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쿠라타니 후지로 】
위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네, 칸 위원장님."
- 김 대표님, 독일 HSD의 대표가 어젯밤 실종되었습니다.
"네, 알아요. 지금 뉴스 보고 있습니다."
- 리암 소령 때와 상황이 유사합니다. N마켓 무기만 덩그러니 남았어요.
"며칠 전 그 인터뷰 때문이겠죠?"
- 확신할 순 없지만 정황은 충분합니다.
"이게 다 후지로가 벌이고 있는 짓들이 맞다면 저를 먼저 찾아왔어야 할 것 같은데 계속 애먼 사람들만 해치고 있네요."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복수를 위해서도, 한반도를 향한 야욕을 위해서도 김 대표님을 먼저 찾아가는 게 맞을 텐데. 아마도 대표님의 힘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함정 같은 걸 파고 있든지요."
- 그럴지도 모르고요. 우선 지금 보내드리는 메일을 한번 확인해 주십시오. 저희 쪽 요원이 침투해서 알아낸 하치조코 섬 비밀 기지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비밀 기지 안에 불사인이 최소 스무 명 이상 머물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군요."
- 몇 가지 확실한 증거만 더 모이면 아예 폭격으로 섬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아직 그럴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네요. 곧 한국에 선전 포고할 모양인데, 이대로 하치조코 섬에 쳐들어가서 다 없애버리고 싶지만 그럴 명분이 없습니다. 일본 군부 정부 하는 짓을 보니 그랬다가 자칫하면 진짜 전쟁 덜미를 마련해 주는 꼴이 될 것 같고요."
- 원래 그래서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는 게 어렵습니다. 누가 보아도 확실한 명분이 있기 전에는 대대적인 타격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오늘 지구방위위원회 회의가 있지요? 뉴욕에서 뵙겠습니다."
- 네. 이따 뵙겠습니다.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시겠지만 거기선 저와 따로 아는 체는 안 해주시는 게 좋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 *
우메오는 일찌감치 회의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회의 시간이 거의 임박해 오자, 강철 문이 열리며 김수호 일행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김수호, 최수영, 그리고 항상 같이 나타나는 선글라스를 쓴 아름다운 여인까지.
김수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우메오를 보고 또 하악질을 시작했다.
'저 고양이는 볼 때마다 거슬리는군. 지금 실컷 하고 싶은 대로 해둬라. 네 주인 놈의 명줄이 오늘내일하고 있으니.'
김수호 일행은 우메오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고, 우메오는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번 작전에 참여하는 결사대원들이 모여 있는 보안 채팅방이었다. 대화명은 그들만 알 수 있는 코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메오의 이번 코드 네임은 P였다.
[P : 김수호 뉴욕 도착. 회의 참석.]
[W : 타깃 감시 중. 10분 내 확보하겠음.]
[C : 모든 작전, 1시간 내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같은 시각, 한국 서울 청담동.
코드 네임 W와 E가 작은 건물 2층 계단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건너편 화려한 건물에서 남녀 한 쌍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혁진과 김성희였다.
"혁진 씨, 그래서 어떤 게 제일 마음에 들었냐니까?"
"다 예뻤지."
"그런 게 어딨어! 몇 번째 웨딩드레스가 제일 예뻤는데? 응?"
"음… 네 번째 꺼?"
"그래? 난 그건 별로던데. 괜찮아. 어차피 몇 군데 더 가볼 거야. 시간 없어. 빨리 가자."
둘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W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타깃 확인. 1조 이동 준비."
이혁진과 김성희가 건물 앞에 세워져 있던 포르쉐 카이엔을 타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차 뒤로 바로 검은색 카니발 한 대가 따라붙었다.
W와 E도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와 각자 오토바이에 올랐다.
잠시 후, 작은 골목의 교차로.
정면에서 좌회전하는 차가 지나가도록 이혁진의 차가 멈추어 섰다.
쿵.
뒤따르던 검은색 카니발이 포르쉐의 뒤 범퍼를 박았다.
잠시 후 이혁진이 차에서 내려 사고 부위를 향해 다가갔다. 카니발의 운전석과 운전석 뒤 슬라이딩 도어가 동시에 열렸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 둘이 이혁진에게 다가갔다.
순식간이었다. 사고 부위를 지켜보는 이혁진의 목덜미에 작은 주삿바늘이 꽂혔다.
"뭐, 뭡니까!"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 것도 잠시, 이혁진의 몸에 스르르 힘이 풀렸다.
두 명의 사내는 그런 이혁진을 붙잡아 곧바로 카니발 뒷좌석에 태우고 차 문을 닫았다.
바로 이어 오토바이 한 대가 카니발 왼쪽을 지나 운전석 문이 아직 열려 있는 포르쉐 옆에 섰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W는 그대로 포르쉐의 운전석에 타고 문을 닫았다.
"어? 누구세요?"
W는 깜짝 놀란 김성희의 목덜미에 작은 주사기를 꽂았다.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성희의 몸도 이혁진처럼 스르르 힘이 풀리고 말았다.
W가 곧장 포르쉐를 출발시켰고, 카니발도 그 뒤를 따랐다.
골목길을 지나 도산대로로 빠져나오며 W가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W : 타깃 확보 완료. 송파 주류 창고로 이동 중.]
[I : 워프 마법진 가동 준비 완료. 주류 창고 도착 즉시 하치조코 섬으로 워프 가능.]
W는 휴대폰을 품에 넣고 다시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옆에는 김수호 메타디펜스 대표의 여동생 김성희가 의식을 잃고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아 있었다.
모든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자신의 역할은 타깃을 물류 창고까지 옮기는 것.
하지만 W와 그의 팀원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김성희와 이혁진이 차고 있는 커플 시계. 겉으로 볼 땐 평범한 명품 시계였지만, 그 안엔 특수 제작한 GPS 장비가 들어 있었다.
시계 뒷면의 센서가 몸의 이상을 감지하고 바로 GPS 신호를 전송하기 시작했다.
신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혁진과 김성희를 따라붙던 메타디펜스의 작전 차량과 강화도 본사에 즉시 보내졌다.
20분 정도가 지나고 쇼인 결사대원들이 송파의 한 주류 창고에 도착했다.
차 두 대와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간 후 창고 정문은 굳게 닫혔다.
창고 부지가 비싸게 팔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종합 주류 회사의 안 쓰는 창고였다.
커다란 실내 창고와 그에 비해 아담한 사무실 건물이 하나 있었고, 둘을 합친 것보다 큰 앞마당엔 빈 플라스틱 박스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W는 포르쉐 카이엔에서 내려 천천히 실내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니발에서 내린 결사대원들이 이혁진과 김성희를 질질 끌고 실내 창고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위이잉, 위잉.
마당 위 하늘에 드론 몇 기가 나타났다.
드론 소리를 들은 W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벌써 추적되다니? 서둘러! 어서 실내 창고로 모두 이동해라! 촬영되고 있을 수 있다!"
유독 큰 드론 하나가 마당 중심부에 위치했다. 꽤 대형 드론이었다.
지잉.
드론 바닥에서 카메라 렌즈 같은 게 튀어나왔다.
촤악.
렌즈에서 콘서트나 축제에 쓰일 법한 녹색 레이저 빛이 쏘아져 나왔다.
드론이 쏜 레이저 빛은 땅바닥에 지름 10미터 가량의 도형을 비추었다. 커다란 원 안에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도형이 얽히고설켜 있는 모양. 마법진이었다.
지잉.
이번엔 카메라 렌즈 옆에서 작은 파이프가 튀어나왔다.
퉁.
파이프에서 빨간 마력석이 발사되었다. 마력석은 레이저 도형이 시작되는 지점에 정확히 떨어져 땅에 절반 정도 폭 박혔다.
최근 개발 완료된 메타디펜스의 신기술. 워프 드론이었다.
화악.
레이저 도형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이 사라지자 레이저로 그린 마법진 위에 김수호, 최수영, 스테노가 서 있었다.
드론은 레이저 빛을 거둬들였고, 땅 위에는 아무런 흔적 없이 작고 빨간 돌멩이 하나만 박혀 있을 뿐이었다.
급히 닫히는 실내 창고 문을 노려보며 김수호가 입을 열었다.
"이 X새끼들. 다 죽었어."
* * *
납치, 살인.
쇼인 결사대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일본을 장악하고 한국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 조직.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리암 소령이 살해된 직후, 내 주변 인물들에게 GPS가 내장된 시계를 차게 하고 강화도를 떠날 땐 항상 멀찍이 작전 차량이 쫓아다니게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동생 성희를 따라다니던 작전 차량에서 쏘아낸 워프 드론을 통해 뉴욕에서 이곳 한국 송파로 바로 워프했다.
조그만 내장 칩에 수백 가지의 마법진 도형이 입력된 워프 드론.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마법진과 언제 어디서든 바로 연결이 가능한 장비였다.
놈들이 다급히 실내 창고 문을 닫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콰앙!
순식간에 몸을 날려 실내 창고의 커다란 철문을 그대로 부숴버렸다.
문을 닫으려던 결사대원 두 놈은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실내 창고 중앙에는 미리 그려놓은 듯한 마법진이 있었고, 불사인 세 놈이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성희와 이혁진 실장을 질질 끌고 가던 놈들이 놀라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 손 놔."
놈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내 동생한테서 그 더러운 손 치우라고!"
촤악.
순식간에 뽑은 마그네타 검에서 묵빛 검기가 쏘아져 나갔다.
얇고 예리한 검기는 축 처진 성희의 뒤통수와 목덜미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툭.
성희를 끌고 가던 놈의 머리가 그대로 몸통과 분리되었다.
그제야 불사인 세 명이 내 앞을 막아섰다.
마법사 한 명에 검사 둘.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푸른 빛이 나와 검사 둘에게 이어졌다.
콰과과과!
한 놈에게 그대로 대천흑룡을 날려 보냈다.
대천흑룡을 정면으로 받아낸 불사인은 그대로 상체가 모두 터져버렸다.
남은 한 놈이 급히 검을 찔러 들어왔다. 검 끝에는 푸른 검기가 발현된 상태였다.
쐐액!
뒤쪽에서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퍼엉!
최수영의 화살이 검을 찔러오던 불사인 검사의 머리통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이제 남은 건 마법사 하나.
놈이 급히 실드를 전개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때.
"움지기며누 이 여자는 죽눈다!"
결사대 한 놈이 성희의 목에 단검을 들이대고 소리쳤다.
쐐액!
다시 파공음.
"으악!"
최수영의 화살이 성희의 목에 단검을 대고 있던 놈의 손등에 꽂혔다. 화살이 손등을 뚫고 지나가면 다음은 성희의 쇄골이었는데, 최수영의 화살은 정확히 놈의 손등만 꿰뚫고 멈추어 섰다.
신기에 가까운 궁술이었다.
나는 그대로 불사인 마법사에게 몸을 날렸다.
놈의 실드와 마그네타 검이 강하게 부딪쳤다.
콰앙!
제법 하는 놈인 듯 실드로 내 공격을 막아냈다.
한 번 더.
콰앙! 콰지직!
두 번의 격돌 만에 놈의 실드는 산산이 부서졌다.
실드를 뚫고 들어간 마그네타 검은 그대로 놈의 상체를 반으로 갈랐다.
남은 결사대 놈들은 최수영의 화살이 하나씩 처리했다.
"수영아, 성희랑 이 실장님 데리고 가까운 병원으로 가줘."
"오빠는?"
나는 실내 창고 중앙에 그려진 마법진을 가리켰다.
"가서 다 죽여버리고 와야지."
"나도 같이 가."
"나 혼자 충분해. 금방 갔다 올게. 그보다 성희 좀 부탁해."
잠시 고민하던 최수영이 대답했다.
"알았어. 별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몸조심해. 성희랑 이 실장님은 우리 아빠 병원으로 데리고 갈게. 여기서 멀지 않아."
"그래, 고마워."
나는 놈들이 그려놓은 마법진 중앙에 가서 섰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테노가 내 옆에 와서 섰다.
"수호."
"왜?"
"화내니까 멋지네?"
"쓸데없는 소리."
레온에게 배운 대로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밝은 빛이 나와 스테노를 감싸 안았다.
* * *
3월 29일 김수호 넥시트코인(NXT) 보유 현황
[보유량 42,238개]
[단가 67억 원]
[평가 금액 283조 원]