐 쏘머치. 대표님이 신체 능력이 둘 다 최소한 3단계는 되어야 할 거라고 말했었지. 내심 언제 코인을 그만큼 채굴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는데. 고마워, 땡큐 라울."
그때, 메인 서버와 연결된 우리의 휴대폰이 모두 경보음을 내기 시작했다.
정보기술팀 김 과장이 만든 택시 기사용 제보 앱에 비행 물체 발견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이 앱을 완성한 후 김 대리는 바로 과장으로 승진되었다.
검술 교관과 검술 훈련을 하던 나는 디펜서 모두에게 외쳤다.
"전원 바로 외근 준비하세요!"
사실 별다른 준비랄 것도 없었다.
퇴근 후였다면 모를까 근무 시간에는 이미 출동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각자의 무기를 들고 헬리콥터에 탑승하기만 하면 된다.
귀에 꽂고 있는 에이팟을 통해 이혁진 실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대표님! 이번엔 양천구 목동입니다!
"지금 바로 갑니다. 전략실도 서둘러 준비하세요."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간 우리 네 명의 디펜서는 이미 이륙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헬리콥터에 모두 탑승했다.
* * *
목동 현도백화점 옥상에 착륙하자 우선 박강훈과 라울은 큰 철제 가방을 두 개씩 꺼내 바닥에 펼쳐놓고 뚜껑을 열었다.
곧 가방 안에 있던 드론 수십 기가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와 최수영은 큰 로프 뭉치 두 개씩을 들고 단단히 묶을 곳을 찾은 후 네 개의 로프 뭉치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자! 채굴 시작합니다!"
네 명의 디펜서와 전략실은 모두 무선 이어폰으로 연결이 돼 있었기에 크게 소리칠 필요는 없었으나 첫 출동이니만큼 큰 소리로 채굴 시작을 알려보았다.
내 목소리를 들은 메타디펜스사의 디펜서들 네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로프를 잡고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첫 번째 상대는 마치 곰처럼 생긴 괴수들이었다.
가장 앞에 선 라울이 곰의 공격을 방패로 막으며 창으로 찌르면 뒤따르던 박강훈이 벌목도로 팔이나 다리를 잘라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럼 라울의 창이 다시 괴수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기 위해 머리 한가운데를 찔렀다.
최수영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활로 괴수들을 처리하고 있다가 혹시라도 디펜서의 등 뒤가 위험해진다거나 하면 바로 그 괴수의 머리를 화살로 꿰뚫어 디펜서들이 보다 마음 놓고 괴수들을 사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라울, 박강훈 2인조의 반대편에서 괴수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베어 나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무리의 사냥이 끝났고 우리는 전략실 이혁진 실장의 안내에 따라 다음 괴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곧바로 이동했다.
그곳엔 지난번 만났던 검은색의 괴수도 있었지만 그 괴수도 디펜서 네 명의 협공에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총 다섯 무리의 괴수들을 모두 해치웠을 때쯤 이혁진 실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직 땅에 내려오고 있지 않고 떠 있던 큰 비행 물체 하나가 지금 막 신정네거리역 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그쪽으로 바로 이동할게요."
목동역 인근에 있던 우리는 빠른 속도로 신정네거리역으로 이동했다.
역 근처에 도착하자 지금껏 보아왔던 것들보다는 몇 배는 큰 비행 물체 조각이 식당가 중심에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큰 비행 물체 조각은 처음 보는데요? 뭐가 많이 나올 것 같으니 조심하세요."
팀원들에게 주의하라는 말을 남기는 사이 비행 물체의 지붕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비행 물체의 크기가 크기에 많은 수의 괴수들이 쏟아져 나올 줄 알았는데 저건…….
"What the Fxxk! 머가 저로케 커요?"
"뭐야 이건. 어디부터 공격해야 하지?"
라울과 박강훈이 한마디씩 하며 쳐다보고 있는 곳에는 옆에 있는 3층 건물보다도 큰 반짝이는 붉은색 개미 한 마리가 비행 물체에서 나와 서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던 개미가 그들을 향해 거대한 입을 벌리자 입에서 시퍼런 불기둥이 쏟아져 나오며 사람들과 거리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입으로 불기둥을 쏴? 돌겠네. 수영 씨! 수영 씨는 일단 얼굴 쪽을 노려요! 라울! 박 상사님! 오른쪽 앞 다리를 맡아요! 나는 왼쪽 다리로 갑니다!"
며칠 되지 않았던 트레이닝 기간 동안 박강훈이 얼마나 군대 얘기를 많이 했던지 나는 이제 그냥 박강훈을 박 상사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개미는 가장 먼저 자신에게 달려오는 나에게 고개를 돌려 곧바로 시퍼런 불기둥을 뿜어내었다.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몸놀림이 꽤 민첩한 놈이었다.
순간적으로 옆으로 점프해 불기둥을 피해 냈는데, 한참 떨어졌음에도 그 열기가 생생히 느껴졌다.
불기둥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스팔트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불기둥 절대 조심하세요! 안전이 우선입니다!"
팀원들에게 경고를 해주며 다시 빠르게 개미에게 다가간 나는 몸을 날리며 개미의 왼쪽 앞다리 아래쪽을 그대로 베어 버렸다.
개미는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갔지만 쓰러지지 않고 나머지 다리로 버티며 우리와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뒤로 달아나는 개미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개미의 오른쪽 눈알 한가운데에 최수영이 쏜 것으로 보이는 화살이 어느새 열 개도 넘게 빼곡히 박혀 있었다.
열 개의 화살은 모두 정확히 한 점에 꽂혀 있었다.
"어휴, 잘 쏘긴 했지만 좀 잔인해 보이는데?"
혼잣말이었지만 에이팟을 통해 다 들렸는지 날카로운 최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뭐예요?
"아니에요. 잘했어요. 나머지 눈알도 부탁해요."
그때,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개미가 자신의 눈에 화살을 날린 최수영을 노려보며 입을 쩌억 벌렸다.
"수영 씨! 피해요!"
쩍 벌린 입에서 시퍼런 불기둥이 쏟아져 내려오자 개미와 최수영의 사이에 어느 순간 라울이 나타나 커다란 방패로 불기둥을 막아 내었다.
3,000NXT짜리 라울의 방패는 다행히 개미의 불기둥을 잘 막아주었고 불꽃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땡큐, 라울. 유알 쏘 스윗."
최수영이 과장된 악센트로 말하며 라울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렸고, 뒤돌아본 라울 역시 어디서 배웠는지 손가락 하트로 화답했다.
"Your welcome, Lady."
손가락 하트와 함께 느끼한 윙크까지 날리는 라울을 보며 '지금 내가 발리우드 영화를 보고 있는 건가?' 하는 착각에 잠시 빠진 사이, 박강훈이 개미의 아래로 뛰어들어 가 다리 하나를 더 베어 버리기 위해 벌목도를 크게 휘둘렀다.
깡!
하지만 개미의 큰 다리는 조금 패였을 뿐 한 번에 베어지진 않았다.
"에이, 시X! 이거 또 몇 번을 내리찍어야 하는 거야!"
박강훈이 몇 번이고 개미 발에 차이는 와중에도 집요하게 같은 곳을 네다섯 차례 더 찍어 내리자 그제야 개미의 다리 하나가 더 끊어졌다.
앞다리 두 개를 잃은 개미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앞으로 꼬꾸라졌고 그와 동시에 휘둘러진 내 검에 의해 머리와 몸통이 완전히 분리되었다.
"박 상사님! 괜찮으세요?"
"이 정도는 뭐 별것도 아닙니다."
강철과도 같은 개미 다리에 수차례 걷어차였으니 몸이 멀쩡할 리가 없음에도 박강훈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허리를 쭉 펴 보이며 양팔을 휘휘 돌리려다가 순간 왼쪽 어깨를 부여잡고 신음을 내뱉었다.
"으윽! 어깨가 빠진 것 같은데, 이거. 하하하. 민망하게."
"수영 씨, 박 상사님 좀 치료해 주세요."
최수영이 빠르게 다가와 치료 장갑으로 박강훈의 상처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혼자였으면 꽤 애먹었겠는데? 이 개미는 얼마예요, 이 실장님?"
- 2NXT 입니다!
이 거대 개미는 기본 괴수들에 비해 40배나 더 비쌌다.
"좋아요. 다음 위치 알려주세요! 수영 씨는 박 상사님 마저 치료해 주고 바로 뒤따라오세요. 라울! 저와 먼저 이동합니다."
- 대표님, 구청 방향 10단지 아파트 상가로 이동하십시오!
"오케이. 이동!"
커다란 개미와는 달리 남은 괴수들은 우리 디펜서들을 크게 애먹이지는 못했다.
언제나처럼 한발 늦게 나타난 군경을 도와 모든 괴수를 처리하고 난 메타디펜스의 디펜서들은 헬리콥터를 타고 다시 강화도로 복귀했다.
* * *
그날 저녁 메타디펜스 회의실
전략실에서 분석한 채굴 영상을 바탕으로 네 디펜서의 기여도를 나누는 브리핑이 진행되었다.
"거대 개미 한 마리와 검은 괴수 열세 마리를 포함해 약 320마리의 괴수를 처리하였습니다. 오늘 채굴된 코인은 모두 20.1NXT입니다. 현재 시세 기준 한화로 약 522억 원입니다. 이 코인은 전투 기여도에 따라 배분됩니다. 배분된 코인의 양은 화면에 띄웠으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혁진 실장의 브리핑이 끝나고 네 명의 디펜서들은 화면에 띄워진 배분된 코인의 양을 확인하였다.
모두가 배분 현황을 확인한 뒤 나는 디펜서들에게 동의 여부를 물었다.
"이렇게 채굴할 때마다 기여도를 나눠 넥시트코인을 배분할 계획입니다. 물론 계약서에 쓰인 대로 그중 20퍼센트는 메타디펜스에서 수수료로 가져갑니다. 배분 방식에 이의가 있으신 분은 바로 말씀해 주세요."
이혁진 실장이 말을 보탰다.
"오늘 잡은 금빛 대형 개미의 경우 배분을 따로 하지 않으면 막타 친……, 아! 회의 중에 이런 단어는 좀 그렇죠? 아무튼 마지막으로 목을 벤 대표님께서 2NXT을 채굴하신 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가 개미를 쓰러뜨리는 데 많은 기여를 하셨죠. 이런 이유로 영상을 분석해 기여도 배분을 진행한 것입니다. 물론 최수영 디펜서님의 치료 행위도 기여도 배분에 포함됩니다. 앞으로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공정히 배분하겠습니다."
박강훈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저는 불만 없습니다. 어차피 혼자서는 저놈들을 이만큼 상대할 수도 없습니다."
"역쉬 메타디펜스의 이런 fairness! 마음에 드러요. 나 라울은 찬성함니다."
"저도 불만 없어요."
모두의 동의하에 이번 채굴에서 얻은 넥시트코인은 네 명의 디펜서에게 골고루 배분되었다.
아직은 투자한 코인에 비해 채굴량이 미비한 수준이지만 첫 번째 단체 채굴치고는 나쁘지 않은 숫자였다.
초기 투자금이 너무 많이 드는 점은 이 사업의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진입 장벽 또한 높다는 의미이니 이는 반대로 메타디펜스에서 넥시트코인 채굴을 독점할 수 있는 장점으로도 적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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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18,072개]
[단가 26억 원]
[평가 금액 47조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