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 * *
참치 포케와 참치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데 TV에서 일본 관련 뉴스가 나왔다.
- 일본 군부 정부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막대한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현지 특파원 연결합니다.
"뭐야? 갑자기 무슨 배상을 요구했다는 거지?"
- 여기는 일본 도쿄입니다. 조금 전 와노 토쿠겐 사령관이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영상 확인하시겠습니다.
기자가 사라지고 조금 전 것으로 보이는 와노 토쿠겐의 영상이 나타났다.
- 3년 전, 한국은 우리 대일본제국의 육상총대가 자리한 이치가야 주둔지에 잠수함 탄도미사일 여덟 발을 발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지난 정부는 외세의 압박에 이 일을 조용히 넘어가려 했으나 우리 새로운 군부 정권은 결코 그렇게 물러터진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다.
슬슬 우리나라에 시비를 걸 명분을 만드나 본데, 이미 3년 전에 지나간 일을 가지고 저러는 건 좀 억지스러워 보였다.
내 생각과는 반대로 화면에선 토쿠겐의 망언이 계속 이어졌다.
- 이에 대일본제국은 한국의 무차별 미사별 공격에 대한 정당한 배상액으로 20조 엔을 요구하는 바이다.
최수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
"20조?"
"아니, 단위가 엔이야. 200조 원."
"엥? 미친 거 아니야?"
- 한국이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 대일본제국은 그날 있었던 한국 해군의 미사일 타격을 선제공격으로 간주하고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참치 포케를 싹싹 비운 스테노가 그제야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너희들 표정이 그 모양이야?"
"언니, 일본 가서 안경 벗고 며칠만 돌아다니면 안 돼요?"
"일본? 일본이 어딘데? 수호, 나 거기선 안경 벗어도 돼?"
"무슨 소리야. 안 돼."
최수영이 물었다.
"오빠, 쟤네 설마 진짜 우리나라랑 전쟁을 하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이긴 한데, 또 워낙 말도 안 되는 일이 많이 벌어지는 세상이라. 나도 모르겠네. 아무튼 지금 본격적으로 시비를 거는 건 맞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게 다 쿠라타니 후지로 그놈 때문이라는 거지?"
"나랑 칸 위원장 생각은 그래."
"걔를 빨리 잡아야겠네."
"그러게. 여기서 한가하게 관광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아마 칸 위원장도 이 뉴스 보고 있을 거야."
"그냥 우리 회사 디펜서 다 데리고 거기로 쳐들어가면 안 되나? 그 무인도."
"마음 같아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아직 명분이 없잖아. 그러다 우리 때문에 진짜 한일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어."
* * *
며칠 후, 늦은 밤.
독일 포츠담 하벨 강가.
독일 채굴기업 HSD(Helden zum Schutz Deutschlands)의 사장 로버트가 허겁지겁 자동차 문을 열었다.
그는 운전기사 피터에게 다급히 외쳤다.
"피터! 아까 통화하는 거 들었지? 나 혼자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혼자 괜찮으시겠……."
피터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쾅!
로버트가 차 문을 닫고 그대로 강가로 몸을 날리듯 뛰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로버트의 뒷모습을 보며 피터가 중얼거렸다.
"뭐, 괜찮으시겠지. 누군지 몰라도 로버트 대표님의 손자를 납치하다니. 간도 크군. 그나저나 에드워드 이놈, 괜찮겠지?"
피터는 조수석에 아무렇게나 세워둔 석궁을 만지작거렸다. N마켓에서 판매하는 1,500NXT짜리 무기였다.
"혹시 모르니 멀찍이라도 따라가 볼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을 굳힌 피터가 조용히 운전석 차 문을 열었다. 오른손으로는 석궁을 집어 들었다.
어두운 나무 그늘 사이를 헤치며 조금 이동하자, 저 멀리 강가에 로버트의 뒷모습이 보였다. 피터는 일단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다급히 뛰어갈 때와는 다르게 어느새 차분해진 로버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드워드는 어디에 있지?"
로버트와 조금 떨어진 곳.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달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사내의 얼굴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엔 독일인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동양인의 피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혼혈인이 유창한 독일어로 물었다.
"네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차분해졌던 로버트의 억양이 다시 격양되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 에드워드는 어디 있어!"
"독일인은 지난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민족이다. 비록 내가 전쟁을 일으킨 건 아니지만, 나는 전범국의 후예로서 항상 주변국에 사죄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대부분의 독일인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둘의 대화를 멀리서 듣고 있던 피터는 지금 혼혈인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금방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이틀 전 로버트 대표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을 지목하며 했던 말. 그는 지금 그 말을 그대로 읊고 있었다.
로버트가 권총을 꺼내 들어 혼혈인을 겨누었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에드워드가 어디 있는지나 말해!"
권총이 그의 심장을 정확히 겨누었음에도 혼혈인은 로버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일본인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얼마 전 한국을 대상으로 한 말도 안 되는 배상 요구 역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당연히 규탄받아야 할 행동이고 태도이다. 어때, 기억하지? 네가 이틀 전 언론에 대고 지껄인 말."
멀리서 보아도 로버트의 어깨가 위아래로 거칠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도 아끼던 손자가 납치당했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의 움직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로버트는 혼혈인에게 겨누었던 권총을 천천히 내려뜨리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함부로 그렇게 다른 나라를 평하는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었다. 사과한다. 부디 에드워드를 돌려다오. 부탁이다."
혼혈인이 로버트를 비웃듯 말했다.
"이미 늦었다. 너는 그분의 심기를 건드렸어."
혼혈인 뒤쪽 땅에서 갑자기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피터는 다급히 석궁을 들어 올렸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달빛에 반짝이는 거대한 인간 두 명이 서 있었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몸.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저들은 테라 행성에서 온 불사인이었다.
사태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는지 로버트가 등에 메고 있던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N마켓에서 구매한 커다랗고 두꺼운 바스타드 소드였다.
불사인 중 하나는 마법사인 듯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로버트와 같은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 들었다.
모양은 비슷한 검이었지만 크기는 두 배 정도 차이가 났다.
로버트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앞으로 빠르게 쇄도한 로버트는 검 끝으로 혼혈인의 발목을 살짝 그은 후 그를 집어 옆 수풀로 던져버렸다.
"으아악!"
수풀에서 혼혈인의 비명이 들려오는 걸 보니 발목이 제대로 그어진 모양이었다. 그는 이 전투가 끝날 때까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전투가 끝나면 로버트에게 에드워드가 있는 곳을 불어야 하니까.
이번엔 불사인 기사가 로버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둘의 바스타드 소드가 부딪히며 묵직한 소리가 났다. 덩치 차이와는 다르게 다행히 로버트가 힘에서 크게 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피터는 석궁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싸움에 개입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로버트가 괴한과 통화한 내용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괴한은 분명히 로버트 혼자 오지 않으면 아이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었다.
쾅, 콰앙!
로버트와 불사인의 검이 계속해서 부딪쳤다.
잠시 후, 피터는 불사인을 조준하고 있던 석궁을 아래로 내렸다.
힘, 속도 모두에서 로버트가 불사인을 앞서고 있었다. 역시 독일 최고의 채굴기업 HSD의 사장이자 대표 헌터였다.
'그럼 그렇지. 로버트 대표님이 밀릴 리가.'
피터가 불안의 끈을 느슨하게 풀기 시작할 때쯤, 뒤에 있던 불사인의 지팡이에서 푸른 빛이 생겨났다.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푸른 빛은 같은 편 기사에게 곧장 연결되었다.
'버프 마법!'
피터가 속으로 외쳤다. 불사인들은 저런 기술을 이용해 싸운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쾅, 콰앙!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불사인의 움직임은 눈으로 따라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고, 검이 부딪힐 때마다 로버트의 몸이 뒤로 휘청거렸다.
피터는 다급히 석궁을 다시 들어 올렸다. 뒤에서 버프 마법을 쓰고 있는 불사인을 조준했다.
틱.
조준을 마친 피터가 방아쇠를 당겼다.
쐐액.
HSD에서 개발한 소형 폭발물이 장착된 화살이 밤공기를 날카롭게 가르는 소리를 내며 불사인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소형 폭발물이 제대로 터졌다. 사방으로 불꽃이 튀고 흙먼지가 날렸다.
'해치웠나?'
흙먼지가 가라앉으면서 피터의 시야에 다시 불사인 마법사가 들어왔다.
푸른빛은 아직도 불사인 기사에게 연결되어 있었고, 마법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피터가 있는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법사의 앞에는 반투명한 실드가 펼쳐져 있었다.
피터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망했네. 이제 더 이상 숨어 있을 필요도 없겠군."
피터가 벌떡 일어나 로버트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된 이상 힘을 합쳐 싸워야 했다.
로버트와 함께 합을 맞춘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둘이 함께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때 로버트의 외침이 들렸다.
"오지 마! 피터! 달아나!"
왜 달아나라는 거지?
피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헌터로서 합을 맞춘 건 이제 3년이지만, 운전기사로서 그와 함께한 건 이미 30년이 훌쩍 넘었다.
로버트 켈러. 세계 2위 자동차 부품 회사 창업주의 큰아들.
안타깝게도 그는 선천성 장애로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그가 장애를 딛고 의료 공학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피터는 그와 함께했다.
피터는 그의 첫 번째 운전기사이자 유일한 운전기사였다.
둘은 고용주와 직원으로 시작해 친구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로버트의 의료 공학 사업은 나날이 발전했고 그의 회사는 아버지 회사 규모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로버트는 자기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의료 공학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했었다. 피터는 그런 로버트의 경영 철학도 존경했다.
로버트가 60살을 막 넘긴 해였다. 2022년이던가.
그는 넥시트코인으로 자신의 장애를 고쳤다. 평생을 연구에 몰두해도 고치지 못했었는데, 5분 만에 그의 다리가 치료되었다.
로버트는 그렇게 60살을 넘겨서야 두 다리로 온전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피터는 지금도 그날 로버트의 표정을 생생히 기억했다.
며칠 후, 로버트는 '다리는 나았지만 이제 너무 늙어버리지 않았느냐'며 젊음 회복 상품도 구매했다.
40대의 몸을 갖게 된 로버트.
다음날 그는 피터에게 엄청난 양의 넥시트코인을 선물했다.
자기의 유일한 친구가 너무 늙어 보인다는 이유였다. 그 당시 젊음 회복 상품의 가격은 거의 40억 유로에 가까웠다.
그렇게 다시 젊음을 되찾은 로버트와 피터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자며 채굴 회사를 차렸고, 지금까지 함께했다.
"그런데 나 혼자 도망가라니?"
피터는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그런 선택지는 피터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피터와 로버트가 합을 맞추면 아무리 커다란 몬스터가 나와도 이길 수 있었다.
"왜 도망가라는 거야? 같이 싸워야지."
있는 힘껏 달린 피터가 로버트 옆에 섰다.
"자, 로버트! 이제 저놈들이랑 다시 붙어보자!"
로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터가 옆을 바라보았다.
로버트의 배에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가 푹 꽂혀 있었다.
"로버트?"
너무 빠른 공격에 경직되었던 근육이 풀리며 로버트의 복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동시에 피터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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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42,208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282조 8천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